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가 ‘홍가포르’(홍콩과 싱가포르의 합성어)가 될 수 있을까. 제주도는 지난 2002년부터 ‘10년 대계’로 ‘제주국제자유도시’로의 변신을 추진 중이다. 2011년 1차 완성될 제주의 청사진은 국제적인 ‘관광+교육+의료+첨단산업 중심지’로 탈바꿈하겠다는 것. 진철훈(51)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 이사장을 만나 제주의 변화상을 들어봤다.
 울시 공무원 재직 때 ‘협상의 명수’로 통했던 진철훈 이사장. 듬직한 체구에 귀가 유난히 커 보이는 그는 상대의 말을 끝까지 경청하는 스타일이다. 한 가지 질문에도 줄줄이 답변하는 그를 보니 공직자 출신이라기보다는 ‘브리핑’에 능한 민간기업 CEO 같다는 느낌이 더 강했다.

  국내 공공기관 이전 1호로 지난 4월 서울 역삼동서 제주시 노형동으로 본사를 옮긴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 이곳에서 만난 진 이사장은 입술이 부르터 있었다. 제주 개발에 있어 가장 중차대한 문제인 부지 확보를 위해 지주들을 설득하느라 하루가 멀다 하고 소주잔을 기울인 탓이다. ‘삼촌, 소주 한잔 합서(하시죠)’라는 말이 아예 입에 뱄을 정도다.

 제주국제자유도시 개발사업은 2002년 4월 제정된 ‘제주국제자유도시특별법’에 따른 국책 사업. 2011년까지 제주도를 국제자유도시로 바꾸겠다는 프로젝트다. 민자 2조4531억원을 포함, 총 투자액이 3조2412억원이나 된다.

 이 개발사업에서 광역단체 제주도가 헤드쿼터 역할을 한다면 건설교통부 산하기관인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는 발로 뛰는 사무국 역할을 맡은 셈이다. 센터가 추진 중인 5대 선도 사업은 ◇제주첨단과학기술단지 조성 ◇휴양형 주거단지 조성 ◇신화 역사공원 조성 ◇서귀포 관광미항 개발 ◇쇼핑 아울렛 개발 등이다.

 이를 위해 지난 3월 서울시 주택국장 출신인 진 이사장이 3대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서울 월드컵 주경기장 건설단장(1998년)으로 토지 수용 경력이 풍부한 그가 ‘구원투수’로 투입된 셈이다.



 서울월드컵경기장 상암동 확정 주역

 서울서 갑자기 내려와 가족과 떨어져 관사에서 혼자 지내고 있지만 진 이사장의 표정은 밝기만 했다. 지지부진했던 부지 확보율이 평균 70%까지 치솟았기 때문이다. 그의 부임 이후 제주개발이 탄력을 받고 있다는 게 안팎의 평가다.

 일단 전임 이사장들과 달리 그는 제주도 출신이다. 부지 확보가 사업의 관건임을 파악한 그는 3월9일 취임식 당시 개발에 반대하는 주민 대표들을 초청하는 ‘카드’를 뽑았다. 장관의 축하 메시지보다 반대파 의견에 먼저 귀를 기울이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에서다. 결국 피켓 시위라도 할까봐 만류하던 주변을 물리치고 지주들을 초청, 신뢰를 키웠다는 후문이다.

 이 같은 발상의 전환이 한순간에 나온 건 아니다. 지난 1997년 11월 서울월드컵경기장 부지 선정 당시에도 그는 동대문운동장과 뚝섬, 보라매공원 등 10개 후보지 중 꼴찌였던 상암동 난지도를 고집했다. 난지도가 개발돼야 서울시 전체가 발전한다는 판단에서다. 이후 난지도 주민 150여 가구를 원만하게 이주시킨 경험이 제주개발 사업에서도 원동력이 되고 있는 셈이다.

 진 이사장은 “일단 지역민과 공감대를 갖는 게 최우선 순위”라며 ‘지역밀착 경영’을 강조했다. 부지 확보에 있어 최대 관건은 더 높은 값을 받으려는 지주들과 공공기관 특성상 감정가 이상으로 보상을 못 해주는 센터 사이에 합의점을 찾는 일.

 정부의 보상규정을 따르되 최대한 ‘보너스’를 챙겨주자는 게 그의 대안이다. 가령 서귀포 휴양형 주거단지에서는 지주 자녀 취업 시 혜택을 주고, 제주시 첨단과학기술단지에서는 택지분양 때 주민들에 70평씩 우선 분양권을 주는 혜택 등이 그것이다. 특히 국책사업으로는 최초로 토지보상금을 초기에 일괄 지급하는 방식까지 제시했다. 보통 계약금과 중도금, 잔금으로 나눠주던 기존 방식을 버려 ‘선이자’가 발생하도록 배려한 셈이다.



