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왼쪽)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6월 30일 판문점 군사분계선(MDL)을 사이에 두고 손을 맞잡고 있다. 사진 조선중앙통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왼쪽)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6월 30일 판문점 군사분계선(MDL)을 사이에 두고 손을 맞잡고 있다. 사진 조선중앙통신

트위터 한 줄로 세기의 만남이 성사됐다. 2019년 6월 30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판문점 회담은 전 세계 언론과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정세의 기류를 단번에 흔들어 놓았다.

트럼프는 1953년 정전협정 이후 재임 중 북한 땅을 밟은 최초의 미국 대통령이 됐고, 남·북·미 정상 간 짧은 회동도 이뤄졌다. 하노이 회담이 열린 2월 27일 외신 뉴스 앱은 트럼프 대통령한테 불리한 마이클 코언 증언 알람으로 시끄러웠다. 판문점 회담 당일에는 트럼프가 북한 땅을 밟은 뉴스 알람이 계속 울렸다. ‘헤이, 헤이, 무브, 무브, 컴온, 컴온!’ 등 취재진과 경호 인력이 뒤엉킨 현장도 실시간으로 전 세계에 생중계됐다. 트럼프 각본·주연의 ‘리얼리티 쇼’가 대성공을 거둔 것이다.

트럼프는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경색된 미·북 관계를 바꿔 놓은 동시에 북·중 관계는 벌려 놓았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오사카에서 열린 G20 정상회담 직전 북한을 방문했던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트럼프와 김정은의 판문점 회담을 중개했을 가능성은 없다고 분석했다. 중국을 제외한 남·북·미 간의 3자로 한국전쟁 종전의 틀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세기의 만남에 대한 외교·안보 전문가들이 말하는 관전 포인트는 세 가지다. 첫째, 미·북 사이 어젠다 변화, 둘째, 미국의 북한 비핵화 목표 완화 여부, 셋째, 한국의 국가 이익 찾기 해법이다.

외교·안보 전문가들은 북한의 대미 외교 초점이 제재 완화에서 ‘체제 보장’으로 확실히 이동했다고 말한다. 하노이 회담 결렬에 충격받은 김정은이 4월 13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제재 해제 문제 때문에 목이 말라 미국과 수뇌 회담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게 된다”고 말한 것이 시작이었다. 김정은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잇따라 만나 미·북 협상에서 체제 보장이 핵심이며 북한의 비핵화 조치에 대한 미국의 상응 조치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줄기차게 제기했다. 이런 입장은 G20 회의에서 푸틴과 시진핑의 입을 통해 한국과 미국에 재차 전달됐다.

전격적인 미·북 판문점 회담 직후 나온 뉴욕타임스(NYT) 보도는 두 번째 관전 포인트, 즉 트럼프 행정부의 북한 비핵화 목표 수정 논란을 잘 보여준다. 6월 30일(현지시각) 뉴욕타임스는 트럼프 행정부가 핵을 완전히 폐기하는 것이 아닌, 더 핵을 만들지 않는 ‘핵동결’ 수준에서 합의할 가능성이 있다는 보도를 내놓았다. ‘새로운 협상에서 미국이 북핵 동결에 만족할 수도 있다’는 제목의 기사였다. 이는 트럼프 행정부가 사실상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암묵적으로 인정할 것이라는 얘기였다.

여기에 미국의 북핵 실무 협상 책임자인 스티븐 비건 국무부 대북정책특별 대표의 발언도 전해져 파문이 커졌다. 미 인터넷 매체 악시오스도 같은 날, 한국에서 미국으로 돌아가던 비건이 오프더레코드(비보도)를 전제로 “우리가 바라는 것은 대량살상무기(WMD)의 완전한 동결(complete freeze)”이라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악시오스는 현장에 없었다면서 이 같은 내용을 2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전언으로 보도했다.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은 NYT 기사를 직접 거론하며 “북한의 핵동결을 위한 (협상) 타결 의향에 대해 논의하거나 들어본 적도 없다”며 진화에 나섰다. 그는 “이것은 누군가가 대통령을 꼼짝 못 하게 하려는 비난할 만한 시도이며, 책임져야 한다”는 경고까지 덧붙였다.

