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0일 오전 인천시 남동구 인천시청 앞에 인천과 서울을 오가는 광역버스들이 세워져 있다. 광역버스 업체들은 경영난을 호소하며 인천시에 버스 준공영제 도입을 촉구하고자 버스들을 이곳에 가져왔다. 사진 연합뉴스
8월 10일 오전 인천시 남동구 인천시청 앞에 인천과 서울을 오가는 광역버스들이 세워져 있다. 광역버스 업체들은 경영난을 호소하며 인천시에 버스 준공영제 도입을 촉구하고자 버스들을 이곳에 가져왔다. 사진 연합뉴스

취업준비생 김지윤(25·인천 서구)씨는 최근 있었던 인천 광역버스 파업 예고 탓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김씨는 토익 공부 모임과 학교 도서관 이용 등을 위해 일주일에 3번씩은 서울 이화여대를 찾는다. 그는 이때마다 1000번 버스를 타거나 공항철도를 이용해 왕복하는 ‘원거리 통학생’이다.

김씨는 “안 그래도 버스 내부가 낡았는데 요금까지 상대적으로 비싸서 낮에는 비교적 저렴한 지하철을 타는 편”이라며 “비싼 요금을 받는 버스 회사가 승객을 볼모로 잡고 운행 중단까지 들먹이니 배신감이 든다”고 말했다. 

인천과 서울을 오가는 광역버스가 버스 회사의 적자 탓에 운행 중단 논쟁이 벌어지자, 버스 운영 체계 개편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만년 적자 버스 회사가 경영 효율화 노력 없이 지방자치단체의 한정된 세금을 요구해도 되냐는 비판도 거세다. 버스 회사의 적자를 시민 혈세로 메우는 것을 넘어, 더욱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인천시에 본사를 둔 광역버스 회사 6곳은 “8월 21일 첫차부터 19개 노선을 달리는 버스 259대의 운행을 중단하겠다”는 폐선 신고서를 8월 9일 인천시에 제출했다. 하지만 인천시가 8월 16일 “버스 회사들의 폐선 요구를 받아들이겠다”며 추가 지원은 불가하다며 강경한 대응을 했다. 이에 광역버스 사업자들은 폐선 신고를 철회하고 자구책을 마련하겠다며 한발 물러섰다.

인천 버스 회사들이 ‘운행 중단’으로 압박했던 이유는 인천시에 ‘광역버스에도 준공영제를 시행해 달라’는 요구를 관철시키기 위해서였다. 그렇지 않아도 버스 회사들은 적자를 내는데, 최저임금이 오르고 주 52시간 근무제가 도입돼 손해 규모가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커질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번 운행 중단을 선포한 버스 회사들은 올해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인건비 상승분 등 23억원을 인천시가 보전해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인천시는 이미 시내버스에 준공영제를 시행해 재정 부담이 있다며 거부했다. 인천시는 올해 책정한 버스 준공영제 예산 794억5000만원이 9월 중 소진될 것으로 보여, 추경예산으로 약 300억원을 편성해 시의회 의결을 요청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인천시의회에서 추경예산안이 통과되면 2009년 8월 준공영제 도입 이후 버스 보조금이 사상 처음으로 1000억원을 넘게 된다. 

단순히 비용이 문제라면 버스 회사가 주요 수입원인 버스 요금을 올리면 되지 않느냐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요금을 올리면 이미 줄어들고 있는 승객이 더 빠르게 감소할 수 있다. 인천시에는 공항철도를 비롯해 2016년 개통된 지하철 수인선과 인천 지하철 2호선 등 지하철 신규 노선이 생겨 버스 이용객이 매년 감소 추세다. 

더 큰 문제는 버스 회사가 시민을 볼모로 잡아 지원금을 요구하는 것이 인천만의 문제가 아니란 것이다. 이달 14일 강원 원주 지역 시내버스 회사 3곳의 노동조합도 “20일부터 총파업에 돌입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이들도 회사 손실을 지자체가 보전해주는 시내버스 준공영제 시행을 요구했다. 춘천, 진주 등지에서도 버스 운행 관련 잡음이 발생하고 있다. 


버스 준공영제, 악마는 디테일에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 6월 ‘버스 준공영제를 전국으로 확대 도입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하지만 김 장관의 말대로 준공영제만 도입하면 버스 회사의 앓는 소리가 말끔하게 사라질까.

