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0일 서울 장교동에 있는 ‘서울시청년일자리센터’가 코로나19 재확산으로 인해 운영이 중단됐다. 사진 최상현 기자
9월 10일 서울 장교동에 있는 ‘서울시청년일자리센터’가 코로나19 재확산으로 인해 운영이 중단됐다. 사진 최상현 기자

“상반기에 사기업 채용 공고가 거의 안 떴어요. 하반기 되면 취업 시장이 조금 풀릴까 싶었는데,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재확산하며 그마저도 물거품이 된 것 같아요.”

비상경계열 문과를 전공한 취업 준비자(취준생) 김재영(27)씨는 “사회적 거리 두기와 함께 ‘취뽀(취업 뽀개기)’와의 거리가 멀어지는 것 같다”며 “취업문이 바늘구멍이 아니라 나노(nano) 구멍이 됐다”고 호소했다. 이미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 영향으로 올해 상반기 크게 위축됐던 취업 시장이 8월에 시작된 코로나19 재확산으로 더한 빙하기를 맞고 있다.

9월 7일 한국경제연구원(한경연)은 여론조사기관 리서치앤리서치에 의뢰해 매출액 500대 기업을 대상으로 ‘2020년 하반기 신규 채용 계획’을 조사한 결과, 대기업의 74.2%가 올해 하반기 신규 채용 계획을 수립하지 못했거나, 한 명도 채용하지 않을 것으로 응답했다고 발표했다. 지난 2월 실시한 한경연의 상반기 신규 채용 조사에서 채용 계획을 미수립했거나 아예 채용하지 않겠다고 응답한 대기업이 41.3%였던 것에 비해 크게 악화된 수치다.

통계청이 9월 9일 발표한 ‘8월 고용 동향’에 따르면, 8월 취업자 수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7만4000명 감소했다. 취업자 감소세는 벌써 여섯 달 연속으로 지속하고 있다. 실업자에게 지급되는 구직급여 지급액도 1조974억원으로 4개월 연속 1조원 이상을 기록 중이다.

고용 위기는 특히 청년층에서 두드러진다. 올해 8월 실업률은 3.1%로 전년 동월 대비 0.1%포인트 상승하는 데 그쳤지만, 29세 이하의 실업률은 7.7%에 달하며 0.5%포인트 높아졌다. 29세 이하 취업자는 381만1000명으로 전년 동월 대비 17만2000명 감소했고, 30대 취업자도 23만 명 감소했다. 고용률은 29세 이하가 1.1%포인트, 30대가 1.6%포인트 낮아졌다. 특히 30대 여성의 경우 취업자가 13만 명 감소하고 고용률이 2.3%포인트 낮아져 취약함을 드러냈다.

풀릴 기미가 없는 취업난에 가사나 학업 등 특별한 이유 없이 일하지 않은 ‘쉬었음’ 인구와 ‘구직 단념자’ 수는 통계 작성 이래 최대치를 기록했다. 8월 쉬었음 인구는 전년 같은 달보다 29만 명 증가한 264만2000명을 기록했다. 특히 20대에서 쉬었음 인구가 9만 명이 늘며 전 연령대 중 가장 큰 증가 폭을 보였다. 구직 활동을 희망하지만 채용 중단 등 노동 시장 문제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구직 단념자’는 68만2000명으로 지난해 8월보다 약 13만9000명 늘었다.

하지만 이마저도 아직 8월 중순부터 나타난 코로나19 재확산의 추가 충격이 반영되지 않은 수치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9월 9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오늘 발표한 고용 지표는 코로나19 재확산에 따른 ‘사회적 거리 두기 단계’가 수도권에서 강화된 시기인 8월 16일 직전 주간의 고용 상황을 조사한 결과”라며 “10월 발표될 9월 고용 동향에 전국적으로 ‘강화된 사회적 거리 두기’의 영향이 상당 부분  반영될 것으로 예상한다. 벌써 마음이 무겁다”고 했다.


완전히 무너진 취업 생태계

전문가들은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취업 생태계가 완전히 무너져 가고 있다”고 우려했다. 최근 몇 년간 대기업을 중심으로 ‘공개 채용’을 수시 채용으로 전환하고 신규 채용 인원을 줄이는 등 취업문이 점차 좁아져 가던 상황이었는데, 코로나19 사태는 그 좁은 문마저 닫아버렸다는 것이다.

