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국내에서 손에 꼽히는 히트작으로 분류되고 있는 SK텔레콤의 TTL 브랜드지만, 초창기 탄생과정에는 진통이 많았다. TTL을 통한 SK텔레콤의 발 빠른 변신에는 시장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한 실무진의 노력도 있었지만, 이를 적극적으로 믿고 지원한 CEO 조정남(64) 부회장의 결단도 함께 작용했다.
 1999년 당시 SK텔레콤의 국내 이동통신 시장점유율은 매월 40% 이상을 기록하고 있었다. 그해 4월 SK텔레콤의 간판 브랜드인 ‘스피드 011’은 한국능률협회컨설팅에서 주관하는 한국산업 브랜드 파워 조사결과, 2위 브랜드와 두 배 이상의 점수 차이를 보이며 이동전화 부문 1위로 선정됐다.  하지만 스피드 011은 20대의 젊은 층에서는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10대 후반부터 20대 초반에 이르는 연령층에 대한 시장점유율은 20% 이하로, 당시 LG텔레콤을 포함한 PCS 3사 등에 비해 뒤지는 수준이었다.

 회사의 장기적 도약을 고려할 때 문제가 아닐 수 없었다. 20대는 이동전화를 처음 가입해 사용하는 연령대이고 통화량도 많은 기반 고객층이다. 앞으로 출시될 IMT-2000과 무선데이터 서비스 등 미래 핵심상품의 주 고객층이기도 했다. 이들을 놓치면 회사의 미래는 밝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당시 회사 측이 내걸었던 브랜드인 ‘스피드 011’은 어디까지나 점잖은 비즈니스용이고 어른들의 이동전화라는 인상을 주었지, 신세대의 감성과는 어울리지 않았다.

 회사 측은 연구에 들어갔다.

 신세대를 잡기 위해서는 단순히 요금인하나 단말기 가격인하가 아니라, 상품, 요금, 대(對)고객 커뮤니케이션 등을 아우르는 종합적인 상품 패키지를 통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표적 고객인 18~23세 고객들의 라이프스타일을 상세하게 분석하고, 그에 맞는 종합적인 상품을 개발, 신세대에 적합한 표현 방식으로 알리는 방법을 세웠다.

 임수길 SK그룹 홍보팀 차장은 “그전까지만 해도 휴대폰을 주로 사용하는 사람들은 30~40대 직장인들이었는데, 시장수요가 포화상태가 되면서 새로운 시장을 일부러 만드는 게 절대적으로 필요했다”면서, “신규시장을 어디에서 만들 것인가 찾아보니 20대들이었으며, 유행에 민감하고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세대를 타깃으로 삼아 보자고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회사 내부에서는 논란도 많았다. 가령 “이들이 경제활동 연령이 아니어서 부모들이 가입시켜 주겠느냐”는 지적에다, “이들이 과연 회사에 큰돈이 되겠느냐”는 반대의견도 속속 나왔다. 특히 나이 든 임원들의 반대가 많았다.

 신규 수요층이 확대되지 않으면 성장이 정체될 것이라고 예상한 CEO는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실무진에서는 새로운 아이디어로 TTL을 들고 나왔다. 문제는 400억~500억원에 이르는 초기 마케팅 비용이었다. 회사 입장에서는 대단한 ‘리스크테이킹(위험감수)’이 필요했다.

 그 당시 조정남 SK텔레콤 사장(지금은 부회장)은 결단을 내렸다. 조 사장은 앞으로 다가올 IMT-2000시대에 과연 SK텔레콤이 어떻게 변신할지 고민해 오던 터였다.

 그는 이렇게 회고했다.

 “어느 날 직원들이 TTL이란 광고를 하겠다면서 430억원을 지원해 달라고 하대요. 그런데 광고내용을 보니 이상해요. 어항이 갑자기 깨지면서 물고기가 공중에 날아다니고, 정말 이상하더라고요. 처음에는 맘에 들지 않는다고 했지요. 그랬더니 부사장이 제 옆구리를 꾹꾹 찌르면서 ‘젊은 사람들 하란 대로 해보는 게 좋겠다’고 권유하더군요. 고집을 부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지요. 깊게 생각했습니다. 이런 순간이 바로 CEO가 결단을 내려야 할 때라고 생각했지요. 그리고 제 마음속으로 저 친구들을 밀어 주어야겠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만약 저같이 나이 든 세대가 쉽게 이해하고 좋아할 수 있는 광고라면 이미 실패가 아니겠느냐고 생각했습니다.”

