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도쿄의 한 서점에 전시돼 있는 ‘82년생 김지영’ 등 30여 종의 한국 출판물. 일본 11개 출판사가 힘을 합쳐 일본 일부 서점에 ‘한국문학 페어’ 전시를 마련했다. 사진 김승복
일본 도쿄의 한 서점에 전시돼 있는 ‘82년생 김지영’ 등 30여 종의 한국 출판물. 일본 11개 출판사가 힘을 합쳐 일본 일부 서점에 ‘한국문학 페어’ 전시를 마련했다. 사진 김승복

“한류가 일본에 정착한 지 15년. 드라마, K팝(K-POP)으로 이어진 물결이 지금 문학에 도달했다. 소설 ‘82년생 김지영’을 비롯해 다양한 한국문학이 속속 일본어로 번역돼 인기를 끌고 있다.” 일본 아사히신문은 9월 11일 교토 도시샤대학에서 열린 ‘82년생 김지영’의 저자 조남주 작가의 북콘서트가 성황리에 끝났다는 소식을 전하며 이같이 보도했다. 이날 행사에는 약 500명이 참석했다. 아사히신문은 “도쿄나 규슈에서 왔다는 사람도 있었다”고 전했다.

지난해 12월 일본에서 발행된 ‘82년생 김지영’은 출판한 지 1년도 안 된 2019년 10월 11일 현재 14만 부 넘게 팔렸다. 올해 3월 일본에서 발매된 에세이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작가 김수현)’의 판매 속도는 더 빠르다. 이 책은 발행된 지 7개월 만에 20만 부가 넘게 팔렸다. 일본 경제 주간지 ‘동양경제’가 기사에서 “문학작품은 안 팔린다, 번역문학은 더 안 팔린다고 하는 요즘, 왜 한국문학이 주목받는 것일까”라는 의문을 품을 정도다.

일본 계간지 ‘문예’는 올해 가을호에 한·일 작가 10명의 이야기를 담은 ‘한국·페미니즘·일본’ 특집을 냈다. 이 책은 창간 86년 만에 처음으로 3쇄를 찍는 기록을 세웠다. 한·일 관계가 그 어느 때보다 냉랭한 지금, 일본에서 한국문학에 대한 열기만큼은 뜨거운 이유를 분석했다.


포인트 1│日서 약한 페미니즘문학을 보완

출판업계에선 일본 내에서 여성 차별 문제에 대한 관심이 커진 사건이 발생한 것을한국문학에 대한 관심을 높인 이유 중 하나로 꼽는다. 지난해 일본에선 도쿄 의대가 12년 동안 여성 합격자의 비율을 낮추기 위해 여성 지원자의 점수를 일괄적으로 감점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여성들의 공분을 샀다. ‘82년생 김지영’을 번역한 사이토 마리코는 “최근 일본 고위 공무원이 여기자를 성희롱하는 사건 등이 발생했다”며 “일본 내 여성 차별에 대한 문제의식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82년생 김지영’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의 주인공은 모두 여성이다. 이들 작품은 주인공인 여성을 내세워 지금까지 사회에 퍼져있는 남녀의 성 역할에 의문을 제기한다. ‘82년생 김지영’은 주인공 김지영을 통해 여자라서 당한 부당함을 드러낸다.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 역시 부조리한 현실에서 여성이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보여준다는 면에서 페미니즘문학으로 볼 수 있다.

한국 페미니즘문학이 인기를 끌자 조남주 작가의 또 다른 페미니즘 소설인 ‘현남 오빠에게’, 어머니와 딸의 이야기를 담은 ‘딸에 대하여(작가 김혜진)’, 다른 국적과 언어를 사용하는 두 여성이 만나 성장하는 과정을 그린 ‘쇼코의 미소(작가 최은영)’ 등이 일본에 출간됐다.

‘동양경제’는 “일본에는 유감스럽게도 페미니즘문학이라고 이름 붙인 작품들이 없었다”며 “최근 일어난 성차별과 성희롱 문제로 일본에서도 페미니즘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남녀 문제에 대한 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한국문학을 찾고 있다”고 분석했다.


포인트 2│사회 문제 녹여내는 힘

한국문학 자체의 질이 높은 것도 인기 비결 중 하나다. 특히 사회 문제를 개인사에 녹여 내는 작품들이 주목받고 있다. 일본에서 한국문학이 본격적으로 관심을 받기 시작한 것은 2016년부터다. 작가 한강이 ‘채식주의자’로 세계 3대 문학상 중 하나인 맨부커상을 받은 것이 계기였다.

