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분기 역대 최고 신규 가입자 수를 기록한 넷플릭스의 리드 헤이스팅스 CEO. 사진 블룸버그
2020년 1분기 역대 최고 신규 가입자 수를 기록한 넷플릭스의 리드 헤이스팅스 CEO. 사진 블룸버그

미국 주요 기업의 2020년 1분기 실적이 잇달아 발표되고 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세계 경제에 미친 충격이 각 기업의 성적표에서 구체적인 수치로 나타나는 것이다. 대다수 기업이 부진한 실적을 발표했지만, 선전하거나 위기를 기회로 삼은 기업도 있었다. 1분기 실적을 토대로 코로나19에 직격탄을 맞은 산업과 아직은 영향권 밖에 있는 산업 그리고 되레 성장 기회를 얻은 산업 등을 가늠해볼 수 있다.

세계 최대 정보기술(IT) 기업인 구글의 모기업 알파벳은 4월 28일(현지시각) 발표한 올해 1분기 실적에서 ‘예상보다는 나은’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1분기 매출액은 412억달러(약 50조2200억원)로 월스트리트의 전망치(402억달러)보다 높았고, 영업이익은 80억달러(약 9조7500억원)로 전망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알파벳은 매출에서 광고가 차지하는 비중이 82%에 달해, 코로나19로 인한 광고 시장 침체의 직격탄을 맞을 것으로 예상됐다.

실제로 알파벳의 2020년 1분기 광고 매출액은 성장세가 다소 둔화됐다. 다만 유튜브와 클라우드 사업 부문의 성장이 두드러졌다. 유튜브 광고 매출은 지난해 1분기보다 33.5% 증가한 40억3800만달러를 기록했고, 클라우드 매출은 52.2% 상승한 27억7700만달러를 기록했다. 코로나19로 유튜브 사용량이 늘었고, 언택트(untact·비대면) 경제가 활성화하며 직장·학교·지역사회 등에서 클라우드 이용 건수가 급증한 것으로 분석된다. 화상 회의 클라우드 서비스인 구글 미트(Google Meet)는 일일 사용자가 300만 명 이상 증가했다.


집콕이 기회가 되다

“우리는 지난 두 달간 2년치의 디지털 전환을 경험했다. 원격근무·학습에서부터 판매와 고객 관리, 클라우드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원격으로 존재하는 세상에서 고객이 비즈니스에 적응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MS) 최고경영자(CEO)는 4월 29일 올해 1분기 실적을 발표하며 이렇게 말했다. 매출은 350억달러(약 42조6600억원)로 지난해 1분기보다 15% 증가했고, 영업이익은 130억달러(약 15조8400억원)로 25% 늘었다. 코로나19도 비껴간 매출 신장의 원천은 클라우드 사업인 애저(Azure)로 59%나 성장했다.

코로나19 사태로 반사이익을 톡톡히 누린 기업은 단연 넷플릭스다. 넷플릭스의 2020년 1분기 실적은 매출액 57억6800만달러(약 7조원), 영업이익 9억5800만달러(약 1조1000억원)로 각각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27.6%, 108.7% 성장했다. 1년 만에 영업이익률이 두 배 이상 뛴 것이다.

특히 주목할 부분은 전망치(700만 명)의 두 배를 훌쩍 넘겨 사상 최대치(1577만 명)를 기록한 신규 가입자 수다. 넷플릭스의 주 활동 무대인 북미에서는 신규 가입자가 231만 명 증가했고, 나머지 1346만 명은 아시아·남미·유럽 등 전 세계에 고르게 분포했다. 코로나19를 발판 삼아 글로벌 시장 점유율을 확고히 한 것이다.

