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한 내수 부진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유통업계를 중심으로 소비자의 지갑을 열기 위한 치열한 몸부림이 한창이다. 백화점과 할인점은 저가 혹은 초저가 간판을 내걸고, 명품점은 차별화된 럭셔리 서비스를 무기로 고객의 지갑을 공략하고 있다. 대내외적인 경제 환경의 악화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확산되면서 움츠러들고 있는 소비를 되살리기 위한 지갑 열기 마케팅이 한쪽에서는 저가로, 다른 한쪽에서는 고가로 소비자를 유혹하고 있는 것이다.



 소비자 유인 마케팅 활개

 일반적으로 저가 마케팅은 불황기에 유통업계가 소비자를 유인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실시하기도 하지만 일부 업체에서는 아예 저가시장만을 공략하는 경영 기법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현재 국내 백화점들이 전개하고 있는 저가 마케팅이 전자의 경우라면, 화장품과 일반 생필품 등 특화된 상품을 중심으로 펼쳐지고 있는 ‘1000원 숍’은 후자의 경우다.

 중산층 이하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저가 마케팅은 소위 ‘할인 전쟁’으로도 불린다. 마치 대한민국 전체가 ‘세일 중’이라는 간판에 뒤덮여 있는 듯 업종을 가리지 않고 할인과 경품이 총동원되고 있다. 특히 최근 들어 소비심리 지표가 최악으로 떨어지면서 소매 업종의 소비심리를 자극하기 위한 경쟁은 최고조에 달하고 있다.

 10월 현재 구매고객을 대상으로 공짜 경품 행사를 실시했거나 실시하고 있는 유통업체는 롯데백화점을 비롯해 신세계백화점, 애경백화점, 그랜드백화점, 홈플러스 등에 이르고 있다. 공짜 경품을 내걸고 최대한 소비자를 매장으로 불러내겠다는 마케팅 전략의 하나다. 여기에는 드럼세탁기와 김치냉장고에서부터 장바구니, 소형 배낭, 세제세트, 주방위생용품, 열대어 등이 동원됐다.

 롯데백화점의 한 관계자는 “일단 경품 행사를 통해 소비자를 매장으로 끌어들인 후 구매 욕구를 자극하는 기획전 등을 통해 매출 증대를 꾀하는 것은 최근 들어 일반화된 마케팅 기법이다”고 말한다. 즉 소비심리 위축으로 아예 발걸음조차 하지 않는 고객들을 백화점으로 끌어들이는 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말이다.

 이렇게 매장으로 끌어들인 소비자들을 유혹하는 것은 각종 할인 행사다. 특히 대형 할인점까지 정기 세일을 실시하는 한편, 창립 또는 개점 기념 행사를 통해 각종 사은 행사까지 마련하고 있어 백화점에서나 볼 수 있었던 각종 할인 행사가 유통업계 전반에 걸쳐 펼쳐지고 있다. 여기에 일부 유통업체에서는 ‘25년 전 가격’ 등의 행사까지 기획해 불황을 이기려는 소비자 유인 마케팅은 절정에 달하고 있다.



 스타일 ‘구기는’ 백화점

 비단 유통업계뿐만이 아니다. 건설업계에서도 아파트 할인 행사를 벌이는 한편, 노세일을 표방했던 일부 제조업체도 어쩔 수 없이 할인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직접적인 가격 할인은 아니다 하더라도 이사, 결혼, 출산을 했을 경우 올 상반기 출시한 공기청정기 클레나(Klena)를 제품가에서 10만원 할인해 주는 LG전자의 ‘새 출발 페스티벌’은 대표적인 사례다. 또 소비자가 제품을 구매한 뒤 1개월 내에 성능 결함이 발생할 경우 100% 환불해 주는 대우일렉트로닉스의 김치냉장고 클라쎄 역시 유사한 마케팅이다.

 이처럼 자사 제품 소비를 촉진시키기 위한 제조업계와 유통업계의 각종 저가 마케팅은 불황기 제품 구입에 가격이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될 수밖에 없다는 인식에 따르고 있다. 특히 공짜, 할인, 환불 등은 불황기 소비자의 관심을 끌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이들 업계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그러나 곱지 않은 시선도 있다. 백화점이 기획, 이월, 한정 등 비정상 품목으로 스타일을 구기고 있다는 비판이 그것이다. 마치 할인점을 연상케 하는 행사들이 연중 전개되고 있는 것은 정상품 → 정상 가격→ 정상적인 서비스를 기본으로 해야 할 백화점들이 궤도를 이탈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싸다고 비지떡 아니다