 미국 파라마운트사 투자 가시화

 이 같은 노력 덕분인지 실제 취임 5개월이 지난 8월 현재 제주개발 사업은 눈에 띄게 가속도가 붙고 있다. 20~30%에 불과하던 부지 확보율이 첨단과학기술단지는 85%, 휴양형 주거단지에서는 54%, 신화 역사공원에서는 66%(주민 동의율 기준)까지 높아진 것이다.

 특히 제주시 33만평 부지에 건설되는 첨단과학기술단지는 지난 6월11일 기공식을 가지는 성과를 거뒀다. 98년 제주월드컵경기장 기공식 후 제주도에선 7년 만의 대규모 공사건이다.

 그는 “내년말 단지 조성사업이 완료되면 다음커뮤니케이션, EMLSI 등 61개 업체가 2007년부터 시설물 공사에 들어간다”며 “입주 업체엔 취득세와 등록세 면제는 물론 재산세를 5년간 50%까지 감면해준다”는 ‘홍보성 멘트’도 잊지 않았다.

 부지 확보와 함께 또 다른 그의 고민은 3조2000억원에 달하는 재원을 확보하는 일이다. 공공부문 7900억원을 제외한 2조4000억원을 외자로 유치할 계획인데, 현재 미국 GHL사와 홍콩 AL사 등 총 7개 투자사와 38억달러 규모의 투자의향서(LOI)와 투자양해각서(MOU)를 체결한 상태다. 투자의향서가 그대로 진행된다면 4조원 가까운 외자를 유치, 큰 문제가 없지만 LOI와 MOU는 어디까지나 의향서 정도이지 정식으로 계약을 한 단계는 아니다.

 현재 확실해 보이는 건 미국 파라마운트사의 에이전트로 알려진 GHL사의 10억달러 투자 정도다. 진 이사장은 “빠르면 9월내 계약서에 사인할 수 있다”고 귀띔했다. 파라마운트와의 계약이 불발로 돌아갈 경우엔 미국 MGM사와 유니버셜 스튜디오도 후순위로 물밑 작업이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남제주군 지역에 124만평 규모로 개발되는 신화 역사공원은 크게 3가지 테마파크로 개발을 구상 중이다. 첫째 제주와 한국, 세계의 ‘신화 역사’ 테마파크, 파라마운트가 추진 중인 ‘엔터테인먼트 중심 영상 테마파크, 홍콩 AL(아시아랜드)사의 세계 음식문화 타운 등이다.

 일반인의 관심이 집중되는 대목은 서귀포 일대 22만평 규모로 개발되는 휴양형 주거단지 조성. 이곳에는 호텔과 콘도, 아파트 단지가 들어설 계획이다. 이와 함께 제주도는 현재 미국 조지워싱턴대 한국 분교 설립, 중국 하남성 한방병원의 분원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진 이사장이 밝힌 ‘관광과 교육, 의료, 첨단산업이 꽃피는 제주도 건설’이란 청사진 그대로다.



 2011년 제주 관광객 연 1000만명 목표

 그는 “현재 55만명인 인구를 2011년엔 62만명으로 늘리는 게 목표”라고 말한다. 제주도 개발이 시작된 2002년 제주지역 총생산은 4조8500억원. 1인당 GDP가 8800달러로 전국 평균을 밑돈다. 이것을 2011년엔 13조2300억원으로 늘리겠다는 것이다.  그는 “1인당 도민 소득을 1만달러에서 2만달러로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제주도 관광객도 연간 496만명에서 1000만명으로 늘리겠다는 게 그의 꿈이다.

 현재 정부 차원에서도 제주국제자유도시 개발에 대한 관심이 높다. 국회에선 ‘제주특별자치도에 관한 특별법’이 연내 입법돼 내년 7월1일부터 시행될 예정이라는 게 센터측 설명이다. 실제로 7월25일 이해찬 국무총리는 총리실 산하 제주특별자치도 추진기획단 현판식에서 “제주특별자치도는 헌법을 제외하고는 완전한 자치권을 갖는 획기적인 지역으로 만드는 것”이라며 “하와이를 하나 만드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1978년 기술고시(14회) 합격 후 서울시 공무원으로 일해온 진철훈 이사장. 노무현 대통령과는 지난 1990년 서울시청내 서울재개발 주무 과장 때, ‘부산 개발’을 의뢰해온 당시 노무현 국회의원과 2시간 독대한 인연이 있다. 지난해 2월 서울시 공무원이 뽑은 ‘가장 일 잘하는 간부’로 선정되기도 했던 그가 고향 제주도에서 ‘큰일’을 해낼지 많은 이들이 지켜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