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0일 서울 영등포구 한국금융투자협회에서 열린 ‘내부 통제 강화를 위한 증권사 대표이사 간담회’를 마친 구성훈 삼성증권 사장이 참담한 표정으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조선일보 DB
4월 10일 서울 영등포구 한국금융투자협회에서 열린 ‘내부 통제 강화를 위한 증권사 대표이사 간담회’를 마친 구성훈 삼성증권 사장이 참담한 표정으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조선일보 DB

삼성증권에서 초유의 배당 사고가 나면서 증권사의 허술한 매매 시스템에 대한 투자자들의 불만이 폭발하고 있다. 특히 개인 투자자를 중심으로 공매도(空賣渡) 폐지 논란까지 이어지고 있다.

사건은 이렇다. 4월 6일 오전 9시 30분 삼성증권이 우리사주 조합원(2018명)에 대해 현금배당을 하는 과정에서 담당 직원이 예정된 28억‘원’이 아닌 28억‘주’로 잘못 입력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시가로 112조원에 달하는 주식이 임직원 계좌로 잘못 입고됐다. 현재 증권시장에 풀려 있는 삼성증권의 총발행주식은 8930만주, 발행한도는 1억2000만주인데, 한도의 20배가 넘는 주식이 신규 발행되는 어처구니 없는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이 와중에 삼성증권 일부 직원(16명)은 당일 오전 9시 35분에서 10시 5분 사이에 착오 입고된 주식 중 501만주를 주식시장에 매도했다. 갑자기 매도 물량이 쏟아지면서 삼성증권 주가는 장중 한때 전날 종가(3만9800원) 대비 12%가량 급락한 3만5150원까지 곤두박질치기도 했다. 갑자기 주가가 폭락하자 깜짝 놀란 일부 삼성증권 주주들이 동반 매도에 나서기도 했다.

삼성증권의 대응은 ‘대형 증권사가 이럴 수 있나’ 싶을 정도로 한심한 수준이었다. 삼성증권은 사고 발생 9분 뒤인 오전 9시 39분에 직원들에게 사고 발생 사실을 공지하고, 45분에 착오 주식 매도 금지령을 내렸다. 시스템으로 임직원 계좌에 대한 주문 정지 조치가 내려진 것은 사건 발생 40여분 뒤인 오전 10시 8분이었다. 이번 사고는 주식배당을 잘못 입력한 직원과 이를 확인하지 못하고 최종 승인한 결재자에게 1차적 책임이 있다. 내부 통제 시스템이 전혀 구축돼 있지 않다는 것이 이번 배당 사고를 계기로 수면 위로 드러난 것이다. 오전 9시 31분쯤 자체적으로 입력 오류를 인지하고도 실제 잘못된 주문을 완전 차단하는 데까지 40분 가까이 걸린 것, 무엇보다 발행주식 수를 초과하는 수량의 주식 물량이 입고됐는데도 시스템 오류가 확인되지 않고 주식시장에서 거래가 이뤄진 것 또한 증권 업계의 심각한 시스템 문제를 보여준 것이었다. 회사의 매도 금지령에도 착오 입고된 주식을 주식시장에 매도한 일부 직원의 도덕적 해이도 뭇매를 맞을 만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발생할 수 있었을까. 금융감독원은 상장사의 우리사주 배당 시스템 문제를 지적했다. 우리사주 조합원에 대한 현금배당은 ‘상장사→예탁결제원→증권사(투자중개업자)→일반 주주’순으로 진행되는 일반적인 현금배당과 달리 상장사가 임직원에게 곧바로 입금하는 구조다. 발행 회사의 착오를 거를 중간 단계가 없었던 것이다. 강전 금감원 금융투자검사국 국장은 “삼성증권의 경우 상장사로서 배당을 하는데다, (예탁원으로부터 확인받은 상장사 배당금을 일반 주주들에게 입금해주는) 투자중개업자이기도 하다”며 “이 두 가지 업무가 한 시스템으로 이뤄지고 있어 시스템 오류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개미 “불법 공매도 딱 걸린 것”

이번 사고가 더 심각한 것은 삼성증권이 ‘없는 주식’을 얼마든지 찍어내고 매매까지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는 점에 있다. 이는 공매도(空賣渡), 그중에서도 ‘무차입(無借入) 공매도’ 형태와 유사하다. 공매도는 주가가 내려갈 것으로 예상하고 남의 주식을 빌려서 판 뒤 나중에 되갚아 차익을 남기는 합법적인 투자 기법이다. 그러나 무차입 공매도는 주식을 빌려서 파는 공매도와 달리, 일단 없는 주식을 팔고 이후에 대여하는 방식이다. 주식시장의 안정성을 해친다는 이유로 우리나라를 비롯한 대부분 국가에서 금지하고 있다. 이 때문에 개인 투자자를 중심으로 “증권사 등 기관들이 불법 공매도로 배를 불려왔던 게 딱 걸린 것 아니겠냐”며 공매도 폐지 주장이 거세다. 실제 지난 6일 한 네티즌이 청와대 국민청원·제안 게시판에 “서민만 당하는 공매도를 폐지하고, 다른 증권사에 대한 대대적인 시스템 조사를 해달라”고 요구한 글은 12일 현재 21만여명의 서명을 이끌어냈다. 글이 올라오고 30일 안에 20만명 이상이 서명할 경우 정부는 입장 발표를 해야 한다.

