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10월 22일 텍사스주 휴스턴에서 중간선거에 출마하는 공화당 현직 상원 의원 테드 크루즈를 위한 지원 유세에 나섰다. 그는 이날 연설에서 카라반을 겨냥해 “민주당은 수백만 불법 체류자들이 미국 법을 어기고 우리 국경을 침범하고 미국을 뒤덮도록 부추기고 있다”고 주장했다. 사진 블룸버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10월 22일 텍사스주 휴스턴에서 중간선거에 출마하는 공화당 현직 상원 의원 테드 크루즈를 위한 지원 유세에 나섰다. 그는 이날 연설에서 카라반을 겨냥해 “민주당은 수백만 불법 체류자들이 미국 법을 어기고 우리 국경을 침범하고 미국을 뒤덮도록 부추기고 있다”고 주장했다. 사진 블룸버그

“캐버노, 카라반에 대한 선거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임박한 중간선거를 이렇게 규정했다. 중간선거가 3주도 남지 않은 10월 18일 몬태나주의 선거 지원 유세에서였다. 민주당 낙승이 예상되던 선거 판세를 뒤집기 위해 트럼프가 브렛 캐버노 대법관 인준과 카라반 행렬을 민주당 공격 카드로 쓰고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11월 6일(현지시각) 중간선거를 앞두고 의회를 차지하기 위한 공화당과 민주당의 싸움이 치열해지고 있다. 공화당 후보들이 앞서는 지역구가 예상보다 많아지면서 애초 많은 이들이 점치던 ‘블루웨이브(민주당 바람)’가 생각처럼 강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2016년 미 대선판에서 민주당 힐러리 후보의 우세 상황을 뒤집었던 ‘샤이 트럼프 현상(몰래 트럼프를 지지하는 것)’이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트럼프에 힘이 되고 있는 것은 중미의 작은 나라 온두라스에서 미국 국경을 향해 도보로 이동하는 행렬 ‘카라반’이다. 살인율과 빈곤율이 높은 자국을 떠나 미국에서 난민 지위를 획득하는 게 목표인 이들은 미국 보수층의 반(反)이민 정서를 자극하고 있다. 12일 160명 규모로 출발한 행렬은 과테말라와 멕시코 국경을 넘으며 7000명으로 늘었다. 작년부터 두 차례 정도 카라반이 형성되긴 했지만 이번처럼 대규모는 처음이다. 공교롭게도 이들은 11월 6일 중간선거 당일 즈음 미국 국경에 다다를 것으로 보인다.

캐버노도 민주당 역공 카드다. 인준이 마무리되자마자 공화당은 캐버노를 반대했던 민주당을 ‘표’로 심판하자고 유권자에게 호소하고 있다. 미치 매코널 상원의장 등 공화당 지도부는 캐버노에 반대해 상원 의회에서 시위를 벌인 여성들을 ‘성난 폭도(angry mobs)’로 규정, ‘캐버노를 기억하자’는 슬로건을 내세워 보수 유권자를 자극하고 있다.

이번 중간선거는 트럼프 정부에 대한 첫 평가다. 집권 2년 차에 치르기 때문에 현 정권을 심판하는 성격이 강해 ‘여당의 무덤’으로 불린다. ‘화가 나서 투표장에 나오지, 만족해서 나오지는 않는다’는 불문율이 있을 정도로 야당 지지자의 투표율이 높은 것도 여당이 이기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다.

하지만 의회를 장악해 정책 추진력을 얻고 다음 재선 가능성을 높이려는 트럼프와 공화당은 총력을 기울일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트럼프 측은 “유권자들이 야당에 분노해 여당 후보를 찍으러 나올 것”이라고 주장하며 막판 뒤집기를 시도하고 있다.


‘잠자던’ 트럼프 지지층 재결집 움직임

전문가들은 선거 직전 판세를 뒤집는 상황이 벌어지는 ‘옥토버 서프라이즈(선거 직전 달 10월에 벌어지는 예상 밖 사건)’에 비견되는 상황이라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서정건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셉템버(9월) 서프라이즈’는 캐버노 인준 통과, ‘옥토버 서프라이즈’는 카라반”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캐버노와 카라반 카드는 ‘샤이 트럼프’를 다시 결집시키는 효과를 낳고 있다. 본선거에 앞서 이뤄지는 사전투표 결과가 예상을 뒤엎고 공화당이 선전 중인 것이다. 24일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사전투표 결과, 경합 지역에서 공화당이 민주당을 크게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공화당이 앞선 지역은 플로리다주, 텍사스주, 인디애나주 등 7곳인 반면 민주당은 네바다주 1곳에서만 사전투표에서 앞섰다.

