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8일 승객 198명을 태우고 강릉역에서 서울로 향하던 KTX 열차가 탈선하는 사고가 났다. 기관차와 객실 등 열차의 선두 차량이 T 자 형태로 꺾였고, 나머지 차량 8량도 모두 선로에서 이탈했다. 2004년 KTX 개통 이후 열차가 탈선하는 대형 사고는 2011년 광명역 사고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다. 사진 연합뉴스
12월 8일 승객 198명을 태우고 강릉역에서 서울로 향하던 KTX 열차가 탈선하는 사고가 났다. 기관차와 객실 등 열차의 선두 차량이 T 자 형태로 꺾였고, 나머지 차량 8량도 모두 선로에서 이탈했다. 2004년 KTX 개통 이후 열차가 탈선하는 대형 사고는 2011년 광명역 사고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다. 사진 연합뉴스

12월 8일 오전 7시 30분 강릉역에서 출발해 서울로 향하던 KTX 열차가 출발 5분 만에 10량 전부 선로(線路)를 이탈하는 초유의 사고가 발생했다. 열차를 서울 방향으로 틀어주는 선로전환기(열차의 선로를 바꿔주는 장치)가 정상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선로전환기 고장을 알리는 신호기가 엉뚱한 선로전환기를 가리켰다는 점이다. 코레일 현장 직원이 사고 발생 28분 전인 오전 7시 7분 강릉 차량기지 방향의 선로전환기 이상 신호를 최초로 감지했고, 강릉역 역무팀장 등 현장 작업반 3명을 투입했다. 이들은 오전 7시 17분쯤 선로전환기가 정상 작동 중이라며 7시 30분 강릉발 서울행 KTX 열차가 예정대로 출발해도 좋다고 강릉역 관제사에게 보고했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이헌승 자유한국당 의원이 코레일 등으로부터 제출받아 공개한 코레일 철도교통관제센터(서울 구로구), 강릉역·강릉 차량기지, 열차 기장 간 녹취록을 보면, 각 관제센터는 정상 작동 중이던 강릉 차량기지 방향의 선로전환기에 이상이 발생할 수도 있다며, 다른 열차들이 정상적으로 입·출고할 수 있도록 수동 작동까지 준비했다. 사고 발생 직전인 오전 7시 34분까지의 기록이다.

철도 전문가들은 승객의 안전을 담보하는 최전선인 현장이 정상적으로 돌아가지 않은 탓이라고 지적한다. 일부 전문가들은 “대한민국의 하부 경쟁력이 무너지고 있다”고도 했다. 강승욱 가톨릭상지대 철도운전시스템과 교수는 “사회 전반적으로 각자 본분을 다하기보다는 적당주의가 만연한 것이 문제”라며 “시스템으로 움직이는 열차라 하더라도 시공, 유지·보수 등 결국 사람이 해야 하는 영역에서는 ‘제대로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이번 열차 사고에서 사람이 제대로 하지 않은 것은 무엇일까. 복수의 철도 전문가를 통해 사고를 막을 수 있었던 ‘세 번의 기회’를 점검해봤다.


1│신호기 납품 업체, 철도공단의 안이함

문제의 신호기는 애초 시공 때부터 거꾸로 설치됐지만, 그동안 한 번도 점검받지 않아 이 사실을 아무도 몰랐던 것으로 알려졌다. 공교롭게도 8일 오전 선로전환기에 고장이 발생했고, 이를 포착해 경고해야 할 신호가 엉뚱한 선로전환기를 지목해 결국 사고가 났다. 지난해 12월 평창 동계 올림픽을 앞두고 개통된 후 약 450만 명의 승객이 이용한 KTX 강릉선이 1년 동안 ‘운 좋게’ 운행됐던 셈이다.

최진석 한국교통연구원 고속철·철도산업연구팀장은 “신호기를 납품하는 업체가 설치까지 담당했을 텐데 이를 꼼꼼히 하지 않았고, 철로를 깔고 선로전환기 등 각종 신호체계를 구축하는 한국철도시설공단(이하 철도시설공단)이 이를 제대로 점검하지 않은 것이 1년간 방치됐던 것”이라고 말했다.


