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9월 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사직로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열린 공공기관 워크숍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9월 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사직로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열린 공공기관 워크숍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법무부 산하 공공기관인 대한법률구조공단에 세 번째 노동조합이 설립됐다. 기존 공단 노조, 변호사 노조에 이어 임대차분쟁조정위원회(임조위) 노조가 지난 8월 말 노조 설립 신고서를 제출해 최근 노조 설립 신고증을 받았다. 임조위는 상가와 주택 임대차 분쟁을 조정하는 역할을 하며, 전국 6개 지부에 42명이 근무하고 있다.

신용보증기금과 기술보증기금은 각각 지난해 11월과 올해 5월 세 번째 노조가 설립됐다. 임금피크제 대상 직원들이 만든 노조다. 임금피크제는 일정 연령에 도달한 시점부터 임금을 삭감하는 대신 정년을 보장하는 제도다. 이들은 올해 10~12월 임금단체협약(임단협)에서 임금피크제에 들어간 직원의 급여를 현재보다 높여달라고 요구할 예정이다.

올해 2분기 기준 339개 공공기관 중 단일노조가 있는 기관이 187곳, 복수노조가 있는 기관이 81곳이다. 복수노조가 있는 기관 중 노조가 2개인 공공기관이 57곳, 3개인 기관이 14곳이다. 노조가 4개인 곳이 6곳, 5개는 2곳이었다. 우체국물류지원단은 6개의 노조가 있고 대한적십자사는 8개, 근로복지공단은 10개의 노조가 있다.

2011년 7월 기업 내 복수노조가 허용됐다. 당시 찬성 측은 거대 노조의 독점 구조가 개선되고 어용노조의 민주화, 이익 대변 구조의 확대, 비정규직 노조 설립 등 긍정적인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봤다. 그러나 공공 부문에서는 기대했던 효과보다 노조 간 갈등, 노조 관리 비용 증가 등 부정적 효과가 더 크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한 조직 내에 여러 노조가 직능별 또는 이해관계별로 생기는 경우가 나타나다 보니 경영진이 각 노조의 지나친 요구에 시달리는 것이다.


교섭 창구 단일화한다지만

정부는 기업 내 복수노조 설립을 허용하면서 노조 분열과 세력 다툼을 방지하기 위해 2012년 7월부터 ‘교섭 창구 단일화 제도’를 도입했다. 사업장 단위의 복수노조는 허용하되 교섭 창구는 하나로 조정한 것이다.

교섭 창구를 단일화한다고는 하지만 각 노조는 경영진을 상대로 다양한 요구를 한다. 법률구조공단의 경우 일반직과 변호사는 공무원 보수 체계를 준용해 근무 기간에 따라 기본급이 높아지는 호봉제를, 임조위는 근무 기간과 상관없이 기본급이 고정된 연봉제를 적용받는다. 최근 설립된 임조위 노조는 호봉제로 전환을 희망하고 있지만 일반직 노조와 변호사 노조는 예산이 한정돼 있고 선발 기준과 방식이 다른 만큼 현행대로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일반직 노조와 변호사 노조 역시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일반직 노조는 변호사에게 집중된 부장, 팀장 등 보직을 일반직에도 개방하라고 요구하고 변호사 노조는 반대하고 있다.

신용보증기금도 채권 추심 등 업무를 하는 무기계약직 노조가 일반 노조와의 호봉 단일화를 요구하고 있다. 신용보증기금 관계자는 “노노 갈등이라고 하기까지는 좀 그렇지만 일반 노조와 무기계약직 노조 사이에 미묘한 갈등이 있다”며 “예산은 기획재정부 승인을 받아야 해서 한정돼 있는데 특정 노조가 더 많은 몫을 가져가면 나머지 노조는 몫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여러 개의 노조가 개별 교섭권을 가지고 있는 경우는 경영진에 큰 문제다. 법에는 사업주가 동의할 때만 개별 교섭이 가능하지만 근로 조건의 차이, 고용 형태, 교섭 관행 등을 고려해 교섭 단위를 분리할 필요가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 정부 기관인 노동위원회가 개별 교섭을 승인할 수 있게 돼 있다.

