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티캐스트가 데이터방송 솔루션 분야의 최강자로 떠오르고 있다. 매출이 전혀 없던 시절에도 기술개발에 매진한 지승림(56) 사장의 뚝심이 작용한 결과다.
 “한때 12조원을 주무르기도 했죠. 그때는 100억원 이하 사업은 들여다보지도 않았습니다. 건방졌죠. 지금은 100만원도 아껴 씁니다.”

 삼성그룹 아이디어맨으로 17년 동안 비서실 기획팀에서 그룹 전체의 신사업을 기획하기도 했던 지승림 알티캐스트 사장. 1980~90년대 삼성그룹의 신규사업은 전부 그의 머리에서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그가 지금은 완전히 벤처 CEO로 탈바꿈했다. 그는 지난 2000년 데이터방송용 소프트웨어 회사인 알티캐스트 대표이사로 취임했다. 알티캐스트는 데이터방송 솔루션 시장에서 세계적인 기술을 인정받는 벤처기업. 유럽식 데이터방송 규격인 MHP(Multimedia Home Platform) 미들웨어를 2003년 일본의 파나소닉에 이어 세계 두 번째로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스카이라이프를 통해 국내 상용화에 성공했으며, 유럽 시장에도 진출했다. 미들웨어는 위성방송 수신기(셋톱박스)에 들어가는 소프트웨어다.

 가장 먼저 열린 이탈리아 데이터방송 미들웨어 시장에서도 70%가 넘는 점유율을 기록하는 등 이 분야 세계 최강자로 떠올랐다. 경쟁업체인 독일계 다국적기업 오스모시스가 저가 시장에서 강세를 보이는 것과 달리 알티캐스트는 중고가 이상의 시장을 차지하고 있다.

 알티캐스트가 이처럼 성장한 데는 지 사장의 대기업에서의 경험과 노하우가 큰 힘이 됐다. 삼성그룹 전체의 신사업을 챙기다 보니 제조·서비스뿐만 아니라 건설·IT분야 등 다양한 업종과 사업을 경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려움이 더 많았다. 무엇보다 자금이 문제였다. 2002년 자금이 바닥나 회사가 무너질 뻔한 적도 있다.

 “너무 일찍 시장에 뛰어들어 기대한 만큼 데이터방송이 발전해주지 못했기 때문이죠. 기술은 개발했지만 사용할 곳이 없었으니까요. 당연히 적자만 쌓여갔습니다.”

 하지만 어려움을 참고 견딘 결과 지금 각광받고 있는 데이터방송 솔루션 시장에서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가진 회사로 평가받고 있다. 국내뿐 아니라 유럽·미주 등지에서도 이름을 떨치고 있다.

 이처럼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기술개발에 대한 끊임없는 투자 덕택이었다. 사업초기 매출이 늘지 않아 어려울 때도 눈앞의 성과보다는 기술개발에 나섰다. 매출 실적이 없던 4~5년간 표준이 될 기술을 먼저 개발해 시장 선점에 나서야 한다는 전략을 꾸준히 견지해 왔다. 

 2000년 이후 지 사장이 연구개발 부문에만 투자한 돈이 자그마치 270억원이나 된다. 거의 모든 돈을 연구개발 분야에 집중한 것이다. 연구원에게는 해외연수도 보내고 연봉도 다른 대기업의 연구원 수준으로 지급했다. 지금도 160여명의 직원 중 110명이 연구개발요원이다.

 이로 인해 데이터방송용 저작도구, 데이터방송용 서버시스템, 셋톱박스용 미들웨어 등 데이터방송의 핵심 솔루션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지게 됐다. TV를 시청하면서 상품을 구매하거나 주문하고, 은행 업무를 보는 등 디지털 시대의 양방향 TV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데이터방송 솔루션이 필요하다. 이러한 디지털 방송 솔루션 분야의 미들웨어는 알티캐스트가 독보적이다.  아직 디지털 TV를 위한 사회적 인프라는 갖춰지지 않았지만 디지털 방송이 서서히 확산되면서 알티캐스트도 성장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디지털 방송 시대를 맞아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기업으로 발돋움하고 있는 것이다.