전문가들은 지금처럼 버스 사업자에 대한 특혜를 확대하는 것은 대증요법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현행 준공영제는 지자체의 지원금 부담은 늘어나는데, 버스 회사의 경영 효율화를 유도하기는 어려운 제도라는 설명이다.

인천 광역버스 노선 폐선 신청 입장 발표하는 박준하 인천시 행정부시장. 사진 연합뉴스
인천 광역버스 노선 폐선 신청 입장 발표하는 박준하 인천시 행정부시장. 사진 연합뉴스

국회입법조사처는 8월 1일 발간한 ‘2018 국정감사 정책자료’에서 ‘버스 준공영제의 전국 확대 방침에 대한 대책’이란 보고서를 통해 현행 제도의 문제점을 꼬집었다. 박준환 입법조사처 국토해양팀 입법조사관은 “버스 업체의 효율성 강화를 유도하기 어렵고 표준운송원가 산정 등에 대한 세부 운영 장치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박 조사관은 “현실적인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는 버스 준공영제를 충분한 사전 논의 없이 전국으로 확대하면 정부의 과도한 재정 지원 등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영수 사회공공연구원 연구위원은 지자체에서 보조금을 주는 기준으로 삼는 ‘표준운송원가’ 산정의 허점을 지적했다. 표준운송원가는 버스 운송 사업 비용을 표준화한 기준으로 산정한 금액을 말한다. 인건비, 정비료 등 항목별 원가 산정 방식이 다른데, 실제 집행된 비용을 주는 실비 항목과 정해진 표준단가를 적용하는 항목, 둘로 나뉜다. 지역마다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연료비와 운전자 인건비 두 항목은 실비로 정산되고, 그 외 각종 비용은 표준단가를 적용한다.

여기서 표준단가를 적용받는 항목들이 항목 간 교차가 가능하다는 점은 보조금을 줄줄 새게 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가령 현행 제도하에서는 버스 회사가 정비 표준단가를 높게 책정한 뒤 남은 돈을 임원 인건비로 써도 무방하다는 의미다.

이 연구위원은 “표준단가 항목은 업체의 포괄적인 사용이 보장돼 버스 업체들이 용도 외 사용을 하고 있다”면서 “이 때문에 표준단가 산정으로 원가가 절감돼도 지자체의 재정 지원을 감소시키는 효과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감사원도 2015년 인천시 감사에서 ‘교통 관련 보조금 집행 실태’ 보고서를 통해 “버스 회사가 항목별 표준단가와 실제 지출액의 차액을 임원 인건비 인상 재원으로 사용하는 등, 도덕적 해이의 원인이 될 수 있다”면서 “이는 버스 준공영제의 도입 취지인 서비스 수준 향상과 무관하다”고 지적했다.


Plus Point

런던·도쿄 등의 대중교통은 수익·경쟁도 중시

영국 런던시도 버스 준공영제를 시행하고 있지만 한국보다는 버스 사업자들의 경쟁을 유도하는 ‘노선 입찰제’를 채택해 운영하고 있다. 노선 입찰제는 버스 노선의 면허·운영권은 지자체가 갖고, 버스 사업자는 입찰에 참여해 운영권을 위임받아 버스를 운영하는 방식이다.

모창환 한국교통연구원 광역교통행정연구팀장은 “런던시는 적자 노선에 대해서 보조금을 가장 적게 요구하는 민간 사업자에 운영권을 맡긴다”고 설명했다. 노선을 수주하려면 사업자가 자구 노력을 할 수밖에 없는 체계라는 설명이다.

일본은 민영제와 정부가 직접 운영하는 공영제를 동시에 시행하고 있는데, 민영 버스 사업자가 노선을 운영하는 것이 일반적인 운영 체계다. 기본적으로 철도 중심 교통 체계를 구축하고 있어 버스는 철도 교통을 보조하는 수준이다. 민영 사업자들은 정부·지자체 지원에 의존하지 않고도 흑자를 내는 것을 목표로 하며, 이를 통해 얻은 이익을 서비스 질 향상에 투입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미국 뉴욕시는 대중교통 완전 공영제를 채택해 대중교통공사(MTA)가 버스, 지하철, 교외철도 등 대중교통 수단을 통합 운영하고 있다. 대중교통을 복지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어, 선진국 대도시 가운데 요금이 저렴한 편이다. 지자체뿐 아니라 연방정부에서도 보조금을 지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