 이에 아예 상설 저가매장을 운영하는 업체들도 늘어가고 있다. 일시적인 마케팅 차원이 아니라 저가시장만을 타깃으로 경영 전략을 구사하는 업체들이다. 외국에서는 일반적인 이 같은 저가시장 공략은 최근 내수 경기 불황으로 다국적 혹은 토종 업체들이 본격적인 매장 확장에 나서 또 다른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현재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고 있는 업체는 균일가 생활용품 전문체인 다이소. 일본 최대의 100엔샵 체인 스토어인 일본 ‘다이소산업’과의 합작을 통해 2004년 6월 현재 전국에 300여개의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또 올해 안으로 340여개, 2007년에는 500여개의 매장을 오픈, 전국적인 마켓쉐어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주방용품을 비롯해 각종 생활, 욕실, 미용, 문화, 문구·사무, 의류 및 신변잡화, 그리고 식품에 이르기까지 총 2000여종의 각종 상품들을 2천원 이하의 가격으로 국내 저가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지난 7월 한국을 방문한 야노 히로다케 회장은 “초저가 상품이라고 해서 질이 나쁘다는 편견은 대형 매장에서 다양한 물건을 보면 없어질 것”이라며 “일본에서도 지난 5~6년간 매출과 매장 수가 약 8배 증가했고 소비자 만족도 역시 도쿄디즈니랜드에 이어 3년 연속 2위를 달리고 있다”고 한국에서의 성공을 자신했다. 싸다고 결코 비지떡이 아니다는 자신감의 피력이다.

 국내 업체로는 화장품 시장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미샤와 더 페이스샵이 대표적이다. 특히 미샤의 경우 마케팅 비용 절감을 위해 고안된 사업 구조를 경쟁 우위로 발전시킨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스킨 토너, 로션, 마스카라, 에센스 등 600여종의 제품을 판매하고 있는 미샤 화장품의 가격은 3300~9000원선. 온라인으로 시작한 영업은 2002년 이대점을 시작으로 오프라인 숍을 개설, 현재 전국에 200여개의 체인을 보유하고 있다. 매출도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2002년 33억원에서 지난해에는 130억원으로 뛰었다. 또 올해는 1200억원의 매출을 기대하고 있다.



 재고·반품 사이트의 인기

 인터넷의 재고·반품 사이트도 저가 마케팅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실속형 소비자를 겨냥해 신제품의 70~80% 가격에 공급하고 있어 시장 규모가 확대되고 있다. 업계에서는 급증하는 온라인 유통시장을 감안할 때 반품시장의 규모가 약 2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저가 마케팅은 이미 외국에서 그 가능성을 인정받고 있다. 일반적인 인식과 달리 많은 기업들이 저가시장에서 높은 수익성과 성장성을 보여주고 있다.

 LG경제연구원 유호현 연구원은 “저가시장에서 소비자의 모든 요구를 만족시켜 주겠다는 생각은 피해야 한다”며 “저가시장의 제공 대상은 개념적으로 제품의 차별적 특성이 사라진 현상을 말하는, 범용화가 되었거나 향후 범용화가 예측되는 제품들”이라고 말한다.

 인사 관련 아웃소싱 시장에서 저가 전략으로 성공을 거둔 페이첵스, Everyday Low Price 전략으로 유명한 월마트, ‘9.11테러’ 이후 유일하게 흑자를 기록하고 있는 사우스웨스트항공과 젯블루 에어웨이도 저가 전략을 기본 영업 방침으로 삼고 있다.



 당신만을 위한 명품으로 공략

 불황기 대표적인 마케팅으로 불리는 이런 저가 마케팅의 다른 한편에서는 고가의 명품을 앞세운 VIP 마케팅이 또 다른 소비자의 지갑을 훑고 있다. 매출 신장과 내수 불황 타개를 위해 소득 수준이 높은 부자 계층을 집중 공략하는 영업 전략이다. 정부가 내수 경기 침체를 극복하기 위해 24개 품목을 특별소비세 과세 대상에서 제외한 것도 이에 다름 아니다. 고소득층의 소비를 촉진시키겠다는 의도에서다.

 국내 최초의 VIP 마케팅 전문서적인 <VIP 마케팅>의 저자 한동철 교수(서울여대 경영학과)에 따르면 부자는 인구 숫자로는 5만명(금융자산 10억원 이상이고 총자산 50억원 정도)에서부터 83만명(금융자산 1억원 이상)에 달하고 있다. VIP 마케팅은 이 같은 부자들을 대상으로 하지만 부자는 아니더라도 사회적으로 유력한 인사들, 즉 국회의원, 고위 공직자, 대기업 임원 등에 초점을 맞추기도 한다.

