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벤처 오케스트라 유라시안필을 창립한 지휘자 금난새씨(58). 요즘 그의 명함엔 지휘자가 아닌 CEO로 표기돼 있다. 그의 5년간 유라시안필 경영성과를 보면 CEO란 타이틀이 결코 어색하지 않다. “예술은 관객을 감동시키는 것이고, 경영은 고객을 감동시키는 것”이라고 말하는 금난새씨를 만났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실력 있는 지휘자를 꼽으라면 쉽지 않다. 그러나 가장 유명한 지휘자가 누구냐고 묻는다면 그 대답은 간단하다. 초등학생들까지도 알고 있는 이름, 바로 금난새다. 금난새는 무대와 객석이 어떻게 교감하는지를 아는 지휘자다. 그가 가진 여러 가지 능력 가운데 으뜸이라 할 수 있는 ‘기획력’도 따지고 보면 이런 감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한 음악평론가의 금난새씨에 대한 평이다. 지휘자 금난새씨를 만나고 싶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21세기는 문화의 시대란 레토릭은 이제 진부하다. 그러나 여전히 이루지 못하는 화두이기도 하다. 그를 만나 문화의 대중화에 대해 논하고 싶었다.

 필자의 그런 바람은 그러나 그와 명함을 주고받는 순간 무참히 사그라졌다. 그의 명함엔 ‘지휘자 금난새’는 없고 ‘CEO 금난새’만 있었다. 하긴 그의 근황을 다룬 기사들을 살펴보면 ‘맨손으로 유라시안 필하모닉을 창단해 7년 만에 연간 100회 연주를 하는, 정부 보조금 없이 운영되는 벤처 오케스트라의 CEO 금난새’와 관련된 내용들이었다. 최근에는 연주 요청만큼 ‘경영’‘리더십’과 관련된 강연 요청도 많아졌다고 한다.

 그와의 대담 주제도 자연스럽게 ‘성공한 CEO 금난새의 경영법’이란 테마로 변경됐다.



 수익 낼 수 있다,

 벤처형 오케스트라 창단


 우선 금씨가 CEO가 된 사연을 훑어보자. 그는 1992년 ‘어려움에 빠진 오케스트라를 살리는 것이 훌륭한 지휘자요, CEO’라는 신념에 따라 1년에 60억원의 예산이 지원되는 KBS 교향악단에서 해체위기에 놓인 수원시립교향악단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1998년 더 큰 꿈을 이루기 위해 유라시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이하 유라시안필)를 창단한다. KBS 교향악단과 수원시립교향악단 상임지휘자가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전문경영인 자리였다면, 유라시안필에서는 벤처기업의 창업자가 된 셈이다.

 금씨가 유라시안필을 ‘벤처 오케스트라’라고 부르는 이유는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재정지원이 없으면 유지되지 못하는 한국적 풍토에서 독자생존을 외치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오케스트라도 기업처럼 수익을 낼 수 있다는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 냈다. 수입도 기존의 공연 수입금에 의존하는 형태가 아니다. 공연 수입 비중이 50%라면 나머지 50%는 기업체와의 파트너십에 의한 후원금이다. 후원금 성격도 기업의 일방적인 지원이 아니다. 기업 홍보 등을 위한 공연을 하고 그 개런티로 받는 성격이다.

 1999년 포스코센터 아트리움에서 열린 새천년 맞이 제야음악회에서 베토벤의 합창 교향곡으로 청중 전원 기립박수의 대성공을 거둔 이래 매년 포스코 로비의 특설무대에서 차이코프스키, 모차르트&브람스 페스티벌을 진행했으며 2005년에는 ‘교향곡 5번의 세계’라는 부제로 매회 시벨리우스, 슈베르트, 쇼스타코비치, 멘델스존의 교향곡 5번을 연주하고 있다.

 2004~2005년에는 국내 유수 대학을 찾아가 젊은이들을 교향악의 세계로 안내하는 ‘캠퍼스 심포니 페스티벌’을 펼치고 있다. 2001년과 2002년에는 삼성전자의 후원으로 세종문화회관에서 ‘청소년 음악회’를 진행했으며 2005년에는 국내 주요 도시를 순회하며 ‘삼성전자 가족음악회’를 열고 있다.

 2002년 CJ와 후원계약을 체결함에 따라 성장의 내실을 다지게 되었으며 CJ의 전폭적인 후원으로 2003년 베토벤 교향곡 전곡연주 시리즈를 서울·경기 지역 중심으로 진행했다.

