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권 미국 아메리칸대 박사, 중국 칭화대 박사과정, 아산정책연구원 중국연구센터장 / 김한권 국립외교원 교수가 3월 27일 조선비즈와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 류현정 조선비즈 선임기자
김한권
미국 아메리칸대 박사, 중국 칭화대 박사과정, 아산정책연구원 중국연구센터장 / 김한권 국립외교원 교수가 3월 27일 조선비즈와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 류현정 조선비즈 선임기자

3월 27일 만난 김한권 국립외교원 교수 겸 중국연구센터 책임교수는 세계적 투자자 짐 로저스 로저스홀딩스 회장이 말하는 ‘북한 투자 대박론’에는 고개를 저었다. ‘투자의 귀재’로 불리는 짐 로저스 회장은 2015년 CNBC와의 인터뷰에서 “전 재산을 북한에 투자하고 싶다”고 말해 화제를 모았었다.

그는 차분하고 정돈된 목소리로 “북한 정권의 우선순위가 경제 발전이었다면, 북한은 진작에 비핵화와 개방을 했을 것”이라면서 “북한 정권의 최우선 목표는 체제 유지”라고 말했다. 미·북 하노이 회담 결렬의 근본 원인도 북한의 체제 특성에 있다는 설명이었다.

김 교수는 현 정부의 대북 정책도 에둘러 비판했다. 그는 “이번 정부의 대북 정책이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 정책과 유사해 보이지만, 주변국의 이해를 구하는 치밀한 외교술을 생략했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와는 4월 8일, 11일 추가 인터뷰했다.


미·중 무역전쟁으로 양국 갈등이 심화하고 있다.
“나는 현 단계의 미·중 무역전쟁을 ‘투키디데스의 함정(패권 국가와 신흥 강대국의 물리적 충돌이 유발되는 극심한 구조적 긴장)’으로 보지 않는다. 종합 국력에서 우위인 미국이 중국에 유리한 현재의 규범과 질서를 미국에 유리한 새 질서로 바꾸는 과정이라고 봐야 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세계무역기구(WTO) 출범 후의 다자간 자유무역체제가 도리어 중국에 유리하다고 불만을 터트린다. WTO 체제에서는 미국이 상대적 이익을 유지할 수 없다고 보고, 양자 협상을 통해 새 질서를 만들어 나가려는 것이다.”

미·중 경쟁 국면에서 한국의 전략적 가치를 높이는 방법은.
“최악으로 평가받는 현재의 한·일 관계는 한국에 이롭지 않다. 일본의 일부 외교·안보 전문가들은 워싱턴 외교가에서 미국의 동맹국인 한국이 중국으로 기울었다고 주장한다. 중국은 한·일 관계가 나빠졌기 때문에 한·미·일 지역안보협력체제가 강화되기 어려워 한국을 덜 신경 쓴다. 한국이 몸값을 올리는 첫 단추는 일본과의 관계 개선이다. 동북아 한·미·일 지역안보협력체제는 미국과 중국 모두에 중요하다. 한국 정부가 미국에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해 다리 역할을 해달라고 요청하면 어떨까. 한반도 비핵화 논의 과정에서 발생한 한·미 관계의 틈을 메꿀 수 있고 한국이 중국에 기울었다는 주장이 확산하는 것도 막을 수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4월 12일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차회의에 참석했다. 사진 조선중앙TV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4월 12일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차회의에 참석했다. 사진 조선중앙TV

북핵 문제 해결이 난항에 빠졌다.
“김대중 대통령은 취임 직후부터 주변 강대국에 한반도 비핵화가 각국에 왜 이익인지를 충분히 설명하고 깊은 이해를 구하는 2년간에 걸친 사전 정지 작업을 했다. 미국 빌 클린턴 대통령을 만났고 ‘김대중-오부치 선언(김 전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 전 일본 총리가 합의한 21세기를 향한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으로 일본과 새 협력 관계를 만들었다. 한국과의 경제 협력을 바랐던 중국과 러시아도 끌어들였다. 주변 강대국과 대북 정책에 관한 합의를 본 다음, 2000년 남북 정상회담을 열었다. 외교적으로 포위한 상태였기 때문에 북한이 달리 움직일 공간이 크지 않았다. 반면, 현 정부의 한반도 비핵화 과정에는 ‘틈’이 많다. 한·미 동맹이 느슨해졌고 한·일 관계는 크게 악화했다. 사드(THAAD) 사태로 중국과의 관계도 회복되지 않았다. 더구나 지금처럼 미·중 무역전쟁 등 강대국의 이익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상황에서는 주변국이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 안착이라는 보편적 가치보다 자국의 이익에 따라 움직일 가능성이 크다. 현 정부의 대북 정책은 김대중 정부가 아닌 노무현 정부의 대북 정책을 계승한 것으로 평가한다. 노 전 대통령 시절에도 강대국 외교 없이 남북 중심으로 한반도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

