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상 가장 부유하고 막강한 인구 집단.” 미국과 캐나다에서 베이비붐 세대를 일컬을 때 자주 인용되는 언명(言明)이다. 북미의 베이비붐 세대란 1946년부터 1964년 사이에 태어난 ‘41~59세대’를 일컫는데, 현재 미국에만 7500만명의 인구가 이 연령대에 속한다. 이들이 업계로부터 주목받는 이유는 전체 구매력의 45%를 차지할 정도로 막강한 자금 동원 능력 때문이다. 최신호에 따르면 베이비붐 세대는 미국 전체 금융 자산의 75%를 소유하고 있으며, 매년 1조달러(약 1200조원)의 사용 가능한 유동성을 보유한 ‘소비의 숨은 광맥’인 것이다. 이에 따라 베이비붐 세대들은 최근 벤츠나 재규어 등 고급 자동차에서부터 수천달러를 호가하는 침대 등 명품 시장으로부터 열렬한 구애를 받고 있다. 또 비아그라 같은 소위 라이프스타일 의약품이나 보톡스 시술 같은 미용 성형시장의 주요 소비자로 부상했다. 아울러 예전 노인 세대가 은퇴지로 선호하던 미국 남부의 온화한 지역에서 탈피, 기존에 살던 도시 근교에서 제2의 인생을 준비함으로써 새로운 주택 수요도 유발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근 미국과 캐나다 등지에서 방영된 벤츠 자동차 광고는 베이비붐 세대들의 향수를 자극하는 한편 “소비를 행동으로 보이라”고 권유하고 있다. 이 광고는 한 사내아이가 아이스크림을 먹는 친구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모습으로 시작된다. 벤츠의 자태는 광고가 끝날 때까지 보이지 않고 카메라는 자라면서 아이스크림을 줄곧 생각만 하는 아이의 성장 과정을 따라간다. 결국 어른이 되어서도 아이스크림을 마음속으로 그리기만 할 뿐 끝내 먹지 못하고 생을 마감하는 남자와 벤츠의 로고가 오버랩된다. 화면 암전(暗轉) 후 “그 꼬마는 끝내 아이스크림 맛이 어떤지 알지 못하고 늙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벤츠, 이제 바라만 볼 필요 없습니다”란 카피가 나오면서 광고는 끝난다.

 벤츠가 좋은 자동차이긴 하지만 비싸서 엄두를 못냈다면 ‘더 늦기 전에 구입해 보라’는 베이비붐 세대들을 겨냥한 메시지다. 북미 경제 성장의 견인차였던 이들 베이비붐 세대는 한국의 실버 세대들처럼 지금까지 자식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살았다. 그래서 마케팅의 초점은 이제 자녀들은 다 출가시키고 여유를 찾은 이들의 자아 실현 욕구를 자극하는 데 맞춰지고 있다. 캐나다 토론토에 지점을 둔 홍보 대행 업체 유로 RSCG사의 CSO(전략 담당 최고경영자)인 마리안 잘쯔만은 “베이비붐 세대는 이제 원하는 거라면 얼마든지, 언제든지 살 수 있다는 마음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자녀들도 대부분 출가한 데다 주택 담보 대출도 다 갚은 홀가분한 마음으로 이제 자신과 파트너의 삶의 질에 집중하기 시작했다는 설명이다.

 베이비붐 세대가 결혼한 뒤 아이를 낳고 가정을 꾸려 나갈 당시에는 미니밴이 가장 인기 있는 차종이었다. 식구들을 다 태우고 짐도 넉넉히 싣고 여행을 다닐 수 있어 사랑받던 차였다. 하지만 이제는 사정이 달라졌다. 자식들도 떠나고 둘만 남았는데 기능성만 보지 말고 이제 좀 다양하게 선택해 보자는 얘기다.

 벤츠와 함께 ‘명품 자동차’로 불리는 재규어도 옛 명성을 살린 ‘XJ8’ 시리즈를 내놓으면서 이 전략을 채택했다. 최근 전세계에서 일제히 판매에 들어간 ‘뉴 XJ 슈퍼 V8’은 지난 1968년 출시 이래 전세계적으로 80만대 이상이 판매된 재규어의 플래그십 XJ 시리즈의 최고급 모델이다. 재규어의 고급 모델을 30대 시절에는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이들에게 추억을 되살려 ‘그때 그 차’를 사라고 호소하고 있는 셈이다.

 이와 함께 기능성 침대도 붐이다. 물론 이들 베이비붐 세대가 주요 소비층이다. 예전에는 쳐다보지도 않았을 수천달러짜리 물건도 이들 베이비붐 세대는 선뜻 산다. 최근 캐나다 최대의 일간지 토론토스타에 따르면 미국 뉴욕의 카플란씨 부부는 지난 3월말 스웨덴에서 수입한 6000달러(약 700만원)짜리 매트리스를 구입했다. “남편이 만성 요통에 시달리는 데다 나는 나대로 침대가 불편해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었다. 물론 우리가 늘 이런 식으로 소비 생활을 한 건 아니다. 하지만 이제 우리가 뭘 위해 돈을 아끼겠느냐.” 아내 에드나 카플란(56)의 설명이다. 

