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덕 대표는 카페의 종주국이라고 할 수 있는 프랑스 파리 진출을 꿈꾸고 있다. 그는 “빠르면 오는 가을 파리에 테라로사 매장 두 곳을 열 예정”이라고 말했다. <사진 : C영상미디어 임영근>
김용덕 대표는 카페의 종주국이라고 할 수 있는 프랑스 파리 진출을 꿈꾸고 있다. 그는 “빠르면 오는 가을 파리에 테라로사 매장 두 곳을 열 예정”이라고 말했다. <사진 : C영상미디어 임영근>

고급 커피 전문점 테라로사(TERAROSA·포르투갈어로 ‘붉은 땅’이란 뜻이고, 브라질에서는 ‘희망이 있는 땅’이란 의미로 쓰인다)를 경영하는 김용덕(57) 대표와의 인터뷰는 인문학 강좌를 방불케 했다. “커피를 배우다 보니 자연스레 유럽을 비롯한 세계 문명사 공부를 하게 됐다”는 그는 구한말 고종의 재위 기간에 영국 런던에는 지하철 운행이 시작됐고, 일본에선 근대화의 틀이 마련됐다고 말했다. “일본이 근대화하는 데 딱 30년 걸렸는데, 30년 만에 ‘세계 열강의 반열’에 오른 셈이다. 일본은 젊은 인재를 유학 보내 해외 문물을 배우게 했다. 지도자가 어디를 바라보느냐가 국가를 만드는 기틀이 된다. 우리나라 지도자들은 당시 왜 그렇게 못했을까? 이런 분노를 느끼면서 커피산업이 어떻게 하면 국가의 경쟁력이 될까? 이런 숙제를 안고 커피사업을 하게 됐다.” 

그렇다고 김 대표가 대학 시절 전공이 커피나 세계문명사와 관련됐던 것은 아니다. 김 대표는 고교 졸업 후 21년간 은행을 다녔고 정규대학은 나오지 않았다.

그는 10곳의 테라로사 매장도 직접 설계하고 공사감독까지 맡았는데, 이 또한 사실상 거의 독학에 의한 것이었다. 그는 지금 강릉에 커피박물관을 짓고 있는데, 설계 도면을 직접 만들고 공사도 본인이 진두지휘하고 있다. 그가 보여준 설계도는 건물 외형에서부터 건물 내부까지 다양했다. 그는 한마디로 ‘열정’으로 똘똘 뭉친 사람이었다.

김용덕 대표는 최근 피아니스트 손열음씨와 함께 아프리카 중동부에 위치한 르완다를 다녀왔다. ‘르완다 커피를 사면 현지 어린이에게 교복 한벌을 기부하는 행사’를 벌여 온 그는 교복 1000벌과 피아노를 기증했다. <사진 : 테라로사>
김용덕 대표는 최근 피아니스트 손열음씨와 함께 아프리카 중동부에 위치한 르완다를 다녀왔다. ‘르완다 커피를 사면 현지 어린이에게 교복 한벌을 기부하는 행사’를 벌여 온 그는 교복 1000벌과 피아노를 기증했다. <사진 : 테라로사>


은행원에서 커피사업가로 변신

김용덕 대표 인터뷰는 테라로사 광화문점에서 진행됐다. 그는 인터뷰를 하기 전에 커피를 내놓았다. 그는 물을 마셨고 커피는 마시지 않았다. “커피는 하루에 서너잔 정도 마신다. 한창 커피 만들 때는 10잔, 20잔도 마셨지만, 지금 그렇게 마셨다가는 잠을 못 잔다. 호적엔 1960년생이라고 돼 있지만 진짜는 1959년생이다.”

김 대표는 2002년 강원도 강릉에 테라로사 1호점을 낸 데 이어 작년 9월에 10호점인 부산점을 내면서 테라로사를 국내 명품 커피 브랜드로 키웠다. 매장 수는 적지만 내부 공간 미학, 커피 맛으로는 국내 최고로 꼽힌다. 200여명의 전 직원을 모두 정직원으로 채용했으며 4대보험 등 자녀교육, 복리후생 면에서 커피업계 최고 수준이다. 특히 테라로사 서종점(양평)은 지역 명소로 떠오르면서 주말엔 이곳을 찾는 고객들 때문에 교통 체증이 생길 정도다. 매출 역시 10개 매장 중 서종점이 가장 높다.


경기도 양평의 서종점이 지역 명소가 된 이유는.
경기도 양평의 서종점이 지역 명소가 된 이유는.

