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8일 강원도 고성 켄싱턴리조트 설악비치 앞 해수욕장. 안전사고 위험이 커 해수욕이 금지됐다. 사진 안상희 기자
8월 8일 강원도 고성 켄싱턴리조트 설악비치 앞 해수욕장. 안전사고 위험이 커 해수욕이 금지됐다. 사진 안상희 기자

8월 8일 강원도 고성 켄싱턴리조트 설악비치 앞 해수욕장. 예년 같으면 빼곡히 줄지어 있는 파라솔 사이로 수영복을 입은 피서객들로 북적여야 하지만, 올해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바다에서 파도타기를 하는 사람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긴 장마 속 잠시 비가 멈췄지만, 피서객들은 바다에 들어가지 않고 모래놀이를 하는 데 만족해야 했다. 경기 안양에서 피서 온 조정순씨가 바닷물에 발을 담그자 안전요원이 달려와 “들어가시면 안 됩니다”라고 경고했다. 조씨는 “물놀이하려고 튜브까지 장만해왔는데, 쓰지도 못해 환불해야겠다”고 말했다.

역대급 긴 장마로 다른 주요 해변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너울성 파도로 안전사고 위험이 커 해수욕이 금지된 곳이 대부분이었다. 강원 양양 남애해변 앞에서 파라솔 대여와 먹거리 판매를 하는 한 상인은 “7~8월이 대목인데 7월 이후 하루 이틀 빼고는 주말마다 계속 비가 와 올해 장사는 공쳤다”며 “임대료도 버겁다”고 하소연했다.

여름 휴가 성수기인 7말 8초(7월 말부터 8월 초)가 지났다. 하지만,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긴 장마까지 이어지면서 휴가를 맞이하는 사람들의 소비 물건도 바뀌었다. 폭염 예보로 여름 특수를 기대한 업계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수영복 매출 60% 뚝…우비·장화 불티나게 팔려

더위가 주춤하며 해수욕장이나 수영장을 찾는 사람이 줄자 패션업계는 올여름 장사는 끝났다는 분위기다. 롯데백화점과 신세계백화점에 따르면 여름 성수기 3주간(7월 20일부터 8월 9일) 수영복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각각 60.0%, 54.3% 급감했다. 같은 기간 햇빛을 가려주는 선글라스 매출도 35.0%, 40.5% 줄었다. 

대신 장마 관련 상품은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여름 성수기 3주간 이마트, 롯데마트, G마켓의 장화 매출은 전년보다 각각 80.8%, 56.4%, 223% 급증했다. 우산 매출도 각각 61.3%, 85.4%, 123% 늘었다. 같은 기간 롯데마트와 G마켓에서 우비 매출도 전년보다 82.4%, 642% 늘었다.

패션업계 관계자는 “여름 상품을 재빨리 접고 가을 신상품 출시 시기를 예년보다 앞당기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해양수산부에 따르면 올해 8월 2일까지 전국에서 개장한 해수욕장 250곳에 방문한 사람은 1243만 명으로 조사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3169만 명)의 39.2% 수준이다. 사회적 거리 두기와 함께 장마 영향도 크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롯데마트와 G마켓의 여름 성수기 3주간의 튜브 매출은 전년보다 각각 19.6%, 53% 줄었다. 물안경 매출도 20.6%, 58% 감소했다.

G마켓 관계자는 “날씨가 소비생활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코로나19와 물난리 여파로 휴가철이지만 물놀이를 즐기는 사람이 줄어 관련 용품 판매가 줄었다”고 했다.

여름 대표 간식인 아이스크림 매출도 지지부진해 빙과업계는 아쉬움이 크다. 7월 롯데제과와 빙그레의 아이스크림 매출은 전년보다 각각 5%, 3% 떨어졌다. 같은 기간 롯데푸드 매출은 1% 줄었다. 여름 성수기 3주간 롯데마트와 이마트에서도 아이스크림 매출은 각각 21.4%, 15.2% 감소했다.

롯데제과 관계자는 “올해 초까지만 해도 여름이 굉장히 더울 것으로 예상돼 기대감이 컸지만, 긴 장마로 지금은 비수기 느낌”이라며 “장마가 끝나는 8월 중순 이후부터 9월까지 최대한 판매에 집중하고 가을, 겨울을 겨냥한 제품 개발에 총력을 다할 것”이라고 했다. 롯데푸드 관계자는 “지난해 업계 전체적으로 아이스크림 매출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올해는 기저효과로 기대가 컸다”며 “장마가 끝나고 무더위가 이어진다면, 아이스크림 매출이 오를 수 있다고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제습기·건조기 장마 특수…에어컨 판매 뚝

가전제품도 희비를 달리하고 있다. 제습기·건조기·의류관리기는 장마 특수를 누리고 있다. 특히 제습기는 최근 몇 년간 마른장마와 폭염이 이어지며 성장세가 주춤했지만, 올해는 수요가 예년보다 늘고 있다. 제습기는 통상 초여름에 판매가 몰리지만, 올해는 8월까지도 판매가 이어지고 있다.

여름 성수기 3주간 롯데하이마트, 이마트, G마켓에서 제습기 매출은 전년보다 50%, 101.7%, 127% 급증했다. 의류관리기 판매도 같은 기간 각각 96%, 25.8%, 21% 늘었다. 해당 기간 롯데하이마트와 G마켓에서 의류건조기 판매도 전년보다 각각 90%, 100% 증가했다.

반면 여름 대표 가전인 에어컨 판매는 뚝 떨어졌다. 여름 성수기 3주간 이마트와 G마켓에서의 에어컨 판매는 전년보다 각각 26.2%, 52% 급감했다.

롯데하이마트 관계자는 “올여름은 비가 유독 많이 오고 기온이 높지 않아, 에어컨 판매보다는 제습 가전 등의 수요가 많다”며 “다만, 늦더위가 온다는 예보가 있어 당분간 더 지켜볼 계획”이라고 말했다.


긴 장마에 대형마트 울상

대형마트는 여름 폭염 특수 매출이 사라지고, 손님이 줄어들어 울상이다.

한 대형마트 관계자는 “올여름은 예년보다 실적이 안 좋다”며 “코로나19로 실적이 부진한 상황에서 긴 장마로 매장을 방문하는 고객이 줄었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비가 오면 고객들이 가까운 동네 슈퍼를 찾고 외출을 안 하려 한다”고 했다.

가전업계도 제습기 매출 성장이 마냥 반갑지는 않다. 한 가전업계 관계자는 “제습기가 잘 팔려도 단가가 높은 에어컨이 안 팔리니 실적에 영향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했다. 다른 관계자는 “제습기가 에어컨보다 단가가 상대적으로 저렴한 게 사실”이라며 “다만 의류건조기와 의류관리기가 주목받고 있어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백화점의 경우 장마 영향이 크지 않은 상황이다. 한 백화점 관계자는 “폭우가 내리지 않는 이상 비가 오면 사람들이 실외활동보다 실내활동을 선호하다 보니 백화점은 큰 영향이 없다”며 “특히 단가가 높은 명품이 실적을 방어해주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