 미국에서 매트리스는 보통 600달러 전후에서 거래된다. 하지만 개당 1000달러 이상 호가하는 고급 매트리스의 판매 실적이 최근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미국 수면과학연구소(Better Sleep Council) 조사에 따르면 지난 2000년 전체 매출에서 고가 매트리스가 차지하는 비중은 13.5%에 불과했지만 2년 뒤에는 17.3%로 증가했다. 침대 크기도 퀸사이즈에서 킹사이즈로 확대되는 추세다. 또 실리사의 명품 브랜드 매트리스의 매출 실적은 1994년 3500만달러에서 2003년 2억5000만달러로 9년만에 7배 이상 늘었다. 실리사의 짐 로스 부사장은 뉴욕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부유하고 건강에 관심이 많은 베이비붐 세대가 주고객”이라고 설명했다.

 급기야 1000만원대에 육박하는 ‘왕족 침대’도 등장했다.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과 필립공이 사용한다는 힙노스사의 킹사이즈 침대가 지난해 초부터 캐나다 시장에 8500달러(약 800만원)에 공급되기 시작했다. 완제품으로 영국에서 수입되는 힙노스 매트리스는 최고급 제품으로 분류되는데, 최근 명품 시장 회복 분위기를 타고 캐나다에 상륙한 것이다. 명품답게 재료도 최고급을 사용했다. 누웠을 때 부드러움과 따뜻함을 더해 주는 캐시미르는 기본이고 어린 양털, 벨기에산 다마스크천, 비단, 심지어 새끼 양이나 송아지 꼬리털로 꼰 솜 등이 들어갔다. 힙노스의 캐나다 소매 법인인 베드룸숍의 허버트 대표는 “출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자세한 매출 규모를 밝힐 수 없으나 반응이 상당히 좋다”면서 “사실 평균 12년 정도 매트리스를 쓴다는 점을 감안할 때 그리 비싸다고 할 수도 없다”고 일간지 글로브 앤 메일과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힙노스측은 좀더 편안하고 안락한 잠자리에 대한 필요성이 강조되는 것은 물론, 집안을 꾸미는 데 돈을 아끼지 않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어 시장 전망은 밝은 편이라고 밝혔다. 회사측은 이에 따라 올해 말까지 캐나다에서만 전국적으로 최대 50개의 점포를 낼 계획으로 알려졌다.

 이와 함께 병을 치료하기 위해 먹는 약이 아니라 보다 나은 삶의 질을 위해 먹는 소위 ‘라이프스타일약’도 베이비붐 세대의 지대한 관심을 받으면서 저변을 넓히고 있다. 이미 비아그라를 통해 증명된 대로 이런 약의 잠재 수요는 엄청나다. 올 들어서는 비아그라에 이어 레비트라, 시알리스 등 ‘중년 남편의 작은 도우미’들이 서로 시장점유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총력 투쟁에 나선 상태다.

 7년 전 비아그라가 문을 연 ‘발기성 기능 장애(ED:Erectile Dysfunction)’ 시장은 이제 전세계적으로 21억달러(약 2조200억원) 규모로 확장해 가고 있다. 후발 주자인 시알리스(릴리아이코스), 레비트라(글락소스미스클라인)와 비아그라(화이저) 등 3사의 제품이 지난 한 해 쏟아 부은 마케팅 비용만 3억8000만달러(약 4000억원) 수준이다. 이들 중 후발 주자인 시알리스가 가장 적극적으로 마케팅에 매달리고 있다. 캐나다의 <글로브 앤 메일>지에 따르면 지난 2003년 10월 출시된 시알리스는 첫 달 7.5%에 불과하던 북미 시장점유율을 14개월만에 20%대까지 끌어올렸다. 시알리스 마케팅을 위해 지난해 릴리아이코스사(Lily와 ICOS사의 합작 법인)는 3사 중 가장 많은 1억5000만달러(약 1800억원)를 쏟아 부은 것으로 나타났다.

 비아그라가 세상에 나온 것과 같은 해 머크사는 발모제 프로페시아를 개발했다. 퇴직한 베이비붐 세대들은 영양 보조 식품을 이전 세대보다 더 강하게 흡인하고 있다. 그래서 퇴직자들이 사는 마을에는 비만한 사람이 거의 없다. 베이비붐 세대들은 그야말로 죽느냐와 체중을 줄이느냐를 두고 사투를 벌이는 것이다.

 전염병에 대한 처방약은 몇달러에 불과할 정도로 저렴한 반면, 이들 라이프스타일약 또는 보조 식품은 가격이 비싸고 오래 복용해야 한다는 점에서 제약회사들의 ‘캐시카우’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베이비붐 세대란 든든한 소비층이 있기에 가능한 현상이다. 그만큼 마케팅도 치열하다. 미국 ABC 등 3대 공중파 방송의 메인 뉴스 시간에 내보내는 광고의 70%가 약 광고다. 베이비붐 세대가 가장 민감해 하는 당뇨, 콜레스테롤 수치 강하제, 동맥경화 예방약, 그리고 ED가 주종을 이루고 있다. 이밖에 다이어트 관련 광고는 여성 시청자가 많은 낮 시간대의 프로그램을 주로 겨냥한다.

