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대 전기로 중 하나인 현대제철 당진 전기로에서 직원들이 근무하고 있다. 전기요금이 오르면 철강 산업은 원가 부담이 늘어나게 된다. 사진 조선일보 DB
국내 최대 전기로 중 하나인 현대제철 당진 전기로에서 직원들이 근무하고 있다. 전기요금이 오르면 철강 산업은 원가 부담이 늘어나게 된다. 사진 조선일보 DB

문재인 대통령이 임기 내 전기요금 인상은 없다고 선언하면서 한동안 잠잠했던 ‘전기요금 논쟁’이 다시 불붙고 있다. 한국전력과 산업통상자원부(이하 산업부)가 연내 경부하 시간대 요금 할인 제도를 손보겠다고 밝히면서부터다. 박원주 산업부 에너지자원실장은 지난달 세종시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심야 시간대 산업용 전기요금을 조정하겠다”라고 말했다. 할인을 줄이는 건 요금을 올리는 것과 다름없다. 정부와 한국전력은 12월까지 산업용 전기요금 인상 작업을 마무리하겠다는 계획이다.

정부가 전기요금을 올리겠다고 밝힌 심야 시간대는 ‘경부하’ 시간대에 속한다. 여름철을 기준으로 경부하 시간대는 오후 11시에서 다음 날 오전 9시까지다. 경부하 시간대는 전기요금을 할인해준다. 경부하 전기요금은 1㎾(킬로와트시)당 52.8~61.6원으로 최대 부하 시간대(10:00~12:00, 13:00~17:00)의 절반 수준이다. 

원자력발전소나 석탄발전소는 한 번 가동을 시작하면 낮이고 밤이고 계속 전기를 생산하는데, 과거에는 심야 시간대에 전기 수요가 적어서 이 시간대에 전기를 많이 쓰도록 요금을 할인해준 것이다. 심야 시간대에 남아도는 전기를 효율적으로 쓰기 위해 도입한 게 경부하 요금 할인제도다.

기업들은 원가 절감을 위해 전기요금이 낮은 경부하 시간대에 공장을 많이 돌리고 있다. 국회예산정책처 집계에 따르면 2015년 기준으로 산업용(을) 전력 사용량은 25만1844(기가와트시)에 달했는데, 경부하 시간대 사용량이 12만3901로 전체 사용량의 49.2%를 차지했다. 1977년에 경부하 요금 할인제도를 도입했을 때만 해도 심야 시간대는 전기가 남아돌았지만, 기업들이 심야 시간대에 공장을 돌리면서 지금은 오히려 전기가 모자란다. 박원주 실장은 “심야 시간 전력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단가가 비싼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소까지 가동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정부와 한전이 경부하 요금 할인제도를 어떻게 고칠지 구체적인 방안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경부하 시간대에 공장을 돌리는 기업이 8만여 곳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만큼 산업계가 받을 영향은 작지 않을 전망이다. 

유진투자증권은 경부하 요금 할인율이 축소되면 기업들의 부담이 얼마나 늘어나는지를 분석했다. 이 분석에 따르면 할인율이 10%만 낮아져도 전기요금이 1.2% 오르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전력의 전력 판매 수입은 6542억원이 증가하는 것으로 추정됐는데, 바꿔 말하면 기업들의 부담이 그만큼 늘어난다는 이야기다. 할인율이 50% 낮아질 경우 기업들의 부담은 3조2710억원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는 경부하 요금 할인을 줄이는 대신 다른 시간대 요금을 할인해서 기업 부담이 덜 늘어나게 하겠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심야 시간대에 공장을 많이 돌리고 전기요금이 원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큰 업종은 타격이 작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대표적인 게 철강과 석유화학이다. 

