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잉원(오른쪽) 대만 총통이 8월 19일(현지시각)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의 항공우주국(NASA)을 방문해 우주비행사 마이클 핀크의 안내를 받고 있다. 사진 EPA 연합
차이잉원(오른쪽) 대만 총통이 8월 19일(현지시각)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의 항공우주국(NASA)을 방문해 우주비행사 마이클 핀크의 안내를 받고 있다. 사진 EPA 연합

“우주비행사 마이클 핀크가 ‘아름답게 빛나는 대만을 우주정거장에서도 볼 수 있었다’고 내게 이야기 해줬다.”

차이잉원(蔡英文) 대만 총통이 8월 19일(현지시각) 대만 최고지도자로는 처음으로 미국 텍사스 휴스턴의 항공우주국(NASA)을 방문한 뒤 페이스북에 남긴 글이다.

대만의 면적은 3만6000㎢로 경상남북도에 부산과 울산을 합친 것보다 조금 더 넓다. 인구는 약 2300만명으로 13억 중국 인구의 약 1.8%에 불과하며, 방위비 예산은 중국의 12분의 1 정도다. 그런 대만이 이른바 ‘G2(주요 2개국)’로 불리는 세계 1·2위 경제·군사 대국 미국과 중국 간 힘겨루기의 격전지로 떠올랐다.

양안(兩岸·중국과 대만) 관계 악화는 2년 전 대만 독립을 지지하는 민진당 소속의 차이가 총통으로 선출된 순간부터 예견됐다. 그런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국 견제를 위해 대만 카드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양안 간 갈등이 미·중 갈등으로 번지고 있다.

차이 총통의 미국 방문은 공식 국빈 방문이 아닌 ‘경유’ 성격이 강했다. 8월 12일 로스앤젤레스에 도착한 그는 14~15일 남미 파라과이, 16~17일엔 벨리즈 방문을 마치고 귀국길에 휴스턴에 들렀다. 하지만 미국 방문 중 대만 최고지도자로서는 전에 없이 파격적인 일정을 이어가며 중국의 신경을 건드렸다.

그는 8월 13일 캘리포니아주 시니밸리에 있는 레이건도서관을 방문해 연설했다. 연방기관인 레이건도서관을 찾은 대만 총통이 미국 취재진 앞에서 연설까지 한 것은 미국과 대만의 국교 단절 이후 처음이다. 대만 총통이 자국 기자단을 대동하고 미국을 방문한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레이건도서관은 독립 지지 성향의 대만 정치인들 사이에선 미국 서부 방문 시 반드시 들러야 할 성지처럼 여겨지고 있다.

미국은 지미 카터 대통령 시절인 1979년 중국과 수교를 맺으면서 대만과의 공식적인 외교 관계를 단절했다. 하지만 이와 함께 무기 수출과 전술 제공 등 대만 방위를 보장하는 내용을 포함한 별도의 ‘대만 관계법(Taiwan Relation Act)’을 제정해 유지하고 있다. 대만의 지정학적 중요성 때문이다. 대만은 역내 주요국들의 해상교통로(SLOC)에 위치해 미국의 이익과 직결되며 중국의 해양 진출을 저지할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다.

이 같은 중요성을 인식한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은 1982년 대만 지원 원칙을 구두로 제시한 ‘6항보증(六項保證)’ 원칙을 천명했다. 대만에 대한 중국의 주권 주장을 지지하지 않으며, 대만 관계법을 유지한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었다. 미 하원은 오바마 행정부 시절인 2016년 5월 ‘6항보증’과 ‘대만 관계법’이 미국과 대만 관계의 중요한 기반이라고 확인하는 내용의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차이 총통은 이날 연설에서 “레이건 전 대통령 시절 미국은 대만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해왔다”면서 “우리는 국익과 자유, 민주주의란 원칙 아래 평화와 안정을 도모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파격적인 ‘경유지 외교’에 중국 정부는 강력하게 반발했다. 루캉(陸慷)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8월 20일 관련 논평을 통해 “미국이 대만 분열 세력에 장소와 편의를 제공해서는 안 된다”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하지만 대선 승리 후 37년 동안 이어온 불문율을 깨고 차이 총통과 직접 통화해 중국을 경악시킨 트럼프가 순순히 물러설 리는 없다.

