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은 두 부류로 나뉜다. ‘이직파’와 ‘붙박이파’. 현재 갈림길에 선 직장인들도 많다. 먼저 ‘액션’에 들어간 그들의 선택 이유와 연봉 변화, 만족도 등을 추적해 봤다. 반면 ‘잔류파’들도 없지 않다. 무조건 떠나는 게 능사는 아니라고 믿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현직에서 어떻게 경력관리를 하고 있을까?
 사례 1 서울 생활 접고 지방행

 “몸값 같지만 지방선 ‘고액’연봉자죠”



 남들이 ‘서울로, 서울로…’를 외칠 때 홀연히 ‘지방행’을 택하는 젊은이들도 많다. 서울 대기업에서 일하다 2004년 7월 KTX를 타고 대전에 안착한 황성호씨(33)가 그런 케이스. 지방 생활 반년이 지난 현재 그는 자신의 선택에 대해 “B+ 학점은 줄 수 있다”고 말한다.

 그가 취업 전선에 나선 때는 IMF(국제통화기금) 쇼크로 취업문이 얼어붙었던 1997년 말. 당시 대학 ‘사(死)학년’으로 불리던 그때 지방대 출신(충남대)이란 핸디캡을 딛고 코오롱그룹 공채에 합격했다.

 첫 회사인 코오롱글로텍에서 직장을 옮긴 때는 취업 후 2년 만인 지난 2000년 1월. 한솔텔레컴으로 말을 바꿔 탔다. 섬유에서 IT(정보기술)로 업종 변경을 한 셈이다. 연봉이 껑충 뛰었다. 신입 때 1600만원에서 2400만원으로 30% 이상 늘어난 것.



 물가 따져보면 ‘플러스’ 게임

 황씨의 세 번째 직장은 대전에 본사를 둔 한국인포데이타다. 114 전화번호 안내로 잘 알려진 KT 자회사다. 그는 사실 “지방행 열차를 탈 때 어금니를 꽉 물었다”고 말한다. 남들은 서울로 못 가 안달인데 제 발로 낙향했기 때문이다.

 지방행이 경력 관리 면에서 ‘마이너스’란 걸 모를 리 만무했다. 고향이 대전이란 건 위안이 되지 못했다. 그의 결단 이유는 간단하다. ‘웰빙’하며 살겠다는 것이다. 빠듯하게 사느니 여유 있게 살겠다는 선택에서다.

 특히 미혼인 그로선 서울의 높은 집값과 생활비가 큰 부담이었다. 말하자면 미래를 위해 한 살이라도 젊었을 때 결단을 하자는 현실적 고려가 판단 잣대가 된 셈이다.

 2004년 7월 인포데이타로 옮길 때 연봉은 3600만원. 한솔텔레컴 대리 때와 몸값이 비슷하다. 다만 직급이 과장으로 올라갔다. 그는 “월급만 따진다면 수평 이동이지만 체감 생활비는 서울의 60% 수준”이라며 “지방에선 33살 나이에 고액 연봉자”라며 웃는다.

 서울에서 쌓은 7년 직장 경력에 비하면 3곳의 회사 경험은 변동이 많은 편이다. 그 때문에 스스로 “더 이상 전직은 고려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반면 코오롱글로텍 시절부터 현재까지 줄곧 ‘인사’ 업무만 맡아온 게 그의 경력 관리 자부심이다.

 그래도 아쉬움이 남는 건 어쩔 수 없다. 특히 서울에서 쌓은 인적 네트워크가 아깝다. 월 1회씩 있는 인사담당자 모임에 참석하려고 노력은 하지만 아직 마음뿐이다. 취미인 야구와 연극 관람은 아쉽지만 참을 수 있다. 황성호 과장은 “하지만 취업이 안 되기 때문에 지방문을 두드리는 건 무모하다”며 “인생 시계에 비춰 미래를 보고 판단할 문제”라고 조언한다.