 이들의 소비 패턴 가운데 가장 중요시되는 요소는 역시 희소성이다. 자신만의 명품이 그것이다. 올해 벤츠가 출시한 최고급 승용차 마이바흐는 7억원을 상회한 가격에도 국내에서 출시 2주 만에 7대가 팔렸다. 모 회장은 국내 출시 이전에 독일에서 직접 공수해 오기도 했다. 벤츠의 명성과 성능만이 아니라 희소성 획득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이때 가격은 중요한 고려사항이 아니다. 자신만이 느끼는 가치에 따라 제품을 구매하기 때문이다.

 공간도 이들에게는 중요하다. 일반인의 출입이 차단된, 일종의 폐쇄적인 공간성 확보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즉 그들만의 공간, 그들만의 제품, 그들만의 서비스 등 그들만의 차별화된 문화를 제공해야 한다는 전략이다.



 지갑 열지 않곤 못 배겨

 갤러리아백화점은 국내 VIP 마케팅의 대표적 기업이다. 지갑을 열지 않고선 매장 문을 나서지 못한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갤러리아백화점은 CRM(고객관계관리)을 통해 고객을 분류해 SVIP, VIP 고객들에게는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VIP 고객은 갤러리아 카드와 갤러리아 비자카드 등 제휴카드 고객을 대상으로 각 점포별 연간 구매금액을 기준으로 선정된다. 이들은 평균 연간 구매금액 총액 1000만원 이상인 고객으로 전체 매출의 70%를 차지하고 있다.

 갤러리아백화점의 VIP 마케팅 가운데 두드러진 차별성은 명품관 이스트 4층에 50평 규모로 마련된 ‘퍼스널 쇼퍼 룸’(PSR. Personnal Shopper Room). 지난 3월5일 개설한 PSR은 VIP 고객을 대상으로 1대1의 고급화된 쇼핑 서비스를 제공하는 등 점포의 격을 한층 높이는 계기가 됐다. PSR 개설 시점부터 함께 근무하게 되는 쇼핑 도우미는 유명 의류 스타일리스트팀과 유명 의류 매니저 및 운영요원 2명(여성) 등으로 구성돼 있다.

 PSR에서는 멤버십 VIP 고객을 대상으로 고객의 컨셉을 사전에 파악하고 미리 상품을 준비해 고객이 매장 방문시 1대1 상담과 스타일 제안, 그리고 상품 코디네이팅을 서비스하고 있다. 또 VIP 고객과 평소 친분관계를 유지하며 고객들에게 필요한 선물 등도 제안해 품격 있고 고급화된 포장 서비스도 실시하고 있다. 여기에 VIP 고객의 비서 기능도 담당, 연극· 영화 등의 티켓팅 업무와 여행을 원하는 고객에게는 여행지 소개 및 예약, 여행지 식당 추천 및 여행사 소개 등의 업무까지 제공하고 있다.

 이외에도 연 1회 정도씩 호텔에서 개최하는 대형 패션쇼 초청과 음악회 초청 등 다양한 이벤트도 실시하고 있다. 한화유통 관계자는 “2002년의 경우 12월 예술의전당에서 열렸던 국민가수 ‘조용필 콘서트’에 전 점포 우수고객을 초청해 만족도 높은 이벤트로 고객들의 호평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또 점장 혹은 팀장이 직접 방문해 생일선물을 전달하고, 고급 한복집, 미용실, 프라자 웨딩숍 등과 연계한 할인권 제공, 특급 호텔과 연계한 무료 숙식권 및 할인권도 제공하고 있다. 여기에 호텔식 고급 서비스를 추구하는 명품관은 전 입차 고객을 대상으로 발레파킹(대리 주차) 서비스를 실시하고 있다.



 부자 상대 이득의 즐거움

 부자들의 지갑을 유혹하는 VIP 마케팅은 비단 갤러리아백화점에 국한되지 않는다. 명품관을 운영하고 있는 신세계백화점 등에서도 여러 차별화된 서비스를 무기로 큰손 고객들을 불러들이고 있다. 특히 유통업체 이외에 병원들도 이에 가세, 강남의 일부 병원에서는 호텔식 진료 서비스와 아침식사 제공 등 치열한 경쟁이 한창이다. 대부분 갤러리아백화점이 시행하고 있는 서비스들이 변형되거나 유사한 것들이다.

 이처럼 불황기에 VIP 마케팅이 강화되고 있는 것과 관련해 한동철 교수는 “요즘과 같은 불경기에 VIP 마케팅은 일반 마케팅보다 훨씬 중요하다”며 “부자를 상대로 이득을 보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지 세월이 흐를수록 더 명확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