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4일도 사업차 지방에 내려갔다 늦게까지 술자리가 있어 새벽에서야 서울에 올라와 조찬모임에 참석했다는 이 대표. 술 잘한다고 소문이 나 모두들 자신을 만나면 술부터 마시자고 한다며 웃는 모습에 피곤함보다는 즐거움이 넘친다.

 “사업을 시작하기 전까지 내가 술을 잘 마시는지도 몰랐어요. 계측기라는 사업특성상 회사 직원들이나 거래처 사람들이 대부분 남성인데, 이들과 가까워지는데 술자리는 필수였죠. 또 술 잘 못 한다고 약해 보이기가 싫었어요. ‘여자’이기 전에 회사 ‘사장’으로 보이려고 남자들보다도 더 터프하게 대하고 술도 먼저 권했습니다.”

 일부에서는 술 잘 마시는 여자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기도 했지만, 어떤 자리든 몸을 사리지 않는 이 사장의 열정과 노력에 직원들과 거래처 사람들은 점차 마음을 열었다. 특히 다양한 폭탄주 제조법을 연구해 왔는데, 폭탄주를 만들면 분위기가 한층 살아나 즐겁기 때문이라고 한다. 동시에 이렇게 적극적으로 어울리면 의외로 술을 별로 마시지 않을 수 있고, 폭탄주보다 스트레이트 술에 빨리 취하는 특이한 체질상의 이유 때문이기도 했다. 물론 최근엔 술자리 접대가 줄어드는 추세여서 꼭 술을 잘 해야 할 필요는 없다.  이지디지털의 경우도 핵심기술이 중심이 되는 사업인 데다, 대기업 납품과 수출비율이 높아 술자리 접대가 결코 많은 편은 아니다. 하지만 사장의 자리란 끊임없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야 하기 때문에 상황에 따라서 술을 마셔야 할 때도 많다. 그런 면에서 사람 만나는 게 좋아 술자리도 좋다는 그녀는 타고난 사장 체질이다.

 이 대표는 술 실력과 함께 강철체력으로도 유명하다. 잦은 술자리와 빠듯한 비즈니스 스케줄에 지칠 법도 한데 늦게까지 술을 마신 다음날도 조찬모임이 있으면 어김없이 참석한다.

 “얼마 전 건강검진을 받았는데, 그렇게 술을 먹었는데도 너무 멀쩡하더군요. 건강은 정말 타고난 것 같습니다. 특별히 건강식품을 먹거나 보양음식을 즐기지는 않지만 꾸준히 운동을 많이 하고, 소식(小食)과 절주(節酒)를 하려고 노력합니다. 사실 절주는 거의 안 되고 있지만요. 운동은 등산과 골프를 즐기는데, 등산 같은 경우 나 자신과의 싸움이기 때문에 정신력도 강해지고 컨디션도 좋아집니다. 사람들과 즐겁게 이야기하면서 운동할 수 있는 골프도 좋아하지요.”

 그렇지만 이 대표의 가장 큰 건강 비결은 재미있게 살려고 노력하는 낙천적인 성격이다. 사업을 하다 보면 생겨날 수밖에 없는 다양한 제약들을 스트레스로 생각하지 않고 CEO라면 꼭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며 해결책을 찾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말단사원에서 사장직에 오른 저력도 이런 열정적인 태도 때문이다. 적극적으로 일 잘하는 그녀를 눈여겨본 모기업 회장은 이 대표가 31세 되던 해 모기업 전자사업부 사장직을 권유했다. 전자사업부 중에서도 특히 어려운 계측기 분야를 맡을 수 있었던 것도 이 대표의 도전정신과 의지력 때문. 기술적으로 아무것도 몰랐기 때문에 도전할 수 있었다고 겸손해 하지만, 의지만 있다면 반드시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말에 이 대표의 뚝심이 엿보인다.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뚝심

 “모기업에서 일할 때부터 세계를 무대로 역동적인 해외사업을 하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처음엔 여성으로서 공장을 운영하는 데 대한 사회적인 편견, 기술부족 등 어려움이 적지 않았죠. 하지만 지금은 시작하길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진입장벽이 높아 세계 순위권 안으로 진입할 수도 있고, 가격경쟁도 상대적으로 치열하지 않습니다. 또, 핵심기술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다양한 분야로 뻗어나갈 수 있고, 고부가가치를 창출할 수도 있어 유리합니다.”