트럼프는 지난 3월 미국과 대만 고위 관리들의 상호 방문을 법적으로 뒷받침하는 ‘대만 여행법(Taiwan Travel Act)’에 서명했다. 대만과의 직접적 교류 자제라는 미·중 관계의 오랜 관행을 깬 것이다.

여기에 더해 대만 내 미국의 실질적 공관 역할을 하는 ‘미국재대협회(AIT·美國在臺協會)’를 확장하면서 그 경호를 위해 특전사로 구성된 미군 경비부대 파견도 시도하고 있다. 극소수의 병력이긴 해도 미군의 대만 주둔이라는 점에서 엄청난 파문을 불러왔다.

중국은 인구 13억 거대 시장의 소비력을 무기로 미국과 대만에 맞서고 있다. 지난 4월 36개 외국 항공사에 대만이 중국령임을 확실하게 알 수 있도록 ‘중국령 대만(Taiwan China)’으로 표기해 달라고 요청했다. 백악관은 관련 성명에서 전체주의를 풍자한 소설 ‘동물농장’의 저자 조지 오웰의 이름을 따 “오웰식 헛소리(Orwellian nonsense)”라고 일축했지만, 중요성이 점점 커지고 있는 중국에서 운항을 거부당할지 모른다는 항공사들의 걱정까지 잠재우진 못했다.

대만 커피전문 프랜차이즈 ‘85℃’는 차이 총통이 방미 일정 중 LA 매장을 방문한 뒤 중국에서 ‘대만 독립 지지 기업’으로 몰려 불매운동의 타깃이 됐다. 다급해진 85℃ 측은 웨이보를 통해 ‘하나의 중국’을 지지한다며 진화에 나섰지만, 이번에는 대만에서 불매운동 조짐이 일고 있다. 85℃는 ‘소금 커피’와 저렴하고 맛있는 빵으로 인기를 끌며 전 세계에 1000개 넘는 매장을 운영 중이다. 중국 본토 매장 수(589개)가 대만(435개)보다 많다.


차이잉원 총통이 방미 기간 중 방문한 로스앤젤레스(LA)의 85℃ 매장 입구. 사진 AFP 연합
차이잉원 총통이 방미 기간 중 방문한 로스앤젤레스(LA)의 85℃ 매장 입구. 사진 AFP 연합

대만 단교 거부한 팔라우는 관광산업 타격

대만을 국제적으로 고립시키는 전략도 성과를 보고 있다. 2016년 12월에는 아프리카의 작은 섬나라 상투메프린시페를 시작으로, 지난해 6월 파나마, 지난 5월 도미니카 공화국과 부르키나파소 그리고 최근에는 엘살바도르가 대만과 단교했다. 차이잉원 정부 들어 대만 수교국은 22개국에서 17개국으로 쪼그라들었다. 중국은 이제 대만의 아프리카 유일의 수교 국가인 에스와티니 왕국(구 스와질랜드)과 남태평양의 섬나라 팔라우까지 흔들고 있다.

중국은 지난해 11월 팔라우 정부에 대만과 단교할 것을 요구했으나, 거절당하자 자국민의 팔라우 단체관광을 금지했다. 외국인 관광객의 절반을 차지했던 중국인 관광객이 끊기면서 팔라우의 관광산업은 큰 타격을 입었다.

이와 함께 대만 내 친중 세력을 보듬는 노력도 병행하고 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7월 13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친중 성향의 롄잔(連戰) 전 대만 국민당 주석과 만나 국민당을 통한 양안 관계 개선 방안을 논의했다. 시 주석은 이 자리에서 ‘92공식’과 양안 관계의 공동 발전, 평화통일 등을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92공식은 중국과 대만이 1992년 맺은 합의로, ‘하나의 중국’을 인정하되 각자 명칭을 사용하는 것이 핵심이다.

문제는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는 트럼프 행정부가 언제까지 대만의 뒤를 봐줄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트럼프의 친대만 정책은 중국 견제용 카드의 성격이 짙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만 입장에서도 대미 외교 강화 외에는 뾰족한 해법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