원재료를 제외한 제조원가에서 전기요금이 차지하는 비율은 철강이 25%, 석유화학이 11%에 달한다. 현대제철의 경우 지난해 전기요금으로만 1조1000억원을 썼다. 철강 업계 관계자는 “국내 철강 회사들이 전기로 방식을 많이 쓰기 때문에 전기요금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철강·석유화학·태양광 산업 타격

대표적인 신재생에너지 산업인 태양광도 산업용 전기요금 인상의 직격탄을 맞을 것으로 예상된다. 태양광 패널의 원재료인 폴리실리콘은 생산 과정에서 많은 전기를 필요로 한다. 이 때문에 폴리실리콘 생산단가에서 전기요금이 차지하는 비율이 30%에 달한다. 국내 최대 폴리실리콘 생산 업체인 OCI 군산공장은 지난해 매출이 1조원 정도였는데, 전기요금으로만 3000억원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우현 OCI 사장은 지난해 실적을 발표하면서 “2011년에 폴리실리콘 공장을 처음 지을 때만 해도 수익성이 좋을 것으로 보였는데 이후 전기요금이 3~4차례에 걸쳐 올랐다(수익성이 나빠졌다)”고 말하기도 했다.

OCI는 지난해 일본 도쿠야마의 말레이시아 폴리실리콘 생산 공장을 인수했는데, 이것도 전기요금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말레이시아의 전기요금은 한국의 3분의 1수준이다. 한때 일본 기업이 낮은 전기요금 때문에 한국에 공장을 짓고 투자했는데, 이제는 한국 기업이 낮은 전기요금을 찾아 해외로 나가는 모습이다.

기업 입장에서 진짜 문제는 전기요금 인상이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점이다. 문재인 정부의 에너지 정책의 골자를 담고 있는 ‘제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보면 정부는 2030년까지 전기요금을 10.9% 인상할 계획을 하고 있다. 이마저도 전문가들은 낙관적인 전망치라고 한다. 태양광 기술의 발전 속도나 탈원전 등 불확실한 부분이 많으므로 정부의 전망보다 전기요금 인상폭이 클 수 있다는 것이다. 

재계 관계자는 “2000년 이후 전기요금 인상폭을 보면 산업용 84%, 가정용 20%로 산업용 전기요금 인상 속도가 훨씬 가파르다”며 “산업용 전기요금을 계속 올리는 건 문제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Plus Point

한국 산업용 전기요금 일본·독일보다 저렴

한국전력 직원들이 전기요금 고지서 배송을 준비하고 있다. 사진 조선일보 DB
한국전력 직원들이 전기요금 고지서 배송을 준비하고 있다. 사진 조선일보 DB

한국의 산업용 전기요금은 싼 걸까, 비싼 걸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둘 다 맞는 말이다. 실제로 한국의 산업용 전기요금은 주요 선진국에 비해 낮은 게 맞다. 한국의 산업용 전기요금(2016년 기준)을 100으로 봤을 때, 일본과 독일의 산업용 전기요금은 185, 177 수준이다. 일본과 독일의 산업용 전기요금이 한국보다 85%, 77% 비싼 셈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도 124로 한국보다 24% 비싸다.

가정용 전기요금보다 산업용이 싼 것도 맞다. 하지만 산업용 전기요금이 가정용보다 싼 건 전 세계 공통의 현상이다. 산업용 전기는 고압이기 때문에 별도의 변전 설비가 필요없다. 저압으로 변전하는 과정이 없기 때문에 가정용보다 원가가 낮고, 전기요금도 그만큼 낮아진다. 

가정용 대비 산업용 전기요금 비율은 한국이 다른 나라보다 오히려 높은 편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한국의 주택용 대비 산업용 전기요금 비율은 87.1%로 OECD 평균인 62.3%보다 높다. OECD 회원국 중에서 한국보다 이 비율이 높은 곳은 멕시코뿐이다. 산업용 전기요금 원가 회수율은 재계의 설명대로 이미 100%를 넘었다. 원가 회수율은 전력 판매액을 원가로 나눈 값이다. 100%를 넘으면 전력 판매액이 원가보다 높다는 말이다. 한국전력이 2016년 공개한 자료(2014년 기준)에 따르면 산업용 전기요금 원가 회수율은 101.9%였고, 주택용 전기요금 원가 회수율은 86.7%에 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