 선택 후 결과

 몸값 3600만원(변동 없음)

 이유 서울에선 중하층, 지방에선 중산층

 좋은점 생활비 지출이 적다

 아쉬운 점 커리어 관리에선 마이너스

 만족도 B+(이직 7개월)



 사례 2 해외에서 살 길 찾다

 “직급은‘과장’

 삶의 질은‘사장’이죠”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인근 버카시(BEKASI) 공단 내 니트 공장인 위너스인터내셔널. 이곳은 세아상역이 2004년 11월 인수해 가동 중인 현지 법인이다.

 현지 인력 1000여명에 한국인은 달랑 4명이 파견된 이곳에서 근무하는 김재훈 과장(36). 그는 2004년 11월 입사, 나이로 보나 경력으로 보나 모두 막내다. 그런데도 생활하는 데 전혀 낯설어 하지 않는다. 알고 보니 그의 인니 생활 경력은 벌써 6년이 넘는다.



유모, 가정부, 기사 둬도 월 50만원 안 돼

 “주말이면 골프장에 나가죠. 한국처럼 부킹이 어렵지도 않고 밀려서 칠 필요도 없어요. 캐디피까지 합쳐 5만원도 안 되죠. 큰 아이(7세)는 외국인 유치원에 보내고요. 아내는 가정부(월 9만원)가 있어 집안일에서 자유롭죠. 처음 올 때만 해도 입이 나왔는데 이젠 한국에 가기 싫어할 것 같습니다. 하하.”

 김 과장은 현지 생활에 대단히 만족해한다. 한국과 비교하면 자신이 누리는 이런 생활이 “거의 대기업 임원급 아니겠느냐”며 반문한다. 그의 연봉은 미화 5만 달러 수준. 4차례 전직하면서 매번 10~20%까지 연봉을 높여온 그다. 얼핏 봐선 그렇게 많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그에겐 차량과 주택이 제공된다. 집은 33평형 아파트다. 월세를 회사가 대신 내준다. 출퇴근 차량은 도요타 1800CC급 기장(Kijang). 휴가는 1년에 12일로 한국까지 항공료와 함께 휴가 보조비가 지급된다. 2005년에도 8월께 한국 방문 계획을 잡고 있다.

 회사에서 갑근세 등 세금을 대납해 줘 연봉 5500만원은 실수령액 기준이다. 이렇게 보면 한국 11년차 과장 월급에 비하면 1.5배를 훌쩍 넘는다. 반면 물가가 워낙 싸 ‘상류층’ 생활도 가능한 셈이다.

 김 과장 식구의 월 생활비 항목을 보면 가정부(9만원), 운전기사(14만원), 유모(10만원), 큰아이 국제 유치원비(35만원), 생활비(100만원), 기타(100만원) 총 260여만원 정도 들어간다. 월 450만원 수입 중 대략 180만~200만원은 저축이 가능한 구조다. 한국에선 아이 둘 키워 가며 남자 혼자 벌어선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가계부인 셈.

 그는 “굳이 불편한 점을 못 느낀다”고 말한다. 한국병원, 한국슈퍼마켓, 한국식당, 한국학교들이 많이 진출해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도 인도네시아 생활 초기엔 고생이 많았다.

 “96년엔 현지인도 고개를 절절 흔드는 오지인 이리안자야 지역에서 근무했죠. 총 가구가 3가구이고 온통 황무지였죠. 불도 안 들어오는 늪지대에서 1년간 생활도 해 봤습니다. 당시 합판공장을 지으려고 선발대로 들어간 경력이 지금은 오히려 많은 도움이 됩니다.”

 1994년 부산외대 졸업 후 필리핀에 어학 연수 6개월을 갖다온 게 동남아에 대한 관심을 갖게 한 계기다. 귀국 후 94년 말 첫 입사한 곳이 인도네시아 진출 회사인 코데코그룹(한국남방개발). 코데코는 산림 개발, 농장, 컨테이너 제조, 유전 개발 등을 하는 인도네시아 외국인투자법인 1호(69년 진출) 회사다.

