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년 전, 고산자(古山子) 김정호는 한반도의 형상을 과학적이고 실증적인 방법을 통해, 당시로서는 혁명적이라 불릴 만한 ‘대동여지도’를 제작했다. 육십 평생의 절반인 30년을 그는 조선 팔도를 종횡하며 정밀한 지도 제작에 바쳤다. ‘정밀한 지도를 통한 부국강병’. 김정호가 지도를 남김으로써 이루려고 한 꿈이었다. 김정호 사후 40년이 흐른 뒤 한반도는 일본제국에 의해 강점되었다. 혼이 담긴 ‘대동여지도’는 서가의 어두운 귀퉁이로 옮겨졌고 김정호의 꿈은 깨져 버렸다.

 그로부터 100년이 지난 2004년, 한반도가 처한 국내외의 상황은 한 세기 이전과 별반 다르지 않다. 세계지식포럼 참석차 지난 10월 중순 내한한 폴 케네디(역사학자이자 미래학자, <강대국의 몰락> 저자)의 표현처럼 ‘한국은 네 마리 코끼리(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의 한 가운데’에서 여전히 불안에 떨고 있다. 내부 상황은 100년 전보다 더 악화되어 있다 해도 과장이 아니다. 50년 넘게 막대한 분단 비용을 지불해 오고 있고, 북핵 위기는 수그러들지 않고 한반도를 전쟁 위협에 시달리게 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한국 경제마저 극심한 내수 부진과 실업률 증가, 고유가로 몸살을 앓고 있다. 외신들은 앞다퉈 ‘활력 잃은 아시아의 용’ 한국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그들이 칭찬을 아끼지 않았던 ‘한국인 특유의 프런티어 정신’은 정치적, 이념적 지향을 달리하는 세력대결 양상 속에 흩어지고 있다.

수출액과 수입액을 합친 무역 규모 세계 12위, 국내총생산(GDP) 세계 13위, 1인당 국민소득 1만2600달러, 철강·조선·메모리반도체·가전 분야 경쟁력 세계 1위 수준…. 전쟁의 폐허를 딛고 일궈낸 한국 경제가 세계시장으로부터 받아든 성적표는 분명 상위권이라 할 수 있다. 한국 경제에 대해 우려를 표하는 이들도 위협 요인 극복 여부에 따라 한국 경제의 미래를 긍정적으로 전망한다. 안팎의 불안 요인에도 불구하고 외국인들은 꾸준히 한국 주식을 사들이는 한편 투자를 하고 있다. 현 정부가 ‘위기 상황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 ‘경제 성장률 5% 확신한다’는 장밋빛 전망의 근거가 여기에 있다.

 출간 후 베스트셀러에 오른 <10년 후 한국>의 저자 공병호(공병호연구소장)는 10년 후 미래에 대한 개인적 견해를 이렇게 밝혔다.

 “앞으로 한국 경제는 역동성을 상당히 상실하게 될 것이다. 외부적 요인도 있지만 더 큰 요인은 우리 내부에 있다. 물론 나의 직관이나 통찰, 판단이 언제나 정확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의 경험과 정보, 지식을 토대로 향후 10년을 미루어보면 낙관보다는 낙담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 사실이다.”

 역동성으로 표현돼 온 한국의 활력 넘치는 에너지가 미래에는 점점 빛을 잃게 되는 가장 큰 원인으로 공 소장은 “시장경제와 개인주의, 사유재산제도에 대한 존중과 격려보다는 사회주의로 기울어 온 정치 환경 변화와 도전정신을 잃어버린 기업가”를 들었다. 그의 다양한 주장과 견해를 종합하면 한국 경제의 성패는 ‘시장경제 중심과 기업가의 도전정신 회복’에 달린 셈이다.

 현재 한국 경제의 현주소를 알려주는 각종 지표들은 곳곳에서 경고음을 울려 오고 있다(표 참조). 극심한 내수 부진에도 불구하고 홀로 한국 경제를 지탱해 오던 수출 증가율이 6월 이후 뚜렷한 감소세를 보이고 있고, 수출 경쟁력과 물가에 치명적인 원유 가격 상승률이 50달러선(텍사스중질유 기준)을 넘어서 좀처럼 내려오지 않고 있다. 내수 침체의 가장 큰 원인을 제공한 신용불량자 문제는 정부의 각종 대책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그 숫자가 들어들기는커녕 오히려 늘어난 상태다. 지난해 말 372만 명에서 올 8월 368만 명 수준으로 줄었지만 이는 세금 체납자와 사망자의 숫자가 통계에서 제외했기 때문으로 종전 기록대로라면 신용불량자는 8월 기준 382만 명으로 오히려 10만 명이 늘어나 있는 상태다.

 2004년을 두 달여 앞둔 지금, 한국 경제는 지속적 성장과 퇴보의 교차로에 서 있다. 지나친 낙관도, 과장된 비명도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140년 전 김정호가 ‘대동여지도’를 만들었던 것과 같은 과학적이고 실증적인 비전 제시만이 절실히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