“서종점 자리는 처음엔 구식 한옥 형태의 식당이었는데, 내가 디자인을 새로 해서 카페를 열었다. 그런데 생각 외로 고객 반응이 좋아 카페 앞 땅을 추가로 확보해 건물을 새로 지었다. 지금 서종점은 신축 건물에 있다. 1, 2층 중간이 트여 있어 다른 커피숍들과는 공간 미학 측면에서 크게 달라 서울에서 오는 고객뿐 아니라 지역의 문화예술인들도 즐겨 찾는 명소가 됐다. 양평군수, 경기도지사까지 찾아와 ‘문화적으로 이런 공간을 만들어줘서 참 고맙다’고 했다. 주변에 모텔들이 많아 분위기가 칙칙했는데 테라로사가 들어서고 나서 한결 밝아지고 서울 사람들로 북적대니까 지방자치단체가 고마워했다. 양평군수는 과장급 5명까지 데리고 와서 ‘어려운 점이 있으면 법적 테두리 안에서 최대한 돕겠다’고까지 했다.”

한 해 매출은.
“작년 매출이 정확하게 243억원이었다. 스타벅스 같은 경우 1조원 넘게 하지 않나.(웃음) 하나 짚고 갈 부분은 나는 회사를 운영하면서 한 번도 매출액을 목표로 삼지 않았다는 것이다. 매출 비중을 보면 매장 운영이 60%, 원두나 기획상품 판매가 40% 정도다.”

김 대표의 고향은 강원도 묵호다. 산비탈에 있던 어릴 적 집에는 오징어 냄새가 가실 날이 없었다. 생계수단으로 어머니는 오징어 말리기를 했다. 낮에 햇볕에 말린 오징어는 밤엔 비 맞을까 방 안으로 들였다. 초등학교 4학년 때 강릉으로 이사 간 그는 고교 졸업 후 21년간 은행원으로 일하다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명예퇴직했다. “그때 조흥은행에 다니고 있었는데 외환위기가 발생해 은행에서 명예퇴직을 받기 시작했다. 거의 1호로 사표를 내고 회사에서 나왔다. 당시 은행은 횡령만 하지 않으면 지점장까지 하고 나오는 게 당연시됐는데, 과장 말년에 회사를 그만둔 것이다.”

커피사업 전에 무얼 했나.
“퇴직 직후엔 커피 일을 할 거라고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 1년 정도 여행을 다니다가 막연하게나마 식당 같은 걸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고향인 강릉에 돈가스집을 열었는데, 1999년 서울 청담동에서 ‘고급 레스토랑 문화’를 접하고 충격을 받았다. 내가 하는 건 식당도 아니구나. 디자인이 뭔지도 몰랐지만 격이 다르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러면서 레스토랑 문화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레스토랑 공부를 열심히 했는데, 레스토랑 공부는 다른 게 아니다. 많이 찾아가서 많이 먹어보는 거다. 직원들도 많이 보내서 공부를 시켰다. 그러다 와인을 취급하면서 와인 공부를 하게 됐다. 그 다음에 커피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커피를 공부하다 ‘우리 식당이 파는 커피는 커피가 아니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우리나라의 커피 산업이 얼마나 뒤처졌는지를 알게 됐다. 굉장한 충격이었다. 일본을 오가며 커피산업을 비교해보고 차이가 얼마나 심한지 체감했다. 이때 받은 충격이 분노로 표출됐다.” 

분노라고 했나.
“뭐라고 표현하기 어려운 분노다. 이런 분노감이 커피를 산업으로 접근하도록 했다. 커피를 공부하면서 역사를 같이 공부하게 됐다. 유럽의 커피사는 역사와도 일치한다. 유럽사를 공부하면서 우리나라 역사와 비교하게 됐다. 그러면서 역사 인식이란 게 생겼다. 내가 분노라고 하는 이유가 뭐냐면, 고종이 등극한 시기가 1863년인데, 영국에 지하철이 처음 다닌 해가 바로 1863년이다. 그리고 이때 영국은 잠수함을 만들었다. 일본 사람 중에서 우리가 가장 나쁜 사람으로 꼽는 이토 히로부미가 1846년생인데, 그는 22살에 런던으로 유학을 간다. 이토는 유학 전까지 쇄국파였는데 다녀온 후, ‘이래선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고 명치유신 때 총리로 들어갔다. 그후 총리를 9번 했다. 22살 청년이 영국에서 본 것을 토대로 국가 근대화 틀을 만들었다. 일본이 근대화하기까지 딱 30년이 걸렸다. 30년 만에 일본은 세계 열강에 들어갔다. 이토는 명치유신 후, 젊은 사람들을 유학 보내 공부를 시켰다. 만일 고종이 외국 문물을 받아들이고 또 실제로 청년들을 유학 보냈더라면 우리나라도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그런 분노를 느끼면서 커피산업이 어떻게 하면 국가의 경쟁력이 될까. 이런 숙제를 안게 됐다.”