 97년 초 대우통신으로 이직, 약 4년간 인천에서 생활을 한 후 또 다시 코데코그룹에 재입사했다. 대우통신 재직 시엔 2년을 투자, 헬싱키경영경제대학원 MBA를 취득해 몸값을 올려놓을 기초 공사도 튼튼히 했다. 이후 역시 한국 현지 회사인 스타윈그룹(2003년 4월)으로 옮겼고, 2004년 10월 세아상역 현지 회사인 위너스인터내셔널로 전직했다.



 언어장벽 없어야

 회사를 4차례 옮겨갔지만 그는 나름대로 경력 관리를 잘했다. 줄곧 경리와 기획 관리 파트에서 경험을 키워 왔기 때문이다. 김 과장은 “보통 한국에선 미국과 호주, 캐나다, 유럽 등 선진국 근무를 선호하지만 그쪽에 가면 거의 ‘중하층’ 이하 생활을 한다”며 “뭘 모르고 하는 얘기”라고 지적한다. 그는 “국제 학교에 다니면 자녀의 영어 교육도 확실하다”며 “당분간 귀국할 계획은 세우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국내 취업이 어려워지자 해외 취업으로 방향을 돌리는 취업 재수생들이 늘고 있다. 그러나 국내 취업이 어려워서 하는 도피성 해외 취업은 곤란하다는 게 헤드헌터들의 지적이다.

 선택 후 결과

 몸값 미화 5만달러(한국 1.5배)

 이유 직장 이름보다는 웰빙

 좋은점 상류층 생활

 나쁜점 아직 없음

 만족도 A(이직 3개월)



사례 3 몸값 내려서라도 옮긴다

 "월급 몇 푼에 ‘비전’을

팔아먹을 순 없지요”



 회사를 옮긴다 하면 보통 연봉 20% 정도는 올려 받는 게 헤드헌팅 시장의 기본 룰이다. 특히 30대 초중반 대리·과장급일 경우 대부분 그렇다.

 그러나 임원, CEO급으로 갈수록 얘기는 달라진다. 몸값 얼마보다는 비전이 우선시된다. 최근엔 이런 트렌드가 점차 과·차장급 젊은 층으로까지 확산되는 추세다. 김경수 엔터웨이 상무는 “향후 5년 뒤, 10년 뒤 비전과 함께 경력 관리 차원에서 자기 전문성을 키우려는 젊은 층 수요가 늘어났다”며 “이들에겐 연봉은 큰 걸림돌이 되지 않고 있다”고 말한다. 5년 전만 해도 눈높이를 낮춰 간다는 건 고려도 되지 않았던 것에 비추면 뉴 트렌드다.



 당장 몸값보다는 미래가 중요

 지난 2003년 말 외국계 카드사 기획팀장에서 외국계 컨설팅회사로 자리를 옮긴 장기영씨(37·가명)가 그런 케이스. 미국 USC대학 MBA 취득 후 국내 대기업 A전자가 현지에서 이주비 600만원까지 줘가며 뽑아온 장씨의 업무는 CRM 전략 파트. 1년여간 근무 후 세계 빅5 컨설팅펌으로 꼽히는 E사 컨설턴트로 자리를 옮긴 그는 외국계 카드사로 전직하며 몸값을 9000만원까지 높였다. 현재 외국계 컨설팅회사로 다시 U턴한 그의 현재 연봉은 전 직장 대비 1000만원이 깎인 8000만원 수준.

 장씨는 “훈련하면 누구나 가능한 업무를 하면서 스스로 퇴보하는 느낌이 들었다”며 퇴직 사유를 말한다. 그는 “개인 발전을 위해 컨설팅펌이 천직인 것 같다”며 “더 바쁘고 시간에 쫓기지만 옮기길 잘했다”고 만족해한다.

