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회사들 마다 연봉협상이 시작되면 헤드헌터들도 덩달아 바빠진다. 유능한 인재를 구하려는 회사는 물론 이직을 희망하는 샐러리맨들의 호출이 잦기 때문이다. 여성헤드헌터 1호로 불려지는 유순신(48) 유앤파트너즈 대표도 그 중 한 사람이다. 얼마전 육군정책 여성자문위원으로 위촉돼 더욱 바빠진 유 대표를 만났다.
 순신 대표는 이름만 들으면 남성적 이미지가 연상되지만, 실제로는 가녀린 외모의 유앤파트너즈 CEO다.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회 인사개혁전문위원으로 활동한 그녀는 이름 때문에 생긴 에피소드로 가볍게 말문을 열었다.

 “의전을 할 때 대통령 옆에는 여성위원이 앉도록 자리를 배치하고, 영부인과 함께 나오실 때 여성위원은 다른 쪽에 떨어져 앉도록 자리를 배치합니다. 그런데 의전을 담당하는 분이 제 이름만 보고 남자일 거라 생각해 영부인 옆에 자리배치를 한 거죠. 저로선 굉장한 영광이었지만, 담당자는 나중에 크게 혼났다고 하더라고요.”

 유 대표는 헤드헌팅 업계 쪽에선 ‘여성 헤드헌터 1호’로 통한다. 이런 별칭이 가끔은 부담스럽지 않느냐는 질문에 “솔직히 여성 헤드헌터 1호는 아닌데, 1997년에 출간한 <나는 고급두뇌를 사냥하는 여자>라는 책 때문에 헤드헌터 하면 나를 마치 브랜드 네임처럼 기억해 주는 거 같다”고 답했다.

 당시는 국내에서 헤드헌터라는 개념이 생소할 때로, 그녀를 계기로 헤드헌팅 업계가 붐을 이루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유 대표는 고급 인력을 기업체에 스카우트해 주는 서치펌 유니코서치를 떠나 2003년 5월 유앤파트너즈를 설립했다. 전문화 및 특화된 인재 추천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로 헤드헌팅뿐만 아니라 HR서비스와 커리어컨설팅 전반을 다룬다. 유럽의 서치펌인 AIMS(International Management Search)와 전략적 제휴를 맺고 있으며, 2년이라는 단시간에 업계 1위라는 목표를 달성했다.

 “헤드헌터 하면 좋은 이미지도 많지만, 아직도 사람을 빼간다는 식의 산업스파이와 같은 부정적 이미지가 큽니다. 그렇기에 애초에 회사를 설립할 때 돈을 벌 목적이 아니라 ‘개인의 경력관리를 위한 컨설턴트다’ 이런 마음으로 일하다 보니 성공확률도 높고 기업이나 개인 모두에게 신뢰를 얻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라고 겸손하게 업계 1위의 비결을 밝혔다.

 덕분에 그녀는 그동안 굵직한 프로젝트에 참여해 왔다. 작년에는 김정태 전 국민은행 행장 후임자 인선작업의 실무를 담당하기도 했다. 이는 그녀에게도 큰 의미를 지니는 일이었다. 우리나라 국책은행들 중에서 규모도 큰 편이고, 주주도 외국계 회사로 미국에 있는 주주들과 화상회의까지 걸쳐 후보자 평가를 했다고 한다. 올해는 남중수 KT 사장 취임을 비롯해 한준호 한국전력공사 사장까지 10개 남짓한 대형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CEO 후보자를 평가하는 데에서는 각 회사의 특성을 고려한 기본적 전문성은 물론이고, 리더십, 사람을 관리하는 인간관계, 투명하게 경영하는 윤리성, 부하직원을 키워 줄 수 있는 인성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관리를 위한 관리는 하지 않는다’

 유 대표는 유앤파트너즈의 대표이사로 굴지의 대기업 CEO들을 만나며 여러 직함을 갖고 있지만, 지금의 자리에 오기까지 탄탄대로만은 아니었다.  1979년에 대한항공 승무원으로 입사했지만, 결혼과 동시에 회사의 방침에 따라 일을 그만두어야 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외국계 회사에서 7년 정도 근무한 뒤, 미국계 회사인 NCH코리아에서 화학제품을 국내 시장에 파는 세일즈 매니저를 하다 지인의 권유로 헤드헌터 일을 시작했다. 서치펌인 유니코서치에 부장으로 입사, 대표이사 자리를 맡으면서 연봉 2억원대의 ‘성공 여성’ 대열에 올랐다.