커피의 사업적 가치는 얼마일까.
“먹고 마시는 산업은 한 번 자리를 잡으면 오래간다. 삼성전자 시가총액이 현재 325조원이다. 스타벅스는 글로벌 시가총액이 100조원 그리고 네슬레가 250조원 정도다. 네슬레는 30년 전에도 지금의 자리, 20년 전에도, 10년 전에도 그랬다. 10년 후, 20년 후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런데 삼성전자가 10년 후, 20년 후에도 그 자리에 있을까? 아무도 삼성전자가 그 자리에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삼성전자가 지금의 이익률을 낸다면 기업 가치는 800조원 정도가 돼야 한다. 그만큼이 안 되는 것은 미래가 어둡기 때문이다. 먹고 마시는 사업은 한 번 우뚝 서면 따라가기가 힘들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 명품이 될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있다. 지금도 천천히, 집요하게 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테라로사 1호점을 서울이 아닌 강릉에 냈다.
“은행 다니던 시절에 사둔 땅이 강릉에 있어 거기에 점포를 열었다. 난 강원도라는 지역에 상당한 애착을 갖고 있다. 그래서 제품도 ‘메이드 인 강릉’으로 하고 있다. 메이드 인 코리아가 아니다. 외국 제품도 ‘메이드 인 이탈리아’보다 ‘메이드 인 피렌체’를 더 믿지 않나? 와인도 원료로 쓴 포도 재배지역이 작을수록 와인값이 비싸지 않나. 지역을 드러내는 게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갖게 됐고, 그게 우리의 강점이 됐다.”

가장 인상 깊었던 커피농장은 어디인가.
“지금까지 방문한 커피농장은 수백군데가 넘는다.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은 에티오피아의 하라 지역이다. 에티오피아는 가든 커피 형태다. 농장 개념이 아니다. 우리나라 시골에 가면 감나무가 있는 것처럼 거긴 커피나무들이 집집마다 있다. 하라 지역은 강우량이 극히 적어서 겨우 목숨만 유지하는 커피나무들이 많다. 커피나무가 목숨만 겨우 유지하는 모습을 보면 애절함이 느껴진다. 이런 나무들이 나이가 얼마나 됐는지, 200~300년은 될 텐데, 정확히 알 수 없다. 최소 200년은 됐을 나무다. 그런데 비실비실하게 겨우 서 있는 커피 나무에서 열매가 겨우 300~500g 정도 열린다. 브라질에서 3년 자란 나무가 2㎏까지 열리는데, 이런 특성 때문에 커피맛도 매우 특별하다. 그렇다고 해서 커피 질이 좋은 것은 아니다. 가공을 못하기 때문이다. 에티오피아엔 이런 애잔함이 배어 있다.”

테라로사가 커피를 공급받는 국가는 몇 나라인가.
“15개국 정도로, 연간 600t 정도를 수입한다. 우린 항상 스페셜티 커피를 구입하므로 가격 차이는 별로 없다. 좋은 것만 산다. 남미 쪽으로 콜롬비아, 브라질, 가끔 볼리비아 그리고 중미라고 하면 온두라스, 엘살바도르, 과테말라, 파나마, 코스타리카, 아프리카는 에티오피아, 케냐, 부룬디, 르완다에서 수입한다.”

테라로사 서종점 (경기도 양평)은 주변 도로가 막힐 정도로 인기가 많다. 특히 1, 2층 중앙이 트여 있어 시원한 느낌을 준다. <사진 : 테라로사>
테라로사 서종점 (경기도 양평)은 주변 도로가 막힐 정도로 인기가 많다. 특히 1, 2층 중앙이 트여 있어 시원한 느낌을 준다. <사진 : 테라로사>

테라로사 내부 인테리어 콘셉트는.
“18~19세기 프랑스 파리나 오스트리아 빈에서는 카페문화가 한창이었다. 당시엔 ‘당신이 가는 커피집이 어디라고 말하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말하겠다’는 말이 있었을 정도였다. 내가 가는 공간이 나의 안목과 나의 사회적 위치를 말한다. 루소 같은 철학자는 커피 한잔을 마셔도 꼭 자신이 가는 카페에만 갔다. 우리의 내부공간 설계 기본 원칙은 엘레강스다. 우아함이다. 풀이하면 아름답고, 미학적, 지적이라는 것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그리고 테라로사는 모든 매장 콘셉트가 다르다. 하지만 와보면 ‘과연 테라로사답구나’ 하고 알게 한다. 이런 식으로 가보고 싶어지는 매장을 만든다. 우리가 매장을 새로 내면 고객이 멀리서 일부러 찾아오는 경우가 많다. 그런 사람들이 올 때마다 ‘과연 테라로사’라고 환호하게 만들고 싶다. 부산에 매장을 냈을 때도 핫이슈였다.”

