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일 3국, 그리고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인도, 나아가 호주와 뉴질랜드를 포함하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은 최근 급속한 경제성장을 바탕으로 실질적인 경제통합을 달성해 가고 있다. 2004년 무역통계에 따르면, 중국은 한국의 제1수출국(498억달러)이고, 일본의 제2수출국(744억달러)이다. 일본은 한국의 제3수출국(217억달러)이며, 중국의 제3수출국(735억달러)이다. 이처럼 한·중·일 3국은 무역을 통한 경제의존 관계를 급속히 발전시켜 왔으며, 최근 3국 사이의 투자 증가를 배경으로 한 상호의존 관계는 더욱 심화되고 있다.
China

FTA 시장의 ‘큰손’

12개국과 체결



 난 7월1일은 세계경제에 또 하나의 거대시장이 탄생한 날이다. 이날부터 중국과 아세안 10개국의 18억 인구를 한데 묶는 ‘차프타(CAFTA=China-ASEAN Free Trade Agreement)’ 건설을 위한 시장통합 작업이 본격적으로 이뤄졌다. ‘차프타’는 아직 신생아에 불과하지만, 10년 뒤면 상품 분야에서는 관세 없이 자유무역이 이뤄지는 거구의 성인으로 탈바꿈한다.



 아세안에 먼저 ‘깃발’

  중국·아세안 10개국이 결합한 차프타는 2003년 기준으로 2조1200억달러가 넘는 GDP와 1조6600억달러가 넘는 역내 교역량에 막강한 경제력을 지녔다. 세계 인구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차프타’ 시장통합은 북미자유무역지대(NAFTA)와 EU에 이은 세계 3대 경제권 건설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자, 아세안 지역시장 선점을 위한 한·중·일 간 경쟁에서 중국이 주도권을 선점하게 된 것을 의미한다.

 중국과 아세안 국가들은 7월1일부터 7445개 품목에 대한 관세 인하 및 폐지 작업에 들어가, 2010년까지 관세 없는 자유무역지대를 만들어 시장통합 작업을 완성하게 된다. 양측은 첫 20일 동안 기존 관세율을 재점검하고 세관시스템에 대한 기술적인 조정을 거친 뒤, 7월20일부터 대상품목 중 40%가량에 대해 0~5%의 관세율을 적용하고 있다.

 이어 2007년 1월부터는 관세 감면대상을 60% 이상으로 확대하고, 2010년까지는 7445개 전 대상 품목에 대한 관세를 폐지할 계획이다. 관세 인하 및 폐지 대상으로 설정된 품목은 농수산물과 광물에서부터 첨단 기술제품에 이르기까지 중국과 아세안 교역물량의 90% 이상을 차지해, 명실상부한 통합시장 효과를 거둘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아세안 10개국 중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필리핀, 태국, 싱가포르, 브루나이 등 선발 6개국은 2010년까지 중국과 무관세를 실현하고, 캄보디아, 라오스, 미얀마, 베트남 등 후발 4개국은 유예기간을 더 부여해서 2015년까지 무관세 교역을 실현할 계획이다.

 중국은 아세안과 통합시장을 만들어 이 지역에서 정치·경제적 리더십 확보를 위한 교두보를 마련하였다. 과거 일본의 텃밭이었던 지역에서 중국이 경제통합의 주도권을 쥐게 된 것이다. 이는 미국과 EU 등 역외 경제권이 중국의 정치·경제적 부상에 대한 견제를 강화하는 것에 대한 대응효과도 있다.

중국은 ‘차프타’를 발진시키며 세계 FTA 무대에 화려하게 등장했지만, 불과 1년 전만 해도 FTA 후진국이었다. 세계 30대 경제대국(GDP 기준) 가운데 유일한 FTA 미체결 국가였다(대만 포함). 그러나 최근 들어 한·중·일 FTA 추진을 적극적으로 제안하는 등 FTA에 대한 소극적인 자세에서 완전히 입장을 선회했다. 중국이 세계 각국과 추진하고 있는 FTA 상황을 보면 숨 가쁠 정도이다. 작년 11월 아세안과 FTA 상품부문 협상에 최종 합의한 이후, 거의 매달 1개 이상의 국가와 FTA 관련 협상이나 연구·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현재 중국이 정부간 FTA 협상을 진행 중이거나, 민간 차원에서 연구·논의 중인 국가는 모두 19개국. 이는 상품 분야 FTA가 이미 발효된 아세안 10개국은 제외한 숫자다.

