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혈 보관 사업으로 시작해 줄기세포 치료제 연구로 각광받는 바이오 벤처기업 메디포스트. 기업 공모에 2조원이 넘는 돈이 몰려 2004년 MP3 제조업체 레인콤 이후 가장 주목받는 코스닥 상장 기업이 되고 있다. 양윤선(41) 메디포스트 대표를 만났다.
 르고 작은 체구에 단발머리를 한 양윤선 대표는 악수를 청하며 활짝 웃었다. 어금니까지 드러나는 크고 환한 웃음은 상대방을 삽시간에 무장해제시키는 힘이 있다. 그런데 건너오는 목소리가 뜻밖에도 허스키하다. 이유를 물으니 “원래는 또랑또랑한 편인데 여러 모임과 IR, 인터뷰를 하느라 변성되었다”고 했다. 적잖이 억울한 표정이다. “그래도 대박 나서 행복하지 않냐”는 물음에는 짐짓 정색을 하며 “현금이 아니라 별로 실감이 안 난다. 하지만 믿고 함께해준 투자자들에게 보답이 되어 다행”이라고 대답한다. 밝은 표정에서 억울한 듯한 표정, 진지한 표정으로의 전환이 자연스럽다. 풍부한 표정에서 밝고 낙천적인 성격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양 대표의 이력을 보면 공부도 잘했지만 놀기도 잘했다는 추론에 도달하게 된다. 서울대 의대 예과 시절 운동권 노래패 ‘메아리’, ‘소리’ 활동을 했는가 하면 똑똑한 것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수재들만 모인 서울대 의대를 수석 졸업했다. 이어 임상병리과 전문의 시험에 수석합격하기도 했다. 그런데 남들이 다 부러워할 만한 연구교수직을 버리고 5년 전 ‘덜컥’ 벤처 창업을 했다.

 “지금이야 다들 큰돈 벌어서 좋겠다고들 하지만 5년 전 창업할 때는 주변에서 도시락 싸들고 반대하는 수준이었죠. 유일하게 반대 안 한 사람이 남편하고 친정 부모님이었어요. 남편은 ‘설령 망하더라도 내가 먹여 살리면 되니까’ 하는 생각이었다고 해요. ‘의사 면허가 없어지는 것도 아니니까’ 하는 생각도 했다죠, 아마?”

 친정 부모도 “너 하고 싶은 것 하고 살라”고 했다. 하지만 적극적 찬성이라기보다는 소극적 찬성에 가까웠던 것으로 기억한다. 사업해서 집안 말아먹은 무수한 사례에서 부모님 또한 자유롭지는 못했던 것.

 양 대표는 의대를 졸업한 후 연구교수가 되어 순탄한 미래를 보장받았지만, 다른 갈증을 느끼고 있었다.

 “20~30년 후에도 연구실에 있을 내 모습을 상상하면 즐거워야 하는데 그렇지가 않았어요. 마침 벤처 바람이 불었고, 보수적인 의사 집단 내에서도 가운 입고 환자를 보거나 연구실에서 연구하는 것말고 다른 분야로 진출하는 움직임이 활발해지기 시작했어요.”

 임상연구 전문의였던 양 대표와 동료들이 주목한 것은 제대혈 보관 비즈니스. 태아의 탯줄에서 채취 가능한 제대혈은 혈액을 새롭게 만들어내는 조혈 모세포가 풍부해 이를 채취해 냉동보관했다 필요한 시기에 녹여서 다시 사용할 수 있었다. 골수 세포에 비해 이식할 경우 필요한 유전인자가 절반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합병증이 적어 ‘골수를 대체할 자원’이란 인식이 전문 연구가 사이에서 생겨나기 시작하던 시기였다. 양 대표가 몸담고 있던 삼성서울병원은 당시 조혈 모세포 공여은행(산모들로부터 탯줄 혈액을 기증받아 이식환자들의 골수 자원으로 활용하던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었다.

 마침내 6명이 함께 모의를 시작했지만 결국 사업에 뛰어든 건 3명이었다. 각자 호주머니를 털고, 주변에 투자자를 물색해 종잣돈을 모았다. 당시만 해도 전문가인 산부인과 의사들에게조차도 조혈 모세포 보관의 필요성이 알려지지 않았던 터라 양 대표를 비롯한 직원들은 외판원처럼 병원들을 가가호호 방문하는 어려움을 겪었다.