 베이비붐 세대는 성형 수술에도 과감하다. ‘성형(Plastic Surgery)’이 아니라 ‘미용 수술(Cosmetic Surgery)’이란 이름을 얻었을 정도로 대중화된 결과다. 미국 미용성형의사협회(ASPS) 통계에 따르면 지난 2004년 미용 시술은 모두 920만건으로 전년에 비해 5% 증가에 그쳤다. 하지만 이를 연령별로 세분화해 보면 베이비붐 세대의 증가율은 괄목할 만하다.

 이 중 젊은 베이비붐 세대라 할 수 있는 35~50세 사이의 사람들이 성형 수술을 받은 건수는 모두 427만4000여건으로 전체의 46%를 차지했으며 증가율은 전년 대비 13%에 달했다. 또 후반기 베이비붐 세대로 간주되는 51~64세의 성형 건수도 모두 262만6000여건으로 전년에 비해 17%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수치를 4년 전과 비교하면 51~64세 사이의 성형 건수는 42%, 35~50세 사이는 31%나 폭증한 수준이다.

 이 중 보톡스 수술만 따로 떼어내보면 2004년 한 해에만 300만건으로 4년만에 무려 29배나 늘었다. 재미있는 것은 2004년 성형 수술에서 남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13%인데, 이는 4년 전에 비해 16% 늘어난 수치다. 베이비붐 세대에선 남자들도 여자 못지않게 외모 가꾸기를 중시한다고 할 수 있다.

주택업계도 베이비붐 세대의 눈높이에 맞추고 있는 추세다. 아파트보다는 단독 주택을 선호하는 북미 주택시장에서 주택건설업계는 이제 ‘잔손이 들어가지 않는, 콘도미니엄 스타일의 도시 근교의 호젓한 집’이란 마케팅 전략으로 베이비붐 세대에게 다가오고 있다. 한 부동산 개발 업체 조사에 따르면 미국 베이비붐 세대의 59%가 은퇴 후 현재의 집에서 다른 곳으로 이사하고 싶어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이들은 10여년 전 노인들과 달리 ‘선벨트(Sun Belt)’, 즉 미국 남부의 플로리다, 애리조나, 남부 캘리포니아 등 소위 ‘따뜻한 남쪽 나라’로 가는 것을 별로 원치 않는다. 그저 지금 사는 곳에서 차로 30~40분 정도 떨어진 한적한 교외 지역으로 이주하길 바라는 것이다.

 북미 건축업계는 최근 이러한 베이비붐 세대의 희망 사항에 맞춰 북미 주요 도시 교외에 신축 단지를 속속 짓고 있다. 캐나다 오타와 근교의 러셀, 미국 뉴저지주에 위치한 ‘바너겟의 지평선’ 등이 대표적인 베이비붐 세대를 겨냥한 주택 단지다.

 또 베이비붐 세대의 DIY(Do-It-Yourself) 시장 참여로 발전한 주택용품 관리 업체들은 이제 이들을 새로운 시장으로 안내하고 있다. 이들이 지난 시절 직접 집을 손본 덕분에 주택 개량 용품 시장의 규모를 확대할 수 있었던 업체들이 이제는 ‘DIY 시장의 풀서비스’란 기치로 베이비붐 세대의 주목을 다시 받고 있는 것이다.

 세계 최대의 주택 개량 업체인 홈디포는 관련용품을 파는 데 그치지 않고 지붕 놓기나 마루 깔기 등과 관련된 업체들을 고객과 연결시켜 주기 시작한 뒤 2004년 캐나다에서의 매출액이 전년 대비 31.4%나 증가했다. 시어스백화점 캐나다 법인은 DIY가 아니라 ‘DIF(Do-It-For-Me)’란 이름으로 전문가를 고용, 각종 주택 관련 용품의 설치 서비스를 시작했다.

 이런 구매력을 가진 집단을 북미 기업들은 어떻게 접근하고 있을까. 먼저 제품의 생산 단계에선 미리 베이비붐 세대를 염두에 두고 설계에 들어간다. 포드자동차가 채택하고 있는 ‘대리 체험 방식’이 대표적 예다. 포드사는 신차 설계에 들어가기 전 특수복을 먼저 제작했다. 우주복을 개조한 이 특수복은 당초 목적이 무중력 상태에 맞춘 것이어서 입으면 몸이 둔해질 수밖에 없다. 이는 점점 무릎 관절을 구부리는 게 어려워지는 베이비붐 세대들의 심정을 이해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다. 또 한쪽 귀퉁이가 깨어지고 흐릿한 색깔을 넣은 스키용 안경을 쓰고(약화되는 시력) 두꺼운 수술용 장갑을 끼고(감퇴된 촉감) 시운전을 하는 등 베이비붐 세대가 당면할 수 있는 모든 불편 사항을 설계 단계에서 반영했다.