 이처럼 중국이 FTA 체결에 적극적인 입장으로 선회한 것은, 유럽연합(EU)과 NAFTA 등 지역협력체의 배타적인 경제협력으로 상대적인 차별에 직면하는 등 외부적인 요인과,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한 이후 무역자유화에 대한 자신감 등 내부적인 요인이 결합한 것으로 보인다. 갈수록 격화되고 있는 아시아 지역의 주도권 확보 경쟁에서 우위에 서겠다는 정치적인 요인도 중국이 FTA에 적극적으로 나서게 된 배경이다.

 대표적인 예가 호주와 FTA 체결을 추진하는 것이다. 현재 중국은 호주의 세 번째 교역 상대국이다. 2004년 교역액은 204억달러로, 전년 대비 50%나 성장했다. 호주는 중국의 경제발전으로 아주 큰 혜택을 본 국가 중 하나다. ‘원자재 블랙홀’인 중국에 철광석·천연가스·알루미늄·구리·양모·밀 등 막대한 원자재와 식량 등을 수출하면서 호황을 누렸다.



 중국·인도 결합시 엄청난 폭발력

 존 하워드 호주 총리가 지난 4월 중국에 대해 ‘완전한 시장경제 지위’ 국가로 승인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미국과 일본뿐 아니라 호주 주요 기업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중국 편에 선 것이다. 최근 호주가 일부 현안에서 ‘탈미친중(脫美親中)’ 입장을 보이는 경우도 적지 않다. 지난해 말 호주정부는 대만해협에 분쟁이 발생하더라도 미국 편을 들지 않을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밝히기까지 했다. 중국은 이런 호주와 FTA 체결을 통해 경제적으로 한층 더 결속을 시도하고 있다.

 중국이 인도와 FTA를 추진하는 것은 엄청난 폭발력을 가진 사안이다. 25억 인구가 결합한 시장이 현실화되면 세계경제는 명실상부한 ‘친디아(CHINDIA)’의 시대가 열릴 것이다. 양국 FTA는 2003년 6월 인도 총리가 중국을 방문하여 협상 추진을 제안한 데 이어, 중국 탕자쉬안(唐家旋) 외교 담당 국무위원이 작년 10월 인도에 공식제안하면서 본격적인 논의가 이뤄졌다. 원자바오(溫家寶) 총리는 지난 4월 인도를 방문, 에너지자원 개발을 중심으로 제3국에서 공동프로젝트 추진을 위주로 한 FTA 논의를 구체화하기로 했다.

 중국은 이 밖에 칠레, 파키스탄, 페르시아만안협력회의 6개국, 남부아프리카관세동맹 5개국과도 FTA협상을 진행 중이다. 특히 파키스탄과는 지난 8월 정부간에 협상을 처음 시작했음에도 추진속도가 빨라 1년 이내에 협상이 완료될 것으로 보인다. 양국은 내년 1월1일부터 1253개 품목에 대해 3단계로 나눠 관세를 점진적으로 인하하고, 2008년 1월부터는 대상 품목을 모두 무관세화 하는 양허안에 합의한 상태다.

 중국은 한·중·일 3국 FTA 추진에 대해서도 적극적이다. 주룽지(朱鎔基) 전 총리는 2002년 ‘아세안+3’ 회의에서 3국간 FTA 공동연구를 처음 제안했다. 당시 한국 측은 동의를 표시했지만, 일본은 한국과 FTA 조기체결을 희망하며 소극적인 태도를 취했다.

