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철(49) 화동양행 대표는 지난 6월8일 뜬 눈으로 밤을 샜다. 독일 월드컵 한국-쿠웨이트전 때문이다. 단순히 축구팬으로서만 한국 승리를 기원한 게 아니었다. 그에겐 1년 사업이 걸린 중요한 한 판이었다. 한국의 월드컵 진출 여부가 화동양행 1년 매출액 중 30~40%를 좌우하기 때문이다.

 “돈장사 20년 외국돈 없는 게 없어요”



 동양행은 전 세계의 기념주화와 수집용 화폐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업체로, 국내에선 유일한 회사다. 최근 독도 문제가 불거졌을 때 조폐공사가 발매, 현재 2000여 개가 팔려 나간 히트상품 ‘독도사랑메달’을 판매한 곳도 화동양행이다.

 그러나 이 회사는 국내보다는 외국 재무부나 조폐국에서 더 유명하다. 세계 15개국 조폐국의 한국 내 판매권자이기 때문이다.

 특히 올림픽이나 월드컵은 화동양행에겐 ‘효자’나 다름없다. 한국대표팀 진출 시 기념주화 판매량이 급격히 늘어나기 때문이다. 실제 아테네올림픽이 개최된 지난해엔 55억원의 매출액 중 20억원(36%)을 올림픽 기념주화로 올렸다. 이 때문에 이제철 대표는 쿠웨이트에 4 대 0 쾌승을 거둬 월드컵에 6회 연속 진출한 태극전사가 고맙기만 하다. 자칫 잘못했다간 6월21일 판매에 들어간 2006년 독일 월드컵 공식 주화가 ‘맥빠진 사업’이 될 뻔했다.



 세계 100개국 2000여 종 보유

 서울 예술의전당 맞은편 화동양행 본사서 만난 이제철 대표는 자신을 이렇게 소개했다.

 “외국선 ‘코인 딜러’로 부르죠. 우리말로 번역하면 ‘돈 장수’인 셈입니다.”

 그가 코인 딜러 생활을 한 지도 벌써 20년이 다 돼 간다. 동아건설 엔지니어였던 1986년 이건일(62) 전 회장을 독대한 후 이직을 결심했다. 그는 “화동양행의 말단 여직원이 당시 동아건설 부사장 책상과 같은 것을 쓰더라”며 “1972년 회사 설립 후 평생 화동양행에 몸바쳐 온 오너를 믿고 ‘돈 장사’에 발을 들여놓았다”고 소개했다.

 그가 접한 국내 화폐수집 시장은 외국에 비하면 크지 않다. 국내 주화 수집가는 화동양행이 1987년부터 운영 중인 ‘코인클럽’ 5000여 회원으로 추산된다. 화폐 수집 창구는 매달 코인클럽 회원들에게 보내는 소식지 <화동뉴스>와 <화동웹>(hwadong. com)이 전부다. 화동양행은 국내서 세계 화폐나 기념주화 수집의 유일한 창구인 셈이다.

 그는 화폐 전문가답게 국내 화폐 역사를 줄줄이 꿰고 있었다.

 “우리나라 화폐 단위로 ‘원(圓)’을 쓴 게 언제부터인 줄 아십니까?”

 대답을 머뭇거리자 그는 “1962년 제3차 화폐개혁 때 ‘환’에서 ‘원’으로 바뀌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잇따라 질문을 던진다.

 “우리나라 화폐 중 유통기간이 가장 짧았던 화폐를 아세요? 딱 25일간 유통된 모자(母子)가 책을 보는 그림이 그려진 100환짜리입니다. 지난 1962년 5월16일 발행됐다 같은 해 6월10일 원화로 화폐단위가 바뀌면서 사라진 화폐입니다. 최단명 은행권으로 남아 있죠.”

 이 대표가 말하는 화폐의 가치는 희소성과 보관 상태에 따라 천차만별로 달라진다. 가령 1970년 발행된 10원짜리 동전의 현재가는 황동이냐, 적동이냐에 따라 230만~350만원으로 가격차가 난다.