현재원 ‘지원자와 면접관’ 대표 컨설턴트는 “기업이 신규 채용을 하는 이유는 미래에 활용할 인적 자원을 선발하고 양성하기 위한 것”이라며 “지금은 기업의 미래가 보이지 않아 기존 직원까지 내보내는 판이니, 당연히 신규 채용이 사라진 것”이라고 말했다. 현 컨설턴트는 “채용 자체가 소멸하면서 당연히 취업 컨설팅에 대한 수요가 사라졌다”며 “나도 본업을 중단하고 임시직을 전전하며 버티는 처지”라고 자조했다.

취준생들은 암울한 고용 시장을 지표보다 먼저 피부로 체감하고 있다. 대기업 영업·마케팅 직군을 준비해 온 박하니(26)씨는 “기업의 영업이익이 뚝 떨어지면서 특히 영업·마케팅 부문 사원을 많이 줄이는데, 비상경계 문과 출신은 최후의 보루에 서 있는 기분이다”라며 “지난해 왜 하향 지원이라도 해서 취업하지 않았는지 뼈저리게 후회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갈 곳을 잃은 취준생들은 그나마 신입을 뽑는 공기업‧공무원으로 몰리거나, ‘이럴 바엔 대학원에 진학하겠다’며 취업 시장에서 등을 돌리고 있다. 금융 공기업을 지망하는 조석희(가명·26)씨는 “공공 부문 채용을 늘린다는 정부 기조 덕분에 채용 인원은 줄어들지 않았지만, 사기업 취준생들이 대거 진입해 입사 경쟁률이 치솟고 있다”고 말했다. 올해 상반기 진행된 경기도 공공기관 21곳 통합 공채는 194명 채용에 총 1만2084명이 지원했다. 통합 공채 시행 이래 가장 많은 지원자가 몰리며 평균 경쟁률 62.3 대 1을 기록했고, 특히 경기관광공사는 465 대 1의 최고 경쟁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언택트(untact·비대면) 수혜를 받는 정보기술(IT) 계열 채용 시장은 그나마 충격이 덜하지만, ‘일자리의 질’이 낮아지고 있다. 컴퓨터공학과를 졸업한 박윤호(25)씨는 “IT 계열이 여전히 수요가 많다고는 하지만, 대기업에서 뽑는 인원이 줄어 취업문이 점점 좁아지는 것을 체감하고 있다”며 “고용지원센터 등을 통해 속성으로 코딩(coding) 교육을 받고 IT 업계로 진입하는 ‘값싼 인력’이 늘어, 중소기업까지 사람이 몰리는 포화 상태가 되는 것 같다”고 했다.

수시 채용 비중이 늘며 인턴 경험은 취업을 위한 필수 코스로 여겨지는 추세다. 그러나 경영난이 심화하며 기업들은 인턴 채용까지 줄이고 있다. 취업포털 커리어가 2019년과 2020년 하계 인턴 채용 공고 수를 분석한 결과, 지난해 55건에서 올해 44건으로 20% 감소한 것으로 집계됐다. 김한솔(가명·23)씨는 “요즘 재학생들은 인턴을 ‘금(金)턴’이라고 부른다”며 “정규직 취업의 장벽을 새삼 실감하며 ‘우리는 정말 불행한 세대’라는 말을 많이 한다”고 말했다.

‘취업문이 나노 구멍처럼 좁아졌다’던 김재영씨는 “내년이면 한국 나이로 29세가 되는데, 이대로 ‘취업 적령기’를 놓쳐 사회에서 낙오해 버릴까 극도로 불안하다”고 했다. 한 대기업 인사 담당자는 “특별한 경력이나 스펙이 있지 않는 이상 사기업에서는 대체로 남자는 31세, 여자는 29세를 ‘신입 마지노선’으로 본다”며 “매년 수십만 명의 취준생이 새로 유입되는 신규 채용 시장 특성상, 취업 시기를 놓친 ‘코로나 세대’가 구제될 거라고 기대하긴 어렵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