 아울러 제품을 알리는 마케팅 단계에선 절대 ‘늙었다’는 인상을 주는 뉘앙스나 단어를 피한다. “비록 마케팅 대상이 베이비붐 세대라 하더라도 절대 이들에게 늙은이라는 인상을 줘선 안된다”고 미국 버지니아주의 리서치회사인 부머 프로젝트사 대표 매트 손힐씨가 강조한다. 그는 “앞으로 5년 뒤면 미국 인구 3명 중 1명은 50세 이상의 ‘쉰세대’가 되지만 ‘늙은이가 선호하는 제품’이란 인식을 주는 순간 그 상품은 사멸된다”고 덧붙였다.

 때론 관련 용어를 조심스럽게 선별해서 사용하고 예전에 없던 용어를 만들어내기까지 한다. 화이저가 비아그라를 내놓으면서 ‘발기부전(Impotents)’이란 말이 주는 강한 인상을 중화시키기 위해 쓰기 시작한 ED란 용어는 이제 이니셜로만 쓰일 정도로 일반화됐다.

 일부 학자들 가운데서는 “노령화는 시한폭탄”이라고 우려하기도 하지만 위기는 동시에 기회이기도 하다. 그러나 어차피 나이 먹는 일이 인간에게 피할 수 없는 일이라면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긍정적인 쪽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모두가 생각해야 할 때인 것 같다. 미래에 대한 부정적 예측이 긍정적인 전망보다 설득력이 있어 보일 때가 많지만, 언제나 희망을 잃지 않는 사람들에게 기회는 오는 법이다.



 ■ 일본 지역

 정부 민간 함께 노인천국 기반 다져



 
2003년 일본의 실버산업 규모는 70조엔. 우리나라의 25배에 이른다. 무엇보다도 노인의 눈높이에 맞춘 세심한 배려가 놀랍다. 최고수준의 서비스와 그들만의 비즈니스 원리를 들여다 봤다.

 본의 고령자 대상 서비스는 공공 차원의 노인 복지와 민간의 실버산업이란 두 공급원으로부터 제공된다. 우리나라의 실버산업이 아직 걸음마 단계라면, 일본의 실버산업은 이미 성인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은 20년 전부터 고령화 사회를 대비하면서 스웨덴 등 북유럽 선진국의 고령화 경험을 배워 명실상부한 ‘노인 천국’의 기반을 다졌다.

 일본은 노인(65세 이상) 인구가 전체 인구의 17%(약 2200만명)를 넘어선 ‘고령 사회(Aged Society)’다. 우리나라는 인구의 약 8%(약 400만명)가 노인이다. 일본의 노인 인구는 우리나라의 6배쯤 되는 셈이다. 국제적 기준에 따르면 우리는 ‘고령화 사회(Aging Society)’다. 일본은 이미 ‘늙은’ 나라고, 우리는 ‘늙어가고 있는’ 나라란 얘기다. 또 일본의 국내총생산(GDP)은 2003년 기준 4조3264억달러로 우리나라(6053억달러)의 7배가 넘는다. 노인 인구와 경제력만을 놓고 봐도 일본은 우리의 6~7배나 되는 대국이다.

 두 나라의 실버산업 규모는 인구 수와 경제력의 차이를 훨씬 뛰어넘는다. 대한실버산업협회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실버산업 규모(2005년 추정)는 27조원이고, 일본(2003년 기준)은 70조엔(665조원)에 달한다. 일본의 실버산업은 우리의 25배쯤 된다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최근 들어 급속한 고령화와 정부의 준비 부족 및 민간의 역량 미흡 등으로 인한 ‘고령화 쇼크’의 초기 국면을 겪고 있다.

 최근 신문 보도에 따르면 정부는 ‘저출산 고령화’ 문제를 ‘국가 위기’로 인식하고 대통령이 직접 위원장을 맡는 관련 위원회를 구성키로 하고, 상반기중에 민·관 합동 국민운동본부도 출범시키기로 했다. 이는 저출산 고령화 문제가 우리 사회의 ‘발등의 불’이 됐음을 뜻하며, 전국민적 차원의 관심과 노력이 필요함을 시사하고 있다.

 일본에 가서 보고 느낀 현실은 수치 이상의 놀라움이었다. 필자는 지난 3월8일부터 12일까지 일본 실버산업을 시찰하고 실버박람회도 참관했다.



 실버타운, 노인·젊은 세대 공동 거주

 도쿄 니뽀리의 커뮤니티하우스. 우리나라에는 없는 시설로 굳이 줄여 말하자면 ‘복합 실버타운’ 정도가 적당할 것 같다. 주식회사 생활과학운영이 2004년 6월 준공한 이 커뮤니티하우스의 가장 큰 특징은 노인과 젊은 세대가 같은 건물에서 함께 산다는 것이었다. 12층짜리 이 시설의 2~3층은 젊은 세대들이 모여 사는 ‘컬렉티브하우스’, 4~6층은 보살핌이 필요한 노인들을 위한 ‘시니어하우스’, 7~12층은 자립적 생활이 가능한 노인들 위한 ‘라이프하우스’로 이뤄져 있다. 시설 견학을 안내했던 쿠리하라씨는 이 시설에 대해 “일본에서도 최근에야 시도되고 있는 실험적인 개념의 복합 실버타운”이라며 “핵심은 노인들을 위한 쾌적한 공간을 제공하면서 동시에 젊은 일반 세대와의 공동 주거를 통해 노인의 삶의 질을 높이려고 한 것”이라고 말했다. 즉 노인 편의와 공동체적 유대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는 뜻이다. 젊은 세대와 노인들이 함께 어울리는 공간이란 컨셉트는 1층에 자리한 보육원에서 극에 달했다. 1세대인 노인들, 2세대인 젊은이들, 그리고 3세대인 어린이들이 한 건물에서 어울리며 살아 가도록 설계한 것 자체가 감동에 가까운 흥분을 안겨주었다.

