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5일 이상수 현대자동차 신임 노조위원장이 당선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12월 5일 이상수 현대자동차 신임 노조위원장이 당선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계속 우리만 잘 먹고 잘살자고 임금 인상 투쟁(을 하는) 방향이 옳은 것인지를 생각해 달라. 앞만 보고 달려오다 보니 우리는 10% 이내의 기득권자 세력이 되었다.”(11월 21일 ‘노동조합의 사회연대전략’ 포럼 중 하부영 현대자동차 노조위원장 발언)

“조합원들이 ‘뻥 파업’이나 ‘묻지 마 투쟁’에 속지도 않고 식상해한다. 조합원 고용을 지킬 방법과 조합원들이 자율적으로 작업할 방법 등을 노사가 맞대서 논의하고 이익금 분배에 정의를 실현하겠다.”(12월 5일 기자회견 중 이상수 현대자동차 신임 노조위원장 발언)

대기업 노조가 변화하고 있다. 고소득 정규직의 기득권 노조로 비판받아온 현대차 노조가 변화의 의지를 공언했다. 현대차 노조는 올해 2011년 이후 8년 만에 처음으로 파업 없이 임금 및 단체협약(임단협)을 마무리 지었다. 강경파에서 온건파로 노선을 선회한 것이다.

변화는 지난해부터 있었다. 현대차 노조는 2018년 단체교섭 임금요구안에 하후상박 연대임금(고소득 원청 정규직보다 저소득 하청 비정규직 임금 인상률을 높여서 노동자 임금 수준을 상향평준화하는 전략) 특별요구안을 포함한시킨 것. 사내 하청 비정규직 임금을 7.4% 올리는 안(정규직 임금은 5.3% 인상 요구)이 포함됐다. 사회적 책임을 다하면서 귀족 노조의 오명을 벗겠다는 방침이었다.


변화 1│정규직 독식 구조 버려야

다른 대기업도 노조의 조합원 이기주의를 탈피하자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노사가 ‘1% 행복나눔기금’을 함께 모아 협력사와 소외계층을 돕고 있다. SK이노베이션 직원이 자발적으로 매달 5000원, 1만원씩 기부하던 것을 2017년부터 기본급 1% 적립 방식으로 바꿨다고 한다. 2017년 10월 기금 적립을 개시한 이래 지난해 말까지 27개월간 누적 기부금은 106억원이었다.

변화의 이유는 노동 시장 이중 구조에 대한 지적이 지속됐기 때문.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8월 기준 국내 노조 조직률은 정규직이 19.6%인 반면 비정규직이 2.1%에 불과했다. 300인 이상 사업체에서 정규직 노조 조직률은 38.6%로 올라가는데 비정규직은 7.3%에 그친다. 고임금 노동자가 사측과 교섭권을 가지고 있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불평등이 심화하는 상황에서 대기업 중심의 노조에 대한 국민 여론이 좋지 않았다”면서 “조합원의 표를 얻어 노조위원장이 선출되더라도 노조가 사회적 요구를 따라야 한다는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고 했다.

대통령 직속 기구에서도 주문이 있었다. 대통령 직속 경제사회노동위원회의 문성현 위원장은 지난 5월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대부분의 노조 조합원은 ‘전체’에 관심이 없다. 내가 다니는 회사가 안정적이고 내가 다니는 회사에서 임금 많이 받고 해고 안 당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라면서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임금 격차가 갈수록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여전히 무리한 임금 인상을 요구하고 있는 대기업 노조가 문제”라고 꼬집었다.


지난 11월 국민건강보험공단 익명 커뮤니티에 올라온 내용. 노조가 집회 불참비를 걷는다는 글의 댓글이다. 사진 블라인드 캡처
지난 11월 국민건강보험공단 익명 커뮤니티에 올라온 내용. 노조가 집회 불참비를 걷는다는 글의 댓글이다. 사진 블라인드 캡처

변화 2│경영난 고려하면 투쟁 어려워

노조가 비정규직까지 끌어안으려면 통상적으로 기업에 요구하는 내용이 많아지기 마련. 그러나 최근에는 사측과 대립을 줄이자는 내부 여론이 생기고 있다. 기업 환경이 변화하면서 요구안이 받아들여지기 어렵다는 점을 직감했기 때문이다. 국내 제조업 업황 악화가 영향을 미쳤다.

