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4월 22일 청와대에서 열린 제5차 비상경제회의에서 항공·해운·자동차·조선 등 7개 기간산업에 40조원 규모의 안정기금을 조성하는 방안을 확정했다. 사진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은 4월 22일 청와대에서 열린 제5차 비상경제회의에서 항공·해운·자동차·조선 등 7개 기간산업에 40조원 규모의 안정기금을 조성하는 방안을 확정했다. 사진 연합뉴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며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가리지 않고 ‘감원 칼바람’이 몰아치고 있다. 그동안 무급 휴직, 조업 중단, 월급 반납 등으로 허리띠를 졸라매고 버텨왔지만 사태가 길어지며 결국 ‘항복선언’을 하고 대규모 인력 감축에 나서는 것이다.

코로나19로 승객이 급감하다 못해 제로 수준까지 다다른 항공 업계가 대표적이다. 이스타항공은 4월 6일 전 직원의 5분의 1에 해당하는 300여 명을 정리해고하는 방안에 대해 노조와 협의했다. 유동성 부족에 시달리는 이스타항공은 2월에는 임직원의 급여를 40%만 지급했고 3월에는 급여를 지급하지 못했다. 3월 24일부터는 아예 셧다운(영업 중단)을 선언했다. 항공 업계에서는 이스타항공이 국내 항공사 정리해고의 신호탄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기반이 약한 항공 업계 중소 조업사와 하청업체에서는 이미 대규모 감원과 심하면 폐업까지 잇따르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대한항공의 인천지역 기내식 협력업체 직원 1800여 명 가운데 1000여 명은 이미 권고사직을 당했다. 940여 명의 인력을 운영하며 아시아나항공 기내식 생산을 담당하던 게이트고메코리아(GGK) 등도 최근 인원의 약 3분의 1을 감원했다. 대한항공 대형기의 기내 청소를 전담해온 하청업체 한성과 이스타항공의 여객조업을 담당하던 이스타포트는 폐업을 결정했다.

유동성 위기에 빠진 두산그룹은 대기업 중 감원 규모가 가장 클 것으로 예상된다. 두산중공업은 3월 말 45세 이상 직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접수해 600여 명을 감원했다. 지난해 10월 입사했어야 할 신입사원 60여 명에 대한 입사는 무기한 연기되고 있다. 국책은행에 1조원을 지원받은 두산중공업이 채권단에 제출한 자구안에도 대규모 구조조정안이 포함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롯데마트는 최근 만 55세 이상 계약직 실버사원 38명 전원에 대한 계약 연장을 하지 않는, 사실상의 정리해고 조치를 내렸다. 이들은 건강에 문제가 없고 본인이 원한다면 70세까지 일할 수 있는 조건으로 채용됐다. 롯데마트는 4월 9일 양주, 천안아산, 신평통점 3개 점포를 상반기에 폐점하고 하반기까지 총 15개 점포를 정리할 계획이라고도 밝혔다. 창사 이래 처음으로 희망퇴직을 실시하고 있는 롯데하이마트도 올해 매출이 부진한 오프라인 매장 11개를 폐점하고 21개 매장은 통폐합하겠다는 계획이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롯데마트가 폐점 점포의 인력을 다른 점포로 배치하는 고용 유지 방침을 밝혔지만, 폐점 규모가 ‘역대급’인 만큼 실현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며 “유통업계 전반에 언택트(untact·비대면) 기조가 강화되며 일자리 창출 효과가 큰 대면 서비스업은 회복되지 않는 피해를 볼 것”이라고 말했다.


언제 잘릴지 모르는 일시 휴직자 160만 명

전문가들은 코로나19 사태로 기초 체력이 약한 중소기업부터 이미 대규모 실업 대란이 벌어지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3월 구직급여 신규 신청자 수는 15만6000명으로 2월(10만7000명)보다 4만9000명이 늘었다. 통계청이 4월 17일 발표한 ‘3월 고용동향’을 보면 3월 취업자 수는 지난해 3월보다 19만5000명 감소했는데, 이는 금융위기 당시인 2009년 5월 이후 최대치다.

업종별로 보면 도소매업(16만8000명 감소), 숙박업(10만9000명 감소), 교육서비스업(10만 명 감소)에서 특히 감원 칼바람이 거셌고 고용상태가 불안정한 임시·일용직과 매출 급감을 겪고 있는 자영업자도 실업 직격탄을 맞았다. 지난 3월 임시직과 일용직 취업자 수는 각각 42만 명과 17만 명이 줄었다. 자영업자도 7만1000명이 감소한 가운데, 고용이 있는 자영업자는 19만5000명이 줄어들며 감소 폭이 컸다. 한계 상황에 달한 자영업자들이 직원을 모두 내보내고 업장을 지탱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지난해 3월(40만7000명)보다 거의 4배나 증가해 160만7000명에 이르는 ‘일시 휴직자’다. 일시 휴직자는 휴직 사유가 해소될 경우 일반적인 취업자로 복귀하지만, 앞으로 고용 상황이 더욱 악화할 경우 실업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크다. 고용 시장이 경직된 국내 특성상 일시 휴직자로 분류되는 것일 뿐,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임시 해고로 잡히는 인원이다. 통계적 착시를 걷어내고 나면 국내 상황이 심각한 정도는 실업자 수가 2000만 명이 넘는 미국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장기 침체 가능성 크다…‘특별 예산’보단 ‘근본 해법’ 필요

정부는 이러한 대량 실업 사태를 막기 위해 여러 가지 조치를 내놓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4월 22일 청와대 제5차 비상경제회의에서 “40조원 규모로 위기 극복과 고용을 위한 기간산업 안정기금을 긴급 조성하겠다”며 “국민 세금을 투입하는 대신 지원받는 기업들에 상응하는 의무도 부과하겠다”고 했다. 유동성 위기에 처한 기업에 정부 자금을 수혈해주는 대신, 감원을 멈추고 일자리를 지켜내라는 의미다.

또 정부는 4월 21일 국무회의에서 중소기업에 대한 고용유지지원금을 한시적으로 휴직·휴업수당의 90%까지 지급할 수 있는 내용의 ‘고용보험법 시행령’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고용유지지원금은 경영난을 겪는 사업주가 노동자를 해고하는 대신 휴업·휴직으로 고용을 유지할 경우 이에 대한 수당(평균임금의 70% 수준) 일부를 정부가 지원하는 제도다. 앞서 정부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고용유지지원금 수준을 중소기업 75%, 대기업 67%로 한 차례 상향 조정했지만, 상황이 더 악화하자 추가 상향한 것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고용 침체가 장기적으로 지속될 것으로 전망하며, 일시적인 지원책보다는 고용 시장 자체를 유연화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도 3월 20일 외신 기자 간담회에서 “원래 하반기부터 경제 상황이 회복되는 V 자 형태로 갈 것으로 예상했지만, 코로나19가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으로 선언되며 어려움이 3~4년 지속되는 U자 시나리오까지 생각해 볼 수 있게 됐다”고 부정적인 전망을 내놨다.

김태기 단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장기 침체가 예상되는 만큼 기업들은 코로나19 이후에도 정규직을 고용하는 ‘위험’을 감수하기보다는 빈자리를 비정규직·임시직으로 채우려는 경향을 보일 것”이라며 “근본적으로 고용 시장이 유연화되지 않으면 양질의 일자리는 쉽게 회복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