 공인 회계사 출신으로 명문 대학, 대학원을 나온 김정희씨(38·가명)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부동산 재벌인 S사에서 잘 나가는 상무로 재직했다. 사내 CFO를 맡으며 나이에 비해 많은 연봉 1억5000만원대를 받던 김씨의 현 직장은 20대 그룹사.

 직급은 부장으로 하향 조정됐고 몸값은 절반이 깎인 8000만원에 불과했다. 이유를 묻자 그는 “큰 기업에서 체계적 조직 관리를 배우고 싶었다”고 짧게 말한다. 성장 가능성과 안정성을 모두 따져본 결과 단기적 억대 연봉보다는 경험을 키우는 게 보다 유리할 것이란 판단을 했다. 30대 후반 나이에 부장 경력을 거쳐 40대 초반 임원, 40대 중반 CEO로 점프하겠다는 게 그의 목표다.



 직급 높을수록 좁은 문

 비전 때문에 옮긴 케이스들도 많다. 당장 월급보다는 장래성을 보고 움직인 경우다. 대개는 임원급 이상이 많다. 특히 여기엔 최근 불황 탓에 움직일 공간이 좁아졌다는 현실성도 반영돼 있다.

 외국계 유명 IT 기업인 I사와 S사에서 1억3000만~1억5000만원대 연봉을 받던 이순식씨(42·가명).  그는 현재 30대 그룹사 인적자산 전문가로 영입됐다. 직급은 부장. 연봉은 7000만원 수준이다.

 이씨는 “솔직히 연봉차가 커 고민도 많았다”며 “지금까지는 다른 회사를 컨설팅해 왔는데 이젠 직접 내 회사에 보탬이 되는 컨설팅 경험을 쌓고 싶어 옮겼다”고 말한다. 그가 줄곧 인사(HR) 파트에서 잔뼈를 키워온 전문성이 높이 평가받은 셈이다. 특히 인사업무 담당자 중 드물게 영어가 가능하다는 게 희소성을 높여준 비결이다. 안 그랬다면 적지 않게 실업자 노릇도 감내해야만 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외국계 IT 기업 CEO에서 국내 IT 기업 CEO로 직급 수평 이동을 한 김정우씨(48·가명)도 월급봉투 두께보다는 커리어를 쌓겠다는 생각에서 1억5000만원 연봉에서 8000만원 연봉을 받아들인 케이스. 김 사장은 “20대 취업과 30대 재취업도 쉽지 않지만 CEO 자리는 더 바늘구멍과 같다”며 “다양한 커리어 관리 속에 더 멋진 자리로 옮겨가는 중간 다리로 생각한다”고 말한다. 현재보다는 미래에 더 큰 그림을 그리기 위해선 한 발 후퇴도 전략이라는 생각에서다.

 불황 그림자가 짙어가는 가운데 미래를 보고 몸값을 낮춰 회사를 옮기는 것도 경력 관리의 한 유형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선택 후 결과

 몸값 최소 10%에서 최대 절반 삭감

 직급 수평 이동이 대부분

 이유 비전, 전문성 확보

 공통점 “이 회사가 끝이 아니다”

 만족도 B



 사례 4 한 회사서 승부 건다

 “남들 고액 배 아파도

 ‘특진’하며 잘 나가죠”



 한곳에서 3~5년만 근무해도 고참에 들어간다는 IT업종 중 유독 이직이 잦은 SI(시스템 통합) 업계. 10년 근속상을 받는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인 이곳에도 ‘잔류파’들이 없지 않다.

 박사 학위(연세대 컴퓨터과학) 취득 후인 1997년 초 대우정보시스템에 입사한 백종현 대우정보시스템 팀장(38). 그는 대학원 시절 지도교수가 창업한 문자인식 벤처기업 ‘알텍’ 연구원 생활을 빼면 줄 곧 대우정보시스템에서 경험을 쌓아온 인물.

 “굳이 철새족처럼 떠돌아다닐 필요 있나요. 직장보다는 직업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기술 전문가로 계속 남을 겁니다.”

