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하포드는 “업무를 계획하는 데 시간을 할애하기보다 곧바로 실행해보는 리더가 성공할 가능성이 더 크다”고 말했다. <사진 : TED>
팀 하포드는 “업무를 계획하는 데 시간을 할애하기보다 곧바로 실행해보는 리더가 성공할 가능성이 더 크다”고 말했다. <사진 : TED>

아마존은 신속한 배송으로 고객 감동을 선사하는 서비스와는 대조적으로 주먹구구식 경영으로 잘 알려져 있다. 설립자 제프 베조스는 초창기 비전만 웅장했을 뿐, 온라인 판매에 대해 거의 알지 못했다. 웹사이트를 오픈한 첫 주, 예상치 못한 주문량에 관리팀은 밤새 배송 작업에 시달렸다. 심지어 책상을 사러 갈 시간도 없어 직원들은 한동안 모두 바닥에 앉아 일했다. 베조스는 무심코 일주일도 더 된 상한 커피를 마셔 심하게 배탈이 나기도 했다.

베조스는 위기 상황에서 이렇게 말했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20분 이후에 할 일을 계획한다면 그건 시간 낭비일 뿐이다. 어떤 회사든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단계에서는 무질서한 혼돈을 거쳐야 한다.”

그는 늘 재촉하는 사람이었고, 이 때문에 직원들과 수차례 갈등을 일으켰다. 여러 번의 위기를 겪으면서도 아마존은 건재하다. 많은 사람들이 이를 두고 베조스가 ‘천재이기 때문’이라고 평가한다. 하지만 그의 성공 비결이 사실은 ‘혼돈’과 ‘무질서’ ‘무계획’에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파이낸셜타임스의 수석 칼럼니스트로 밀리언셀러 ‘경제학 콘서트’의 저자인 팀 하포드(43)는 신간 ‘메시(Messy)’를 통해 “질서는 진리가 될 수 없다”면서 “완벽한 계획을 약간 엉성하게 바꾸는 게 혁신의 시작”이라고 말했다.

‘메시’는 혼란스럽고 엉망진창인 상태를 가리키는 영어 단어다. 수량화된 목표는 취지에 맞지 않는 잡무를 유발한다. 계획하고 고민할 시간에 차라리 재빠르게 행동에 옮기는 게 낫다는 얘기다.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조스. 하포드는 베조스에 대해 기존의 예측을 뒤엎는 지속적인 혼돈 전략을 사용하는 메시형 인재라고 했다. <사진 : 블룸버그>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조스. 하포드는 베조스에 대해 기존의 예측을 뒤엎는 지속적인 혼돈 전략을 사용하는 메시형 인재라고 했다. <사진 : 블룸버그>

팀 하포드에 따르면 ‘무질서’는 창조의 비옥한 토양이다. 그는 전화 인터뷰에서 “우리가 세우는 많은 계획은 사실 어떤 일을 실행하기 가장 좋은 타이밍을 방해하는 요소”라며 “약간의 혼란과 무질서를 수용할 때 의욕이 커지고 혁신을 더 많이 만들어낼 수 있다”고 말했다.