 중국은 한·중·일 FTA 주도권을 잡기 위해 지난 6월 이해찬 총리가 중국을 방문했을 당시 정부간 협상을 제안하며 선수를 치고 나왔다. 원자바오 총리는 이 총리에게 “민간 차원의 공동연구가 어느 정도 진전되면 정부간에도 협상을 조속히 가동시켜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제안했다.

 이는 현재 속도를 내고 있는 한·일 간 FTA 추진을 견제하려는 목적도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현재 중국은 정부의 핵심 싱크탱크(think tank)인 국무원 발전연구센터를 포함한 연구기관들이 한·중 양국간 FTA 연구에 착수했으며, 한국의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측과 민간 차원의 공동연구를 진행 중이다. 이처럼 동북아에서 FTA는 역내경제 주도권을 선점하려연는 치열한 경쟁의 한 형태이기도 하다.



Japan

FTA 중시로 급선회

깐깐하고 치밀하게 접근



 일본은 동아시아 지역의 실질적인 경제통합을 중시하면서 양자간 자유무역협정을 통해 민간 차원에서 진행되는 아시아 지역 내 경제통합을 더욱 가속화시겨 나가는 동시에 아시아  지역에서 정치·경제·외교상의 주도권을 확보하려고 노력해 왔다. 일본의 대외통상 전략은 전통적으로 WTO의 다자간 협상을 중시하는 것이었으나, 1990년대 이후에는 아시아 지역에서 진행되는 경제통합 과정에서 급속하게 변화하기 시작했다. 변화의 시점은 1998년이다.

 1998년 일본이 최초로 FTA 협상 대상국으로 중시한 국가는 바로 우리나라였다. 한국의 경제발전 단계가 일본에 가장 근접해 있고, 일본이 원하는 수준 높은 경제통합을 달성할 수 있는 국가로 최적합하다고 판단에서였다. 또한 일본이 개방을 가장 꺼리고 있는 농업 분야에서 한국과 맺 FTA를 맺으며 큰 영향이 미치지 않을 것으로 예측했기 때문이다.

 어쨌든 1990년대 말 이후 일본정부는 WTO의 다자간 협상을 중시하면서도 이를 보완하는 수단으로서 FTA를 활용하는 전략으로 선회했다. 대외통상 전략을 FTA 중시로 선회한 이후 일본정부는 주로 아시아 지역의 국가와 FTA 협정을 체결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미국, EU 등의 거대 경제권과 맺는 FTA보다는 지리적 접근성이 좋은 동시에 최근 경제관계가 급속히 긴밀해진 아시아 지역 국가를 중시하는 것이 일본의 이익에 보다 부합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일본정부는 FTA 협정 체결의 우선 대상국으로 한국과 ASEAN 국가를 중시하고 있다. 한국은 경제발전 단계가 비슷하고 농업에 미치는 영향이 적다는 점과 ASEAN 각국은 전통적으로 다수의 일본기업이 진출해 있어 경제통합의 이익이 매우 클 것이라는 점이 그 배경으로 자리하고 있다.



 한·아세안에 ‘손짓’

 중국과 맺을 FTA는 보다 장기적인 과제로 설정하고 있다. 중국이 WTO에 가입한 결과 중국 내 사업 환경이 많이 개선되고 있고, FTA가 체결되지 않더라도 중국과의 경제거래 관계는 실질적으로 발전해 가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나아가 중국을 우선순위에 둔 데는 중국의 농산물이 일본시장에 급속히 밀려들어오는 것에 대한 불안감도 큰 영향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일본은 FTA 이외의 개별 분야에서도 협상을 중시하고 있다. 예를 들면, 투자협정 체결이 그것이다. 일본의 경제단체는 FTA 협정 체결을 중시하면서도 그보다는 투자협정과 같이 실질적이고 조속한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양자간 협정체결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중국과의 투자협정이 조기에 체결되고 이를 통해 일본의 대중투자가 보호되는 단계에 이른다면 중·일 FTA의 필요성은 크게 저하할 것으로 보인다.

