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시금치값은 폭염으로 인해 작황이 악화되면서 전달보다 130% 넘게 치솟았다. 사진 연합뉴스
지난 7월 시금치값은 폭염으로 인해 작황이 악화되면서 전달보다 130% 넘게 치솟았다. 사진 연합뉴스

“신랑이 집에서 직접 마는 김밥을 워낙 좋아해 재료를 사러 왔는데 시금치가 한 단(400g)에 5000원이나 하니 살 엄두가 안 나네요. 깻잎을 대신 넣어야 할 것 같아요.”

8월 21일 서울 동대문구의 한 대형마트에서 만난 주부 이모(37)씨는 시금치가 진열돼 있는 야채코너 앞에서 서성이다 이내 발길을 돌렸다.

기록적인 폭염으로 농산물 가격이 급등하면서 장바구니 물가도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한국은행의 최근 발표에 따르면, 올해 7월 생산자물가지수는 104.83으로 3년 10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상품·서비스가 시장에 처음 출하되는 가격을 나타내는 생산자물가는 2~3개월의 시차를 두고 소비자물가에 반영된다. 소비자물가는 올해 5~7월 3개월 연속 1.5%를 기록하면서 계속 오르고 있다.

생산자물가를 끌어올린 주범은 농산물이다. 7월 농산물 물가는 전달보다 무려 7.9%나 뛰었다. 무더위가 지속돼 작황이 부진, 출하량이 줄어든 탓이다. 충북 영동에서 복숭아를 재배하는 정모(54)씨는 “올해 너무 더워서 복숭아에 물을 줘도 과실이 크게 안 자랐다”고 설명했다. 농수산물유통정보에 따르면, 실제 복숭아(백도, 4.5㎏)의 평균 도매가격은 예년의 2배 수준인 2만원을 웃도는 수준에서 거래되고 있다.

이외에 시금치 가격이 130.4%로 가장 많이 올랐고, 배추(90.2%), 무(60.6%)도 폭등했다. 여름 제철과일인 수박도 전달보다 13.2%나 올랐다.

정부가 근로시간 단축, 최저임금 인상 등을 내세워 ‘소득 주도 성장’을 추진하고 있지만, 정부가 기대하는 ‘소득 증가→가계 소비 증가→성장 촉진’의 선순환 구조는 요원한 상황이다. 임금 인상을 감당할 수 없는 중소 자영업자의 강한 저항이 쏟아지고 있는 데다 청년 실업률도 여전히 10% 선에서 떨어지지 않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먹거리 물가’가 크게 뛰면서 서민들의 생활은 팍팍해지고 있다는 원성이 쏟아진다. 8월 20일 파이낸셜타임스(FT)는 ‘거인(중국)의 그림자’란 제목의 분석기사에서 “한국은 선진국 제품을 모방해 경쟁력 있는 가격으로 수출하는 방식으로 고도성장을 이뤘으나 중국의 추격으로 이런 성장 모델에 더는 의존할 수 없게 됐다”며 “소득 주도 성장은 기존의 수출 주도 성장 모델을 대체하기 위해 등장했으며, 크게 추진력을 얻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제정치적 여건에 따라 국제 유가가 치솟고 있는 것도 소비심리를 개선하는 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미국이 석유수출국기구(OPEC) 내 3위 산유국인 이란 제재를 재개하면서 1년 전 배럴당 50달러 밑에서 움직이던 국제 유가(WTI·서부 텍사스산 중질유)가 배럴당 70달러에 육박하고 있다. 이란산 원유 수입 제재는 당장 우리나라에도 타격을 줄 수밖에 없다. 지난해 기준 우리나라는 1억4787만배럴(약 8조원)의 이란산 원유를 수입했다. 전체 원유 수입량의 13%를 차지하는 규모다.


배럴당 70달러로 치솟는 국제 유가

이에 따라 국내 휘발유·경유 가격도 7주 연속 올라 3년 8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한국석유공사 유가 정보 서비스인 ‘오피넷’에 따르면, 8월 셋째주 보통 휘발유 전국 평균 가격은 일주일 새 1.9원 올라 ℓ(리터)당 1618.4원을 기록했다. 2014년 12월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휘발유 가격은 12주째 1600원대에서 고공행진하고 있다. 경유 역시 전주보다 ℓ당 1.9원 오른 1419.2원으로 2014년 12월 이후 최고치다.

해외 변수가 국내 물가에 미치는 영향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국제 유가 흐름 외에도 미국 기준금리 인상, 신흥국 경제 위기 등의 여파로 강(强)달러 기조가 지속되면서 원화 가치 하락으로 수입 물가가 오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물가 상승세가 조만간 진정될 것으로 보는 전문가들도 있다. 홍준표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3분기(7~9월) 중반 이후부터는 폭염으로 인한 농산물 중심의 물가 상승세가 다소 완화될 것이고, 글로벌 원유 공급도 숨통이 트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 정부 관계자는 “정부가 연말까지 한시적으로 자동차를 살 때 내는 개별소비세와 전기요금을 인하한 만큼 국내 물가를 다소 진정시킬 만한 요인들도 있어 지금과 같은 물가 상승 흐름은 좀 더 지켜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Plus Point

금리 1%p 오르면 39만가구 위험 신용대출이 가계부채 ‘뇌관’

서울 중구 명동의 한 시중은행에 대출금리 안내문이 붙어 있다. 사진 연합뉴스
서울 중구 명동의 한 시중은행에 대출금리 안내문이 붙어 있다. 사진 연합뉴스

한국은행은 지난 6월 국회에 제출한 ‘금융안정보고서’에서 “대출금리가 1%포인트 오르면 소득과 자산에 비해 빚이 많은 ‘고위험 가구’가 현재 34만6000가구에서 39만가구로 늘어날 것”이라고 분석했다. 고위험 가구는 소득의 40% 이상을 부채 원리금 상황에 쓰고 있고, 부채가 자산보다 많은 가구를 뜻한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RB)의 기준금리 인상에 따라 가까운 시일 내에 한은의 기준금리 상승도 어느 정도 예고되고 있는 상황에서 한은이 가계부채 문제에 미리 ‘경고등’을 켠 것이다.

한은은 보고서에서 “올해 3월 말 기준 1468조원을 돌파한 가계부채가 양(量)뿐 아니라 질(質)에서도 문제를 드러내고 있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특히 “상대적으로 금리가 높은 신용대출이 급증하고 있다”며 “지난해 말 기준 10.8%였던 신용대출 증가율이 3월 말 11.8%까지 뛰었다”고 분석했다. 같은 기간 주택담보대출 증가율이 7.0%에서 5.3%로 떨어진 것과 대조적이었다. 서영수 키움증권 연구원은 “신용대출은 이자만 내면 되고 따로 목적을 제한하지 않아 위험도가 높은 대출인데, 인터넷전문은행을 중심으로 최근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면서 “신용대출이 지속적으로 증가하는지 여부가 가계부채 부실화를 가늠하는 시험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저축은행·상호금융 등 비은행금융기관 대출의 부실화 우려도 커지고 있다. 3월 말 기준 비은행 대출 연체율은 1.54%로 지난해 말(1.38%)보다 0.16%포인트 늘었다. 은행권 주택담보대출을 받기 어려운 가계가 제2금융권을 찾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금리 상승까지 겹치면서 연체가 늘어난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