 “대표이사로 승진하자, 저보다 나이도 많고 뒷배가 든든한 남성 동료들의 불만이 컸습니다. 하지만 남들의 질시가 있더라도 그 사람들을 비난하기보다는 내가 아직 무언가 부족한 게 있다고 생각하고 더욱 노력했습니다. 이 힘든 상황을 내가 더 성숙하고 성장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 보았던 겁니다.”

현재 유 대표가 집중적으로 관리하고 있는 고객만도 3000여명은 족히 넘는다. 이들 대부분은 톱클래스에 속하는 사람들로 이름만 대만 누구나 알 수 있는 사람들이다. 인적 네트워크가 중요한 헤드헌터로서 이들을 일일이 관리하는 것이 쉽지 않겠다는 질문에 ‘관리를 위한 관리는 하지 않는다’고 잘라 말한다. 축하할 일이 있으면 축하하고, 어려운 일이 있으면 도우면서 저절로 자연스럽게 친분을 쌓아 간다는 게 유 대표의 설명이다.

 “한 달에 대략 20개 정도의 모임이 있습니다. 대개가 CEO포럼이나 제가 현재 속해 있는 위원회 활동 같은 것들이죠. 그러다 보니 지인들과 같은 주제로 토론하고 의논하면서 얘기를 나누다 보면 저절로 서로를 알게 됩니다.”

 이런 만남을 통해 알게 된 사람 가운데 남승우 풀무원 회장과 오영교 행정자치부 장관은 유 대표에게 귀감이 되어 준 특별한 사람들이다. 남 회장에게 메일을 보내면 새벽 1, 2시에도 한 줄의 코멘트일지라도 ‘알았습니다. 진행하십시오’ 하는 식의 답변을 보내주는 정성에 놀랐다고 한다. 오 장관과는 위원회 활동을 함께 하면서 친분을 쌓았는데, 위원장이던 그는 회의 약속시간에 늦는 법이 없었단다. 하루는 유 대표가 “어떻게 매번 이렇게 일찍 나오시느냐”고 묻자, “약속이 생기면 그 시간의 15분 전이 자신의 약속시간”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이런 점이 바로 헤드헌터라는 직업의 매력인 거 같아요. 일반인이 만날 수 없는 대기업의 간부들을 만나고 돈 주고도 들을 수 없는 그들만의 경영철학을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들으며 배울 수 있죠. 또한 여자라고 불이익을 받을 일도 없습니다. 오히려 사람을 대하는 일이다 보니 감성적으로 섬세한 여성이 더 유리하죠.”

 유 대표는 헤드헌터라는 직업은 여성 특유의 감성을 살리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직업이고, 자신도 그런 특혜를 보고 있다며 특유의 자상한 미소를 지어 보인다.

 연말은 헤드헌터들에겐 연봉협상을 비롯해 이직 등 인사와 관련한 일들로 한창 바쁠 시기다. 직장인들을 위한 연봉협상이나 이직과 관련해 조언을 부탁하자, “연봉과 직책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으려 하지 마십시오”라고 답한다.

 “이직은 6개월 계획 하에 실행해야 하고, 이직에 대한 뚜렷한 목표와 이유가 있어야 합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자주 이직을 해 몸값을 올리고 직급을 높이려고 하지만, 5번 이상의 이직은 오히려 마이너스 요인”이라는 게 유 대표의 지적이다.

 고객을 관리하고 여기저기에서 자문위원으로 활동하느라 24시간도 모자를 지경이지만, 주말엔 반드시 재충전의 시간을 갖는 게 그녀만의 스트레스 해소 비법이란다.

 “작년까지만 해도 주말에 일을 하곤 했는데, 개인적 생활과 일이 조화를 이뤄야 열심히 살 수 있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업계 1위 회사의 CEO이자 한 가정의 어머니로 부족함이 없어 보이지만, 내년부터 다시 박사공부를 시작할 거라는 유 대표의 얼굴에는 벌써부터 의욕이 묻어난다. 지난 10월21일 육군정책 여성자문위원으로 위촉되기도 한 유 대표는 내년도 올해만큼이나 바쁠 예정이다. 유 대표에게 성공 비결을 묻자, “위기를 기회로 삼고 부단히 노력할 결과”라는 진부한 답변을 내놓았다. 그러나 그녀의 대답이 어쩌면 가장 정석일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