 ‘오케이’ 사인을 준 조 부회장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그는 직원들을 향해 단호하게 “일단 시작한 것은 반드시 성공시켜야 한다”면서, “그렇지 않으면 모두 해고야!”라고 애정 어린 엄포를 놓았다.

 조 사장은 이후 당시 SK그룹 손길승 회장에게 찾아가서 “TTL이란 이런저런 새로운 사업을 벌이려고 하는데, 400억원이 넘게 필요하다”고 보고했고, 손 회장은 몇 마디 물어본 뒤 곧바로 사인을 했다.

 사실 손 회장과 조 부회장 사이에는 그 이전에 또 다른 400억원의 인연이 있었다.

 조정남 부회장은 흔히 ‘CDMA 전도사’로 불린다. 한국 이동통신의 역사가 지난 1996년 코드분할다중접속방식(CDMA) 상용화를 통해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면, 조정남 부회장은 이러한 전기를 맞게 한 주인공이다.

 지난 1995년, 20년간 몸담았던 SK주식회사를 떠난 조정남 부회장은 SK텔레콤의 전무이사로 임명을 받아 생산부문장과 중앙연구원장을 겸임하게 된다. 통신을 접해 보지 못한 ‘유공맨’ 조정남 전무에게 떨어진 일은 다름 아닌 ‘CDMA 상용화’였다.

 당시 SK경영기획실 손길승 실장은 조정남 전무에게 개발단계에 있던 CDMA 방식의 상용화를 지시했다. 조 전무는 “비(非)통신 전문가로서 통신기술의 미래를 열라는 상상조차 힘든 일이 나에게 떨어졌다”며 막막한 심정을 토로했다. 하지만 조 전무는 쉽게 포기하지 않고 구체적인 계획서가 없는 상태에서 손길승 실장에게 400억원의 지원을 요청했고, 손길승 실장은 더 이상 묻지 않고 그 돈을 내주었다. 조정남 전무의 능력과 추진력을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조정남 전무는 고통스러운 9개월을 보내고 1996년1월, 세계 최초로 CDMA 기술을 이용한 디지털 이동전화 서비스 상용화에 성공하게 된다. ‘400억원 배팅’이 성공한 셈이다.

 그때의 신뢰가 바탕이 되어 TTL 마케팅을 시작할 때도 인간 손길승은 인간 조정남의 결단을 신뢰해 그런 결정을 내린 것이다.

 이렇게 TTL에 관한 최고경영진의 의사결정이 내려지자, SK텔레콤은 발 빠른 변신을 추구했다. 젊은 세대의 라이프스타일에 맞는 지역요금제를 비롯한 다양한 요금체계, 색상과 디자인에서 어필할 수 있는 디자인, 젊은이들이 쉬면서도 즐거움을 추구할 수 있는 문화공간으로 ‘TTL Zone’, 젊은이들이 자주 이용하는 시설(음식점과 문화상품 등)에 대한 할인혜택을 주는 ‘TTL Card’, 대학의 개념을 활용하여 TTL 고객의 배움과 만남과 교제를 위한 사이버공간으로 마련된 ‘TTL College’ 등을 망라한 복합 문화상품 패키지 브랜드인 ‘TTL’을 내놓게 됐다.

 ‘TTL Zone’은 TTL 고객이면 공짜로 인터넷, 케이블TV 방송, 최신 게임, 가요와 팝 등을 즐길 수 있고, 언제라도 들어와 휴식할 수 있는 젊은이들만의 공간이 됐다. 초창기 젊은이들이 많이 모이는 전국 5대 도시의 중심가에 총 8개를 설치, 새로운 개념의 신세대 문화공간을 열었다.