 하지만 노인들이 많이 사는 건물에 젊은 세대들이 들어올까, 또 부모가 어린이들을 그 보육원에 보낼까. 예상은 빗나갔다. 컬렉티브하우스 28가구 중 23가구가 입주해 있고, 나머지 가구도 곧 입주가 완료된다는 것이었다. 쿠리하라씨는 “노인들이 많이 사는 곳이라고 해서 거부감이 없다”며 “이웃과의 친교를 소중히 여기고, 즐겨하는 사람들이 입주한다”고 말했다. 보육원은 원하는 어린이를 다 받지 못할 정도란다.

 월 관리비가 9만4000엔(한화 약 89만원) 하는 라이프하우스는 52실 중 42실이 차 있고, 월 관리비 10만4000엔(한화 약 99만원)의 시니어하우스는 45실 전체가 만실이었다. 입주시 지불하는 종신 이용권은 평수에 따라 2600만(2억5000만원)~4000만엔(3억8000만원)이다. 10년을 소각 기간으로 해 10년이 넘으면 이용권 대금은 반환되지 않고 임종 때까지 살 수 있다. 10년이 안돼 나갈 경우 정산을 해 일부를 돌려 주도록 돼 있다. 종신 이용권에 감가상각 개념이 적용되고 있는 것이다. 

 이곳은 월간 단위로 노인들을 위한 프로그램도 다채롭게 운용하고 있었다. 주요 프로그램은‘시네마살롱’이란 영화 상영 프로그램이 월 2회, 꽃꽂이 월 1회, 기공 월 4회(참가비 월 1000엔), 출장 미용 월 1회(커트 1000엔) 등이었다.

 자립적 생활이 가능한 노인들이 기거하는 라이프하우스의 901호실을 방문했다. 1층 프런트에 즉각 연결되는 긴급 버튼이 거실, 화장실, 욕실 등 세 곳의 벽에 설치돼 있었다. 잘못 눌렀을 경우에는 30초 이내에 다시 누르면 호출이 취소된다. 싱크대 옆의 조리기는 가스가 아니라 전자 가열 방식이었는데, 앞쪽의 조리대 2개는 노인들의 화상을 막기 위해 뜨거워지지 않도록 설계돼 있었다. 기술력과 세심함의 조화가 눈부실 정도였다. 침실과 거실의 붙박이장은 일본 사회의 저력을 유감없이 보여줬다. 붙박이장 천장에 화재 감지기와 스프링쿨러가 설치돼 있었던 것이다. 일본에서는 유료 노인 시설의 경우 그렇게 하도록 의무화돼 있다. 



 요양센터 등 보험적용으로 큰 부담없어

 수발이 필요한 노인들이 사는 시니어하우스의 화장실은 휠체어를 탄 노인과 보조자가 함께 들어갈 수 있도록 충분히 넓었고 구조도 깔끔했다. 시니어하우스(4~6층)는 층별로 기거하는 노인들이 다르다. 4층은 신체 부자유 노인, 5층은 치매 노인, 6층은 허약 노인에게 배정돼 있었다. 5층의 치매 노인용 식당에선 직원들이 노인들과 함께 식사를 하도록 하고 있다. 가족 같은 분위기를 만들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도쿄 아라카와구 미나미센주에서 사회복지법인 성풍회가 운영하는 ‘특별노인요양센터’는 1층에 주간 보호 시설을 두고, 2~14층은 노인 요양 홈으로 운용하고 있었다. 필자는 1층의 주간 보호 시설을 집중적으로 살펴봤는데, 이 시설은 일본에서 2000년부터 시작된 개호보험의 적용을 받고 있다. 하루 6시간30분의 주간 보호료는 노인 등급에 따라 5167엔(약 4만9000원), 6582엔(약 6만3000원), 9690엔(약 9만2000원)이다. 이 중 10%만 이용자가 부담하고 나머지는 보험으로 처리된다. 참고로 우리나라 정부는 2007년에 일본의 개호보험과 같은 장기 요양보험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아라카와구의 경우 개호보험 시작 전 11곳의 주간보호센터가 개호보험 실시 후 10곳이 더 늘어 현재 21곳이나 된다.

  이 주간 보호 시설의 정원은 40명인데 하루 35명 가량이 이용하고 있었다. 노인들의 신체와 정신적 능력을 향상시키는 ‘기능 훈련’에 중점을 두고 있는데, 노인들이 좋아하는 프로그램은 목욕·도예·가라오케 순이라고 시설 관계자는 귀띔했다. 노인들의 식판을 보관하고 나르는 식당의 카트는 식판 좌우측을 나누는 분리대를 설치해 식판 왼쪽에 놓이는 음식은 냉장, 오른쪽은 온장이 되도록 하고 있었다. 얼마나 섬세한지 혀를 내두를 수밖 없었다.

