노사 협상의 주요 현안으로 임금피크제가 새롭게 떠오르고 있다. 임금과 고용이라는 노사 관계의 핵심 사안을 아우르는 임금피크제는 저출산, 고령화, 청년 실업 등 저성장 기조가 예상되는 한국 경제의 불가피한 선택이란 인식이 주류를 이룬다. 그러나 운용 시기, 방법을 놓고는 이견이 팽팽하다. 찬성, 반대 양쪽 입장을 들어본다. <편집자 주>

임금 피크제 찬(贊)  /  김정한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구조 조정 폐해 방지할 유일한 선택이다” 




 업이 중고령자를 조기 퇴직시키려는 가장 큰 이유는 연령의 임금 프리미엄에 기인한다. 연령의 임금 프리미엄이란 직무 특성, 사업체 및 산업의 특성, 개인의 인적 특성(숙련, 기능 등) 등을 통제한 상태에서 순수한 연령에 의한 임금 프리미엄으로서 생산성을 반영하지 않는 순수한 연령에 따른 임금 프리미엄, 즉 생산성과 임금 간의 괴리가 중고령자의 고용을 불안하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 이와 같은 임금의 연령 프리미엄은 주로 대기업 관리직에서 가장 강하게 나타나며, 전문기술직, 제조업 대기업의 사무직, 그리고 미약하지만 대기업의 생산직에도 상대적으로 크게 나타나고 있다.

  연공급제가 현실의 임금 체계라고 할 경우 중고령자의 계속 고용을 가능하게 하는 방안으로는 크게 중고령자의 생산성을 임금 수준과 비슷하거나 높게 하는 방안과 중고령자의 임금 수준을 생산성에 맞춰 낮추는 방안으로 구분할 수 있다. 

  전자의 방안인 생산성을 높여 중고령자에 대한 해고 유인을 제거하는 방안은 고령자의 고용 유지 또는 고용 안정을 위한 근본적인 대책은 되지 못한다는 한계를 안고 있다. 물론 연공급제 하에서 고용을 유지하는 대가로 임금을 조정하는 임금피크제의 도입은 임금과 공헌도의 균형을 붕괴하여 중고령자의 불만과 일부 노동조합의 반발을 초래할 수 있다는 문제점도 안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선진국에 비해 중층적 노후 생활 보장제도가 상당 정도 미흡할 뿐 아니라 조기 퇴직한 중고령자는 종사상 지위의 저위와 함께 낮은 재취직 가능성으로 근로 빈곤 계층(working poor)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적지 않기 때문에 임금피크제의 도입은 중고령자의 고용 유지 및 고용 창출을 위해서도 상당한 의미가 있다고 판단된다.

  또한 조기 퇴직은 기업에는 ▲ 고령자의 능력·경험 미활용 ▲ 종업원의 사기 저하 ▲ 사회보장비(법정복리비) 증대 ▲ 개인의 소비 감소로 경영 실적 악화를 초래할 가능성이 있으며, 국민경제 차원에서는 ▲ 연금과 건강보험 등 사회보험 재정 부담 급증 ▲ 사회 불안 심화 ▲ 소비 위축으로 경제 활력을 저해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 

  임금피크제란 근로자의 계속 고용을 위해 일정 연령을 기준으로 임금을 조정(일반적으로는 삭감)하고 그 기간 동안 고용을 보장하는 제도다. 임금피크제 유형에는 각 기업이 단체협약이나 취업 규칙으로 정한 정년 연령을 보장하는 것을 전제로 임금을 조정하는 ‘정년 보장형 임금피크제 모델’과 정년을 연장하거나 정년 퇴직 후 고용 연장을 할 경우 연장된 기간만큼 임금을 조정하는 ‘고용 연장형 임금피크제 모델’이 있다. 

  임금피크제는 2003년 7월 신용보증기금에서 국내 최초로 도입한 이후 금융권, 공공기관, 언론사를 중심으로 도입이 점차 확산되고 있는 실정이다. 도입 유형은 초기에는 정년 보장형 임금피크제 모델이 많았지만 최근에는 고용 연장형 임금피크제 모델도 함께 도입하는 기업이 증가하고 있다. 특히 고용 연장형 임금피크제 모델은 60세에도 미치지 못하는 정년 연령과 국민연금 수급 개시 연령과의 격차를 메운다는 의미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닐 뿐 아니라 2013년부터 국민연금 수급 연령이 61세로 상향 조정되고 2033년에는 65세에 국민연금이 지급된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특히 노동조합에서 무조건적으로 임금피크제 모델을 반대만 할 것이 아니라 고용 연장형 임금피크제 모델의 도입을 주도할 필요성이 있다.