 그에게도 적잖이 유혹이 많았다. 1999년, 2000년엔 억대 연봉을 제시한 CEO 영입 제의도 마다했다. 그는 “안 가길 정말 잘했다”고 말한다. 1~2년 단명으로 끝난 게 수두룩하기 때문이다.

 헤드헌터가 볼 때도 그는 입맛이 당기는 경력이다. 박사 학위에 장기 근속자이며 회사에서도 인정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38살 나이에 부장이다. 보통 사내의 42~43세 부장에 비하면 4~5년 빠르다. 두 번씩 특진을 거듭한 덕분이다. 과장에서 차장 진급 때 한 번, 또 다시 부장 진급 시 남들보다 1~2년씩 앞당겨 진급했다.



 공모전 수상 통해 이름값 높여

 지금은 기술연구소 내 드물게 정보기술연구팀과 컨설팅서비스팀 등 2개 팀을 관장한다. 부하 직원만 36명이다. 보통 1년에 3~4명씩은 멤버가 바뀌는 현실에 비추면 그는 ‘돌부처’ 팀장인 셈이다.

“이젠 대우그룹 그늘에서 벗어났지만 여전히 조직보다는 개인이 드러나는 문화는 남아 있죠. 회사도 SI업계 랭킹 6위로 탄탄합니다. 회사 내 입지도 괜찮고요.(쑥스럽네요)”

 그는 목표가 분명하다. 2006년엔 CTO(기술담당 최고임원)가 되겠다는 것. 우리 나이로 40에 매출액 3000억원대 CTO면 나쁘지 않은 이력이다.

 백 팀장은 자기 관리에도 신경을 바짝 쓴다. 그는 대외 활동을 통해 이름값을 높여 왔다. 자신의 내공을 키우는 전략인 셈이다. 현재 사내 직책 외 한국전산원 웹기술전문가협의회, 웹코리아포럼, 한국전자상거래통합포럼 등에서 전문위원을 맡고 있다.

 특히 공모전에 응모해 벌써 3차례 수상 경력도 있다. 입사 이듬해인 98년 제1회 객체지향 소프트웨어 공모전에서 은상을 비롯, 한국전산원이 주관한 제1회 웹 서비스 시나리오 공모전에서 우수상(2003년,2004년)을 잇달아 수상했다.

 그는 후배들에게도 “가만히 있지 말고 뭔가를 하라”고 조언한다. 일단 그의 원칙은 “공부를 많이 하라”다. IT 특성상 ‘3개월을 1년으로 보자’는 좌우명을 갖고 있다. 워낙 변화가 빠르기 때문이다. 정보에 뒤져선 살아남을 수 없다. 이 때문에 경영 서적도 틈틈이 읽는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좋은 기업에서 위대한 기업으로) 같은 책이 최근 읽는 책이다.

특히 CTO → CEO식으로 목표가 분명하다. 이를 위해 무엇보다 리더십을 쌓는 걸 스스로 훈련한다. 좋은 사람을 곁에 많이 두는 게 그의 리더십 평가 잣대다. 성실한 것도 그의 경력 관리 비법이다. 용인 집에서 종로까지 출퇴근하는데 아침 6시30분이면 무조건 집을 나선다. 또 정해진 퇴근시간이 없다. 저녁 9시 뉴스를 집에서 볼 때가 거의 드물다.

 “부하 직원들이 괴롭겠다”고 농담 반 진담 반의 말을 건네자 “앞으론 ‘똑게’(똑똑하고 게으른 상사)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멍부’(멍청하고 부지런한 상사)보단 낫지만 ‘똑부’(똑똑하고 부지런한 상사)는 후배들에게 피곤한 스타일이라는 판단에서다. 백 팀장은 “기회는 많다. 자신의 가치를 시장에서 인정할 만큼 높여 놓는 게 최우선”이라고 강조했다.