자동차 업계는 전기차 시대로 전환 과정에서 노동자 수 감소가 불가피하다는 문제 인식을 공유하고 있다. 하부영 노조위원장이 주도해 만든 노사고용안전위원회는 지난 10월 현대차가 전기차로 주력 모델을 전환할 경우 2025년까지 필요 인력이 약 40%까지 줄어들 수 있다고 발표했다. 무리한 임금 인상이 오히려 인력 감축을 촉발할 수 있는 상황이다.

불확실성이 큰 상황에서 무조건 투쟁하기보다 대화로 협상안을 도출하자는 여론도 커졌다. 투쟁형 노조와 실리형 노조 가운데 후자를 지지하는 조합원이 하나둘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다.

기아자동차 노조는 12월 10일 무파업으로 임금 협상 잠정 합의안을 마련했다. 기아차 관계자는 “노사가 교섭 합의점을 도출한 것은 안팎으로 어려운 경영 환경과 4차 산업혁명에 따른 자동차 산업의 구조 변화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면서 “연내 임금 협상을 마무리할 필요가 있다고 노사가 공감한 데 따른 것”이라고 했다.

르노삼성자동차 노조도 같은 날 파업을 가결했지만, 노조 내부에선 강경파 노선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컸다. 지난 6월 르노삼성 노조는 1차 임단협 잠정 합의안 부결 이후 파업을 벌였는데, 5일 만에 이를 철회했다.

사측의 압박도 컸지만 내부 노조의 저항도 있었다. 조합원 1850명 중 60% 이상이 파업에 불참했다. 당시 조합원들은 “실익에 도움되지 않는 파업에 반대한다” “대화에 돌입해서 회사 정상화를 추진하는 편이 낫다” “당장 월급이 줄어드는데 파업에 동참하기 어렵다”는 의견을 냈다. 무조건적인 투쟁보다 기업과 노동자의 실익을 우선 추구할 수 있는 방향을 택하는 움직임이 생겼다.

지난 11월엔 르노삼성에 제3 노조인 ‘새 미래 노동조합’이 출범했다. 르노삼성 노조는 지난 7년간 제1 노조인 단일 기업 노조와 제2 노조인 민주노총 산하 금속노조 지부로 양분돼 있었다. 최근 금속노조 지부 가입자가 단일 기업 노조로 넘어가면서, 노조 성격이 변하고 있다는 내부 여론이 나왔다. 이는 사내에 실리형 노조가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모인 계기로 작용했다.

지도부 구성을 맡은 고용환 전 노조위원장은 “현재 지도부는 올해 임단협에서 회사 상황이 좋지 않음에도 자신의 이익을 위해 ‘파업을 위한 파업’을 감행했다”면서 “그런데 실리는 얻지 못했다. 심지어 파업에 불참하거나 반대 의사를 밝힌 조합원을 징계하고 해임하기까지 했다”고 밝혔다.


변화 3│젊은 세대는 강제 동원 거부

젊은 조합원을 중심으로 ‘묻지 마 파업’에 대한 거부감도 생기고 있다. 공공기관의 경우 국민건강보험공단과 국민연금공단 노조가 최근 상급 단체인 민주노총이 주최한 집회에 참석하지 않은 조합원을 상대로 ‘집회 불참비’ 2만~10만원을 걷겠다고 공지하면서 논란이 일었다. 지난 11월 건보공단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는 ‘불참하면 벌금 내라는 건 부당하다’는 취지의 집회 참석 강요를 비판하는 글이 올라왔다.

11월 파업에 돌입한 전국철도노동조합의 경우 젊은 조합원의 파업 찬성률과 참가율이 역대 최저 수준에 가까웠다.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파업 명분에 공감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회사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공약에 공감하지 못하는 것이다. 100 대 1을 넘나드는 공채 경쟁률을 뚫은 젊은 세대가 ‘공정’의 가치를 내걸면서 반대하고 있다.

다만 이런 젊은 세대의 기조는 노조의 해결 과제로도 꼽힌다. 실리파가 비정규직을 포괄하는 사회적 책임을 다하겠다고 선언하는 추세에서 조합원의 참여를 이끌어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 김성회 고려대 노동대학원 교수는 “귀족 노조 비판을 받았던 쪽은 오히려 (파업보다는 사측과 대화를 중시하는) 실리파로 사회적 책임 추구에 미약한 부분이 있었다”면서 “최근 나오고 있는 사회적 책임에 대한 논의가 선언에 끝나지 않고 지속적으로 이어지면 좋겠다”고 했다.

김소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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