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준 강원대 공과대 컴퓨터공학 학사, 서울대 의과대 방사선응용생명과학 석사·박사, 전 서울대학교병원 의료기기혁신센터 부센터장, 현 서울대 의과대 영상의학과 겸임교수
박상준
강원대 공과대 컴퓨터공학 학사, 서울대 의과대 방사선응용생명과학 석사·박사, 전 서울대학교병원 의료기기혁신센터 부센터장, 현 서울대 의과대 영상의학과 겸임교수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환자도 다 같은 환자가 아닙니다. 중증도에 따라 좀 더 세분돼야 제대로 치료를 할 수 있는데, 지금은 이 분류 과정이 사실상 공백입니다. 컴퓨터단층촬영(CT)을 해야 하는데 방사선 피폭 때문에 기피하고 있거든요. 전 세계 의료진이 모두 이 같은 문제에 봉착해 있습니다.”

1월 28일 서울 종로구 원남동에서 만난 ‘메디컬아이피’ 박상준(42) 최고경영자(CEO)는 인공지능(AI) 기술을 이용해 엑스레이(X-ray) 사진 한 장에서 코로나19를 모니터링할 수 있는 기술을 세계 최초로 개발해 이 같은 공백을 메웠다고 말했다.

박 CEO는 코로나19 환자의 사망률이 발병 초기와 크게 다르지 않은 1.8%인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이 같은 공백 탓이라고 지적했다. 메디컬아이피가 코로나19와 전쟁을 벌이는 의료진에게 이 문제를 해결할 솔루션을 제공하게 된 기술력은 어디서 나온 걸까.

2015년 설립된 메디컬아이피는 엑스레이와 CT 같은 의료 영상 데이터를 기반으로 하는 AI 플랫폼을 개발·서비스하는 기업이다. 서울대병원 1호 스핀오프 스타트업이기도 하다. 컴퓨터공학을 전공하고, 서울대 의과대 영상의학과 교수를 겸임하고 있는 박 CEO는 ‘만성 폐질환을 예측하는 컴퓨터 기술’을 주제로 한 박사학위 논문을 바탕으로 기관지 및 폐 질환을 조기 진단하는 AI 기술 개발에 매달렸다. 현재 메디컬아이피는 올림푸스, 존슨앤드존슨, 메드트로닉 등 글로벌 의료 기기 업체와 협력을 확대하며 매출을 끌어올리고 있다. 지난해 매출은 전년 대비 207% 증가했다.

“책임지지 못할 기술은 만들지 않는다”는 박 CEO의 고집도 코로나19에 메디컬아이피의 기술력을 부각시킬 수 있는 밑천이 됐다. 70분가량 진행된 이날 인터뷰에서 박 CEO는 ‘책임’을 여러 번 언급했다. 책임질 수 있는 의료 AI 기술로 질환을 조기 진단해 생명을 더 구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박 CEO는 지난해 12월 전 세계에 무료 배포한 ‘티셉(TiSepX)’ 프로그램에 강한 자신감을 나타냈다. 티셉은 코로나19 환자의 폐렴 병변(질병 부분 또는 질병으로 변화한 조직) 데이터를 AI로 정량화한 프로그램이다. 누구든 티셉 웹사이트에 접속해 본인 엑스레이 사진을 첨부하면, 코로나19 폐렴 병변의 면적과 비율 등을 수치화한 결과를 무상으로 볼 수 있다. 이 프로그램은 현재 중증도 구분 없이 이뤄지는 코로나19 치료에 큰 변화를 불러올 수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티셉만이 메디컬아이피가 내세우는 AI 기술은 아니다. 티셉 출시 전, 코로나19를 자가 진단할 수 있는 ‘메딥 코비드19(Medip COVID19)’와 의료용 3D프린팅 기술을 선보였다. 메딥 코비드19는 국내 AI 의료 영상 분석 기업 중 최초로 미국 식품의약국(FDA) 인증을 받았다. 박 CEO는 “앞으로 선보일 기술이 100가지가 넘는다”라고 했다. 컴퓨터공학자·의학자·교수 그리고 CEO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박 CEO의 이야기를 들었다.


