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화의 과도한 절하는 자본유출로 이어져 금융위기를 촉발할 수 있다. 사진 조선일보 DB
위안화의 과도한 절하는 자본유출로 이어져 금융위기를 촉발할 수 있다. 사진 조선일보 DB

중국 재정부가 10월 11일(현지시각) 30억달러 규모의 달러 표시 국채 발행에 나섰다. 전날 미국 증시 급락으로 전 세계 증시가 폭락세를 보이는 상황에서도 중국은 국채 발행을 강행했다. 3조달러가 넘는 외환을 보유한 중국의 30억달러 채권 발행은 급전이 필요해서가 아니다. 중국의 달러 표시 국채 발행은 2004년 이후 세 번째이자 작년 10월에 이어 1년 새 두 번째다.

특히 미·중 간 사상 최대 규모의 무역전쟁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중국 경제에 대한 해외 투자자들의 신뢰를 확인함으로써 불거지고 있는 중국 경제위기론을 정면돌파하겠다는 행보로 읽히기 때문이다. 금리를 미국 국채보다 0.5~0.9%포인트 높은 수준에 제시한 게 그렇다.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MS) 수준으로 자금을 조달하는 걸 보여주겠다는 포석이 깔려 있다. 하지만 미 국채와의 금리 차가 1년 전 0.15~0.25%포인트에 비해 크게 커진 것은 중국 경제의 불안감을 보여준다는 지적도 있다.

같은 날 중국 관영 경제일보는 ‘중국 금융위기론’은 설 자리가 없다는 논평을 냈다. 앞서 중국 관영 CCTV는 7일과 8일 이틀 연속 저녁 7시 메인 뉴스에 중국 재정부 부장(장관)과 국가통계국장을 등장시켜 중국 경제는 문제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고개 드는 중국 위기론은 실물과 금융의 동시 불안에서 비롯된다. 시장은 실물경제보다 더 빠르게 반응했다. 주식·채권·외환 시장 모두 불안감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상하이종합지수는 올 고점 대비 20% 이상 빠지면서 약세장에 진입했고, 채권 디폴트가 늘고, 외환 시장도 위안화 절하로 자본 유출 우려까지 부각되고 있다.


중국 중심 글로벌 공급사슬 흔들

지난 10일 중국 지도부 집무실이 모여 있는 중난하이(中南海)에 하랄드 크루거 BMW 회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크루거 회장은 리커창(李克强) 중국 총리 앞에서 “미래에는 세계 어느 지역에서나 BMW X3 전기차를 볼 수 있을 것”이라며 “모두 ‘메이드인차이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리 총리는 “중국은 거대 시장일 뿐 아니라 세계 시장을 개척하기 위한 전략적 거점”이라고 화답했다. 다음 날 BMW는 36억유로를 투자해 중국 합작 법인의 지분을 50%에서 75%로 높이고, 선양 공장 확장을 위해 30억유로를 추가 투자한다고 발표했다. 글로벌 공급사슬 중심에 선 중국의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미·중 무역전쟁은 이 같은 모습이 지속되기 힘들 수 있음을 예고한다. 13일로 100일을 맞은 미·중 무역전쟁이 장기화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면서 상호 보복관세로 커진 비용 탓에 중국을 떠나려는 외자 기업이 증가할 수 있다는 관측이 늘고 있다.

중국은 미·중 상호관세 부과가 공급사슬에 미칠 영향을 줄이는 데 부심하고 있다. 중국이 올해 세 차례 수입 관세를 인하한 데 이어 11월 1일부터 관세를 내리기로 한 1585종 수입 상품 가운데 자본재를 적지 않게 포함한 배경이다.

하지만 중국 중심의 글로벌 공급사슬은 흔들리고 있다. 블룸버그비즈니스위크는 중국이 미국 주요 기업 전산 서버에 쌀알보다 작은 ‘스파이칩’을 은밀히 심어왔다고 폭로했고, 중국의 반발에도 관련 보도를 이어 가고 있다. 트럼프 정부는 중국의 기술 탈취 위협을 부각시키는 행보를 이어 가고 있다. 미국의 항공 우주 기업들에서 기밀 정보를 훔치려 한 혐의로 중국 국가안전부 소속 첩보원인 쉬옌쥔을 지난 9일 기소했다. 

