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 펜스 부통령은 4일 허드슨인스티튜트에서 “미국은 (중국의 도발에) 절대 물러서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의 연설은 중국을 향한 미국의 신냉전 선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사진 블룸버그
마이크 펜스 부통령은 4일 허드슨인스티튜트에서 “미국은 (중국의 도발에) 절대 물러서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의 연설은 중국을 향한 미국의 신냉전 선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사진 블룸버그

2016년 트럼프가 미국의 45대 대통령으로 취임하면서 반(反)덤핑 관세 문제를 들고 나왔을 때만 하더라도 세계는 그의 머릿속에 어떤 구상이 있는지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로부터 2년 뒤인 올해 미국은 세 차례에 걸쳐 중국산 제품에 관세를 부과했고, 중국도 맞보복에 나섰다.

미·중 무역전쟁이 11월 중간선거를 기점으로 마무리될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지만, 양국 대립이 정치·외교·안보 등 모든 분야로 확대될 것이라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10월 4일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의 허드슨인스티튜트 연설은 이런 우려가 현실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이날 펜스 부통령은 워싱턴 DC에 있는 싱크탱크이자 미국 정통 보수파 본진인 허드슨인스티튜트에서 직설적으로 중국을 비난하며 유례없이 “미국은 절대 물러서지 않는다”고 경고했다. 펜스 부통령은 또 “중국은 국가 주도 아래 미국과 세계 안보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쳐 왔으며, 미국을 겨냥한 중국의 무역전쟁은 이미 수년간 지속돼 왔다”면서 “이전 행정부와 달리 우리는 이런 상황에 확실히 대응해 나가겠다”고도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 정치철학의 기틀을 잡아주는 펜스 부통령의 연설을 두고 국제정치 전문가들과 외신들은 ‘신(新)냉전 체제의 서막이 열렸다’는 분석을 쏟아냈다. 미국·소련의 냉전 시대였던 1987년 베를린장벽에 둘러싸인 브란덴부르크문 앞에서 소련 진영을 향해 “(평화를 원한다면) 이 장벽을 허무시오(Tear down this wall)”라고 외쳤던 레이건 대통령의 명연설에 버금가는 선언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레이건 연설 2년 뒤인 1989년 베를린장벽은 실제로 무너졌다.

국제정치학자인 월터 러셀 미드 바드대 교수는 월스트리트저널(WSJ) 기고문에서 “펜스 부통령의 이번 연설은 미국의 공식적인 대중국 냉전 선언이자 미국 외교 정책의 대전환을 의미한다”며 “앞으로 새로운 국제 질서가 생길 것”이라고 진단했다. 더글러스 딜런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교수도 파이낸셜타임스(FT) 기고문에서 “펜스는 사실상 중국과 냉전을 선언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펜스 부통령은 무역전쟁에서 더 나아가 중국의 티베트·신장위구르에 대한 인종 탄압,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과 같은 정치·외교 문제, ‘중국 제조 2025(핵심 제조 분야에서 중국이 강국이 되겠다는 것)’ ‘일대일로(一帶一路·육 해상 실크로드)’ 등 경제 정책 문제까지 건드렸다. 지난 3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무역전쟁의 포문을 열던 당시 중국의 지식재산권 침해 문제만 지적했던 것과 비교하면 공격 범위가 전방위로 확대된 것이다. 이 때문에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장기화할 것이란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역사는 7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국은 장기간에 걸쳐 소련 경제를 무너뜨려 냉전을 종식시켰다. 제2차세계대전 직후인 1947년 미국은 반공(反共)·군사·경제 원조 원칙인 ‘트루먼 독트린’을 선언했다. 서방국의 경제 발전을 지원해 소련이 비집고 들어갈 틈을 없앴다. 고립된 소련 경제는 빠르게 고사되기 시작했다. 15%에 달하던 소련의 경제 성장률은 1980년대 후반 들어 마이너스로 추락했다. 트럼프 정부가 이런 역사의 재현을 염두에 두고 있다면, 중국에 대한 미국의 공세가 단기간에 끝나지 않을 수도 있다.최근 케빈 워시 전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이사는 “신경제 냉전 체제가 적어도 10~20년은 갈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중국 경제가 소련처럼 미국 공격에 그대로 무너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게 전문가의 분석이다. 냉전 시대에는 미국 중심의 자본주의 경제와 소련 중심의 사회주의 경제가 분리돼 있었기 때문에, 미국이 소련 경제를 공격하더라도 미국에 미치는 경제적 악영향은 크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전혀 다르다. 급속한 글로벌화로 미국과 중국의 금융·실물 경제가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다. 미국 재무부에 따르면 중국은 9월 기준 미국 국채 1조1710억달러어치를 보유한 최대 채권국이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미국이 직접적인 고사 정책보다는 견제 강도를 다각도로 높이는 방법을 쓸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미국은 펜스 부통령 연설 이후 각종 후속 조치로 중국의 손과 발을 묶고 있다. 최근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나프타)을 대체해 미국이 캐나다·멕시코와 맺은 새 무역협정(USMCA)에는 대중(對中) FTA 거부권을 추가했다. 중국을 경제적으로 고립시키는 조항이다. 또 대통령 서명을 받은 ‘건설법(BUILD Act)’은 개도국 인프라 사업에 뛰어드는 기업을 보조하는 내용이 골자다. 일대일로 정책 견제에 나선 것이다.


