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도쿄 지하철 역 정보 안내 모니터와 한국 서울 지하철. 상세한 내용을 제공하는 일본 지하철과 달리 2호선 안내 모니터는 종종 고장 나 있고, 도착역 정보보다 광고를 더 크게 띄운다. 사진 도쿄=임정욱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센터장 제공, 이민아 기자
일본 도쿄 지하철 역 정보 안내 모니터와 한국 서울 지하철. 상세한 내용을 제공하는 일본 지하철과 달리 2호선 안내 모니터는 종종 고장 나 있고, 도착역 정보보다 광고를 더 크게 띄운다. 사진 도쿄=임정욱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센터장 제공, 이민아 기자

이기범(29)씨는 지하철 2호선으로 2년째 통근하는 직장인이지만, 7월 30일 내릴 역을 놓쳐 저녁 약속에 늦었다. 열차 천장에 붙은 정보 안내 모니터가 시스템 오류로 검은 화면으로 바뀐 상태에서 통화하느라 안내 방송을 듣지 못한 것이다. 이씨는 “평소 역 도착 직전에야 ‘이번 역’을 알려주는 것이 불만이었는데, 유일한 시각 안내인 스크린마저 고장 나 불편을 겪었다”면서 “열차가 플랫폼에 진입할 때마다 어딘지 확인해야 했다”고 말했다. 

하루 평균 780만 명 이상이 이용하는 서울 지하철과 택시 등 교통수단의 인포그래픽이 사용자에게 불친절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승객에게 가장 중요한 정보인 현재 열차의 위치, 어느 역을 향해 가고 있는지 등을 보기 쉽게 안내하지 않는다. 

7월 31일 서울 지하철 9개 노선을 타봤다. 대부분 열차에 내릴 역을 알려주는 화면보다 상업 광고가 눈에 더 잘 띄는 곳에 있었다. 열차가 노후한 지하철 4호선의 인포그래픽이 가장 열악했다. 4호선 전동차 안을 살폈지만 정보 안내 스크린을 찾을 수 없었다. 전동차 소리에 섞여 들리는 음성 안내를 주의 깊게 듣고 열차 밖을 바삐 봐야만 무탈하게 목적지에 내릴 수 있었다. 

비교적 신형 전동차였던 3·7·8·9호선, 신분당선 등은 다음 역까지도 안내해줘 그나마 편리했다. 서울교통공사(서울메트로) 관계자는 이 같은 차이에 대해 “전동차 내에 설치된 모니터가 발광다이오드(LED)냐, 액정표시장치(LCD)냐에 따라 다르다”면서 “LED 모니터가 설치된 1·4호선은 전달할 수 있는 정보량이 적고, LCD 모니터를 장착한 2·3호선과 5~8호선은 이번 역, 다음 역이나 홍보 영상 등 더 많은 정보를 표출한다”고 설명했다.  

지하철뿐 아니라 택시도 부실한 시각 정보로 승객들을 불편하게 한다. 택시 뒷자리에 타면 자세를 이리저리 바꾸지 않고는 요금 미터기를 확인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지난 7월 스페인으로 휴가를 다녀온 직장인 전성필(28)씨는 택시 안에서 묘한 피로감을 느꼈다. 일주일 전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탔던 일본 도요타의 프리우스 택시에선 뒷자리에서도 요금 미터기를 쉽게 볼 수 있었는데, 한국에선 그 당연한 것이 안 되기 때문이었다. 한국 택시에선 미터기가 대부분 운전석 변속기 레버 뒤에 숨어있는데, 스페인을 다녀오기 전에는 그것이 비정상일 수 있다는 것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못 했다.

전씨는 “국내 택시는 주행 중에 요금을 보려면 몸을 대각선 앞으로 숙이고 목을 쭉 빼야만 하는 것이 갑자기 낯설었다”고 전했다. 이마저도 대낮에는 빛 반사가 심해 각도를 잘 맞춰야 한다. 그는 “스페인 택시는 미터기가 대부분 룸미러 부근이나 대시보드 상단에 달려있어 앉은 자세 그대로 요금이 올라가는 걸 지켜볼 수 있었다”면서 “그러고 보면 당연히 미터기는 승객이 보기 편한 위치에 달려있어야 하는데, 우리나라 택시 대부분은 대시보드 하단에 깔아놓아서 미터기를 숨겨둔다는 기분까지 들었다”고 말했다.


日 도쿄 지하철, 필요한 정보 한눈에 전달

한국 교통수단이 조금 더 친절해질 방안은 없을까. 옆 나라 일본에서 대안을 찾을 수 있었다. 일본 도쿄 지하철은 승객에게 필요한 정보를 한눈에 전달한다. 이용객이 많은 야마노테선, 긴자선 등의 노선은 일본어뿐 아니라 한국어·영어·중국어로도 역 이름을 큰 글자로 안내한다. 외국인이 지하철을 이용할 때 무리 없이 다닐 수 있을 정도다. 