무질서한 리더가 조직을 혁신으로 이끈다고 했는데 근거는 뭔가.
“내가 주장하는 바는 할 일을 조직하는 데에도 시간이 든다는 것이다. 일을 꼼꼼하게 계획하는 시간에 일을 해치우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다. 그 일에 집중하는 동안에는 조직화할 필요가 없다. 샌드위치 가게에서 샌드위치를 만드는 과정을 생각해보자. 첫 번째 주문이 들어오면 식빵에 마요네즈를 뿌리기 시작한다. 하지만 잠깐, 손님이 밀려 들어오는 점심시간이 닥쳤다. 하던 일을 멈추고 샌드위치 주문이 더 들어왔는지 확인하는 것은 좋은 아이디어 아닐까? 그렇다! 샌드위치 주문이 두 개 더 들어와 있다. 이제 이 일들을 어떻게 조직화하는 것이 좋을까? 아마도 주문이 들어온 순서대로 하면 될 것이다. 아니면 샌드위치를 메뉴별로 구분하는 것이 더 나을까? 고기가 들어간 샌드위치를 먼저 만들고, 채식 샌드위치를 만드는 게 더 나을까? 아니면 식빵을 굽는 샌드위치 먼저 만들까?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굉장히 많은 리더들이 쓸데없는 계획과 조직화에 시간을 낭비한다는 것이다. 물론 도서관처럼 정교한 색인 시스템이 필요한 곳도 있고, 건설 현장이나 수술실처럼 세심한 체크리스트가 필요한 장소도 있다. 하지만 도서관과 수술실이 아닌 이상 조직화는 쓸데없는 맹신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

어려서부터 ‘계획하고 정리하라’고 배웠는데, 필요 없다는 것인가.
“우리가 꿈꾸는 성공은 대개 혼란과 무질서라는 토대에서 세워진다. 하지만 성공 이후에는 모든 혼란과 무질서가 사라지고 깔끔하게 정돈된 모습만 드러나기 때문에 우리가 잘 알기 어려울 뿐이다. 사실 대부분의 혁신은 무질서 속에서 탄생한다. 심지어 때로는 무질서가 그 자체로 좋은 것일 수도 있다.”

어떤 무질서가 그 자체로 좋은 건가.
“많은 기업들이 사무실 정리정돈에 힘쓰지만 연구 결과 사실 깔끔한 사무실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쉽게 무기력과 의욕 저하를 느낀다. ‘스웨터를 의자 등받이에 걸쳐 두지 마라’ ‘캐비닛 위에 장식품을 올려놓아서는 안 된다’ 따위의 규정에 따라 한치 어긋남 없이 정리된 사무실은 근로자들의 사기를 떨어트린다. 그들의 자율성과 결정권을 훼손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리해야 물건을 쉽게 찾을 수 있고, 업무 효율성도 좋아지지 않나.
“꼭 그렇진 않다. 시간을 들여 서류를 깔끔하게 정리했다고 해서 필요한 서류를 찾는 데 걸리는 시간이 빨라지는 것은 아니다. 스티브 휘태커 미국 UC산타크루스 교수와 IBM 연구소 연구자들이 함께 집필한 논문 ‘나는 이메일을 정리하느라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에 따르면 평상시 폴더를 나눠 이메일을 분류한 사람이 원하는 이메일을 찾을 때는 대략 1분이 걸리는 반면, 무작위적인 방식으로 이메일을 찾을 때는 17초밖에 걸리지 않았다. 즉, 정리와 질서가 반드시 업무 효율성에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다.”

통제할 수 없는 사람이 불안을 야기하지는 않는가.
“그 또한 질서와 규칙에 대한 찬양이 빚어낸 오해다. 보통 우리가 생각하는 모범적인 사람은 아침 일찍 일어나고, 연도별·월별 목표와 스케줄 대로 하루하루 행동하는 등 주도적으로 ‘통제된’ 삶을 이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로 우리의 삶이 통제될 수 있나? 한치 앞도 알 수 없는 게 인생이고, 비즈니스다. 오늘날처럼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것들이 생겨나는 시기에는 숙련된 기술보다 알 수 없는 변수에 숙련되는 힘이 필요하다. 질서에 익숙하고 질서정연한 환경에서 지낸다면 조금만 상황이 무질서해질 때 견디기 어렵다. 즉, 모두가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목표와 계획을 세우고 책상을 정리하지만, 막상 이런 행동들은 혁신을 방해하는 ‘스트레스’에 불과하다.”

