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음식점 메뉴판에 인상된 가격 스티커가 붙어 있다. / 조선일보 DB

올해 취업한 사회초년생 박모(28)씨는 여자친구를 만나는 주말이 두렵다. “주말에 여자 친구랑 영화 보고 밥 먹고 커피 마시면 각자 계산하더라도 하루에 4만~5만원 쓰는 게 기본”이라며 “그렇다고 집에만 있을 수도 없고, 투잡이라도 뛰어야 할지 고민”이라고 말했다. 박씨는 자주 다니던 회사 앞 식당 메뉴들이 올라 점심 밥값도 부담스럽다.

경기도 일산의 40대 주부 김모씨는 “장을 보면 오르지 않은 품목을 찾아보기 힘들다”며 “치킨, 피자까지 가격이 올라 이제는 외식하기가 어려워졌다”고 했다. 김씨는 “물가 상승률이 1%대라고 하지만 달걀 빼고는 대부분 가격이 올랐다”고 말했다.

최저임금 인상과 함께 생활물가 상승이 멈출 기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채소류·축산물·과일 등 전반적인 장바구니물가가 상승한 것은 물론 외식·프랜차이즈 업계가 가격을 올리면서 거침없는 물가 상승으로 이어지고 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농수축산물과 서비스 물가가 오른 것이 가장 큰 물가 상승 요인”이라며 “최저임금 인상 등 인건비 상승도 외식 업계가 가격 인상 대열에 뛰어든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한국소비자원이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주요 외식비 추이를 살펴본 결과, 조사 대상 8개 품목 모두 지난해 3월에 비해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김밥(5.9%)이 가장 많이 올랐고 자장면(4.0%)·삼겹살(200g 환산·3.5%)·비빔밥(3.5%)·칼국수(3.2%)·냉면(3.2%)·삼계탕(3.1%)·김치찌개백반(2.4%)순이었다. 특히 김밥·자장면은 지난해 3월 이후 가격이 상승하는 추세이며 삼겹살은 지난해 3월부터 가격이 계속 상승하다가 올해 3월 들어 하락세로 전환했다. 박씨는 “요즘 한 끼 식사값이 8000~9000원에서 많게는 1만원까지 오르면서 지갑 열기가 망설여진다”고 말했다.

주부들이 느끼는 물가 상승도 만만찮다. 만약 저녁 반찬으로 오징어볶음을 한다고 하면 지난해보다 생물 오징어 두마리를 사는 데 827원을 더 줘야 한다. 생물 오징어 평균가가 지금 두 마리에 8461원인데 지난해에는 7634원이면 샀다. 쌀 가격은 지난해 동월 대비 26.4%가 올랐다.

외식 프랜차이즈 업계도 대부분 가격을 인상했다. 피자 프랜차이즈 도미노피자는 지난 6일부터 가격을 올렸다. 라지(L) 사이즈 피자는 1000원, 미디엄(M) 사이즈는 500원 올렸다.

햄버거와 샌드위치 브랜드들 역시 일찌감치 가격을 인상했다. 버거킹은 3월 2일부터 일부 메뉴에 한해 가격을 100원(1.6%)씩 인상했다. 주력 제품인 와퍼와 불고기 와퍼의 경우 버거 단품 기준, 기존 5600원에서 100원 오른 5700원에 판매되고 있다.

맘스터치는 싸이버거 등 버거 제품에 한해 2월 22일부터 가격을 200원씩 올렸다. 맘스터치의 이번 가격 조정은 2013년 이후 5년 만이다. 임차료, 원재료 등의 상승을 고려해야 한다는 가맹사업주들의 목소리를 반영했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서민들이 즐겨 찾는 치킨 가격도 오른다. 교촌치킨은 5월부터 전국 가맹점에서 배달 주문 시 건당 2000원의 이용료를 부과한다. 치킨의 경우 배달 고객이 대다수이기 때문에 사실상 소비자 입장에서는 2000원씩 가격을 인상한 것과 다름없다. BBQ 등 다른 치킨 브랜드도 제품 가격 인상과 배달비 유료화 등을 검토하고 있어 사실상 치킨값 2만원 시대를 앞두고 있다.

멀티플렉스 극장 CJ CGV가 지난 11일부터 영화관람료를 1000원 올리면서 롯데시네마와 메가박스도 요금 인상을 검토 중이다.