 정리해 보면, 일본은 1990년대 후반 이후 WTO의 다자간 협상을 보완하는 수단으로 FTA를 중시하기 시작했고, 협상 대상국을 동아시아 지역의 국가로 한정하면서 FTA  이외 개별 분야의 협상도 중시하는 전략을 구사해 왔다. 한마디로 말하면 실사구시적 접근법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전략 아래 일본정부는 싱가포르, 멕시코와 FTA를 체결했다. 최근 필리핀, 태국, 말레이시아와는 협상을 거의 마무리하고 있으며, 새롭게 인도네시아와 FTA협상을 시작했다. 앞서 싱가포르와 맺은 FTA는 일종의 연습용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며, 멕시코와 체결한 FTA는 상당히 방어적인 성격이 강하다. 멕시코는 이미 미국 및 EU와 FTA를 체결하고 있어서 일본이 멕시코와 FTA를 체결하지 않을 경우에 이 지역에서 일본기업의 경쟁력이 손상될 우려가 높았다.

 필리핀, 태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 ASEAN 주요국과의 FTA협상도 상당히 진척돼 있다. 그러나 이들 국가와 체결할 FTA협정의 구체적 내용을 살펴보면 자유화의 정도는 상당히 낮다고 볼 수 있다. 이들 국가와 협상하는 데 걸림돌로 작용하는 문제는 주로 인력이동, 농업개방, 자동차·철강 등의 시장개방 문제다.

 필리핀은 필리핀 간호사들의 일본 내 활동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으나, 일본은 이를 수용하지 않고 있다. 태국은 자국의 자동차 산업보호를 위해 일본의 자동차시장 개방 요구에 난색을 표하는 상황이다. 이런 문제들 때문에 일본이 ASEAN 국가들과 체결할 FTA는 상당히 낮은 수준의 자유화에 머물러 있다.

 우리나라와 진행하고 있는 FTA협상은 현재 거의 1년 가까이 교착상태에 빠져 있다. 우리정부가 제조업에 미칠 악영향을 우려해 협상에 적극적이지 못한 측면도 부정할 순 없지만, 일본정부에도 분명히 문제가 있다. 바로 농업시장 개방 문제가 그것이다. 또 중국의 대두, ASEAN 각국과 FTA 협상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지면서 우리나라와 일본 간 FTA협정 체결은 우선순위에서 뒤로 밀려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일본은 FTA를 중시하면서도 실질적으로는 FTA를 통한 경제통합을 달성하 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 이유는 일본의 FTA 정책을 저해하는 많은 대내·외적 요인들이 있기 때문이다.



 일본도 내부 정리 서두를 듯

 대내적으로는 일본의 FTA 추진체계가 아직 갖춰져 있지 않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FTA가 포괄하는 의제는 매우 다양하다. 무역, 투자뿐만이 아니라 과학기술, 서비스, 환경, 지적재산 등 많은 협상 분야가 있다. 그러나 일본의 경우 이들 협상 분야는 각각의 관련 성청이 분산적으로 관리한다. 성청 간의 정책을 조정하고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추진력도 부족하다. 대외적으로는 반일감정이라는 역사문제가 가로놓여 있다. 특히 한국과 중국의 반일감정은 쉽게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다.

 이런 문제를 고려해 최근에는 한·중을 배제하고 미·일 동맹의 기초 위에서 ASEAN과의 관계강화를 강조하는 논조까지 등장했다. 이는 한·중·일 3국의 경제통합을 기초로 아시아 전체를 통합해 가자는 논조와는 사뭇 다른 성격을 지닌다. 그러나 이 논조는 아직 일본에서 힘을 얻지 못한 상태이다. 문제가 있다 하더라도 한·중·일 3국의 협력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 일본의 기본적인 입장이다.

 결국, 이는 일본이 아직 본격적으로 FTA를 대외통상 전략에 활용하는 단계까지 이르지 못한 걸 대변한다. 특히 중국 경제의 급부상과 더불어 아시아 지역을 둘러싼 중국과의 패권다툼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진 현재, 일본 입장에서 보면 보다 효율적이고 적극적인 FTA 추진체계의 정비를 모색해야 할 단계에 이르렀다. 향후 일본의 FTA 정책이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 것인지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