커피숍에서 가져온 일회용 종이컵과 플라스틱 포크, 코카콜라 페트병, 씻지 않은 유리컵, 목도리 등이 무질서하게 놓여 있는 책상. 하포드는 ‘무질서’는 창조성의 비옥한 토양이라고 했다.
커피숍에서 가져온 일회용 종이컵과 플라스틱 포크, 코카콜라 페트병, 씻지 않은 유리컵, 목도리 등이 무질서하게 놓여 있는 책상. 하포드는 ‘무질서’는 창조성의 비옥한 토양이라고 했다.

성공한 사람들은 질서와 규칙을 중시했다고 들었는데, 사실과 다른가.
“미국 건국의 아버지 벤저민 프랭클린을 예로 들겠다. 그는 회고록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의 덕목 중 질서는 가장 큰 골칫거리였다. 이 덕목에 대한 과오는 늘 나를 뒤쫓으며 성가시게 했고 수정하고 개선해도 거의 나아지지 않았다. 너무나 자주 수렁에 빠지고 말아 나는 이 덕목을 언제든 쉽게 포기할 준비가 돼 있었다.’ 그의 말은 과장이 아니다. 그는 실제로 중요한 서류를 책상과 바닥에 아무렇게나 널브러트리곤 했다. 평생 그는 질서를 유지하는 데 실패했지만 그는 다초점 렌즈와 피뢰침을 발명하고 미국 독립선언서에 서명했으며, 프랭클린 플래너(프랭클린이 고안한 일정관리 수첩)로 전 세계 직장인들의 귀감이 됐다. 프랭클린이 유독 ‘질서’에 실패한 이유는 아마도 질서를 지키지 않아도 성공에 전혀 방해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지켜야 할 일’ 중 질서가 쉽사리 우선순위에 오르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책의 제목인 ‘메시’는 어떤 의미인가.
“혼란과 무질서가 혁신의 원동력이 될 수 있다는 거다. 우리가 지나치게 맹신하는 질서, 자동화, 시스템, 평가, 효율, 패턴에 약간의 혼란과 무질서를 주입하면 생각지도 못한 기회와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샘솟을 수 있다. ‘혼란과 무질서 = 비효율’이라는 고정관념이 잘못됐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었다. 질서정연함이 성공의 원인이라기보다는 질서정연함을 유지하기 위해 들인 노력의 결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수 있다는 얘기다.”

혼돈이 주는 장점은 뭔가.
“혼돈·무질서의 가장 큰 효용은 창의성을 자극한다는 것이다. 심리학자 챌런 네메트와 줄리안 콴의 실험이 이를 증명한다. 두 명씩 짝을 지어 파란색과 초록색 슬라이드를 보여주면서 그것이 무슨 색인지 묻고 답하게 한 실험이었다. 두 명 중 한 명은 실험 도우미로 엉뚱하게 대답해 피실험자를 당황스럽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피실험자가 혼란을 느낄 때쯤 색깔에서 연상되는 단어를 아무것이나 말해보라고 했다. 평소 파란색에서 ‘하늘’ ‘바다’ 등을 떠올렸던 피실험자들이 ‘재즈’ ‘불꽃’ ‘슬픔’ ‘피카소’ 등 훨씬 독창적인 단어들을 내놨다. 실험 과정의 산만함이 갇혀 있던 창의성을 끌어낸 것이다.”

앞으로 혼돈 전략의 중요성이 커질까.
“질서와 규칙을 깨는 즉흥성·의외성은 기계가 따라오지 못할 인간의 강점이 될 수 있다. 영국의 통신회사 ‘O2’의 사례가 이를 보여준다. 2012년 O2에 24시간 이상 지속된 접속장애가 발생했을 때의 일이다. 소비자들의 불만이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통해 밀려들었다. O2의 소셜미디어팀은 표준절차에 따라 대응했다.
‘서비스에 불편을 드려 대단히 죄송합니다’로 시작되는 모범답안을 빠르게 복사·붙이기 한 것이었다. 하지만 크리스라는 직원은 이런 방식으론 고객들의 화를 누그러뜨릴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네 엄마한테 욕을 퍼부어도 사과만 하면 되겠지?’란 고객의 글에 ‘어머니는 그런 욕에 신경 쓰지 않으실 것입니다’란 답을 쓰는 식의 즉흥적인 대응을 했다. 효과는 컸다. O2가 인간적인 브랜드로 부상하면서 O2의 처지를 동정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인공지능의 발달로 인간의 일자리를 걱정하는 지금, 이런 무질서는 오히려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인간만의 유일한’ 방식이다.”