 양 대표는 2003년을 잊을 수 없다. 별다른 홍보나 마케팅 없이 매출이 전년도보다 두 배 이상 늘어났기 때문이다. 산모들 사이에 조혈 모세포 보관이 유행처럼 일어나 가히 신드롬이라 할 만했다. 직원들은 밀려드는 주문과 전화를 받느라 정신이 없을 정도였다. 당시엔 “돈이 막 쌓이니 얼떨떨하기도 하고 좋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얼마 안 가 호사다마(好事多魔)라는 표현이 이럴 때 쓰는 거라는 걸 절감해야 했다. 방송을 통해 제대혈 보관 기간이 영구적이지 않다는 잘못된 보도가 나가면서 폭주하던 주문이 순식간에 취소로 이어졌다. 지난해에는 황우석 교수의 배아줄기세포 배양 성공 소식이 회사를 들었다 놓기를 반복했다. 제대혈 세포를 이용한 줄기세포 치료제 개발이라는 사업 영역은 제대혈 보관 사업과 함께 양 대표와 동료들이 세운 두 가지 수익 모델. 동물 임상 단계였음에도 ‘신드롬’은 회사 구성원의 의지와 상관없이 회사를 하늘 꼭대기까지 올려놓았다 내려놓기를 반복했다. 초보 경영인이었던 양 대표는 “덕분에 비교적 짧은 시간에 많은 걸 경험했다”며 웃었다.

 요즘 양 대표는 코스닥 상장보다 더 기대에 찬 일정을 보내고 있다. 2001년 정부의 지원 사업으로 시작한 제대혈 줄기세포를 이용한 관절염 치료제 ‘카티스템’ 개발이 지난 4월 식약청으로부터 임상시험 승인을 받은 것이다. 2007년 상업화와 함께 유럽 특허를 준비 중인데, 상용화될 경우 국내에서 3000억원, 해외에서 5억달러 이상의 가치가 발생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최종적으로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기존의 신약 임상(후 임상)이 동물 실험(전 임상) 단계보다 성공 확률이 낮은 건, 신약 후보 물질이 사람 외부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에요. 이에 비해 조혈 모세포를 이용한 치료제는 기본적으로 사람 몸에서 추출한 것이기 때문에 오히려 동물 실험에서 부작용이나 독성이 발현될 소지가 높아요. 그런데 동물 실험을 통과했으니 오히려 사람을 대상으로 한 임상 실험은 확률이 높은 거죠. 줄기세포 관련 신약 연구의 장점이 바로 여기에 있어요.”

 관절염 치료제 외에 뇌졸중 치료제 ‘뉴로스템’, 심장질환 치료제 ‘하트스템’, 백혈병 치료제 ‘프로모스템’, 항암면역치료제 ‘덴드렉신’ 등의 연구도 착착 진행되고 있다. 빠르면 2007년, 늦어도 2009년에는 시판을 목표로 하고 있다. 전도유망하고, 기업 공개로 300억원대의 대박을 맞은 그녀에게 많은 사람들이 ‘돈 많이 벌어 기분 좋겠다’는 인사를 해온다. 세상에 돈 싫은 사람이야 없겠지만 그녀를 설레게 하는 건 다른 것이다.

 “조혈 모세포의 중요성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이 재밌을 것이라 생각해 사업에 뛰어들었어요. 사실 재밌어요. 전 인생에서 보람과 재미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물론 힘들다고 느껴지는 건 다른 사람들하고 똑같아요. 문제는 얼마나 빨리 털고 나오느냐 하는 건데, 기본적인 성격이 낙천적이고 긍정적이라 ‘에라, 아무려면 죽는 일보다 나쁘기야 하겠냐’고 마음먹어요. 그럼 금세 편해지고 자신이 생겨요. 어떻게 그렇게 되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남편은 어떤 사람이냐고 물으니 “대학 1학년 때 눈이 맞아 CC(캠퍼스 커플)가 되었는데 결혼해 지금까지 살아보니 너무나 심하게 가정적인 사람”이라며 웃었다. 양 대표의 낙천적인 성격은 어쩌면 남편을 통해 더욱 확대 강화된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