4월 29일 실적을 발표한 세계 최대 소셜미디어 페이스북도 1분기에 지난해 1분기보다 17% 증가한 177억달러(약 21조570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주당 순이익은 1.71달러로 지난해 1분기(0.85달러)보다 두 배 이상 늘었다. 애초 페이스북에 대해 ‘코로나19로 광고 매출에 차질을 빚으면서 실적이 좋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가 있었지만, ‘집콕’으로 인한 이용량 증가가 이를 상쇄한 것으로 풀이된다.

데이터센터와 PC, 반도체 사업부가 중심인 인텔은 언택트 시대에 가장 최적화한 기업처럼 보인다. 인텔이 4월 23일 발표한 2020년 1분기 매출액은 198억달러(약 24조1300억원)로 지난해 1분기보다 23% 늘어 전망치(187억달러)를 넘어섰다. 데이터 사업 부문 매출은 101억달러, PC 부문은 98억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각각 34%, 14% 증가했다. 알파벳·MS와 마찬가지로 클라우드 수요 폭증의 효과를 누렸고, 재택근무와 온라인 수업으로 노트북 수요가 늘어난 덕분이다. 영업이익은 70억4000만달러(약 8조5800억원)로 69% 증가했다.


항공·소비재·중장비 업계, 코로나19 직격탄에 존폐 기로

반면 코로나19 사태로 직격탄을 맞고, ‘예상대로’ 처참한 성적표를 받아든 기업도 많다. 델타항공은 4월 22일 발표한 1분기 실적에서 5억3400만달러(약 6500억원)의 순손실을 신고했다. 5년 만의 첫 분기 적자다. 델타항공의 1분기 매출은 18% 감소한 85억9200만달러(약 10조4700억원)를 기록했는데, 2분기 매출은 지난해 2분기보다 90% 감소할 것으로 전망됐다.

항공기 제조 업체 보잉은 올해 1분기 6억4100만달러(약 7800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는 21억5000만달러(약 2조6200억원)의 순이익을 기록했었다. 매출은 169억달러(약 20조6000억원)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6%나 급감했다. 737 맥스 기종의 연쇄 추락 참사에 코로나19 사태가 겹친 결과다. 보잉은 총 16만 명에 이르는 전체 인력 중 약 10%를 감축하겠다고 밝혔다. 데이비드 칼훈 보잉 CEO는 “코로나19가 항공기 수요와 생산 지속성, 공급망 안정성 등, 경영에 ‘보디 블로(body blow)’를 가했다”며 “항공 및 여행 수요가 절벽으로 떨어졌다”고 말했다.

‘사회적 거리 두기’로 매장 영업에 중대한 차질이 발생한 스타벅스도 역시 실적이 좋지 않았다. 스타벅스의 올해 1분기 매출은 지난해 1분기보다 5% 감소한 59억9600만달러(약 7조2600억원)였다. 특히 중국에서의 1분기 매출은 지난해 1분기(12억8900만달러)보다 70% 감소한 3억8400만달러(약 4600억원)에 그쳤다. 스타벅스는 3월부터 미국 매장 대부분의 문을 닫고 드라이브 스루 매장만 간신히 운영하는 상황인데, 코로나19 발원지인 중국에서는 매장 폐쇄가 보다 빨랐던 탓이다.

세계 최대의 건설·광산 장비 생산 업체 캐터필러는 올해 1분기 매출이 106억달러(약 12조9200억원)로 지난해 1분기보다 21% 감소했고 영업이익도 36% 하락했다. 전 사업 부문에서 매출 감소가 나타났는데, 이는 코로나19로 인한 글로벌 공급망 훼손과 국제 유가 하락, 기계 장비 실수요 감소 등에 기인한 것으로 분석된다.

금융 서비스 기업인 아메리칸 익스프레스(아멕스)는 소비 심리가 얼어붙으며 실적이 반 토막 났다. 아멕스의 올해 1분기 매출은 103억1000만달러(약 12조5600억원)로 50% 급감한 수치다. 업계 전망치였던 107억1000만달러에도 미치지 못했다. 당기순이익도 전년 대비 76% 줄어들며 최악의 1분기를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