 또한 2004년에는 서울, 대구, 광주, 부산 등지에서 CJ 임직원을 위한 ‘CJ가족음악회’와 3군사관학교 방문연주, 군부대방문연주, 사법연수원 방문연주 등 찾아가는 음악회를 지속적으로 추진해 기업과 예술단체 간 성공적 만남의 대표적 사례로 인정받고 있다.

 2005년에도 전국 각지에서 CJ 가족음악회는 계속되며, CJ 문화나눔음악회와 문화마케팅 음악회 등 특별 기획 연주회를 기획, 연주하고 있다.’

 유라시안필을 소개하는 위와 같은 글에서 기업과 예술단체 간 협력관계의 새로운 모델을 파악할 수 있다. 또 초창기 단원들에게 월급이 아닌 공연수당을 지급하던 유라시안필이 2002년부터 월급제로 바꿨다는 이야기는 수익을 내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비즈니스 모델은 관객과 행복 공유

 명함에 CEO라고 표기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예술이란 분야는 지고지순한 것이란 선입견 때문인지 CEO란 직함이 생소합니다.

 “CEO 마인드가 없는 지휘자는 없다고 봐요. CEO가 기업을 이끌 듯 지휘자는 오케스트라를 이끌죠. 예전부터 ‘난 CEO다’란 생각을 했지만 표현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다가 유라시안필을 창단하며 벤처 오케스트라란 이미지를 부각시킬 필요가 있어서 명함에 CEO라고 넣고 있습니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KBS 교향악단에서 해체 위기의 수원시립교향악단으로 옮긴 것, 수원시립교향악단을 일류 오케스트라로 변신시킨 후 아무 보장이 없는 상태에서 유라시안필을 창단한 점 등을 미뤄 보면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도전이라기보다 제가 생각하는 가치에 합당했기 때문에 시도한 거예요. 저를 필요로 하는 곳으로 간 거죠. 수원시립교향악단이 저를 필요로 했어요. 또 그곳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더 많다고 봤고요. 그래서 가기로 결정했던 거예요. 유라시안필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것도 없이 시작했지만, 오케스트라도 자생할 수 있다는 시범 케이스가 되고 있고 공연계에 자극이 되고 있다고 생각해요. 가치있는 일입니다.”



 유라시안필의 경우 벤처 오케스트라라고 그러는데 유라시안필의 비즈니스 모델은 무엇입니까.

 “음악가의 재능을 관객과 나누는 것, 또 관객과 행복을 공유하는 거죠.”



 유라시안필을 창단하면서 ‘어떻게 경영해야겠다’는 복안을 가졌는지 궁금합니다.

 “관객을 공격적으로 찾아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벤처 오케스트라’란 슬로건은 적극적으로 도전하고 모험을 감수한다는 의미잖아요. 관객이 오길 기다리지 않고, 이쪽에서 관객을 찾아가 끌어들인다는 전략을 세웠어요.” 



 번듯한 콘서트홀이 아니어도 관객이 모일 수 있는 곳이면 빌딩 로비, 도서관 강당, 시민회관, 숲 속 어디든지 마다하지 않았다.

 고정관념을 깨는 발상의 전환도 금난새씨의 주요한 전략이다. 12월31일 자정, 모든 오케스트라가 쉴 때 자신은 제야음악회를 열어 틈새시장을 공략했다. 6~7시간을 내리 연주하는 마라톤 콘서트, 포스코빌딩 1층 로비에서 연주하는 ‘로비 음악회’가 이렇게 탄생했다. 



 “욕구를 창조하고 니즈를 파악했다”

 탁월한 기획력의 소유자란 평을 듣고 있는데, 아이디어가 어디서 나옵니까. 또 아이디어를 얻는 본인만의 노하우가 있는지요.

 “아이디어는 혼자 있는 시간에 주로 나와요. 아이디어란 우연히 떨어지는 게 아니라 만들어지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건 어떨까’라고 많이 생각하고 왜냐고 자꾸 물어야, 비로소 하나의 아이디어가 만들어지죠.”



 기업체와의 파트너십이란 점도 그렇고 해설이 있는 음악회도 그렇고 기존의 시장이 아닌 요즘 말로 ‘블루오션’을 찾은 셈입니다.

