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토랑이 파산한 원인 중 하나는 온라인 음식 배달 서비스다.”

1999년, 24세의 나이에 ‘스타 셰프’ 시대를 연 영국 요리사 제이미 올리버. 그는 지난 5월, 자신이 운영하는 25개 이상의 레스토랑이 파산했다는 소식을 알리며 이렇게 말했다. 영국 BBC 방송에 출연해 간편한 레시피로 만든 요리를 선보이며 일약 스타덤에 올랐던 ‘영국판 백종원’ 올리버의 실패를 두고 BBC 등 영국 언론은 ‘시장 트렌드에 뒤처졌기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언론이 지적한 트렌드란 ‘현관 앞 전쟁’, 즉 배달 음식의 인기를 뜻한다.

배달 음식 전성시대가 왔음을 증명이라도 하듯 독일의 배달 서비스 전문기업 딜리버리히어로(DH)가 우아한형제들을 40억달러(약 4조7000억원)에 인수하기로 했다. 국내 1위 음식 배달 서비스 애플리케이션(앱) ‘배달의민족’ 운영사 우아한형제들의 기업 가치는 9년 만에 15만 배 이상 커졌다. 김봉진 우아한형제들 대표는 2010년 6월 자본금 3000만원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우아한형제들은 창업 2년 만인 2012년부터 배달 서비스 시장에서 독주하기 시작하더니 국내 인터넷 스타트업(초기 벤처기업) 인수·합병(M&A) 기록도 갈아치웠다. 지금까지는 카카오와 다음의 M&A 금액(3조1000억원)이 최고액이었다.

DH는 왜 막대한 금액을 써가며 우아한형제들을 인수했을까. DH는 이미 한국에서 시장 2·3위 업체인 ‘요기요(33.5%)’ ‘배달통(10.8%)’ 등을 운영하며 배달의민족(55.7%)과 경쟁하고 있다.

음식 배달 서비스 시장은 전 세계적으로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는 분야다. 시장조사 기업 프로스트앤드설리번에 따르면, 2018년 세계 온라인 음식 배달 시장 규모는 820억달러(약 95조5000억원)였는데, 2025년에는 2000억달러(약 232조9600억원)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시장은 커지고 있지만, 아직 주도권은 결정되지 않았다. 아시아를 비롯해 북미, 유럽이 음식 배달 열풍에 휩싸였으나 대륙별로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는 업체는 제각각이다. 아시아에선 DH 외에 ‘우버이츠(Uber Eats)’ ‘딜리버루(Deliveroo)’, 북미에선 ‘그랩푸드(Grabfood)’ ‘도어대시(Door Dash)’ 등이, 유럽에선 ‘저스트잇(Just It)’ ‘테이크어웨이닷컴(Takeaway.com)’이 경쟁하고 있다. DH가 우아한형제들을 인수하며 가열시킨 음식 배달 서비스의 경쟁 상황을 살펴봤다.


특징 1│아시아, 그중에서도 동남아

세계에서 음식 배달 시장 규모가 가장 큰 곳은 아시아로 55% 이상을 차지한다. 2017년 343억달러(약 39조9526억원)였던 아시아 시장 규모는 2023년까지 910억달러(약 105조9968억원)로 성장할 전망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핫한 곳은 동남아시아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아시아 지역의 소비자는 전자상거래와 디지털 결제에 익숙하기 때문에 음식 배달 앱을 사용할 가능성이 크다”며 “특히 6억 명이 사는 동남아를 주목해야 한다”고 전했다. ‘포브스’에 따르면 투자 업계가 2018년 한 해에 음식 배달 서비스 스타트업에 투자한 돈은 96억달러(약 11조1802억원)로, 이 가운데 60%가 아시아 지역에 투입됐다.

우아한형제들과 DH가 싱가포르에 합작법인 우아DH아시아를 세우는 것도 동남아 시장 선두를 차지하기 위한 전략으로 읽을 수 있다. 우아DH아시아는 배달의민족이 이미 진출한 베트남 이외에 DH가 사업을 벌이고 있는 대만, 태국, 말레이시아 등 아시아 12개국 사업을 총괄한다. 김봉진 대표는 우아DH아시아의 회장을 맡을 예정이다.