이 주간 보호 시설의 현재 가동률은 80%로 현 수준에서 자립적 운영이 가능하지만, 내년에는 85% 수준으로 가동률을 올릴 계획이라고 했다. 최고 수준의 서비스를 하면서도 비즈니스 원리를 적용키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이 두 시설은 모두 개호보험이 적용되는 곳이다. 하지만 일본에는 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대신 질 높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가정 봉사원(홈 헬퍼:Home Helper) 파견 사업도 있다. ‘미스터 도넛’이란 브랜드로 널리 알려진 더스킨사가 미국의 홈인스테드시니어케어와 제휴, 운용하는 서비스가 그것이다.

더스킨은 개호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100% 자부담 고객을 대상으로 가사 보조, 조리, 말벗,독서 대행, 정원 가꾸기, 청소, 병원 및 행정기관 외출시 동행 등의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주사, 투약, 약물 치료 등 의료 행위에 해당하는 것은 서비스되지 않는다.

 일본 전역의 42개 서비스 스테이션(고객센터) 중 가까운 곳에 전화하면 담당 매니저가 방문, 면접→서비스 플랜 작성→케어 담당자 선정→계약→서비스 개시의 순으로 업무가 진행된다. 특징은 1년 365일 24시간 이용 가능하며, 한 차례만 이용할 수 있다. 1회 이용 시간은 최소 2시간으로 돼 있다. 일본에서 7년째 거주하고 있는 김형미씨(42·여)는 “보험 적용이 되지 않는 더스킨의 서비스를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용할지는 의문”이라며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더스킨의 비즈니스 모델이 차별화하고 질 높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란 점을 염두에 두면 지켜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노인 복지 지식·교양 증진에 중점

 일본 방문길에 마지막으로 둘러본 곳은 ‘무 장애’(Barrier-free) 호텔 두 곳이었다. 지바현에 위치한 미라마레 케이세이호텔은 전체 176실 중 2실을 유니버설룸(Universal Room:일반인뿐 아니라 거동이 불편한 노인 및 장애인도 사용할 수 있도록 설계된 방)으로 갖췄다. 유니버설룸에는 난청 노인을 위해 수화기 볼륨을 높여 주는 어댑터를 따로 구비하고 있었다. 화장실 문은 여닫기에 편하도록 미닫이문으로 돼 있고, 화장실에는 고정 손잡이 이외에 탈착이 가능한 간이 손잡이 2개를 욕조 머리맡에 두었다. 화장실 욕조 바깥쪽과 반대편 벽의 거리를 1.5m로 넓게 설계, 휠체어 회전이 가능토록 했다. 또 침대 높이도 일반실 침대는 바닥에서 매트리스 윗면까지의 높이가 52cm인 데 비해 7cm 낮은 45cm였다. 침대에 오르내리기 쉽도록 하기 위한 배려였다. 또 유니버설룸이 있는 복도 13층 엘리베이터는 상하행 버튼 세트가 2개로 돼 있어 아래 버튼을 누르면 2대의 엘리베이터 중 지정된 1호 엘리베이터가 내려오게 되는데, 이 경우 문이 열려 있는 시간이 다른 엘리베이터에 비해 1.5배 길도록 조정돼 있었다.   

 도쿄 신주쿠의 게이오 플라자호텔의 경우, 귀가 잘 들리지 않는 노인들을 위해 밖에서 초인종을 누를 경우 천장 등이 점멸토록 해놓았고, 취침시 방문에 대비해 침대에 진동 기능까지 두는 등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배려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호텔내 병원(클리닉)을 노인 및 장애자 층인 30층에 두고 있는 데는 경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일본은 실버산업뿐 아니라 공공 차원의 노인 복지에서도 우리와는 다른 접근법을 보이고 있다. 우리나라 노인복지관이 백화점식으로 노인 복지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비해 일본의 노인복지관(노인종합복지센터)은 노인 교육 기관으로서의 위상을 지니고 있다. 우리나라 노인복지관에 가면 교육, 여가 지원, 재가 복지, 경로당 활성화, 주간 보호, 식사 서비스 및 도시락 배달에 이르기까지 노인 생활 전반에 걸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에 비해 일본의 노인복지관은 지식과 교양 증진이란 커다란 목표 아래 지역 사회에서 리더 역할을 할 수 있는 노인들을 양성하는 데 주안점을 두었다. 일례로 오사카 노인종합복지센터의 경우 1년만 다닐 수 있으며 재수강은 허락하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 복지관에는 이런 규제가 없다. 오사카 노인종합복지센터에서 교육을 받은 노인들은 오사카 시내의 150개 지역센터(복지센터 지부)로 돌아가 배운 것을 전파하고 가르치는 역할을 맡는다. 서울 시립 영등포노인종합복지관의 원성원 과장은 “일본은 노인을 복지의 수혜자로만 보지 않고, 주체적으로 활동하는 인격으로 보고 있어 시사하는 바가 많다”고 말했다.