2│형식적이었던 종합시험운행

사고를 막을 기회는 또 있었다. 지난해 9월 철도시설공단은 KTX 강릉선 완공을 앞두고 종합시험운행을 했다. 종합시험운행은 시운전 열차를 투입해 실제 열차를 운행하는 것과 같은 상황에서 시험운행하는 것으로, 선로·전차선·신호설비 등 안전과 차량 운행 상태를 최종 점검한다. 여기에는 철도시설공단뿐 아니라 열차를 운영, 유지·보수해야 하는 코레일과 이들을 총관리·감독하는 국토교통부 담당자까지 총출동했다. 그러나 이렇게 많은 사람이 투입돼 진행된 종합시험운행에서도 잘못은 전혀 걸러지지 못했다.

동계 올림픽을 앞두고 서둘러 개통하기 위해 통상 6개월간 진행되는 종합시험운행을 1개월로 단축했던 것도 이를 걸러내지 못한 결정적 배경이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3│1년 동안 눈 감고 운영한 코레일

그렇다면 그 이후엔 1년간 열차를 운영한 코레일이 잘못을 바로잡았어야 했다. 그러나 최근 연달아 이상 신호가 감지됐는데도 코레일은 이를 시정하지 않았다. 11월 19일 서울역에 진입하던 KTX 열차가 보수 공사 중인 포클레인을 들이받더니 그다음 날엔 오송역 단전 사고로 경부선 KTX가 10시간 이상 멈춰 섰던 일도 있었다. 코레일은 잇단 열차 사고에 11월 23일부터 12월 4일까지 ‘비상안전경영’ 기간으로 정해 철도안전대책을 확립하겠다고 밝혔다. 비상안전경영 기간이 끝난 지 불과 나흘 만에 탈선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철도 전문가는 “비상안전경영 기간에도 열차 고장 등 사고가 잇따랐고, 큰 인명 피해로 이어질 수 있었던 이번 탈선 사고까지 발생하면서 자체 조치와 구호만으로는 열차 안전이 담보될 수 없는 게 증명된 셈”이라고 지적했다.


7년 전 광명역 탈선 사고 닮은 꼴

많은 전문가는 2011년 2월 11일 발생한 광명역 KTX 탈선 사고가 이번 강릉역 KTX 탈선 사고와 판박이라고 말한다. 당시에도 선로전환기에 이상이 있었는데, 선로전환기 노후 케이블 등을 교체한 정비 용역 업체 직원이 수리 후 너트를 꽉 조이지 않은 것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너트를 헐렁하게 조인 탓에 선로전환기가 작동할 때마다 철도교통관제센터에 이상 신호가 떴던 것이다. 관제센터로부터 에러(잘못) 신호가 잦다는 연락을 받은 코레일 관계자들은 현장 직원을 급파해 선로전환기를 뜯어 점검했지만, 원인을 찾아내지 못했다. 나중에 고치기로 하고 장치를 우선 직진(直進)만 가능하도록 조치했다. 당시 광명역에 들어오는 대부분 KTX 열차가 직진하기 때문에 그렇게 해도 문제가 없다고 오판(誤判)한 것이었다. 사고가 난 열차는 부산에서 광명역까지 왔다가 승객을 태우고 다시 부산으로 가기 위해 선로를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바꾸려 했다. 선로전환기가 직진으로 고정된 상황에서 선로를 바꿔 타려고 방향을 트니 탈선한 것이었다. 이 사고는 막판에라도 코레일 직원이 ‘직진만 가능하도록 조치했다’고 관제센터에 보고했다면 얼마든지 막을 수 있었던 사고라고 철도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국토교통위 소속 자유한국당 이은권 의원은 “적어도 대형 사고로 번질 수 있는 대형 교통수단은 반드시 안전 점검을 이중·삼중으로 할 수 있도록 하부 현장 조직 차원의 매뉴얼을 만들어야 한다”면서 “매뉴얼이 실제 작동하기 위해서는 안전 점검 주체를 명확히 해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해야 제2, 제3의 열차 탈선 사고를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