또 미 재무부는 11월 10일부터 강화된 외국인 투자 규제를 시행한다. 통신, 반도체, 항공기 제조, 군사장비 등 27개 산업과 관련된 기술 및 비즈니스가 타깃인데 중국을 겨냥했다고 현지 언론은 전한다. 전 세계에 국가안보를 우려해 차이나머니를 거부하는 뉴노멀이 생기고 있다는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보도 역시 중국 중심의 공급사슬에 대한 두려움이 깔려 있다.


금융 불안 고조에 금융 개혁 지체

최근 중국 증시 급락은 금융 개혁의 장애물로 부상했다. 주식을 담보로 대출한 민영 상장사들이 주가 급락으로 자금난이 심화되면서 지분을 넘겨 속속 국유화되고 있다는 소식도 불안감을 부추기고 있다.

15일쯤으로 예정된 미국 재무부의 환율보고서에서 중국이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될 수 있다는 미국 관리의 압박성 발언은 위안화 절하 압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위안화 절하는 미국의 관세 부과를 상쇄시킬 수 있는 이점이 있지만 과도할 경우 자본 유출로 이어져 금융위기를 촉발할 수 있다.

중국의 외환보유액은 8·9월 두 달 연속 감소했다. 4월 중순까지만 해도 올 들어 3.86% 올랐던 위안화 가치는 하락세로 돌아섰지만 8·9월에 진정세를 보였다. 보유 달러를 팔아 위안화 가치 방어에 나선 것으로 관측된다. 일각에선 위안화 방어를 위해 보유 달러를 매각하느라 2015년과 2016년 1조달러 가까이 외환보유액이 줄어들었던 악몽이 재현될 수 있다는 우려마저 제기된다.

중국은 통화와 재정을 모두 동원하면서 경제 안정에 주력하고 있다. 15일부터 은행 지급준비율을 1%포인트 내리면서 올 들어 네 차례 지준율을 인하했다. 연초 잡은 올해 감세와 기업 수수료 감소분이 1조1000억위안이었지만 이를 1조3000억위안으로 높였다.

‘중국 위기론은 허구’라는 주장의 근저엔 정부의 시장 통제력이 강한 국가자본주의가 방패막이가 될 수 있다는 기대가 있다. 국가자본주의가 이번에도 위기론을 허구로 만들어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


Plus Point

미, 중국 국유기업 정책 공격 나서

중국 중심의 글로벌 공급사슬 해체에 나선 미국의 카드 중 하나는 중국 국유기업에 대한 글로벌 견제망 구축이다. 지난 4~5일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열린 글로벌 경제계 협의체 ‘B20 서밋’이 내달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제출하기 위해 낸 정책 제안 보고서에서 국유기업의 시장경제 경쟁 왜곡 제거를 주문한 게 한 사례다.

특정국을 지칭하지 않았지만 중국의 국유기업을 의미하는 대목이 여럿 보인다. 보고서는 ‘포천’ 글로벌 500대 기업에서 국유기업의 비율이 2005년 9%에 불과했지만 2014년 23%로 늘었다며 누구도 소유제를 이유로 특혜를 보장받아서는 안 되도록 하는 새로운 국제 규칙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산업보조금의 시장 왜곡과 국유기업에 의한 교역 왜곡을 해결하기 위한 협상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한 ‘철강 과잉 생산 글로벌 포럼’의 진전을 소개했다.

중국 기업의 글로벌 500대 기업 약진과 중국발 철강 과잉 생산 문제는 국제 사회의 국유기업 개혁 주문이 중국을 겨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B20서밋은 G20 정상들이 국유기업에 대한 특혜 조치를 제한하거나 없애는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해 다자간 협상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중국은 즉각 반발했다. B20 중국 비즈니스위원회와 중국국제무역촉진위원회(CCPIT)는 각각 발표한 성명을 통해 보고서가 국유기업의 시장경제 왜곡을 포함한 특정 주제를 일방적으로 뽑아 중국 산업계의 적절한 우려와 요구를 무시했다고 주장했다.

미국은 앞서 지난달 25일 유럽연합(EU), 일본과 함께 더욱 평평한 경기장을 만들기 위해 국유기업과 산업보조금에 대한 새로운 규칙 협의가 진전을 보이고 있다는 성명을 냈다. 성명은 제3국이 국유기업을 국가 챔피언으로 만들어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시키면서 공정한 경기장이 도전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제3국은 중국을 가리킨 것으로 풀이된다. 성명은 특히 올해 말까지 산업보조금 규칙 협상을 가동할 수 있도록 각국 내부 절차에 속도를 내기로 했다. 특히 주요 교역국이 향후 협상에 참여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중국의 국유기업 정책을 공격하기 위해 글로벌 세력을 끌어모으겠다는 신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