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야 코디스와란 맨GLG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최근 암호화폐에 대한 투자자들의 움직임은 투기적인 성격”이라고 분석했다. <사진 : C영상미디어 이신영>
프리야 코디스와란 맨GLG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최근 암호화폐에 대한 투자자들의 움직임은 투기적인 성격”이라고 분석했다. <사진 : C영상미디어 이신영>

“블록체인이나 암호화폐의 기술 자체는 진짜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최근에 보였던 암호화폐에 대한 투자자들의 움직임은 투기적인 성격이라고밖에 설명이 안 된다.”

프리야 코디스와란(Priya Kodeeswaran) 맨GLG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글로벌 금융투자업계에서 20년간에 걸쳐 경력을 쌓은 베테랑이다. 4차 산업혁명과 관련한 기술 분야에 주로 투자하고 있다.

코디스와란 매니저는 우수한 성과를 인정받아 2016년 맨GLG의 포트폴리오 매니저로 자리를 옮겼다. 맨GLG는 세계 최대 대체투자 운용사인 맨그룹의 자산운용사로 329억달러에 달하는 운용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맨그룹은 소설가 한강이 2016년 한국인 최초로 수상하기도 한 맨부커상 후원사다. 맨부커상은 노벨문학상·공쿠르상과 함께 세계 3대 문학상 중 하나로 꼽힌다.

지난달 금융투자협회 금융투자교육원이 주최한 글로벌 프리미엄 세미나 참석차 한국을 찾은 코디스와란 매니저를 인터뷰했다.


비트코인 같은 암호화폐에 대한 견해는.
“블록체인이나 암호화폐 기술 자체는 진짜라고 생각한다. 장기적으로 봤을 때 이 기술들이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본다. 하지만 지금 투자자들이 보여주는 움직임은 투기적인 성격이라고밖에 설명이 안 된다. 블록체인 기술이나 암호화폐 자체에 직접 투자하기보다는 이런 기술의 등장으로 영향을 받게 되는 다른 업종에 투자하는 방식으로 접근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영향을 받는 업종을 예를 든다면.
“비트코인 채굴에 필요한 부품들이 있다. 예컨대 비트코인을 채굴하려면 GPU(그래픽처리장치)가 필요하다. GPU 때문에 반도체 수요가 증가하면서 이런 반도체를 공급하는 업체들의 주가도 올랐다. 이들 업체가 전체 반도체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 자체는 작지만 성장세는 아주 빠르다.”

반도체 산업 전망은 어떤가.
“반도체 산업의 성격 자체가 과거와 달라지고 있다. 예전에 반도체 산업은 경기순환적인 특징을 보였다. 하지만 최근에는 과거에 비해서 이런 특징이 사라지고 있다.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일단 반도체 산업의 경쟁자들이 나가떨어지면서 경쟁 자체가 많이 사라졌다. 두 번째 이유는 투자 규모의 증가다. 차세대 반도체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투자 규모가 너무 커진 탓에 시장에 새로 진입하는 게 쉽지 않아졌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한국의 반도체 산업 전망은 매우 긍정적이다. 한국은 반도체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기업들을 보유하고 있다. 최근 4차 산업혁명으로 기업들이 처리해야 할 데이터의 규모 자체가 크게 늘었고, 반도체에 대한 수요 증가로 이어지고 있다.”

정보기술(IT) 기업이 미국 증시를 이끌고 있다. 언제까지 이런 흐름이 이어질까.
“지금 미국 증시를 이끄는 IT 기업들은 과거 나스닥 버블 때와는 상황이 다르다. 나스닥 버블 때 주목받았던 IT 기업들을 보면 매출 실적 자체가 좋지 않았고 현금 흐름도 나빴다. 반면 지금 미국 증시를 이끄는 IT 기업들은 매출 실적이나 현금 흐름 모두 굉장히 좋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상황이 과거와 다를 수밖에 없는 또 다른 이유는 데이터다. 미국 증시를 이끄는 IT 기업들은 굉장히 큰 플랫폼을 가지고 있다. 여기에서 많은 양의 데이터가 만들어진다. 이런 데이터는 거래 자체가 쉽지 않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IT 산업이 독점의 형태를 띨 수밖에 없다. 덕분에 이들 기업의 매출이나 가치는 계속 오르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지난달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에 참석한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 <사진 : 블룸버그>
지난달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에 참석한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 <사진 : 블룸버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 1일 미국 증시의 시가총액 상위 5대 기업이 전부 IT 기업이라고 보도했다. 미국 증시에서 가장 덩치가 큰 애플의 시가총액은 6일 기준으로 8272억달러(약 898조원)에 달한다. 애플은 지난해 매출액 2391억7600만달러, 순이익 505억2500만달러를 기록하며 실적 상승세를 이어갔다. 구글의 모기업인 알파벳도 지난해 설립 이후 처음으로 매출액 1000억달러를 돌파하는 등 꾸준한 모습을 보였다.

한국 증시에서는 바이오 산업에 대한 관심이 크다. 바이오 산업은 어떻게 전망하나.
“맨GLG는 회사 차원에서 바이오 기업에 투자하지 않는다. 두 가지 이유가 있는데 먼저 바이오 산업은 고도의 전문 지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맨GLG에는 그 정도 수준의 전문 지식을 가진 팀원이 없기 때문에 바이오 산업에 투자하지 않는다. 두 번째 이유는 바이오 산업 자체가 ‘모 아니면 도’와 같은 로또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런 산업군은 맨GLG의 투자 철학이나 투자 종목 결정 과정에 맞지 않는다.”

오랜 기간 좋은 운용 성과를 유지한 비결은.
“컨센서스에 지나치게 의존할 필요가 없다. 컨센서스는 시장에 참가한 사람들이 내는 의견의 중간값이다. 많은 투자자가 이 컨센서스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는데 잘못된 것이다. 중간값이라는 건 틀릴 가능성이 큰데다 실제 일어나는 변화를 쫓아가는 속도가 더디기 때문이다. 특정 기업의 실적에 대해 다양한 의견이 있을 수 있다. 시장의 의견 차이가 클수록 변화의 가능성도 커진다. 여기에 투자의 기회가 있다. 컨센서스에 의존하다 보면 이런 변화에 제때 반응하기 힘들다.”

4차 산업혁명 시대다. 투자자들에게 조언을 해준다면.
“아마라의 법칙(Amaraʼs Law)이라는 게 있다. 미국의 원로 미래학자인 로이 아마라(1925~2007) 박사가 남긴 말인데, ‘우리는 새로운 기술의 효과에 대해서 단기적으로 과대 평가하는 경향이 있고, 장기적으로는 과소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는 말이다. 블록체인과 암호화폐도 이 아마라의 법칙에서 보면 지금 나타나는 현상을 이해할 수 있다.”


▒ 프리야 코디스와란(Priya Kodeeswaran)
맥마스터대 상업경제학과, 아보세트캐피털 투자 매니저, 체인캐피털 파트너, RWC파트너스 포트폴리오 매니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