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르멘시타 부아(Carmencita Bua) 이탈리아 피사대 법학과, 변호사, 이탈리아-미국 상공회의소 이사, 컨티늄 밀라노 지사장 / 11월 13일 서울 신사동 컨티늄 서울지사에서 만난 카르멘시타 부아 컨티늄 COO는 “EPAM시스템스를 통해 디자인 콘셉트를 제품으로 최종 구현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사진 박준형 인턴기자
카르멘시타 부아(Carmencita Bua)
이탈리아 피사대 법학과, 변호사, 이탈리아-미국 상공회의소 이사, 컨티늄 밀라노 지사장 / 11월 13일 서울 신사동 컨티늄 서울지사에서 만난 카르멘시타 부아 컨티늄 COO는 “EPAM시스템스를 통해 디자인 콘셉트를 제품으로 최종 구현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사진 박준형 인턴기자

미국 디자인 컨설팅 기업 컨티늄(Continuum)을 처음 들어보는 사람은 많아도, 글로벌 소비재 업체 피앤지(P&G)가 만든 ‘스위퍼(Swiffer)’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스위퍼는 P&G가 1999년 첫선을 보인 신개념 청소기로, 정전기를 이용해 먼지를 싹 끌어모은 뒤, 한 번 쓰고 버릴 수 있는 패드다. P&G가 내놓은 수많은 제품 중 가장 성공한 것으로 꼽힌다. 이 스위퍼를 개발한 곳이 컨티늄이다.

컨티늄은 가정용 청소 세제를 팔던 P&G가 새로운 세제를 내놓는 것만으로는 경쟁력을 갖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소비자들이 집에서 청소를 어떻게 하는지를 면밀히 관찰했다.

그 결과 소비자들은 공통적으로 바닥에 있는 먼지와 이물질을 먼저 쓸고 다음에 물걸레질한 뒤, 더러워진 걸레를 빠는 패턴을 보였다. 컨티늄 팀은 ‘만약 걸레가 바닥의 먼지를 끌어모을 수 있다면 이 모든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될 텐데’ 하는 아이디어를 내놓게 된다.

물을 사용하지 않고 오직 정전기만으로 먼지를 모으는 스위퍼를 개발하게 된 배경이다. 스위퍼는 론칭된 지 불과 4개월 만에 1억달러(약 1133억원)의 매출을 올리며 단숨에 베스트셀러로 이름을 올렸다.

1983년 미국 보스턴에서 설립한 컨티늄은 밀라노(이탈리아), 서울(한국), 상하이(중국)에 지사를 두고 있으며 전체 200여 명의 직원을 보유하고 있다. 올해 3월에는 미국 소프트웨어 개발 서비스 회사인 ‘EPAM시스템스’에 인수됐다. 다른 많은 디자인 업계 경쟁사들이 액센추어나 보스턴컨설팅그룹(BCG) 같은 초대형 컨설팅 회사에 인수·합병되고 있는 것과는 다른 행보다. 11월 13일 서울 신사동에 있는 컨티늄 서울지사를 찾은 카르멘시타 부아 EPAM컨티늄(이하 컨티늄) 최고운영책임자(COO)는 “컨티늄은 그동안 제품이나 서비스에 대한 디자인 콘셉트와 시제품을 제공해 왔지만, EPAM시스템스를 통해 디자인 콘셉트를 제품으로 최종 구현하는 ‘엔드 투 엔드(end-to-end)’ 서비스를 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스위퍼 같은 성공 사례는 사람의 행동을 면밀히 관찰하고 이해하는 데서 나온다”며 “이런 면은 여성이 탁월하다”고 강조했다.


주삿바늘을 꽂는 고통 없이 인슐린을 자동 주입할 수 있도록 개발된 ‘옴니팟’ 패치. 사진 EPAM 컨티늄
주삿바늘을 꽂는 고통 없이 인슐린을 자동 주입할 수 있도록 개발된 ‘옴니팟’ 패치. 사진 EPAM 컨티늄

‘스위퍼’처럼 고객사의 매출을 폭발적으로 끌어올린 제품이 또 있나.
“2000년 창업한 미국의 인슐렛(Insulet)이라는 스타트업(초기 단계 기업) 관계자가 찾아와 자신의 기술을 상품화해달라고 했다. 이 회사는 니켈과 티타늄 합금인 니티놀 형상기억합금을 활용해 에너지를 특정한 움직임으로 바꾸는 기술만 보유한 상태였다. 컨티늄은 사용자의 요구가 무엇일지 고민했고, 이 과정에서 소아 당뇨병 환자들이 체내 당을 분해하는 인슐린을 주사기로 주입하는 데 매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컨티늄은 인슐렛의 기술을 활용해 환자의 몸 어디에나 부착해도 통증 없이 자동 주사되는 무선 인슐린 주사기 ‘옴니팟(Omnipod)’을 개발했다. 이 제품이 성공적으로 출시되면서 인슐렛은 미국 나스닥시장에 성공적으로 상장됐고, 현재 시가총액 5조원이 넘는 의료기기 회사로 성장할 수 있었다.”

