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 정치는 변화무쌍 그 자체다. 올해 4월 중순까지만 해도 열린우리당은 자신만만했다. 큰 선거에서는 무조건 이긴다는 믿음이 있었던 것이다. 이해찬 총리가 공개적으로 ‘2007년 대선 불패론’을 이야기할 정도였다. 앞으로 계속 정권을 잡을 수 있다는 자신감 덕분에 여권은 오만할 수 있었다. 작년 말 국가보안법 폐지안 처리 과정에서 보여줬듯 자신들만의 ‘개혁의 길’을 고집할 수 있었던 것이다. 불패론 덕분에 여당은 느긋하기도 했다. 크고 작은 정권의 실수와 악재도 덤덤하게(?) 넘기곤 했던 것이다.

 여권만 그렇게 믿었던 것은 아니다. 여권의 대선 불패론은 마치 정치권의 상식으로 자리잡는 듯했다. 상당수의 한나라당 의원들조차 2007년 대선에서 여당이 이길 것이라는 전망에 동의했다. 한나라당은 거꾸로 ‘필패론’에 시달렸다. 이런 패배 의식 때문에 한나라당은 지난 4월 중순까지 내부 갈등과 진통으로 하루하루를 보내야 했다. 또 ‘박근혜 낙마론’ ‘분당론’ 등 당장이라도 한나라당이 와르르 무너질 듯한 소식이 끊이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상황이 뒤집어졌다. 6월 들어 여당 주변은 패배주의로 가득하다. 더 이상 어느 누구도 불패론의 신화를 믿지 않는다. 오히려 그간 여권이 자랑해 온 대선 주자들(정동영 통일부 장관,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 이해찬 총리 등)이 “약한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온다. 또 열린우리당은 요즘 당내 갈등과 내분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난닝구·빽바지’라는 희한한 논쟁으로 시작된 여당의 실용-개혁 노선 싸움은 6월 들면서 서로를 향해 “먼저 당을 나가라”고 삿대질을 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난닝구는 당내 개혁파들이 실용파를 비하해서 부를 때 쓰는 말이고, 빽바지는 거꾸로 실용파가 개혁파에게 붙인 이름이다. 난닝구라는 말은 2003년 민주당에서 지금의 여당 주축 세력들이 뛰쳐나올 때 일부 민주당 당료들이 속옷 상의 차림으로 설치던 것을 빗댄 것이다. 반대로 빽바지는 유시민 의원이 2003년 국회에 첫 등원할 때 흰색 면바지를 입었다고 해서 나온 말이다. 여당 내부의 갈등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저급한 수준에서 악성으로 번져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게 난닝구·빽바지 논쟁이다.

 반대로 한나라당에선 “잘나가고 있을 때 조심하자”는 말이 나올 만큼 여유만만이다. 불과 두 달여 만에 상전벽해(桑田碧海) 같은 변화가 발생한 것이다.

 그럼 두 달 후에는 또 한 번 이 같은 상황이 뒤집어질 수 있을까. 한국 정치의 역동성을 감안한다면 전혀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열린우리당이 지금의 고행길에 접어든 것은 지난 4·30 재보선에서 ‘23 대 0’이라는 충격의 전패를 당한 이후다. 당시 여당은 국회의원 재선거 6곳을 비롯, 지방자치단체장 등 후보를 낸 23곳의 선거에서 모두 졌다. 대한민국 선거 역사상 과반 여당이 23 대 0의 전패를 당한 것은 사실상 처음 있는 일이다.

 이 놀라운 결과 때문에 새로 출범한 여당의 새 지도부는 힘 한 번 써 보지 못한 채 반신불수가 됐다. 열린우리당은 지난 4월2일 전당대회를 갖고 문희상 당 의장 등 새 지도부를 출범시켰다. 여당에서 당 대표가 당원 직선으로 새로 선출된 것은 한국 정치사에서 흔치 않은 일이다. 지금껏 여당의 대표는 으레 대통령이 총재를 맡고, 당을 이끄는 대표는 대통령을 대신해 일을 처리할 수 있는 사람들 중에 선택하곤 했다. 아무리 문희상 의장이 노무현 대통령의 초대 청와대 비서실장 출신이라고 하지만 그는 전당대회 때 당원의 직선으로 선출된 의장이다. 그런데 취임 한 달도 안 된 상태에서 치른 4·30 재보선에서 23 대 0의 패배를 당한 충격에서 헤어나질 못하고 있다.



 ‘내년 지방선거도 승산 없다’ 비관적인 전망

 4·30 전패의 충격이 문 의장과 새 여당 지도부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이를 계기로 마치 여권 전체가 연쇄 빅뱅에 들어간 것처럼 파열음을 내고 있고, 지지 기반 곳곳이 무너지는 듯한 양상으로 번지고 있다. 5월 이후 열린우리당 지지율은 끝 모를 추락을 거듭하고 있다. 그러나 여당과 정부, 청와대는 서로 ‘네탓’ 공방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 당내의 계파 갈등도 악성화하고 있다. “악재는 몰려 다닌다”는 속설처럼 그 동안 숨겨져 있던 현 여권의 모든 상처와 치부가 한꺼번에 다 터져 나오는 듯한 느낌을 줄 정도다.

 이 같은 위기 상황을 맞으면서 여당 안팎에선 오는 10월 재보선은 물론 내년 5월말 지방선거까지 ‘승산이 거의 없다’는 비관적인 전망이 쏟아지고 있다. 여당 관계자들조차 당분간은 뾰족한 방법이 없다는 말만 하고 있다. 적어도 당분간 지금의 위기 상황을 돌파할 수 있는 반등의 기회가 쉽게 오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여당을 비롯한 여권 전체가 이 같은 상황이 계속되도록 손을 놓고 있다는 뜻은 아니다. 열린우리당은 5월말부터 당 워크숍, 당과 정부·청와대 연석 워크숍, 전·현직 지도부 모임 등을 열어 가며 수습책 마련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문희상 의장 등 현 지도부를 중심으로 여당은 단합하고, 당과 정부 사이의 협력을 강화하자는 게 큰 줄기다.

 그러나 여권이 처한 상황은 이 같은 대증(對症) 요법으로 개선될 것 같지는 않다. 현 여권의 위기는 다름 아닌 ‘중심의 부재(不在)’에 따른 것이다. 문 의장은 당의 중심이 되기에는 벅찬 상황이 돼 가고 있다. 또 여당의 유력 대선 후보인 정동영·김근태 장관은 정치권 밖을 맴돌 수밖에 없는 처지다. 그러나 보다 본질적인 문제가 있다. 여권이 중심 없이 흔들리는 듯한 사태의 출발점은 노무현 대통령이다.

 노 대통령은 스스로 내건 ‘당정 분리의 원칙’을 앞세워 정치에서 한 발자국 물러선 듯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여권의 가닥을 잡아갈 중심인물이 선뜻 떠오르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작년 말 국가보안법 파동과 행정수도 위헌 판결 이후 정책의 축도 무너진 듯한 느낌을 주는 게 최근 여권의 상황이다. 올해 들어 여권은 정책적인 우위를 상실한 상태다. 여권이 중심을 다시 세우는 작업에 성공하지 못한다면, 지금의 표류(漂流)는 계속될 수밖에 없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