지난해 무료로 배포한 메디컬아이피의 ‘티셉(TiSepX)’. 왼쪽의 엑스레이 사진을 인공지능으로 분석해, 폐의 코로나19 감염 정도를 세밀하게 보여준다. 사진 메디컬아이피
지난해 무료로 배포한 메디컬아이피의 ‘티셉(TiSepX)’. 왼쪽의 엑스레이 사진을 인공지능으로 분석해, 폐의 코로나19 감염 정도를 세밀하게 보여준다. 사진 메디컬아이피

조기 진단하는 AI, 어떤 원리인가.
“기관지와 폐 질환을 앓는 환자들은 아프고 나서야 병원을 찾아온다. 그땐 이미 늦은 거다. 환자가 아프기 전에 찾아와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게 하고 싶었다. 먼저 서울대병원의 의료 빅데이터 자료를 공급받으면 MCC(메디컬 콘텐츠 크리에이터)라 불리는 사내 데이터 과학자들이 각종 의료 데이터를 분석한다. 정제된 데이터를 AI가 딥러닝으로 학습해 진단한다. AI는 엑스레이와 CT 사진을 보고 단순히 ‘이곳에 몇 퍼센트의 확률로 병이 있다’라는 진단만을 하지 않는다. 꾸준하게 폐 병변 패턴을 분석하기 때문에 얼마만큼 어디에 몇 퍼센트로 병이 퍼졌는지 정밀하게 진단한다.”

오진 가능성은 없나.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 섬세한 과정을 거친다. 사내 데이터 과학자 대부분이 해부학 전공자다. 전문성이 보장된 직원이다. 데이터 분류와 가공을 마치면 임상 절차를 거친다. 그 후 서울대병원 영상의학과 교수들이 참여하는 ‘빅데이터 위원회’의 심의를 받는다. 마지막으로 의학 논문을 내 AI로 진단한 결과가 정말 정확한지를 검증받는다.”

코로나19 폐렴 병변을 정량화하는 게 왜 중요한가.
“1, 2, 3기로 나뉘는 중증도에 따라 적절한 치료 방식과 때가 있는데, 현재 코로나19 진단 과정에서는 폐렴 병변을 기준으로 중증도를 구분하는 단계인 ‘트리아지(Triage)’가 부재하다. 병원도 중증도에 따라 가동돼야 하는데, ‘확진자다, 아니다’로만 돌아가고 있다. 트리아지 단계에 맞춰 치료를 진행하면 병원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현재 코로나19 대응 방식은 진단 키트와 백신에만 치중돼 있다. 예를 들면 폐렴 병변 비율이 0.5% 이하면 치료하지 않고 자가 격리만 해도 된다. 그러나 보통 5% 이상인 환자는 예후가 안 좋아진다. 이런 사람들을 재빠르게 입원시켜 ‘골든타임’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사망률을 낮출 수 있다. 자가 격리를 하다 사망하는 환자 대부분이 중증도가 높다.”

티셉과 메딥 코비드19 비용을 받지 않는 이유는.
“이유는 간단하다. 유례없는 팬데믹(감염병 대유행) 사태에 모두가 고통받고 있기 때문에 돈을 받지 않았다. 서울대병원이 이익 창출을 좇는 병원이 아닌 것처럼, 스핀오프 스타트업인 우리도 이익 창출만을 추구하진 않는다. 진단을 초월한 ‘예측’과 모니터링을 하고 싶다. 이를 통해 조기 치료까지 이어진다면 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을 것이다.”

조기 진단으로 치료한 사례가 있나.
“의료용 3D프린팅 기술로 서울대병원에서만 600명이 넘는 환자가 치료를 받았다. 3D 프린팅으로 수술 시뮬레이션을 하는 건데, 수술 성공률을 대폭 높이고 실패율을 낮출 수 있다. 의료진이 시뮬레이션을 미리 보면 위험한 수술인지 아닌지 판단이 정확하게 서기 때문에 의료 사고도 방지하는 장점이 있다.”

또 다른 AI 의료 서비스가 있다면.
“지난해 10월에 출시한 ‘딥캐치’ 플랫폼의 성장이 기대된다. 딥캐치는 AI로 CT 사진을 분석해 전신의 체성분을 파악하는 서비스다. 대사성 질환을 예방하기 위해 개발했다. 딥캐치는 CT 사진에 나와 있는 근육과 지방층을 수치화해서 부피를 AI로 측정해 보여준다. 근육이 감소하는 질환인 근감소증을 겪게 되면 여러 대사성 질환에 노출되기 쉬운데, 딥캐치가 측정한 정밀한 근육량을 바탕으로 질환을 예방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암 환자는 항암 치료를 지속해서 받게 되면 야위어 간다. 근육량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암 환자의 근육과 지방량의 비율을 잘 맞추기만 해도 생존율은 올라간다. 고령화 시대의 치명적인 질환 중 하나인 근감소증이 생기는 것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을 거라 본다.”

AI 윤리 문제가 화두다. 의료 AI는 어떤 윤리 기준을 지켜야 하는가.
“의료는 전문 분야라 다른 AI 영역과는 다르다. AI를 프로그래밍하고 만드는 전문가인 ‘사람’이 모든 문제에 책임감을 느끼고 임해야 한다. 메디컬아이피는 책임지지 못할 기술을 만들지 않는다. 윤리적인 기준은 AI가 아닌 사람에게 물어야 한다. 메디컬아이피의 기술로 어떤 의학적·사회적 기여를 할 것인지 매일 고민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