DH 관계자는 “아시아 시장은 배달 서비스 성장 가능성이 가장 큰 지역”이라며 “경쟁이 치열한 한국 시장에서 업계 1위라는 성공을 이룬 김봉진 대표가 아시아 전역에서 경영 노하우를 발휘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영국 런던에 본사를 둔 딜리버루도 싱가포르를 중심으로 아시아 시장을 공략 중이다. 아마존이 올해 초 5억7500만달러(약 6696억원)를 투자했다.


특징 2│M&A로 덩치 키우기 전쟁

DH가 우아한형제들을 인수하며 덩치를 키운 방식은 음식 배달 서비스 업계가 선호하는 시장 지배력 강화 수단이다. 경쟁 업체를 흡수해 위험 요소를 없애는 동시에 시장 점유율을 끌어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앞서 DH는 중동 지역 토종 배달 서비스인 ‘탈라밧(Talabat)’ ‘캐리지(Carriage)’를 인수하며 점유율을 70% 이상으로 높이는 전략을 구사했다.

유럽에선 음식 배달 서비스 저스트잇을 놓고 눈치작전이 뜨겁게 펼쳐지고 있다. 저스트잇은 시장에서 60억달러(약 6조9876억원) 이상의 기업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음식 배달 서비스다. 특히 단일 규모로는 중국과 미국에 이은 세계 최대 규모의 배달 시장인 영국에서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12월 현재 네덜란드에 본사를 둔 테이크어웨이닷컴과 프로서스(Prosus)가 저스트잇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경제지 ‘포천’은 “이번 싸움은 누가 ‘유럽 음식 배달 시장의 왕(boss)’이 되는지를 결정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만약 테이크어웨이닷컴이 저스트잇 인수에 성공하면 유럽 점유율 1위로 올라선다.

아시아 지역에선 몇몇 음식 배달 서비스가 덩치 큰 업체에 통합되는 작업이 이뤄졌다. 세계 최대 차량 공유 서비스 업체 우버는 2018년 동남아에서 운영하던 배달 서비스 ‘우버이츠’를 그랩에 매각했다. 푸드판다(Foodpanda)는 지난 5년 동안 저스트잇의 인도 사업 부문, 말레이시아의 배달 앱 ‘룸서비스(Room Service)’, 파키스탄의 ‘잇오예(EatOye)’ 등을 인수하며 덩치를 키웠다. 인도 현지 서비스인 올라(Ola)는 2016년 DH의 인도 사업을 인수했다.

미국에서도 배달 서비스 업체 간 통합 작업이 이뤄졌다. 현재 10개 이상의 음식 배달 업체가 경쟁하고 있는 상황이다. 도어대시는 올해 경쟁사 ‘캐비어(Caviar)’를 인수하며 그랩푸드, 우버이츠와 격차를 벌렸다.


Plus Point

음식 배달 주무르는 일본·아프리카 큰손

세계 음식 배달 서비스는 일본과 아프리카 자본에 의해 움직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내 1위 업체 우아한형제들을 인수한 딜리버리히어로(DH)는 독일 베를린에 본사를 두고 있지만, 최대 주주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인터넷·미디어 기업인 내스퍼스(Naspers)다. 내스퍼스는 중국 최대 인터넷 기업 텐센트의 초기 투자자이기도 하다. 중국 1위 음식 배달 서비스 업체 ‘메이투안 디엔핑’의 최대 주주는 텐센트로 내스퍼스의 영향력 아래에 있다.

손정의 회장이 이끄는 일본 소프트뱅크 역시 음식 배달 서비스 업계의 큰손이다. 소프트뱅크는 ‘그랩푸드’ ‘우버이츠’에 투자했다. 그랩푸드와 우버이츠는 각각 차량 공유 서비스 업체 그랩과 우버가 운영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베트남 등 동남아 일부 시장에선 그랩푸드가 DH를 앞서가는 중이다. 우버이츠는 북미, 유럽 쪽에서 강세를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