 1908년 발행된 5원짜리 금화 3억원 낙찰

 수집가 입장에서 화폐나 기념주화를 모아 두면 재산 가치가 있을까. 이에 대해 이 대표는 “돈을 벌려면 여의도(증권가)로 가는 게 낫다”고 잘라 말한다.

 “화폐 수집은 ‘취미의 제왕(The King of Hobbies)’이란 표현처럼 취미로 해야죠. 10만원에 산 게 100만원 할 수도 있지만 그 반대 경우도 허다하거든요.”

 가장 인기 있는 주화도 시중에서 가장 구하기 힘든 희귀 주화가 대부분이다. 실제 지난 4월 미국 뉴욕에서 개최된 엘리아스버그 경매에서 한국 금화 3점이 사상 최고가로 낙찰됐던 건 유명하다. 1906~1909년 발행된 5원·10원·20원짜리 금화가 각각 한화 2억9000만원, 9900만원, 1억8500만원에 낙찰된 바 있다.

 그는 “경매에 부쳐지면 시가 대비 2~3배 뛰는 게 보통”이라며 “화폐 수집가들에게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보관상태”라고 강조한다. 그러나 기념주화나 희귀 화폐도 엄연히 시중가가 존재한다. 그는 “부르는 게 값이면 가격 신뢰가 깨진다”면서 “희귀화폐는 세계적 공식가가 지정돼 있다”고 말한다.

 현재 그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화폐는 1987년 히트상품이었던 ‘1962년 지폐 22종 세트’다. 당시 발행 액면가 1만6000원짜리를 1987년에 34만원에 팔았던 제품인데 현재 시중가는 143만원 수준이다. 18년 만에 4.2배나 가치가 뛰어오른 셈이다. 고구려 역사 문제가 불거졌던 지난 연말 발행된 ‘한국의 유산-고구려 메달’은 꾸준히 팔리는 제품이다.

 화동양행은 올해엔 ‘2006 독일 월드컵 공식 기념주화’에 집중할 계획이다. 6월21일부터 판매에 들어간 이번 세트는 월드컵 사상 최초로 FIFA(국제축구협회) 승인 아래 독일을 포함한 세계 12개국이 참여한 최대 기념주화 컬렉션이다.

 2010년 월드컵 개최국 남아프리카공화국, 1978년 우승국 아르헨티나, 1930년 개최국 및 우승국 우루과이, 1982년 개최국 스페인 기념주화가 포함돼 있다. 판매가격은 금·은화 22종 세트가 363만원, 은화 15종 세트가 99만원, 독일은화 4종 세트가 24만2000원이다.

 중동고 재학시절 아마추어 축구선수로 활동한 경력이 있는 이제철 화동양행 대표. 그는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 한국이 좋은 성적을 거두길 가장 바라는 사람임에 틀림없다. 현재 화동양행은 세계 100개국 2000여 기념주화 및 화폐를 소장 중이다.



 Plus tip 화폐 수집 역사



 2000년 전 로마인, 그리스 주화 모은 게 시초



 
화폐 수집은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수집 취미 중 하나다. 흔히 ‘취미 중 제왕(The King of Hobbies)’ 혹은 ‘제왕의 취미(The Hobby of Kings)’로 불린다. 동·서양에서 2000년 전부터 시작된 취미가 바로 화폐수집이다.

 서양에선 서기 1세기경 로마인들이 고대 그리스시대 주화를 모았다고 하고 동양에서도 서기 480년경 전송시대에 이미 <전지(錢誌)>라는 화폐연구책자가 발간됐다는 점에서 화폐수집 역사를 가늠해 볼 수 있다.

 특히 서양 르네상스 시대엔 당대 유명한 화가·조각가들이 주화를 모았고 주화 디자인은 이들의 몫이었다고 전해진다. 16~17세기에 이르러 취미로서 화폐수집이 당시 귀족들에게 유행이었다. 특히 코인 캐비닛이 없으면 유행에 뒤처진 것으로 간주될 정도였다. 이는 당시 유럽 유행을 주도하던 프랑스의 루이 14세의 영향이 컸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