“욕구를 창조하고 니즈를 파악했다고 할까요. 기업들이 글로벌화돼 가면서 사회공헌에 대해 신경 쓸 때, 문화공연이란 쪽으로 통로를 열어준 거죠. CJ가 우리와 파트너십을 맺고 있는데 CJ가 군에 납품을 하는 게 있더군요. 의도했던 건 아닌데 공교롭게 군 공연을 CJ 후원금으로 진행했습니다. 우리가 지방 연주를 많이 다닙니다. 한 번은 창원에서 연주를 하는데, 진해 해군사관학교 교장이 전화를 해서 음악 강의를 해 달라고 요청하는 거예요. 아예 오케스트라를 데려가 연주를 했죠. 비용은 CJ측의 후원금으로 충당했고요.  예상했던 대로 800명의 생도들이 좋아서 난리가 났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육사에서 다음날로 전화가 오고, 공사에도 갔습니다. 육군본부에서는 장성 400명을 앉혀 놓고 연주를 했습니다. 후원을 해준 CJ측도 자기들 돈이 가치 있는데 쓰이니까 흐뭇해 했고요. 포스코에서도 같은 일을 하고 싶다고 해서 ‘대학교 순회 콘서트’를 제안해 승인이 났습니다.”



 금난새씨는 고객이 누군지, 그들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알고 이를 만족시키려 노력하는 사람이다. 또 음악은 전문가를 위한 것이 아니라 일반인을 위한 것이란 철학을 갖고 있다.

 ‘해설이 있는 음악회’는 그렇게 태어났다. 낯설기에 어렵게만 느껴지는 클래식 연주에 해설을 곁들여 재미있게 만들었다. 일반인에게 눈높이를 맞춘 것이고 그들의 니즈를 파악한 것이다. 아는 만큼 들리고, 들리는 만큼 사랑하게 된다. 어려운 클래식 음악도 그 선율에 어떤 의미가 있고, 작곡가가 왜 그 곡을 만들었는지, 1악장은 어떤 의미고 4악장은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는지, 금씨가 유머까지 곁들이며 설명하는 데 눈을 감고 잠을 청할 관객이 있을까. 



 근사한 콘서트홀에서 청중이 오기를 기다리지 않고 관객이 있는 거리로 나가서 클래식 저변을 넓힌 것으로 평가받고 있는데, 한 가지 궁금한 것은 연주회 레퍼토리는 100% 정통 클래식으로만 구성돼 있더군요. 그 흔한 크로스오버 곡 하나 없습니다.

 “뭐랄까요, 음식만은 제대로 된 것을 서빙하고 싶었어요. 너무 단 음식은 몸에 좋지 않잖아요. 깊은 울림이 있는 음악을 선물하고 싶은 거죠. 다가는 가지만 끌려가지는 않는다고 할까요. 예술가로서의 자존심 문제도 있습니다. 정식 공연장이 아닌 빌딩 로비에서 연주를 하지만 우리를 무시하지 못하는 건 베토벤과 쇼스타코비치를 연주하기 때문이에요.”



 문화는 존경받는 기업으로 가는 도구

 기업마다 문화경영을 도입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문화를 공급하는 쪽에서 수용자들에게 조언을 한다면 어떤 것이겠습니까.

 “문화는 존경받는 기업으로 가는 도구입니다. 한국 사회가 물질적 성장만큼 정신적인 풍요로움이 따라가지 못한다는 이야기가 많은데, 기업이 이익을 냈으면 이제는 사회에 어느 정도는 환원할 때가 아닌가 생각해요. 그 환원의 도구가 문화인 거죠. 전 셰익스피어 작품이 영국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셰익스피어 작품은 그것을 이해하는 사람이 주인이에요. 대문호의 작품을 읽으며 대작곡가의 명곡을 들으며 감동하고 행복해 하는 사람이 많은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업체들이 큰 역할을 했으면 합니다.

 역으로 기업체에서 얻을 수 있는 것도 많아요. 제주신라호텔에서 실내악 축제를 했는데 그쪽 이야기가 신라호텔이 세계 100대 호텔 안에 들기 위해 10년 동안 서비스 개선 청결 스마일 운동 등을 많이 했다고 합니다. 정말 열심히 했지만 한계가 있어 낙담하고 있었는데 실내악 페스티벌 한번 하니까 자연스럽게 그레이드 업이 되더래요. 하드웨어가 아무리 좋아도 그 안에 담겨 있는 소프트웨어, 문화가 시원치 않으면 안 된다는 걸 보여주는 반증이죠.”



 문화를 공급하려는 측에 대한 조언은요.

 “기업이 1000만원을 후원했다면 적어도 이익이 1억원은 나야 하고 매출은 10억원을 달성해야 한다는 겁니다. 허튼 돈이 아니란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겁니다. 받은 것 이상으로 보상을 해 줘야죠.”



 유라시안필과 기업체의 파트너십은 일회성이 아니라 다년계약 재계약으로 이어지는 확률이 높다. 그만큼 유라시안필에 대한 만족도가 높다는 이야기다. 일례로 유라시안필이 삼성전자와 협약을 맺고 하는 ‘파브 콘서트’에서 금난새씨는 평면 스크린(PDP) 기술을 활용, 지휘대에 종이 악보가 아닌 PDP 악보를 놓아 삼성전자의 신기술을 공연장에서 선보이는 기회를 만들었다.