 또 ‘TTL Card’를 내밀어 패스트푸드, 패밀리 레스토랑, 극장 등에서 할인받는 것은 젊은이들 사이에서 필수가 됐다. TTL 고객이 단순한 이동전화 사용자가 아니라, TTL 문화공동체를 형성하게 하는 성과를 이루었다.

 TTL을 알리기 위한 커뮤니케이션 방안도 획기적이었다. 일반적인 광고가 아니라 신세대의 감각에 맞는 이미지로 표현한 광고 ‘스무 살의 011’ TTL을 선보여 기존의 ‘스피드 011’브랜드와는 완전히 차별화하는 데 성공했다.

 조 부회장은 “내가 광고제작에 개입하지 않기로 했던 결정이 오히려 잘한 결정”이라고 말했다.

 TTL 광고에 등장한 모델인 임은경 역시 신비로운 분위기와 함께 철저히 모델의 신분을 숨기는 전략으로 ‘저 소녀가 도대체 누구지?’라는 전국적인 궁금증을 불러오기도 했다. 임은경은 초기 광고가 나간 뒤부터 노출을 철저하게 막는 전략을 택했고, 직접 인터뷰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일부 방송사에서는 몰래 카메라까지 동원하기도 했다.

 이렇게 TTL은 세간의 화제를 불러일으키며 대성공을 거두었다. TTL의 가입자 수는 6개월 만에 100만명, 28개월 만에 290만명을 넘었으며, SK텔레콤은 TTL의 성공에 힘입어 1999년 12월24일 이동전화 가입고객 수 1000만을 돌파했다. 경제활동 인구의 3분의 1이 SK텔레콤 고객이 된 셈이었다.

 기존의 ‘스피드 011’ 신규 가입자 중에는 18~23세대의 비율이 20%에도 미치지 못했지만, TTL 브랜드 출시 이후에는 40~50%에 이르는 등 당초 기대했던 목표 이상의 성과를 거둔 것으로 회사 측은 평가했다. TTL의 파격적인 광고와 마케팅은 이후 SK텔레콤의 사업방향을 선도해 주는 역할을 했다.

 TTL의 성공 이후 SK텔레콤은 특정세대를 타깃으로 하는 세분화 마케팅을 더욱 확대했다. 가령 2001년 8월에는 10대 전용 이동전화 서비스 ‘ⓣing’을, 10월에는 25~35세를 대상으로 한 ‘UTO’를 내놓았으며, 이듬해 8월에는 기혼여성을 위한 이동전화 서비스인 ‘CARA’를 출시했다.

 SK 관계자는 “이 같은 결과의 배경에는 새로운 것을 적극 수용하는 조 부회장의 결단이 중요한 작용을 했다”면서, “만일 조 부회장이 그때 ‘NO’라고 말했다면, 모든 기획안은 휴지로 돌아갔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정남 부회장을 처음 보는 사람들은 국내 굴지의 대기업을 이끌고 있는 카리스마를 느끼기보다는 아주 편하고 부드러운 느낌을 받는다. 본인 스스로도 자신을 ‘리버럴리스트’라고 평가하고, 주위에서도 또 그렇게 느낀다.

 전북 전주가 고향인 그는 가끔씩 사투리를 섞어 쓰기도 하면서 좌중의 분위기를 이끌어 간다. 특유의 유머감각과 친근감으로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흡인력을 갖고 있다. 주변에서는 그를 ‘덕장’이라고 부르면서 따른다.

 조정남 부회장은 술과 담배를 전혀 하지 않는다. 출·퇴근 시간도 일정하지 않다. 어찌 보면 비즈니스맨으로서의 기본적인 요소가 없다고 볼 수도 있다. 부하직원들의 출·퇴근 시간도 묻지 않는다. 그런 마음이기에 조 부회장은 선뜻 TTL이란 새로운 제안에 대해 오픈 마인드를 가지고 대할 수 있었던 것이다. 조정남 부회장은 “앞으로도 그런 TTL 마인드를 계속 경영에서 살려나가겠다”고 웃음을 지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