 정치인으로 변신한 어느 방송인이 몇년 전 <일본은 없다>란 도발적인 제목의 책으로 히트를 친 적이 있다. 속 시원한 제목과 반일 정서가 적잖이 작용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식민 지배와 종군 위안부 때문에 일본을 좋아하지 않는 필자지만 적어도 실버 비즈니스와 노인 복지에 있어서만큼은 “일본은 있다”라고 말하고 싶다. ‘없다’라고 말함으로써 뭔가를 얻을 수도 있겠지만, ‘있다’라고 인정했을 때 얻을 수 있는 게 더 많을 수 있다. 그것이 ‘극일’하는 길이지 않을까.



할리데이비슨, 도요타부터 지팡이, 놀이기구까지 노인층 겨냥 실버 아이디어 만개

난 3월 10일 일본 도쿄 이케부끄로의 선샤인 컨벤션센터 3층. 전세계 모터사이클(오토바이)의 ‘명품’인 할리데이비슨이 전시돼 있었다. 박람회장에서도 큰 면적을 차지한 할리데이비슨 부스의 전면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청바지에 가죽 조끼를 입은 은발의 노인이 할리데이비슨 옆에서 멋진 포즈로 휴식을 취하고 있는 대형 포스터였다. 놀랍게도 노인들을 대상으로 한 산업전시회에 할리데이비슨이 출품돼 있었던 것이다.

3월10일부터 12일까지 도쿄에서 ‘제15회 일본 실버 서비스 박람회’가 열렸다. 사단법인 실버서비스진흥회가 주최하고 후생노동성·경제통산성·도쿄도(都) 등 14개 기관 및 단체가 후원한 이 박람회의 올해 주제는 ‘고령자의 QOL(Quality Of Life:삶의 질) 권리 선언’이었다.



 노인 타겟 마케팅 눈길

 할리데이비슨은 왜 실버박람회에 왔을까. 의문은 곧 풀렸다. 일본에서 1년에 팔리는 할리데이비슨이 1만대다. 이 중 10%(1000대)를 50세 이상의 준노인, 노인층이 구매하고 있었다. 일본 할리데이비슨 관계자는 “노인을 병들고 가난한 사람으로만 보면 안된다”며 “모터사이클을 타는 활동적 노인들이 생각보다 많다”고 말했다.

 실버 서비스 박람회 3층에는 세계 2위의 자동차 메이커인 도요타가 3층 박람회장의 거의 절반을 차지한 채 다기능 최첨단 실버 차량인 ‘웰캡(Welcab)’ 시리즈를 선보이고 있었다. 웰캡은 ‘Welfare’(복지), ‘Welcome’(환영)의 ‘Wel’과 ‘Cabin’(객실)의 ‘Cab’을 합성한 것으로 노인 및 장애인을 위한 자동차다. 도요타의 승합차인 에스티마(Estima)는 조수석 뒤 승객석의 의자가 차내에서 차 바깥쪽을 향해 45도 회전한 뒤 차 바깥으로 완전하게 내려앉는 장치를 과시하고 있었다. 필자도 차내에서 앉은 채로 차 바깥으로 내리는 것을 체험해 봤는데, 5초 정도의 시간에 부드럽게 차 바깥으로 내려앉을 수 있었다. 가격은 278만엔으로 한화로 2500만원 정도였다. 우리나라의 비슷한 차량은 좌석이 차 바깥으로 내려오지 않고, 차내에서 약간 움직이는 정도인 경우가 많다.

 도요타의 또다른 ‘웰캡’ 중 눈길을 끈 것은 승합차 ‘펀카고(Fun Cargo)’의 휠체어 싣는 방법이었다. 미군들이 많이 쓰는 상륙용 장갑차 LVT처럼 승합차의 뒷문이 완전히 열린 뒤 경사각이 8도인 디딤판이 설치되고 그 디딤판을 따라 휠체어가 올라가게 된다. 경사각 8도는 땅에 섰을 때 사람 다리의 복숭아뼈 조금 위쪽 정도밖에 되지 않는 아주 완만한 기울기다. 이같은 기울기 덕분에 휠체어를 쉽게 실을 수 있는데, 그 비결은 차내 유압 장치에 의해 차체 뒷부분이 주저앉기 때문이다. 육안으로 봤을 때도 앞바퀴의 차체 높이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차체 뒷부분이 내려앉는다. 도요타자동차 관계자는 “‘웰캡’시리즈는 승합차뿐 아니라 일반 승용차(세단)도 있다”며 “일반 승용차는 운전석이 에스티마의 조수석 뒷자리처럼 차 바깥으로 완전히 빠져나와 내려앉게 된다”고 설명했다.

 도요타 부스 옆에 자리잡은 혼다는 ‘타운 워커’란 스쿠터 스타일의 300만원짜리 노인용 이동 차량을 내놓았다. 최고 시속 6km의 이 차는 운전면허가 필요 없고, 편리한 전후진 스위치, 깔끔한 디자인 등 노인들이 안전하고도 쉽게 몰고 다닐 수 있도록 설계했다. 혼다는 박람회 참관자들을 위해 전시 차량 앞쪽에 대형 평면 TV를 설치, ‘타운 워커’를 운행하는 시뮬레이션(모의실험)을 스크린을 통해 볼 수 있도록 하는 자상함도 선보였다.