임금 피크제 반(反)  /  허윤정 한국노총 중앙연구소 연구원



“고용 보장 장치 없는 임금피크제는 허구” 




 난해 채용 전문 기업인 코리아리크루트(주)가 직장인 850명을 대상으로 임금피크제에 대한 의견을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3분의 2가량이 ‘불가피하게 명예퇴직과 임금피크제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임금피크제를 택하겠다’고 응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반적인 고용시장이 불안한 상황에서 고용 안정과 임금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것이 어렵다면 차라리 임금을 양보하겠다는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는 결과인 것이다.

  임금피크제가 정년을 보장할 수 있는 하나의 대안으로 작용할 수 있으며, 숙련되고 노련한 노동자의 노하우와 전문성을 사장시킴으로써 값비싼 사회적 비용을 치르는 대신 저렴한 비용으로 이용할 기회를 가질 수 있다는 점에서 상당히 매력적임은 부인할 수 없다. 중고령 인력의 임금 감축분이 청년 실업자들을 구제하는 데 쓰일 수 있다는 긍정적 효과도 생긴다. 그러나 점차 중고령 인력이 사회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고령사회에서 이는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청년실업에만 초점을 맞추다 보면 지금은 별로 문제되어 보이지 않는 고령실업의 덫에 걸려들게 되고 이는 또 다른 문제를 낳게 될 것이다.

  임금피크제가 가지는 여러 긍정적인 효과에도 여전히 노동자에게 미칠 부정적 영향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먼저 우리나라 소득 분포는 외환 위기 이후 현실적으로는 40대에 소득 수준이 정점에 이르러 50대 초반이 되면 30대 후반 수준으로 떨어지고 있다. 그런데 자녀의 교육과 결혼 등에 많은 지출을 필요로 하는 50대의 임금 하락은 매우 치명적일 수 있다. 또 만약 정년을 보장하는 임금피크제가 많은 기업에 관행으로 정착된다면 정년까지 일할 수 있는 노동자의 당연한 권리도 협상 테이블에 오르게 되고, 생산성 이상의 임금을 받기에 충분한 노동자까지 일정 연령에 이르면 자동으로 임금이 삭감될 수도 있다. 이익이 많이 나거나 인건비 부담이 크지 않아 임금피크제가 굳이 필요하지 않은 기업들에까지 자칫 악용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국내외 경제의 침체, 고용 사정의 악화 등으로 인하여 최근 들어 임금피크제를 도입하거나 도입에 관심을 가지고 노사가 함께 연구의 필요성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는 기업들이 많이 늘어나고 있다. 우리은행, 기업은행 등에서는 정년을 1년 연장하는 임금피크제를 도입하기로 합의했으며, 금융권이 아닌 공기업, 또는 다른 부문에서도 도입에 대한 검토가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임금피크제를 얼마나 많은 기업이 도입하느냐에 대한 관심보다는 어떠한 임금피크제를 도입해야 하는지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일률적인 형태보다는 각 기업에 적합하고 필요한 형태의 제도를 개발해 내는 것이 중요하다. 무엇보다도 어떤 임금피크제를 개발하고, 어떤 식으로 적용해 나갈 것인지에 대한 노사 간의 합의가 필요하다. 어떠한 경우라도 임금 삭감의 수단으로 이용되지 않도록 노조와의 사전 합의가 필수적이다. 정년 이후 숙련 인력의 활용 차원에서 임금피크제가 도입된다면 중장년층의 고용 기회는 확대될 것이지만 그에 앞서 정년 연장이라는 대전제가 확립돼야 한다. 

  사실 임금피크제는 재정이 튼튼하고, 고연령자에게 적합한 직종이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도입하기가 힘든 제도다. 회사의 공헌도나 직무 등을 고려한 다면적인 평가 기준이 수립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의 임금피크제 도입은 임금 삭감으로 악용될 가능성이 있다. 경영 여건이 허락되지 않는 기업들의 경우 임금피크제는 그야말로 '그림의 떡'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