개인 투자자들의 의심이 아예 불가능한 구조도 아니다. 실제 돈과 주식 간 교환(결제)은 주식 매매가 일어나고 2거래일 뒤에 이뤄지기 때문이다. 한 증권 업계 관계자는 “설령 주식 없이 매도하는 무차입 공매도를 했더라도 결제일 전까지만 주식을 마련해놓으면 되기 때문에 금융 당국이 실시간으로 들여다보지 않는 한 적발될 가능성은 작다”고 말했다.

현재 공매도는 외국인과 기관 투자자가 주도하고 있다. 4월 11일 현재 외국인과 기관 투자자의 공매도 거래대금은 각각 1조6259억원(68%), 7560억원(31.6%)으로 전체 99.6%를 차지하고 있다. 개인 투자자의 공매도 거래대금 비율은 고작 0.4%다. 외국인 투자자의 공매도 거래 비율은 평균적으로 70~80%를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 이는 외국인이 국내 기관 투자자보다 주가 상승기와 하락기에 모두 수익을 내는 전략을 중요시하기 때문으로 전문가들은 풀이한다. 개인 투자자의 경우 공매도가 허용되고는 있지만, 금융투자회사로부터 돈을 빌릴 가능성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 개인이 공매도를 하려면 주식을 많이 보유하고 있는 국민연금이나 삼성생명 같은 곳에서 주식을 빌려 신용 대주거래를 해야 하는데, 종목과 주식 수가 매우 제한적인 데다 대주 기간은 최장 60일, 한도는 3억원에 불과하다. 또 해당 기관들은 신용 문제로 개인이 빌린 만큼 현금을 담보로 잡기도 한다. 자금이 많고 신용이 좋은 ‘수퍼 개미(주식 큰손 투자자)’가 아니고서야 ‘결제불이행’ 사태가 빈번하게 발생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한계 때문에 개인들은 주가가 오르는 데만 베팅할 수밖에 없다. 양방향 베팅을 모두 하는 외국인과 기관 투자자와 비교해 불리하다고 주장할 수 있는 근거다.


공매도 필요악이라는 주장도

하지만 주식의 거품을 해소해 적정 주가를 형성하는 데 공매도만한 투자법이 없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예를 들어 A 상장사 주가가 현재 1만원이라고 하자. A사에 대한 안 좋은 뉴스가 떴다. 적정 주가는 7000원까지 내려가야 한다. 그런데 공매도가 없다면 A사의 주가는 손해를 보고 팔지 않으려는 주주들의 ‘버티기’ 때문에 9000원, 8000원 식으로 매우 완만하게 떨어질 것이다. 어찌 됐든 주가는 7000원을 향해 갈 것이지만, 시간이 한참 소요될 수 있다. 공매도가 있다면 한 방에 7000원으로 곤두박질칠 뉴스다. 이 지점에서 개인 투자자들이 공매도 세력에 손해를 봤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주식이 적정 가격에서 거래될 수 있는 환경을 위해서는 나쁜 뉴스에 따라 주가 하락에 베팅할 수 있는 공매도가 필수”라며 “다만, 한국에서는 개인 투자자들의 공매도 접근이 제한돼 있는 만큼 일본처럼 개인에게 주식을 빌려주는 별도 기관을 만들어 제도를 개선하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일본의 개인 투자자 공매도 비율은 전체 거래대금의 10%에 가까운 수준이다.

금융 당국도 이런 순기능을 고려할 때 공매도 폐지는 과하다는 입장이다. 금융 당국은 공매도 시 투자자가 업틱룰(up-tick rule·공매도로 주식을 팔 때 시장가보다 낮은 가격을 부를 수 없게 한 제도)을 따르고, 상장사 시가총액에서 공매도 잔액 비율이 0.5% 이상인 경우 매도자와 대리인의 인적 사항, 거래 일시 등을 의무적으로 알리도록 하고 있다. 또 특정 종목에 대한 공매도 물량 비율이 0.5% 미만이더라도 금액이 10억원을 넘으면 투자자가 금융 당국에 보고하도록 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2010년부터 특정 종목의 장중 가격 하락폭이 10%가 넘어갈 경우 투자자들이 다음 거래일까지 공매도 호가를 시장가보다 높게 불러야 한다. / 블룸버그
미국에서는 2010년부터 특정 종목의 장중 가격 하락폭이 10%가 넘어갈 경우 투자자들이 다음 거래일까지 공매도 호가를 시장가보다 높게 불러야 한다. / 블룸버그

주요국도 공매도 잔액 보고·공시 강화

해외에서도 공매도의 규제 정도만 차이가 있을 뿐 대부분 공매도의 투명성을 강화하는 취지로 규제가 이뤄지고 있다. 이와 관련 국제증권관리위원회(IOSCO)는 공매도 규제 원칙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있다. 각국 금융 당국이 대규모 공매도로 불공정행위가 발생할 경우 이를 조기에 인지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모니터링을 강화하라는 주문이다.

