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 버스 승강장 모습. 서울시에 따르면 코로나19 발병 이후 항공기 탑승객이 줄면서 공항 리무진 이용객도 30% 이상 감소했다. 사진 연합뉴스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 버스 승강장 모습. 서울시에 따르면 코로나19 발병 이후 항공기 탑승객이 줄면서 공항 리무진 이용객도 30% 이상 감소했다. 사진 연합뉴스

항공 업계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최악의 위기를 맞고 있다. 일본 불매운동과 홍콩 반(反)정부 시위의 여파가 끝나기도 전에 중국발(發) 감염병이 덮쳤고, 여기에 역학적 연관성을 확인할 수 없는 환자까지 쏟아져 나오면서 항공 여객 수요가 더욱더 차갑게 얼어붙고 있다. 재무 건전성이 취약한 저비용 항공사(LCC)들은 도산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정부는 부랴부랴 지원에 나섰다.

2003년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와 2015년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당시에는 여객수송량이 과거 수준으로 돌아가는 데까지 6개월가량 걸렸다. 코로나19의 확산 속도 등을 고려할 때 이번에는 항공 업계가 텅 빈 좌석을 반년 이상 지켜봐야 할 수도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최고운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비교적 최근 메르스 사태를 겪은 한국에는 더 민감한 문제”라며 “국경 간 이동 수요가 위축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위기 1│영업이익 4분의 1토막 전망

금융 정보 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국내 항공사 가운데 증권사 3곳 이상의 실적 추정치가 나온 4개 항공사의 올해 1분기 영업이익 전망치 평균(컨센서스)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일제히 급감했다. 대한항공의 영업이익은 2019년 1분기 1406억원에서 2020년 1분기 862억원으로 38.7% 줄어들고, 아시아나항공의 영업이익은 72억원에서 영업손실 161억원으로 적자 전환할 것으로 전망된다.

LCC 대표 주자들에 대한 전망도 어둡다. 제주항공 영업이익은 지난해 1분기 570억원에서 올해 1분기 영업손실 121억원으로 적자 전환하고, 같은 기간 티웨이항공 영업이익은 373억원에서 75억원으로 80%가량 주저앉을 것으로 예상된다. 통상 항공 업계가 1분기를 계절적 성수기로 여긴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충격적인 숫자다. 4개 회사 영업이익 컨센서스 합은 655억원으로 2420억원을 번 1년 전과 비교해 4분의 1토막이 났다.

문제는 현재 여객 수요를 지켜보면 항공 업계 실적이 시장 컨센서스를 밑돌 가능성도 있다는 점이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국내 항공사들의 한·중 노선 운항 횟수는 1월 초 주 546회에서 2월 셋째 주에는 126회로 약 77% 감소했다. 중국뿐 아니라 동남아시아로 가는 여객 수요(2월 1~10일 기준)도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0% 줄었다.

자연스레 항공권 취소·환불은 급증했다. 1월 26일부터 2월 12일까지 환불 금액은 대한항공 1275억원, 아시아나항공 671억원, 진에어 290억원, 티웨이항공 227억원, 제주항공 225억원, 이스타항공 190억원, 에어서울 40억원 등 총 3000억원에 달한다.

항공사들은 길고 어두운 터널 안에서 쓰러지지 않기 위해 사투를 벌이고 있다. 대한항공은 객실 승무원 7000여 명 가운데 300명을 대상으로 3월 한 달간 연차 휴가를 쓰도록 지시했다. 운항 노선 감축으로 비행 편수가 감소한 만큼 승무원들의 연차 휴가를 유도해 비용 지출을 줄이려는 의도다. 코로나19 사태 이전 대한항공은 총 30개 중국 노선에서 주 204회(왕복 기준) 비행기를 띄웠지만, 현재는 10개 노선에서 주 57회만 운항 중이다.