7월 말 일본 출장을 다녀온 임정욱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센터장은 “일본에서 지하철을 이용하면 세심한 배려를 느낀다”면서 “대부분 열차에 모니터가 2~3개씩 있는데, 하나는 광고만 나오고 나머지는 도착역 등 필요한 정보를 안내하는 데 충실하다”고 말했다. 

일본 지하철은 국내 지하철보다 자세한 정보를 제공한다. 지하철 안에서 이번 역과 문 열리는 방향, 하차 위치에서 역사 밖으로 나가기 위한 출구, 엘리베이터 위치 등을 상세히 보여준다. 도쿄 중심부를 도는 야마노테선(서울의 지하철 2호선과 비슷한 형태)은 ‘목적지까지 몇 분 남았는지’와 같은 정보도 알린다. 도쿄 지하철도 내부가 광고로 가득 차 있지만, 정보 안내의 내실이 한국 지하철보다 꼼꼼하다. 

일본에서는 우리나라처럼 정보 안내 모니터에 오류 화면이 떠 있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라고 한다. 도쿄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이진석씨는 “도쿄 주민 대부분이 그렇듯 전차로 출퇴근하고 있는데, 5년간 고장 난 스크린을 본 적이 단 한 차례도 없다”고 말했다.

일본 지하철이 사용자 친화적으로 변할 수 있었던 배경은 민영화와 사업자 간 자유경쟁이었다. 일본은 1987년 철도회사 일본국유철도를 해체하고 최대 철도 회사인 JR그룹에 사업을 넘겼다. JR그룹 외에도 지역별로 다수의 교통 사업자들이 경쟁하는 구조다. 오사카 등 관서(간사이) 지방은 한신, 한큐, 서일본철도가 경쟁하고 있다. 이로 인해 일본의 교통 사업은 채산성 위주로 변했다. 높은 요금에 걸맞은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는 의식이 자리 잡으면서 정시 도착이나 청결함, 정중한 안내 등이 강화됐다.

르노삼성의 SM6 택시(왼쪽)와 현대자동차의 쏘나타 택시. 2018년 3월부터 출시된 SM6 택시 차량에는 요금 미터기가 룸미러에 내장돼 뒷좌석에서도 한눈에 요금을 볼 수 있다. 반면 현대차의 쏘나타 택시는 변속기 레버 너머에 가려져 있다. 사진 이민아 기자
르노삼성의 SM6 택시(왼쪽)와 현대자동차의 쏘나타 택시. 2018년 3월부터 출시된 SM6 택시 차량에는 요금 미터기가 룸미러에 내장돼 뒷좌석에서도 한눈에 요금을 볼 수 있다. 반면 현대차의 쏘나타 택시는 변속기 레버 너머에 가려져 있다. 사진 이민아 기자

더 편한 택시를 찾기 위해 바다 건너 일본까지 가지 않아도 된다. 르노삼성은 올해 3월부터 양산한 SM6 택시 룸미러에 요금 미터기를 내장시켰다. 뒷좌석에 앉은 승객이 자세를 바꾸지 않고도 편리하게 현재 요금을 볼 수 있다. 이정국 르노삼성 홍보팀장은 “협력사 제일전자공업이 승객은 미터기를 쉽게 확인할 수 있고 기사는 조작하기 편리한 미터기를 만들겠다고 제안했다”면서 “차량에 하이패스 단말기를 내장하는 것 처럼 신형 SM6 택시엔 미터기를 달아 공급한다”고 설명했다. 르노삼성은 이 스마트형 룸미러를 개발하기 위해 중소기업부와 지난해 3월부터 각각 약 4억9000만원씩, 총 9억8500만원을 제일전자공업에 투자했다. 

하지만 일상에서 SM6의 ‘승객이 보기 편한’ 택시를 탑승할 확률은 극히 낮다. 전국개인택시운송사업조합연합회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현대·기아차의 택시 시장 점유율이 93%에 달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대·기아차는 미터기의 불편한 위치에 큰 비중을 두지 않는 분위기다. 현대·기아차 관계자는 “대시보드에서 미터기를 어느 곳에 달지는 미터기 제작 회사의 권한”이라고 설명했다. 국내에서는 미터기 부착 위치를 따로 규정하지 않아서 미터기 제조사의 자율에 맡기고 있다는 의미다. 

일본은 법인택시의 미터기 부착 위치를 법규로 정한다. 일본 국토교통성은 법인택시를 대상으로 ‘미터기는 운전석 옆 등 조작이 용이하며, 뒷좌석에서 표시된 요금을 쉽게 확인할 수 있는 곳에 부착한다’고 규정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