트럼프 지지율도 움직이고 있다. 가장 최근 진행된 월스트리트저널(WSJ)과 NBC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트럼프 지지율은 47%를 기록했다. 캐버노 지명 당시만 해도 40.6%에 머물렀지만 성추문 논란과 함께 오히려 상승세를 타기 시작했다. WSJ은 “캐버노에 대한 민주당의 맹공과 카라반 행렬은 잠들어 있던 공화당 지지자를 깨우는 역효과를 낳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민주당의 반격도 만만치 않다. 캐버노 인준 강행에 분노한 학계 엘리트와 여성계까지 반(反)트럼프 세력으로 결집하고 있다. 최근 워싱턴포스트(WP) 조사에 따르면 대학을 졸업한 백인 여성의 민주당 지지율은 65%로 공화당(35%)을 크게 앞섰다. 2년 전 힐러리에 대한 이들의 지지율과 트럼프 지지율 격차가 불과 6%포인트였던 것과 비교된다. 여기에 사상 최대 규모 선거자금까지 민주당에 힘을 싣는다. 연방선거위원회(FEC)에 따르면 9월 기준 하원 선거에 모인 돈은 민주당(6억8000만달러)이 공화당(5억4000만달러)을 크게 앞서고 있다.

민주당이 중간선거에서 승리한다고 해도 일각에서 제기되는 트럼프 탄핵이 현실화할 가능성은 작다. 상원 3분의 2 지지를 얻어야 탄핵안이 최종 통과되는데, 현재 상원 의석은 49 대 51로 공화당이 다수당이고 선거 후에도 이 구도가 유지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1998년 빌 클린턴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이 하원을 통과해 발의된 적이 있지만 상원에서 부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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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선거(midterm election)

대통령 집권 2년 차에 상·하 의원을 비롯해 주지사, 주 검찰총장 등을 뽑는 선거다. 하원 의원 435명은 2년마다 전원을 새로 뽑는다. 상원 의원 100명은 임기가 6년이지만 2년마다 3분의 1씩 교체한다. 이번 중간선거엔 하원 전석과 상원 35석이 걸려 있다.

현재는 공화당이 상·하 양원 모두에서 다수당이지만, 이번 중간선거에서 변화 가능성이 있다. 상원의 경우는 올해 임기가 끝난 민주당 의원 26명이 물갈이되는 탓에 구조적으로 민주당이 다수당 지위를 뺏는 것이 어렵다. 현재 상원에서 공화당과 민주당의 의석수는 51 대 49로 비등비등하다. 민주당은 물갈이되는 26석을 모두 지키면서 공화당의 2석을 빼앗아와야 하는 상황이다. 현역 프리미엄이 크게 작용하는 상원 의원 선거 특성상 공화당이 상원 다수당 지위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관전 포인트는 하원이다. 민주당이 과반(218석)을 차지하려면, 기존 의석(195석)을 모두 수성하고 추가로 최소 23석을 공화당으로부터 빼앗아와야 한다. 선거 예측 기관 ‘파이브서티에이트’는 민주당 의석이 지금보다 16~56석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평균적으로는 35석가량 증가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민주당이 하원을 8년 만에 재탈환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다만 최근 카라반과 캐버노를 내세운 공화당의 반격이 막판 변수다.

중간선거는 여당에 대한 심판 성격이 강하다. 따라서 의회 권력이 야당으로 넘어가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미국의 170년 의회사에서 43번의 중간선거가 치러졌는데, 여당이 이긴 경우는 단 3번뿐이었다. 1934년 대공황기(프랭클린 루스벨트), 1998년 최대 경제 호황기(빌 클린턴), 2001년 9·11 테러 직후(조지 W 부시)였다.

Plus Point

20년 만에 첫 한인 의원 탄생 연방 의원 도전 ‘Kim’ 3인방

왼쪽부터 앤디 김, 영 김, 펄 김 후보. 사진 후보자 페이스북 캡처
왼쪽부터 앤디 김, 영 김, 펄 김 후보. 사진 후보자 페이스북 캡처

미국 한인 사회는 1999년 공화당 하원 의원 김창준(미국명 제이 킴)을 마지막으로 약 20년 동안 단 한 명의 연방 의원도 배출해내지 못했다. 미국 인구에서 한인이 차지하는 비율이 1.9%에 불과한 데다, 뿌리 깊은 인종차별주의로 이민법에서 소외돼온 탓이다. 그런데 이번 중간선거에서는 한국계 정치인들의 약진을 기대해볼 만하다.

세 명의 한인 사회 출신 인물이 이번 선거에서 하원 의원에 도전한다. 캘리포니아주 영 김(공화당), 뉴저지주 앤디 김(민주당), 펜실베이니아주 펄 김(공화당)이다. 승리 가능성이 높게 점쳐졌던 또 다른 한국계 후보 댄 고(민주당)는 지역구 매사추세츠주 예비선거 투표에서 근소한 표차로 패배했다.

가장 당선 가능성이 크다고 여겨지는 인물은 영 김 후보다. 하원 외교위원장 에드 로이스를 보좌해온 그는 은퇴한 로이스의 지역구를 물려받아 캘리포니아 39구지구에 출마했다. 여론조사 결과 상대편인 민주당 길 시스네로스를 1%포인트 차로 바짝 쫓고 있다. 그다음 거론되는 인물은 앤디 김 후보다. 상대는 공화당 현역 의원(톰 맥아더)이지만 최근 오바마와 바이든 전 대·부통령의 공식 지지를 기반으로 반(反)트럼프 세력을 끌어모으고 있다. 39세라는 비교적 젊은 나이로 펜실베이니아주 5지역구 하원 선거에 출마한 검사 출신 펄 김 공화당 후보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