팀 하포드의 신간 ‘메시’는 혼란과 무질서의 유용성에 대해 설명한다.
팀 하포드의 신간 ‘메시’는 혼란과 무질서의 유용성에 대해 설명한다.

그렇다면 혁신하기 위해 일상을 정돈하지 않고, 즉흥적인 삶을 추구해야 하나.
“그렇다. 메시형 인간이 돼야 한다. 메시형 인간이야말로 현실이 어렵고 여건이 열악할수록 더 좋은 해법을 찾는 인재들이다. 정체된 업무 성과, 해답이 보이지 않는 문제로 답답함을 느끼고 있는 개인과 조직이라면 메시적 방법론으로 영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메시형 인간의 특징을 설명한다면.
“책상은 지저분해도 물건을 쉽게 찾고, 서류는 자주 보는 순으로 쌓아두는 편이다. 일일 계획의 수행률은 떨어지나 월간 계획의 수행률이 매우 높다. 조직의 기량을 향상하기 위해서 규율보다 자율이 필요하고, 일이 풀리지 않을 땐 일단 엎고 시작하는 것도 방법이다. 또 계획을 세우기 전에 먼저 경험해보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리에 앉아 생각하는 데 시간을 많이 쏟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안 될 것 같은 일도 일단 해보면 방법이 나타난다고 생각한다.”

가장 성공한 메시형 인재는 누구인가.
“제프 베조스라고 생각한다. 그는 언론과 전문가들이 수차례 회의적인 평가를 내렸지만, 매번 위기를 극복하고 세계적인 소매 업체로 거듭났다. 기존의 ‘바르고, 점잖고, 예측 가능한’ 리더가 아니기 때문에 적도 많은 편이다. 하지만 그는 하버드비즈니스리뷰에서 ‘가장 성공적인 CEO’ 1위에 꼽혔다. 그의 원동력은 ‘기존의 예측을 뒤엎는’ 지속적인 혼돈 전략에 있다. 이처럼 ‘한치 앞도 알 수 없어야’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앞으로 제4차 산업혁명 시기에는 이러한 인재들이 더 빛을 발할 것이다.”

아마존이 어떤 혼돈의 전략을 사용했고, 기업들이 이를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
“초창기 아마존닷컴이 장난감 유통을 접수할 수 있었던 것은 경쟁사에 돌진해 카트마다 장난감을 사 들고 나와 창고에 쌓아두었기 때문이다. 닥치는 대로 쌓아둔 탓에 물류 시스템은 마비되고 재정은 파탄 상태에 직면했지만 크리스마스가 되자 경쟁사에는 없는 제품이 아마존에는 남아 있었다. 혼돈 전략의 제1원칙은 이미 우리에게 승리를 안겨준 바 있는 전략을 의심하는 것이다. 또한 깔끔하게 산출된 데이터를 한 번 헤집어봐야 한다. 지나치게 효율적인 절차가 있다면 그 안에 잡음을 만들어보라고도 권하고 싶다.
오늘날 우리가 맹신하고 있는 질서, 자동화, 시스템, 평가, 효율, 패턴 등의 영역을 하나하나 짚어보며, 약간의 혼란과 무질서를 주입하는 것만으로도 생각지 못한 기회와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샘솟을 것이다.”


▒ 팀 하포드(Tim Harford)
옥스퍼드대 경제학 석사. 파이낸셜타임스 수석 칼럼니스트. 저서 ‘경제학 콘서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