서울에도 지사가 있는 것이 인상적이다. 어떤 회사와 일했나.
“컨티늄의 창업자인 지안프랑코 자카이(Gianfranco Zaccai·현 최고 디자이너)는 1985년 삼성전자의 디자인 자문위원이었고, 한국 여러 대학의 방문교수이기도 했다. 그만큼 한국과 인연도 오래됐고, 애정도 남다르다. 자카이는 삼성전자나 LG전자 같은 대기업이 뛰어난 기술력을 갖고 있음에도 내수 시장에 머물러 있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디자인만 뒷받침된다면 글로벌 시장으로 나갈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컨티늄은 2000년대 서울지사를 세우고 삼성의 현지 맞춤형 제품 개발 등에 본격적으로 참여했다. 대교가 ‘러닝센터’라는 공간을 만드는 데도 참여했다. 러닝센터는 학습지 교사가 학생을 찾아 1 대 1로 진행하던 기존 수업 방식이 아닌 학생이 원하는 시간에 센터를 방문해 자기 주도적으로 공부할 수 있도록 디자인된 공간이다. 지난해 9월에는 경기 고양시에 있는 복합쇼핑몰 ‘스타필드 고양’에 이마트의 체험형 놀이 공간인 ‘토이킹덤 플레이’를 만들기도 했다. 아이들이 9개의 테마관을 자유롭게 오가며 장난감을 직접 만들어 보기도 하고, 다양한 직업을 체험해 볼 수 있는 곳이어서 아이들과 부모들의 반응이 좋다.”

창의적인 디자인 콘셉트를 만들 수 있는 비결은.
“컨티늄에는 ‘넥스트(Next)’라는 팀이 있다. 디자이너·엔지니어·심리학자·예술가 등 다양한 사람들로 구성된 이 팀은 사람들이 무엇을 하는지 관찰하고 분석하는 역할을 한다. 레스토랑에서, 병원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살펴본다. 사람의 행동이 세대별로 어떻게 달라지는지도 관찰한다. 이 결과를 통해 컨티늄은 각국의 ‘트렌드’가 무엇인지 확인하고, 이를 고객사 컨설팅 때 활용한다. 서울과 상하이 지사를 1년에 한 번씩 찾아 트렌드를 확인한다.”

변호사 출신으로 디자인 컨설팅 업계에 뛰어들었다.
“좋은 변호사가 되기 위해서는 고객 기업과 관련된 모든 법을 다방면으로 이해해야 했다. 그래야 기업 최고경영자(CEO) 관점에서 문제를 해결해나갈 수 있다. 컨티늄도 비슷하다. 컨티늄은 사람이 처한 많은 문제가 무엇인지 이해하고,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여러 방법에 대해 고민하는 곳이다. 법조계와 디자인 컨설팅의 유일한 차이점은 실수를 용인하는가, 아닌가 하는 점이다. 여기서는 실수해도 괜찮다. 경쟁사보다 먼저 실수하고 이를 빠르게 개선할 수 있다면 말이다.”

당신은 다섯 명의 자녀가 있는데도 고위 경영진으로서 활발하게 일하고 있다. 컨티늄의 해외 지사장도 모두 여성이다.
“나는 이탈리아 남부에 인구 1000명쯤 되는 작은 시골 출신이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고향은 매우 보수적이어서 여성으로서 목표를 높게 잡고 성취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다. 그래서 다짜고짜 미국 보스턴으로 건너가 직장을 구했다. 2007년 밀라노 지사장으로 컨티늄에 처음 합류했을 때만 해도 여성 임원은 내가 유일했다. 지금은 컨티늄에 나를 포함해 여성 임원이 많은데 이것을 여성 친화적 기업문화 때문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나는 여성 고용 인원을 특정 비율로 정해두는 ‘여성 임원 할당제’ 같은 제도에 반대한다. 똑똑하고 일을 가장 잘할 수 있는 사람을 제 위치에 두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컨티늄에서는 그런 사람이 모두 여성이었을 뿐이다(웃음). 여성은 사람과 주변 환경, 문제를 공감하고 이해하는 데 남성보다 탁월한 면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