유럽은 공매도 잔액 비율이 0.2% 이상일 경우 투자자들이 금융 당국에 보고하도록 하고 있다. 그 비율이 0.5%가 넘어가면 보고는 물론, 거래소에 직접 공시도 해야 한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는 한 달에 두 번 공매도에 관한 자료를 공개하는데, 여기에는 개별 주식의 일별 공매도 수량과 거래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공매도 주체는 공개하지 않는다. 이와 함께 2010년부터 ‘변형된 업틱룰’을 도입하고 있다. 특정 종목의 장중 가격 하락폭이 전날 종가의 10%가 넘어갈 경우 당일과 다음 날 거래까지 공매도 호가가 시장가보다 높아야 한다는 것이다.

아시아권 주요 국가들의 공매도 규제는 북미나 유럽 국가들보다 상대적으로 더 강하다는 공통점이 있다. 공매도 관련 보고 및 공시제도를 채택하고 있는 국가가 많다. 업틱룰을 적용하는 사례도 많다. 일본은 공매도 보고 및 공시 의무를 부과하며, 업틱룰은 미국과 비슷하게 전날 종가 대비 10% 이상 하락한 종목에 대해서 다음 거래일까지 적용하고 있다.

싱가포르는 아시아 국가들 중에서는 규제가 가장 약한데, 공매도 비중 보고 및 공시 의무를 부과하면서도 업틱룰은 적용하지 않고 있다.

Keyword

공매도(short selling) 공매도는 주식을 매수한 뒤 매도하는 일반 주식 거래와 달리, 일단 남의 주식을 빌려 매도부터 한 뒤 추후 해당 주식을 매수해 주식을 되갚는 투자기법이다. 일반 거래에서 주주는 주식을 싸게 산 다음 비싸게 팔아야 차익을 낼 수 있지만, 공매도는 순서를 바꿔 우선 비싸게 판 뒤 나중에 싸게 사야 주식을 되갚고도 차익을 낼 수 있다.
공매도는 크게 무차입 공매도(naked short selling)와 차입 공매도(covered short selling) 두 가지가 있다.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공매도가 차입 공매도다. 무차입 공매도는 주식을 빌리지도 않고 일단 매매부터 하는 공매도로 시장을 교란한다는 이유에서 세계적으로 강하게 규제하는 분위기다. 우리나라도 무차입 공매도를 금지하고 있다.

Plus Point

2008년 금융위기 때는 공매도 금지

서울 여의도에 있는 금융감독원. / 조선일보 DB
서울 여의도에 있는 금융감독원. / 조선일보 DB

한국에서는 1969년부터 무차입 공매도를 포함한 공매도 제도가 도입됐다. 2000년 우풍상호신용금고가 빌린 주식을 갚지 못하는 결제불이행 사건이 터지면서 무차입 공매도가 폐지되고 차입 공매도만 허용됐다.

우풍금고는 2000년 3월 29일 대우증권을 통해 코스닥 상장사인 성도이엔지 주식 34만주를 무차입 공매도했다. 당시 주식시장이 폭락하는 추세를 보이자 대량으로 주식을 공매도, 주가가 실제 떨어지면 해당 주식을 싼 값에 사서 되갚고 차익을 볼 심산이었다. 그러나 이후 성도이엔지의 주가가 되레 연일 상한가를 치는 등 반대 방향으로 가자 손해는 물론, 유통 물량이 줄면서 주식 매집조차 힘들어졌다. 우풍금고는 최종 결제일인 3월 31일에 3분의 1가량인 12만6000주를 결제하지 못했다. 이 소식이 알려지면서 개인·법인 고객들의 예금 인출이 잇따랐다. 우풍금고는 정상적인 영업활동이 불가능해져 결국 금감원에 영업정지를 요청하게 됐다.

2008년 9월에는 한국에서 차입 공매도마저 금지되기도 했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하면서 미국 등 선진국 증시가 급격히 하락해 투기자본인 헤지펀드들이 주로 금융회사 주식을 공매도해 금융시장의 위기를 더욱 증폭시켰다는 비난이 쏟아졌기 때문이다. 당시 영국 금융감독청, 미국의 증권거래위원회 등 주요 선진국들은 일시적으로 금융회사의 공매도를 금지했다.

우리나라는 금융회사뿐 아니라 모든 회사 주식의 공매도를 금지했다. 이후 금융시장이 안정되면서 금융 당국은 2009년 6월부터 비금융회사 주식의 차입 공매도를 허용했다. 2013년부터는 11월부터는 지금처럼 금융사 주식도 공매도를 허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