 몰텐(Molten)의 노인 욕창 방지 침대는 노인 케어의 전통과 노하우가 우리나라와는 어떻게 다른 서비스를 가능케 하는지를 보여주고 있었다.

 욕창 방지 침대는 공기가 채워진 에어 매트리스를 쓰는데, 우리나라에선 습기 방지를 위해 에어 매트리스에서 미세하게 공기가 빠져나오도록(에어 샤워)하고 있다. 이런 에어 샤워 매트리스는 우리나라에서 고가에 팔린다.  그런데 몰텐의 에어 매트리스에는 이상하게도 에어 샤워 기능이 없었다. 그 이유를 물어봤다. 매트리스에 정당한 습도가 있는 게 좋다는 의학자들의 권유에 따라 에어 샤워 기능을 없애는 대신, 제습 기능을 넣어서 만들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보다 한 발 앞선 기술이라고 할 수 있다.

 몰텐의 에어 매트리스는 또 상하 10cm 정도 높낮이 조절이 가능하도록 설계돼 있고, 누운 채 상반신이 올라올 수 있을 뿐 아니라 침대 좌측과 우측 부분이 경사지게 돼 있었다. 좌우측 경사는 욕창 방지를 위해 몸을 돌릴 수 있도록 하려는 것이다. 가격은 침대가 약 200만원, 에어 메트리스가 약 250만원이었다. 



 작은 소품에도 노인 배려

 실버 소품 중에서도 눈길을 끄는 것들이 많았다. 플레이 케어사 제품은 말 그대로 놀면서(play), 보살피는(care) 개념을 도입한 것이었다. 예를 들면 30개의 장기알 크기 플라스틱 원형 기구를 30초 이내에 1~30까지 숫자가 매겨진 격자 판에 위치시키는 놀이 기구가 있었다. 노인들의 집중력과 손 근육의 유연성을 유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면서도 재미가 있었다. 올해로 만 40세가 된 필자가 그 놀이를 해봤는데, 36초가 걸렸다. 쉽지 않았는데, 노인들의 성취욕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 것 같았다. 플레이케어의 CEO 요이치 가와사키씨는 “즐기면서 신체적, 정신적 능력을 향상시키는 게 매우 중요하다”며 “작은 소품 하나에도 플레이 케어 컨셉트가 들어 있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플레이케어 제품 중에는 숫자 감각을 유지시키는 전자계산기가 있었는데, 예를 들어 ‘3+5’라고 치면 일반 전자계산기와는 달리 물음표(?)가 뜨도록 돼 있었다. 일본 사람들의 아이디어와 세심함이 느껴지는 제품이었다.

 눈에 확 들어왔던 소품으로는 ‘채플린’(미국의 전설적 배우 겸 감독인 찰리 채플린에서 따온 상품명)이란 지팡이가 있었다. 이 지팡이는 우선 색상이 다채로웠다. 우리나라의 지팡이가 대부분 어두운 색깔인 것을 고려하면 너무 화려하다 싶을 정도였다. 손잡이 부분은 보라색, 핑크색, 옥색, 청색 등으로 다양했고 지팡이 대는 꽃무늬 스타일로 알록달록했다. 또다른 특징은 5단으로 접을 수 있는 지팡이도 있다는 것이었다. 5단으로 완전히 접어 휴대용 주머니에 집어넣어 다닐 수 있도록 했는데, 5단으로 접히면 손바닥 길이를 조금 넘는 정도였다. 5단 지팡이의 가격은 10만원 정도다.

 노인을 배려한 음식도 빼놓을 수 없다. 독거 노인용 도시락 제조 배달 업체인 타이헤이사는 독거 노인 또는 노인 부부를 대상으로 하는 깔끔하고 다종다양한 도시락 세트를 선보였다. 아침·점심·저녁 등 메뉴의 끼니도 정해져 있고, 칼로리도 표시돼 있었다. 도시락 1개를 시켜도 배달해 준다.

박람회에는 민간 기업들만 참여한 게 아니었다. 우리나라의 서울특별시에 해당하는 도쿄도도 박람회장에 넓은 부스를 마련, 박람회 품격을 높이고 있었다. 특히 도쿄도에 노인종합연구소가 설치돼 있으며, 연구소 활동을 박람회장에서 전시하고 있었다. 신선한 충격이었다. 우리나라에는 중앙 정부 차원에서도 노인종합연구소가 없는데 일본은 지방정부가 그런 연구소를 두고 있다니! 

 이밖에 박람회 4층 전시장 입구에 자리잡은 마이니치신문사도 눈길을 끌었다. 일본의 유력 신문사인 마이니치는 <마이니치 라이프> 등 노인 관련 잡지를 홍보하면서 관련 서적을 판매하고 있었다. 노인 문제에 대한 일본 언론의 관심은 마이니치신문이 1993년부터 일본 치매협회와 함께 치매 노인 관련 조사와 세미나 등을 공동 주최하는 것에서도 잘 알 수 있었다.

일본 실버 서비스 박람회를 둘러보고 나서 일본과 일본의 노인 서비스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우고, 또 생각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도 복지 차원의 실버 서비스뿐 아니라 민간 차원의 실버 서비스가 보다 활성화돼 노인들에게 다양한 혜택을 줄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