국내 항공사 중 중국 노선의 매출 비중이 가장 높은 편에 속하는 아시아나항공도 이 핵심 노선을 79%가량 축소했다. 동남아 노선도 25% 줄였다. 한창수 아시아나항공 사장은 2월 18일 비상경영을 선포하면서 자신의 임금을 40% 반납하겠다고 했다. 임원 38명도 급여의 30%를 반납했고, 조직장 전원도 20%를 토해냈다. 또 회사는 전 직종을 대상으로 10일간 무급 휴직을 시행하기로 했다. 2월 중 하려던 창립 32주년 기념식도 취소했다.


위기 2│날개 꺾인 LCC

LCC가 느끼는 위기감은 대형 항공사의 고통보다 훨씬 크다. 악재를 오랜 기간 버틸 수 있는 체력 자체도 약한데, LCC의 특성상 중국·일본 등 단거리 비중이 높은 편이기 때문이다. 코로나19의 충격을 맨몸으로 고스란히 떠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2019년 4분기부터 비상경영 체제를 가동해온 국내 최대 LCC 제주항공은 2월 12일을 기점으로 위기경영 체제에 돌입했다. 모든 임원이 임금을 30% 이상 반납하고, 애초 승무원에게만 적용하려 한 무급 휴직(최대 1개월)을 조종사·정비사 등 전 직원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이석주 제주항공 대표는 “항공 산업은 수익성 저하 차원을 넘어 생존을 염려해야 할 정도로 심각한 위기 국면에 진입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제주항공은 329억원의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2010년 이후 9년 만의 적자다. 엄경아 신영증권 연구원은 “코로나19의 영향이 상반기 중 극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제주항공에 대한 투자의견을 기존 매수에서 ‘중립’으로 하향 조정했다. 티웨이항공, 이스타항공, 에어서울 등 다른 LCC도 잇따라 비상경영을 선포하고 직원들을 대상으로 무급 휴직 신청을 받고 있다.

항공사들은 허리띠를 졸라매는 동시에 단 한 명의 승객이라도 붙잡기 위해 티켓 할인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다. 2월 19일 기준 이스타항공 홈페이지에서 ‘20일 인천에서 일본 후쿠오카로 떠나는 편도 운임’을 검색해보면 특가 운임이 5000원이라고 나온다. 정상 운임 22만원의 2.27%에 불과하다. 노선이 존재하는 이상 텅 빈 비행기라도 띄워야 한다면 공짜에 가깝게 가격을 낮춰서라도 승객을 태우겠다는 것이다. 한 LCC 관계자는 그러나 “특가 운임을 제시해도 (항공권이) 잘 안 팔린다”고 했다.

지난해 항공운송사업 면허를 취득한 신생 항공사들도 골머리를 앓기는 마찬가지다. 신생 항공사 중 가장 먼저 운항에 나선 플라이강원은 3월 1일부터 약 한 달간 양양~대만 타이베이 노선 운항을 멈춘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3%까지 추락한 하루 평균 탑승률을 견디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아직 취항 전인 에어프레미아와 에어로케이는 운항 노선 결정에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위기 3│긴급 수혈 착수한 정부

애초 우려보다 훨씬 심각한 항공 업계 분위기에 정부도 지원 대책을 강구하기 시작했다. 정부는 2월 17일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로 ‘코로나19 대응 경제장관회의’를 열고 일시적 유동성 경색에 빠진 LCC에 대해 산업은행 심사를 거쳐 최대 3000억원을 긴급 지원하기로 했다.

또 정부는 여객이 감소한 항공사를 대상으로는 3월부터 최대 3개월간 공항 시설 사용료 납부를 유예할 방침이다. 상반기 중 항공 수요 회복이 안 될 경우에는 6월부터 2개월간 착륙료를 10% 감면한다. 현재 감면해주고 있는 300억원 규모의 인천공항 조명료 등의 감면 기한 연장도 검토한다.

김상도 국토부 항공정책실장은 “금융위원회·산업은행과 긴밀히 협의해 기존 대출보다 더 빠르게 지원될 수 있도록 하겠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