테라로사 스페셜티 커피 명성을 유지하는 비결은.
“우리는 ‘막내의 품질이 우리의 품질’이라고 생각한다. 직원이 바에 나오기까지 훈련을 엄청 시킨다. ‘이 커피를 내린 사람이 막내라서 (커피의 품질이) 별로다’라는 핑계는 용납할 수 없다. 그래서 직원 교육에 신경을 쓴다. 입사하면 교육을 1년 정도 받는다. 3개월은 커피에 대해 이해하기 위해서 개념적인 공부를 하게 하면서 잡무를 시키고 자체 시험을 보는데, 그걸 통과해야만 데뷔를 할 수 있다. 바에 데뷔하면 어시스트를 하다가, 어느 정도 올라와야 메인이 된다. 보통 메인이 되기까지 2년 정도 걸린다.”

스타벅스 커피와 테라로사 커피의 차이점은.
“스타벅스는 맛보다 장소를 파는 곳이다. 스페셜티를 지향할 수 없다. 매장이 너무 많아 좋은 커피를 공급할 수 없다. 스타벅스는 커머셜 회사이고, 우리는 스페셜티 회사다. 우리가 구입하는 생두가 스타벅스보다 최소 2배 이상 비싸다. 또 스타벅스는 미국에서 로스팅한 원두만 들여오기 때문에 신선도가 떨어진다는 지적도 피할 수 없다. 미국 본사 입장에선 생두가 아닌 원두를 수출해야 본사 마진을 극대화할 수 있다. 현재 미국 스타벅스의 아시아 영업이익률이 30%를 넘는다고 한다. 한국 스타벅스 매출이 1조원을 넘는다지만 대부분의 수익이 미국 본사로 넘어간다. 파트너사인 신세계는 애써 고생해서 스타벅스 본사 좋은 일만 하는 셈이다.”

스타벅스를 뛰어넘을 전략이 있는가.
“질적으로는 이미 뛰어넘었다. 우리의 점포당 매출은 스타벅스 점포의 2배 이상 나온다. 전체 매출은 우리가 턱없이 뒤지지만, 앞서 말했듯이 우리는 한 번도 매출을 목표로 삼은 적이 없다. 우리의 첫번째 슬로건은 ‘굿 컴퍼니’다. 굿 컴퍼니가 목표이며 빅 컴퍼니를 목표로 하지 않는다. 이미 품질이나 디자인은 뛰어넘었다. 확장성도 지속적으로 100년, 200년을 내다봐야 한다. 우리는 직원들의 삶의 질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스타벅스는 10년 후엔 떨어질 일밖에 없다. 역전되는 순간이 올 것이다.”


▒ 김용덕
1960년생, 강릉상고 졸업(1978년), 조흥은행 근무(1977~98년), ㈜학산 테라로사커피 설립(2002년), 한국스페셜티커피협회 회장(2014~2015년)


Plus Point

부산 수영점, 커피와 철판의 조화

작년 10월에 문을 연 테라로사 부산 수영점 내부 전경. 철강회사 창고로 쓰인 곳이란 이미지를 살리기 위해 철재로 탁자, 의자를 만들었다. <사진 : 테라로사>
작년 10월에 문을 연 테라로사 부산 수영점 내부 전경. 철강회사 창고로 쓰인 곳이란 이미지를 살리기 위해 철재로 탁자, 의자를 만들었다. <사진 : 테라로사>

작년 10월에 오픈한 테라로사 수영점(부산)은 고려제강의 철강제품(어구로 주로 쓰이는 와이어로프)을 만들던 공장이었다. 1963년에 지어진 이 공장은 주변에 주택가가 들어서면서 2008년 생산을 멈추고 창고로 쓰여오다 2016년 부산비엔날레 W조직위의 ‘공장 재생 프로젝트’ 일환으로 새로운 문화공간으로 거듭나게 됐다.

고려제강 송영철 회장은 강릉의 테라로사를 직접 찾아와 매장을 둘러본 뒤 공장 창고를 테라로사 매장으로 탈바꿈시켜달라고 김용덕 대표에게 청했다.

김 대표는 이 공간이 50여년간 철을 다룬 공장이라는 점을 최대한 살릴 수 있도록 공간을 설계했다. 공장 바깥에 쌓여있던 철판을 두드려서 커피 바로 만들고 탁자, 의자로 만들었다. 커피와 철판, 어쩌면 어울리지 않을 두 요소가 테라로사가 새롭게 해석한 공간에서 조화를 이루도록 한 것이다.

스틸이라는 차가운 재료를 만들던 공간을 커피의 따뜻한 감성으로 녹인 셈이다. 김용덕 대표는 “50여년간 묵묵히 철을 다뤄온 기업의 ‘오리진’을 그대로 살리는 차원에서 공간미학을 살려 설계했다”며 “고려제강 측에서도 ‘자신들의 정체성과 너무 잘 맞는다’고 좋아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