올해는 북·중 수교 70주년의 해이다. 하노이 회담 결렬에 실망한 북한이 중국의 협력을 얻어내려고 애쓸 것이다.
“북한은 중·소 분쟁 시기에 중국과 옛 소련을 오가며 체제 안정과 경제 원조를 얻어낸 전례가 있다. 북한은 미·중 사이에서도 자신의 체제 생존과 이익을 극대화할 ‘시계추 외교’를 가동하려 할 것이다. 다만, 미국과 중국이 이런 북한의 외교 전략을 매우 잘 알고 있어 쉽게 먹히지 않을 것이다. 특히, 중국은 무역 분쟁을 포함한 미국의 전방위 압박에서 북한 문제로 미국으로부터 불필요한 오해나 갈등이 나타날까 조심하고 있다. 이에 북한은 전략 파트너의 다변화를 추구하고 있다. 김정은은 러시아를 방문하고 베트남을 포함한 동남아 국가와 접촉할 것이다. 특히 일본과의 접촉도 검토하면서 미국의 장기적인 제재 압박에 대응하려고 할 것이다. 과거 북한은 미국과 관계가 악화하면 일본 카드를 꺼내들었다.”

북한이 미국의 ‘빅딜’ 제안을 받을 수 없는 근본 원인은 무엇인가.
“미국은 북한에 핵을 포기하고 경제대국이 되라고 한다. 북한 정권의 우선 순위가 경제 발전이었다면, 북한은 진작에 비핵화와 개방을 했을 것이다. 현재 북한의 우선 순위는 체제 유지다. 1983년 김일성의 후계자였던 김정일(당시 조선노동당 정치위원)은 비밀리에 중국을 방문했다. 개혁·개방 5년 차를 맞은 중국의 주요 특구를 둘러본 것이다. 방중 이후 김정일은 ‘우리식대로 살아나가자’라는 구호를 내세우고 중국의 기대와 달리 개혁·개방 노선에 대한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북한 체제는 부분적으로 지대 추구 국가(rentier state)의 성격을 띠고 있다. 학자마다 의견은 조금씩 다르지만, 대체로 국가 수입 중 자원 수출과 같은 지대(rent) 수입이 40%를 웃도는 국가들을 지대 국가로 분류한다. 중동 주요국들이 지대 국가들이다. 지대 국가들은 ‘지대’를 장악한 최고 권력자 또는 그룹이 주요 기관과 인사에게 지대를 나눠주며 정권에 협력하도록 유도한다. 중국의 덩샤오핑은 개혁·개방에 나서면서 중앙 권력을 지방에 많이 나눠줬다. 베트남의 권력은 더 분산돼 있다. 북한은 체제 특성상 권력분산과 시장개혁이 필요한 중국식 또는 베트남식의 개혁·개방을 할 수 없을 것이다. 동유럽 국가 중에도 지대를 장악한 지도부들이 시장개혁을 저지하는 경우가 많았다. 북한이 현실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모델은 매우 제한된 특구와 관광업을 영위하는 형제 세습 국가인 쿠바 모델 정도일 것이다.”

북한의 비핵화는 어떻게 풀어야 하나.
“한반도 완전 비핵화의 종착역은 대화와 협상을 통합 합의와 검증이 아니다. 바로 북한의 개방을 통한 경제 발전이다. 국제 사회 다수의 전문가들은 북한이 사찰을 받더라도 최소한의 핵을 숨길지도 모른다고 우려한다. 한국은 이러한 우려를 부정할 것이 아니라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북한이 개혁·개방을 통해 진정한 국제 사회의 일원이 된다면, 소량의 숨겨진 핵은 실질적으로 무력화될 것이다. 중국은 한반도 문제를 단기적으로 풀 수 없을 것으로 본다. 3월 15일 전국인민대표회의 폐막식 기자회견에서 리커창 총리는 ‘인내와 장기적인 접근’을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