 이런 뚝심은 여러 번의 위기를 기회로 바꾸었다. 특히 중소기업으로서 대기업 계열사인 LG정밀을 합병할 당시도 값싼 중국 카피제품이 밀려들면서 계측기제품 하나로 100만달러씩 수출하던 이지디지털에게 큰 위기였다. 반면 국내 상황은 IMF로 인해 대기업들이 계열사를 분사시키던 시기였는데, 이 위기를 기회로 삼아 기술과 사람을 동시에 얻을 수 있는 LG정밀 인수를 추진했다. 당시 이 사장 수중에는 계약금 정도의 자금밖에 없었지만, 인수 후 투자유치가 가능할 것이라 예상하여 인수를 추진했고, 결국 이를 계기로 이지디지털은 한 단계 도약할 수 있었다.

 현재 이지디지털은 정밀계측기와 함께 LCD 테스트장비 사업에 주력하고 있다. 우리나라 LCD 기술이 세계 최고 수준인 만큼 수요가 계속적으로 증가해 요즘 같은 불황에도 회사 상황이 점점 좋아지고 있다. 지난 4년간 여성벤처협회장으로 활동하면서 정작 본인의 회사에 소홀하게 되었다는 이 대표. 그러나 올해 협회장직을 사임하고 사업에만 몰두하면서부터 회사 상황은 눈에 띄게 좋아졌다고 한다. 앞으로 LCD 테스트장비의 경우, 국내수요가 많은 만큼 우선 국내시장을 목표시장으로 삼고 점차 수출비율도 늘려나갈 계획이다.

 이렇듯 이 대표가 사업에 올인할 수 있었던 데에는 가족들의 후원이 절대적이었다.

 “사내커플이었던 남편은 연애시절부터 내 외향적인 성격을 좋아했기 때문에 사회생활하는 데도 찬성이었죠. 문제는 시어머니를 내 편으로 만드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시어머니께는 무조건 충성했죠. 지금도 우리 집은 어머니 동네 친구분들 사랑방으로 통합니다. 어머니께서 집에 계시니 아이들 걱정 없이 일에만 전념할 수 있었지요.”

 현재 이 대표의 남편 역시 전자계통 회사를 이끌고 있어, 사업 파트너이면서 경쟁자이기도 하다. 요즘은 미국에서 유학 중이던 아들이 잠시 귀국해 아들과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어 만족스럽단다. 대학생이 된 아이들은 이제 사업가로서의 엄마의 입장을 이해할 만큼 성숙했다.

 그러나 사회활동을 하는 많은 여성들에게 여전히 출산, 육아, 시댁 등의 가정문제는 잔존해 있고, 사업 하면서도 남성들처럼 가족들의 적극적 후원을 받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그런 환경 때문일까. 대부분의 여성들은 단기적 성과를 내기 위해 노력하는데, 이 과정에서 더 중요한 걸 놓치는 우를 범하고 있다. 즉 장기적인 안목으로 인맥을 관리하는 데 다소 미흡하다는 것이 이 대표의 지적이다.

 “금융기관에서 대출을 받으려면 여전히 남편의 보증이 필요하며, 남성에 비해 사업에 대해 조언을 구할 만한 선후배 층도 얇은 여성기업인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원활한 자금유통과 다양한 인적교류죠. 그래서 여성벤처협회장으로 활동하면서 여성 벤처전문 펀드를 조성하고, 비즈니스 파트너를 동반한 송년회 등 인적교류의 장을 마련했습니다. 회원들 반응이 가히 폭발적이었죠.”

 그러나 이런 현재의 문제점은 여성도 사업 경험이 풍부해지면서 점차 나아질 것이라고 생각한단다. 여성이기 때문에 특별히 주의해야 하거나 한계를 둘 필요는 전혀 없다고 강조하는 이 대표. 중요한 것은 기업인으로서의 신뢰와 도전정신일 뿐, 기본에 충실하다면 두려울 게 없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