“중국 성장구조 전환에서 기회 찾아야”

양국 간 무역전쟁이 장기화하면 한국의 타격은 커진다. 한국의 1, 2위 무역 상대국이 중국과 미국이기 때문이다. 한국 수출에서 두 나라가 차지하는 비율은 24.7%(중국), 12%(미국)에 이른다. 무역전쟁을 벌이는 양국이 경쟁적으로 관세 장벽을 쌓으면, 한국의 주력 수출 품목인 반도체·자동차·화학·철강 산업이 타격을 입을 수도 있다.

한국의 국제정치 전문가들은 “과거 한국 경제는 대만과 함께 냉전의 혜택을 받아 성장했지만, 이번에는 상황이 전혀 다르다. 한국 경제는 결정타를 맞을 것”이라고 말한다.

한국의 대중국 수출 중 부품·중간재가 차지하는 비율은 78.9%에 달한다. 중국 산업은 한국산 반도체·석유화학 제품, 기계류 등 중간재를 수입해 완제품으로 만들어 미국에 수출하는 구조다. 미국이 중국산 상품 수입을 제한하면 중간재 수출의 타격은 불가피하다. 강승원 NH투자증권 연구원은 “무역전쟁으로 국내 기업이 구축해놓은 가치사슬 끊기면 그 부작용이 내년 수출 지표에 본격적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며 “그나마 우리 경제를 지탱하는 수출까지 부진해지면 경제에 큰 부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한국 산업계가 신냉전 체제에서 기회를 찾아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중국은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성장 구조 전환을 시도하면서 투자를 늘리고 있다. 이런 움직임이 더욱 강화될 가능성이 크다. “(신냉전 시대엔) 투자와 기술 분야에서 양적 팽창이 이뤄질 것”이라고 전망한 뉴욕타임스(NYT)의 분석과 일치한다. 데이터 수집 업체 벤처소스에 따르면 올해 중국 스타트업들이 투자받은 돈은 710억달러로 처음으로 미국(700억달러)을 넘어섰다.

신중호 이베스트투자증권 스트레티지스트는 “한국 기업들은 미국과 중국의 경쟁 과정에서 새로운 기회를 찾아야 한다”면서 “중국 정부가 집중 육성하는 미래 산업군에서 앞으로 더 큰 사업 기회가 생길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한국은행은 지난 8월 발표한 ‘중국 경제 개혁·개방 40년, 성과와 과제’ 보고서에서 “중간재 중심인 대중 수출 전략을 수정하고, 신흥 전략 산업과 4차 산업혁명 관련 산업에서 중국 기업과 제휴를 적극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