우리 국회에도 불똥이 튀었다. 7월 3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 회의에서 미국의 북핵 해결 목표가 변경됐냐는 질문이 나온 것이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미국의 북핵 목표 변경 가능성을 부인하며 “이번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서도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확고한 목표를 공유하고 있음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다만 “완전한 핵폐기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어느 순간 동결이 필요한 부분이 있다”고 덧붙였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군사분계선(MDL)과 비무장지대(DMZ)에서 만나고 싶다고 제안한 트윗. 사진 트럼프 트위터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군사분계선(MDL)과 비무장지대(DMZ)에서 만나고 싶다고 제안한 트윗. 사진 트럼프 트위터

비건 대표가 기내에서 한 발언이 사실일 경우 미국은 비핵화의 최종 상태(end state)와 거기에 이르는 로드맵에 대한 포괄적 합의를 전제로 우선 핵동결에 동의할 수 있다는 뜻을 비친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의 입장이 ‘선(先) 완전한 비핵화, 후(後) 상응 조치’를 내세운 볼턴식 해법(하노이 회담 당시)보다는 확실히 유연해진 것 아니냐는 평가가 나온다.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했지만, 정밀성 등 완성도 면에서는 검증되지 않았다”면서 “핵의 완성도를 높일 수 없다는 점에서는 핵동결도 의미 있다”고 말했다. 반면 최강 아산연구원 부원장은 판문점 정상회담을 평가하는 블로그 영상에서 “포괄 합의를 하겠다, 제재를 유지하겠다, 서두르지 않겠다 등의 트럼프 발언을 보면 미국 입장이 크게 달라졌다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깜짝 쇼가 끝난 지금, 북한 비핵화 과정에서 국익이 훼손되지 않도록 한국 정부가 원칙을 세워 일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최 부원장은 “1994년 한국이 빠진 상태에서 미·북이 제네바 합의를 체결한 탓에 경수로 비용을 우리가 부담하게 됐다”면서 “한국 정부는 평화 프로세스만 강조할 것이 아니라 비핵화에 대한 구체적인 입장을 밝히고 비핵화 협상에 국익을 반영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엄구호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교수는 “미국도, 한국도 완전한 비핵화 입장을 고수하는 건 사실상 물 건너간 것이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의 핵동결은 사실상 북한이 핵보유국이 되는 셈이라 남·남 갈등을 불러올 수 있다”면서 “정부도 북한의 비핵화가 가능하다는 식의 장밋빛 전망보다는 현실을 말해 향후 정세에 준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철희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문재인 대통령이 한·미 정상회담 이후 공동 기자회견에서 미국이 추진하는 ‘인도·태평양 이니셔티브’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와 참여 의사를 밝힌 것은 한국으로서는 당연한 일”이라면서도 “중국을 배척하거나 배제하는 형태로 인·태에 참여하는 것도 바람직하다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당시 문 대통령은 미·북 판문점 회담을 앞두고 미국에 유리한 발언을 했다. 박 교수는 “한국 정부는 자율성, 개방성, 공정성, 호혜성 등 일반 원칙에 대해 천명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면서 “국제 문제의 방향성을 분명하게 제시해야 장기적으로 국익에 유리하다”고 말했다.

트럼프는 역대 대통령 중 가장 많은 외교 자원을 북한에 쏟아붓고 있다. 트럼프는 노벨상 수상과 재선에 도움이 된다면 북핵 해결에 더 많은 자원을 쓸 것이다. 켈리앤 콘웨이 백악관 선임고문은 7월 2일(현지시각) 트럼프 대통령이 북핵 문제와 관련해 ‘노벨상의 길’을 가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흥미로운 점은 트럼프가 대북 협상을 위한 확실한 무기로 대북 제재를 계속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비건 대표는 “트럼프 행정부는 북한이 무기 프로그램을 동결한다고 해도 대북 제재를 해제할 준비가 돼 있지 않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7월 2일 발간한 ‘북한경제리뷰’에 따르면, 외화 수입을 전면 차단한 제재 때문에 북한은 소득 감소 충격, 통화 충격을 겪고 있다. 내년 11월 3일로 예정된 트럼프의 재선 일자가 다가오고 있지만 김정은 정권에 불리한 경제 제재는 계속되고 있다. 또 한 번의 극적인 만남이 성사될까. ‘브로맨스’의 두 사람은 치열하게 수를 계산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