 그냥 한 회사에서 오래 버티는 게 아니라 자기만의 컬러와 능력을 갖추고 롱런해야 헤드헌터의 입질이 찾아오는 셈이다.

 선택 후 결과

 몸값 비밀

 이유 이 회사에서 성장할 수 있는데 굳이…

 좋은점 의사소통이 쉽다

 나쁜점 가파른 연봉 상승이 어렵다

 만족도 B+

 목표 2년 뒤 CTO



 사례 5 때를 보며 현직서 최선

 “퇴근 후 인맥 관리·

 동호회 더 바빠요”



 서울 역삼동에 있는 스타타워 6층에 있는 단체급식 1위 아워홈 마케팅팀에 근무하는 지은정씨(29). 그녀는 퇴근 후에도 바쁘다. 결혼할 ‘남친’도 봐야 하고 미래 준비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녀의 미래 준비는 휴먼 네트워크를 강화하는 일. 현재 삼성경제연구소(Seri) 내 ‘마전회’(마케팅전략연구회) 총무를 맡고 있다. 정모(정례 모임)는 월 1회뿐이지만 단순 ‘관객’이 아니라 공부를 해야 실력이 늘기 때문이다. 강사는 주로 동종업계 최소 7년 이상 전문가들이다.

 지씨는 “최근 이슈화된 민감 사안을 팍팍 건드려 줘 직장 내 업무에도 큰 도움을 받고 있다”고 말한다. 특히 업계 내 정보 교류를 하다 보면 기획서 쓸 때도 적잖게 힌트를 얻는다는 게 지씨의 경험담이다. 회원 수는 수백명에 달하지만 꼬박꼬박 참석하는 열성파는 20~30명 수준이다.



 식품 브랜드매니저 목표 뚜렷

 요즘엔 정보 교류차 만든 커뮤니티가 전직의 직접적 경로로 발전되기도 한다. 실제 마전회 회장으로 있는 다음커뮤니케이션 박현준씨가 주인공. 그는 얼마 전 초빙 강사로 모신 브랜드퍼블릭 대표의 눈에 띄어 이 회사 브랜드퍼블릭 마케팅 차장으로 영전해 가기도 했다.

 지씨는 이와 함께 동종업계인 푸드서비스(FS) 마케팅 모임에도 적극적이다. 삼성에버랜드, 신세계, CJ 등의 마케팅 담당 실무자들이 모이는 만남이다. 마전회와 달리 인간적 교류가 목적인 순수 모임이다. 지씨는 지난 여름엔 6개월 코스로 주 2회씩 퇴근 후 2시간씩 투자해 산업정책연구원(IPS)이 주관하는 ‘브랜드 중고급 과정’도 이수했다.

 그녀는 왜 바쁘게 살까. 이유를 묻자 “브랜드 매니지먼트 분야에서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라고 짧고 분명하게 답한다.

 “전 유통업이 아니라 식품 쪽, 그것도 마케팅 전문가로 비전을 잡았거든요. 대학원을 다녔던 이유도 실무와 함께 지식도 갖추기 위해서였죠.”

 그녀는 현재 연봉에도 만족한다고 했다. 당장 이직할 생각은 없고 식품 쪽 브랜드 매니저로 대성하고 싶다고 포부를 말하는 모습이 당차 보였다.

 얼마 전 한 설문 통계에서 ‘인맥도 엄연한 자산’이라는 직장인들이 많았다. 다양한 모임에 인맥을 깔아 놓는 저인망식 전략도 유효하지만, 자기 분야 핵심 인력에 네트워크를 집중 관리하는 유효타가 더 먹힌다는 사실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헤드헌터들은 “현재 자기가 몸담고 있는 분야의 인맥 관리와 함께 가급적 분야를 더 세분화시켜 전문성을 키워야 몸값이 올라간다”고 조언한다.

 선택 후 결과

 몸값 약 3000만원대

 이유 전문성을 더 키운다

 목표 식품 브랜드 매니저

 만족도 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