물론 이전에도 한국문학은 일본에 소개됐다. 1970~80년대에는 주로 시인 김지하, 소설가 이문열 등의 작품이 일본에 출간됐다. 그동안 일본에선 한국문학이 식민지, 민주화 운동 등 대부분 정치, 사회와 관련된 무거운 주제를 다루는 것으로 인식돼 독자층이 넓지 않았다. 주요 독자층은 한국 문제를 연구하는 학자들이었다.

반면 최근 출간된 작품들은 사회 문제를 다룰 때도 개인사를 소재로 하기 때문에 일반 대중도 이해하기 쉽다는 특징이 있다. 예컨대, 최은영 작가는 소설 ‘쇼코의 미소’에 담긴 7개의 단편 중 하나인 ‘미카엘라’에서 손녀를 잃어버린 할머니의 입을 통해 세월호 사건을 다룬다.

일본에서 한국문학 시리즈를 펴내고 있는 쿠온출판사의 김승복 대표는 “그동안 일본에선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등이 인간 내면의 이야기를 다루는 데는 탁월하지만 사회성과 역사성이 부족하다는 비판을 받았다”며 “한국 작가들은 세월호 같은 민감한 사회 문제를 소설로 엮어내는 능력이 뛰어나다는 점에서 일본 작가들과 대비된다”고 말했다.


포인트 3│BTS, 한국문학 인기에 일조

드라마 ‘겨울연가’에서 시작해 K팝으로 이어진 한류 열풍도 한국문학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데 일조했다. 실제로 ‘82년생 김지영’은 방탄소년단(BTS)의 리더 RM이 한 일본 방송에서 언급하면서 화제를 모았다.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는 방탄소년단의 멤버 정국이 읽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일본에서 인기를 얻었다.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정국의 방에 이 책이 있는 장면이 노출된 것이 계기였다. 그에 힘입어 지난 7월 아마존 재팬에서 에세이 분야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3개월이 지난 10월 현재에도 아마존 재팬 에세이 분야 3위에 올라있다.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를 펴낸 출판사 마음의숲 관계자는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한류의 중심인 방탄소년단이 읽었다는 사실이 판매 증가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Plus Point

[Interview] 김승복 쿠온출판사 대표
“한국어 원서 읽는 일본 독자도 많아”

김승복 쿠온출판사 대표. 사진 김승복
김승복 쿠온출판사 대표. 사진 김승복

일본에서 부는 한국문학 열풍은 한국문학을 소개하는 출판사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2007년 설립된 일본 쿠온출판사는 2011년 ‘새로운 한국문학’ 시리즈 첫 작품으로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선보였다. 5년 뒤 ‘채식주의자’가 맨부커상을 받으면서 일본 내 한국문학 열풍을 일으키는 불쏘시개가 됐다.

쿠온출판사는 그동안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작가 은희경)’ ‘세계의 끝 여자친구(작가 김연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작가 박민규)’ ‘소년이 온다(작가 한강)’ ‘살인자의 기억법(작가 김영하)’ ‘쇼코의 미소(작가 최은영)’ 등 19권의 책을 일본에 선보였다. 일본 도쿄에 사는 김승복 쿠온출판사 대표를 전화로 인터뷰했다.


일본 현지에서 한국문학이 인기라는데.
“일본 도쿄의 출판거리인 진보초(神保町)에서 서점을 운영하고 있는데, 한국문학을 찾는 일본인이 늘었다. 한국어 원서를 읽는 독자도 많다.”

한국문학이 일본에서 관심을 받는 이유는.
“한류 영향이 크다. 그동안 한국 드라마와 K팝을 접하면서 한국 문화에 자연스레 젖어든 사람 대부분은 한국어와 한글에도 관심을 가진다. 이것이 한국 책을 읽고자 하는 욕망으로 이어졌다. 한국문학 열풍은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니라 한류의 연장선상에 있다.”

일본에서 인기 있는 작가는.
“한강, 박민규, 편혜영, 정세랑, 최은영 등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한 편이 인기를 얻으면 그의 모든 작품을 읽듯이 일본에서도 한국의 인기 작가가 지금까지 내놓은 작품 전부를 번역하는 것이 최근 추세다. 한강의 소설을 모두 번역해 내놓는 식이다.”

일본에서 20번째로 출간할 작품은 뭔가.
“작가 김훈이 2011년 발표한 소설 ‘흑산’ 출간을 준비하고 있다. 조선시대 지식인들의 내면을 다룬 작품인데 인문학적 가치가 있다고 판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