 2003년 삼성그룹 신년하례회 식장에선 마지막 곡 연주 전에 이건희 회장에게 내려가 지휘를 부탁했다고. 이 회장이 자신은 지휘를 못한다며 거절하자 “삼성그룹을 지휘하는 이 회장이 한국 최고의 마에스트로”라며 지휘봉을 건넸다. 그 한 마디에 이 회장은 흔쾌히 지휘봉을 건네받았고 유라시안필은 라데츠키 행진곡으로 응답했다. 참석한 임원들이 환호성을 올렸고 그 일화는 삼성그룹의 ‘전설’이 되었다.



 마지막에 퇴장하는 지휘자

 현재 유라시안필은 기업체와 후원을 맺을 때 삼성전자 지펠 콘서트 같은 브랜드 마케팅, 삼성전자 신입직원 연수원 음악회 같은 지식경영, 두산 신년음악회 같은 기념일 공연, KT 패밀리 콘서트 같은 고객을 위한 잊을 수 없는 선물, CJ 후원 같은 파트너십, 포스코센터 음악회 같은 사회적인 활동 등 구체성을 제시하면서 가시적인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

 “우리가 2004년에 116회의 공연을 해 12만명의 관객이 오셨는데, 한 달에 많을 때는 15회까지 연주회를 했습니다. 다른 단체가 많아야 5회를 넘지 않는 것에 비하면 어느 정도인지 이해가 되시죠. 제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연주단체도 이제는 효율성을 높여야 할 때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입니다. 한 달에 15회 연주회를 하는 곳과 5회 하는 곳 중 어디가 생산 효율성이 높다고 보십니까. 연주단체에도 최소한의 투자로 최대의 이익을 내려는 경영 마인드가 하루 빨리 도입돼야 합니다. 그렇다고 우리 공연의 질이 떨어지는 건 절대 아닙니다. 연주가 나쁘면 연주 요청이 사라지겠죠.”



 연주회가 많다는 이야기는 상대적으로 연습시간이 짧다는 이야기일 텐데, 연주의 품질을 어떻게 확보하고 있습니까.

 “오케스트라 단원 정도면 프로페셔널들이에요. 집중도 있게 연습하면 문제가 되지 않아요. 우리 단원들에게 고마운 건 정말 열심히 한다는 거예요. 연습시간이 끝나자마자 단원들이 사라지는 곳도 많다는데 우리는 조금이라도 더 연습하려고 합니다.”



 금난새씨는 연주가 끝나자마자 박수갈채를 받으며 사라지는 여느 지휘자들과 달리 가장 늦게 퇴장한다. 지휘자만 청중의 많은 박수를 받으며 퇴장하고, 나머지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쓸쓸하게 조용히 퇴장하는 음악회의 관행에 씁쓸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다 함께 열심히 연주했으니 청중의 박수도 다 함께 받아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이를 위해 지휘자가 마지막에 퇴장하는 새로운 원칙을 만들었다. 청중이 마지막까지 감동의 박수를 보내 주는 것은 물론이다. 고객(관객)에 대한 만족을 추구하며 동시에 내부(오케스트라) 만족 또한 추구한다는 이야기다. 이를 두고 금난새씨는 “월급 많이 주는 CEO도 필요하지만 고충을 알아 주는 CEO도 필요하다”고 말한다.

 금난새씨는 관객의 만족을 높이기 위해 철저히 관객의 입장에서 공연을 평가한다고 말한다. 우리나라 연주자는 ‘남이 나를 어떻게 볼까’ 하는 콤플렉스가 있는데, 특히 언론에 난 평론가의 평에 집착한다고 한다. 하지만 자신은 평론가 대신 관객들에게 앙케트를 돌렸다고.

 “1년 만에 몇 천 장의 설문지가 모였습니다. 아주 과학적인 데이터죠. 추측과 추정에 의해 음악회를 기획하는 게 아니라 관객이 어떤 것을 좋아했는지 근거를 가지고 공연을 구성할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금난새씨는 “데이터를 가진 회사와 없는 회사는 차이가 날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요?”라고 반문했다. 관객의 심리를 완전히 파악하고 있다는 자신감이 묻어 나왔다.

 금난새씨는 앞으로 남은 과제는 유라시아필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도약시키는 것이라고 답했다. 그 목표를 이루고 나면 어떤 새로운 도전을 찾아갈지 못내 궁금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