올해 하반기에는 지하철, 택시비 등 대중교통비까지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서울 지하철 1∼8호선을 운영하는 서울교통공사는 내년에 지하철 기본요금을 200원 인상하는 방안을 서울시에 건의했다.

서울시는 택시요금 인상을 검토하고 있다. 기본요금을 3000원에서 최대 4500원으로 25% 인상하는 방안과 기본요금을 3000원에서 3900원으로 15%가량 올리고 택시 기사가 회사에 내는 사납금을 동결하는 방안 등이 거론된다. 경기도까지 택시요금 인상 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연구용역을 발주했다.


통계물가보다 체감물가 더 높아

소비자들의 체감물가는 급격하게 상승하고 있지만, 통계청이 매월 발표하는 소비자물가 동향을 보면 올 3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전년 동월 대비 1.3%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소비자들이 실제 느끼는 것과는 차이가 많다.

성태윤 교수는 “식료품이나 다른 외식 관련된 비용들은 올라가고 있는 데 비해서, 실제로 구매하지 않는 부분들의 가격은 하락하면서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소비자들이 체감하고 있는 물가와 차이가 난다”고 말했다.

소비자가 체감하는 장바구니물가보다 통계물가가 낮은 것은 ‘가중치의 왜곡’ 때문이다. 현재 통계청이 물가를 계산할 때 보는 품목은 460가지다. 그리고 그 460가지에 모두 가중치가 있다. 전국의 표본가구(전·월세 가구)가 한 달에 어디에 얼마나 돈을 썼나를 바탕으로 해서 어떤 품목에는 가중치를 더 주고, 어떤 품목은 덜 준다. 예를 들어서 지금 월세 가중치는 43인데, 생물 오징어는 1이다. 소비자들이 한 달에 1000원을 쓴다고 하면 월세 내는 데 43원을 쓰고, 오징어 사는 데는 1원을 쓴다는 얘기다.

가중치가 높은 품목에는 전·월세 비용, 자녀 학원비, 휴대전화 요금 그리고 휘발유 등이 있다. 하지만 이런 품목들은 돈을 많이 내긴 하지만 자주 쓰지 않는다. 한 달에 한 번 월세 내고, 전세는 2년에 한 번 목돈을 낸다. 반면 가정에서 자주 먹는 과일이나 채소는 가중치가 낮다. 자주 사고 매일 먹는 쌀 5, 오징어 1, 자장면은 1.5다. 이렇게 물가를 집계하다 보니 통계로 잡히는 물가 상승률이 낮게 나온 것이다. 전·월세값보다 쌀처럼 장바구니물가를 구성하는 생활 품목으로 소비자물가를 매기자는 주장이 거센 것도 이 때문이다.

생활 품목을 소비자물가에 반영하자는 지적은 타당하다. 하지만 물가 영향이 큰 국제 유가나 주거비가 향후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기 때문에 가중치를 바꾸는 것에 신중할 수밖에 없다.

물가를 잡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전문가들은 주택·교육·의료·식료품 등 4개 분야 물가를 잡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물가를 안정시키기 위해선 공공 서비스의 가격을 잡아야 한다”며 “이와 함께 유통구조를 합리화하고 주택비·교육비를 안정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Plus Point

물가 상승 압박에
금리 인상은 하반기로

한국은행은 수요 측 물가 상승 압력이 점차 높아지며 하반기 물가 상승률이 1%대 중·후반으로 상승할 것이란 전망을 내놓고 있다. 한은은 상반기(1.4%)보다 하반기(1.7%) 들어 물가 상승 압력이 강해질 것으로 내다봤다. 내수경기 회복세와 국제 유가 상승 등의 영향으로 연말에는 1%대 후반이 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얼어붙은 고용 시장과 미·중 무역분쟁 심화 등 대외 리스크로 약해지는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감은 변수로 꼽힌다. 예상보다 경기 회복세가 더딜 경우 물가 상승 압력은 약해질 수밖에 없다. 원화 강세가 되면 수입 물가가 하락해 국내 물가 상승세가 둔화된다. 이미 한반도 지정학적 리스크 완화 등으로 원화 강세(원·달러 환율 하락)가 이어지면서 물가 하락 압력을 더하고 있다. 시장에선 한은이 상반기 금리를 현 수준으로 묶어두는 가운데 7월을 기점으로 완만한 금리 인상 기조를 이어갈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