한 공공기관 관계자는 “노조가 여러 개라 하더라도 교섭 단위가 분리돼 있지 않으면, 사측은 가장 큰 노조만 상대하면서 단체 교섭하면 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수월하다”며 “하지만 교섭 단체가 분리돼 있으면 사측은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노조를 상대로 사실상 정치 행위를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최근 금융공기업에서는 임금피크제 적용 대상 직원이 권익을 위해 노조를 결성하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 11월 설립된 신용보증기금 제3 노조는 급여 지급률을 높여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현재는 57세부터 임금피크제가 적용돼, 종전 급여 대비 지급률이 57세 80%, 58세 70%, 59세 30%, 60세 20%로 연평균 50%다. 신용보증기금의 임금피크제 적용 대상은 289명으로 직원 2715명의 약 10% 정도다. 올해 5월 설립된 기술보증기금 제3 노조도 마찬가지다. 기술보증기금 임금피크제의 지급률은 56세 90%, 57세 80%, 58세 50%, 59세 30%, 60세 20%다. 현재는 임금피크제 적용 기간을 5년에서 3년으로 줄이는 과도기이며 앞으로는 58세부터 임금피크제가 적용된다.


노노 갈등에 파이 나눠야 하는데

공공기관은 대부분 소관 부처로부터 예산을 승인받아야 하기 때문에 특정 직군이나 해당자의 요구를 들어줄 경우 다른 직원의 반발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경영진으로서는 운신의 폭이 좁다. 기술보증기금 관계자는 “기획재정부가 매년 인건비 인상률을 정해줘서 파이가 한정돼 있기 때문에 임금피크제 대상 직원의 급여를 올려주려면 수가훨씬 많은 정규직 노조가 강하게 반대할 게 뻔하다”며 “정규직 노조의 양보를 이끌어내거나 기재부를 설득해야 하는데, 둘 다 쉽지 않은 일”이라고 했다.

사측에서 급여 이외 복지로 주는 사내복지기금 분배나 근로 시간에서 제외되는 노조 전임자 배치에서도 노조 간 파이 나누기가 필요하다. 한국마사회는 기존 노조, 업무지원직 노조, 발매 업무 등을 하는 무기계약직 노조, 발매 업무 담당 소장들 중심 노조, 전체 노동자 대상의 한우리 노조 등 5개 노조가 있다. 마사회 관계자는 “신생 노조가 생겨나면 사내복지기금이나 노조 전임자 배치를 요구하는데 마사회는 기존 노조가 어느 정도 양보해서 별다른 갈등 없이 잘 해결됐다”며 “하지만 다른 곳은 기존 노조와 신생 노조의 갈등이 상당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법률구조공단 관계자는 “기존 노조와 신생 노조가 직접 대립하기보다는 사측과 각각 교섭하면서 경영진에 노조 전임자 배치 등을 요구한다”며 “경영진은 양측을 오가며 갈등을 조정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허인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객원연구위원은 “복수노조 허용으로 공공기관에 여러 개의 노조가 생기면서 직능별 또는 이해관계별로 노조 간 갈등이 많아진 게 사실”이라며 “민간 기업은 사용자가 선호하는 노조에 인적∙물적 지원을 해서 영향을 미칠 수 있는데 공공기관은 예산도 한정돼 있고 여러 노조의 요구를 다 들어줄 수도 없고 해서 경영진으로서는 갈등 조정이 쉽지 않은 일이다”라고 말했다.

허 위원은 올해 4월 ‘공공기관의 복수노조 현황 분석’ 보고서에서 “기존 단일 노조에서 복수노조가 된 경우 주로 조직 분할로 이뤄졌다”며 “조직 분할형 복수노조가 조직 내 직종, 부서 등을 중심으로 형성된 경우에는 노조 간, 노사 간 갈등은 물론 업무상의 갈등도 나타나 조직 운영에 심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밝혔다. 또 “노조의 일상활동 과정에서 분쟁과 매년 단체교섭 시 공정대표 의무에 대한 각종 분쟁이 빈발할 수밖에 없어 관리 비용의 증가가 수반된 것이라고 판단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