 유럽시장에서의 첫 성과

 1999년 설립 이후 이렇다 할 매출이 발생한 것은 지난해의 일. 위성방송 수신기에 들어가는 소프트웨어를 세계 두 번째로 개발한 뒤 이탈리아 시장에 진출하면서부터다. 지난해 186억원 매출에 24억원의 흑자를 기록했다. 로열티 수입만 500만달러.  5년 전부터 진행해온 유럽 시장 공략의 첫 번째 성과였다. 이탈리아 스페인 포르투갈 핀란드 등 유럽 시장을 발로 뛴 땀의 결실이었다. 올해는 매출 300억원, 흑자 100억원이 목표다.

 “이탈리아는 디지털 방송에서 가장 앞선 나라입니다. 정부가 디지털 방송 활성화를 위해 가구당 70유로(약 10만원) 정도를 지원하고 있을 정도죠. 우리나라는 이제 시작단계입니다.”

 알티캐스트는 이탈리아 디지털 방송용 셋톱박스의 70% 정도에 미들웨어를 공급하고 있다. 이탈리아에서 셋톱박스를 공급하고 있는 삼성전자, 휴맥스, 노키아, 필립스, ADB, 액세스미디어 등 6개사 중 4개사가 알티캐스트의 미들웨어가 들어간 제품을 팔고 있기 때문이다. 요즘은 독일과 네덜란드, 오스트리아, 스페인 등을 집중공략하고 있다. 지 사장은 유럽 시장 공략을 통해 5000만달러의 로열티 수입을 기대하고 있다.

 국내 사업도 순항 중이다. 지난 7월에는 국내 첫 IPTV 시스템 구축 사업인 KT 프로젝트를 따내 미들웨어 부문에서 독점적 지위를 굳히게 됐다.

 그의 꿈은 100년을 지속하는 S/W(소프트웨어)기업을 만드는 것이다.

 “1900년대 기업의 수명은 90년이었습니다. 20세기 중반에 50년이던 기업의 수명은 2000년 들어서 14년으로 줄어들었습니다. 요즘 기업은 2~3년도 버티지 못하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는 100년 기업이 될 것입니다.”

 그의 사무실 책상 정면에는 ‘Second To None 333’이라는 기업 모토가 적혀 있다. 앞으로 3년내 최고의 기업으로, 최고의 제품, 최고의 인재를 키운다는 의미다. 이것은 100년 기업이 되기 위한 그의 경영론이기도 하다. 1등이 아니면 살아남기 힘들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장수 유전자가 필요하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가 제시하는 장수 유전자는 제품과 사람, 프로세스.

 “제품은 가치와 혁신을 가지고 있어야 하고 독특해야 합니다. 사람은 열정과 창의성에다 따뜻한 인간미와 적극성을 함께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여기에 효율적이며 정밀한 프로세스를 가지고 있는 기업이라야 100년을 버틸 수 있습니다.”

 그는 여기에 속도를 강조한다. ‘EP(기업의 파워)=K(지식)×O(조직)×C(문화)×V2(속도)’이란 수학공식도 적혀 있다. 그는 이것을 알티 방정식이라고 부른다. 이 방정식에서는 속도가 가장 큰 변수다.

 “늦어서는 아무것도 안 됩니다. 올해는 작년보다 두 배 빠르게, 내년은 네 배 빨라야 됩니다. 속도를 두 배씩 늘리는 것입니다. 의사결정도 그렇고, 제품을 시장에 내놓는 시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마찰계수 줄이기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혼자서 기계와 대화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이질적인 사람들이 모인 곳을 IT기업으로 정의했다. 그래서 약한 휴머니즘이 기업이 굴러가는 것을 방해한다는 것이다. 그는 마찰계수를 줄이기 위해 직원들이 칭찬과 에티켓, 존경과 신뢰를 갖출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또 기업은 프로세스 혁신을 통해 커다란 바퀴가 잘 굴러가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제 성장 가도에 들어섰지만 지 사장은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다. 회사가 잘나가자 코스닥 등록에 관심을 가지는 직원들이 많아졌지만 아직은 그럴 때가 아니라는 것. 그가 직원들을 설득하면서 내놓는 이론은 ‘빙산 이론’이다. “보이는 부분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잠겨 있는 게 더 크고 더 중요합니다.”

 그는 글로벌 기업을 지향한다. “아직 세계에 내놓을 만한 이렇다 할 만한 S/W가 없지 않습니까. 일본도, 중국도 마찬가집니다. 우리가 한국의 세계적인 S/W를 만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