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일(현지시각)영국 런던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BTS의 공연 모습. 사진 연합뉴스
6월 1일(현지시각)영국 런던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BTS의 공연 모습. 사진 연합뉴스

BTS(RM·슈가·진·제이홉·지민·뷔·정국)가 ‘팝의 성지’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단독 콘서트를 한다는 소식을 접한 건 지난 2월 말이었다. 공연까지 3개월이 넘게 남았지만, 마음이 급했다.

웸블리 스타디움 좌석이 6만 석(시야 제한석을 포함하면 9만 석)이나 되지만, 비틀스와 비교될 만큼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는 BTS이기에 좋은 좌석에서 공연을 즐기려면 최대한 예매를 서둘러야 한다는 걸 직감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BTS는 티켓 오픈 90분 만에 웸블리 스타디움 전 좌석을 매진시켰다. 마이클 잭슨과 퀸, 오아시스 등에 이어 웸블리 공연을 매진시킨 12번째 가수(그룹)가 된 것이다. 비(非)영어권 뮤지션으로는 처음이라니, 정말 대단한 BTS가 아닐 수 없다.

나와 내 친구는 웸블리 스타디움의 VIP 라운지 이용과 뷔페 식사, 음료와 기념품 등이 포함된 ‘골드 패키지’를 구매하기로 했다. 만만치 않은 지출이었지만(1인당 약 60만원에 달한다), 평생 한 번뿐일지 모를 BTS의 웸블리 공연 관람을 확정 지을 수 있다면 아깝지 않은 투자였다.

애초 BTS 웸블리 공연은 6월 1일 하루만 예정돼 있었지만 너무 빨리 매진되는 바람에 이튿날 공연이 추가됐다. 추가 공연도 순식간에 매진됐지만, 우리는 운 좋게도 이틀간의 콘서트 티켓을 모두 구할 수 있었다.

첫날 공연은 저녁 7시 30분 시작 예정이었지만 들뜬 마음에 오후 2시쯤 공연장 주변에 도착했다. 입장 시작까지 2~3시간이 남아 있었기 때문에 주변을 둘러보기로 했다. 가상현실(VR)과 홀로그램 기술을 이용해 BTS 멤버가 옆에 있는 것처럼 실감나는 기념사진을 찍을 수 있는 ‘BTS 스튜디오’가 눈길을 끌었다. 하지만 기다리는 사람이 너무 많아 고민 끝에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바비인형’으로 유명한 마텔(Mattel)이 제작한 BTS 인형과 기념사진을 찍을 수 있는 곳도 있었지만, 그곳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한참을 그렇게 시간을 보낸 뒤 공연장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두 시간 넘게 줄을 서서 기다린 뒤에야 입장할 수 있었다.

입장을 위해 엄청난 높이의 에스컬레이터에 올랐다. 창밖으로 입장을 위해 줄을 선 관객의 모습이 장관을 이뤘다.

공연장 안 풍경은 더 놀라웠다. 곳곳에 자리 잡은 ‘아미(ARMY·BTS 팬)’들은 BTS의 히트곡을 함께 부르며 리듬에 맞춰 신나게 몸을 흔들고 있었다. 무대 전면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으로 BTS 공연 영상이 상영되고 있었다. 곡과 영상이 바뀔 때마다 ‘다국적 아미’들은 소리를 지르며 열광했다. 물론 우리도 그중 일부였다. 관람객의 국적은 다양했다. 내 옆자리는 독일에서 온 젊은 여성 차지였다. 가족 단위 관람객도 자주 눈에 띄었다. 입장을 위해 줄을 서 기다리는 동안 두 명의 10대 딸과 함께 온 영국 여성과 K팝(K-pop) 전반에 대해 즐겁게 수다를 떨기도 했다.

드디어! 오랜 기다림 끝에 무대에 조명이 켜졌고, 아미들의 기대에 찬 환호성이 웸블리를 가득 채웠다. 열광적인 반응에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이어 댄서들이 등장했고 음악이 흘러나왔다. 첫 곡은 ‘디오니소스’였다. 뷔(V)와 제이홉(J-Hope)이 노래와 랩으로 분위를 한껏 고조시켰다.


BTS의 6월 1일 웸블리 스타디움 공연 장면(왼쪽). 노르웨이 베르겐 출신인 뵈르크만(오른쪽)은 약 12만 명이 활동하는 페이스북 기반의 K팝 팬 페이지 ‘인터내셔널 K팝 커피숍(International K-pop Coffee Shop)의 공동운영자 중 한 명이다.
BTS의 6월 1일 웸블리 스타디움 공연 장면(왼쪽). 노르웨이 베르겐 출신인 뵈르크만(오른쪽)은 약 12만 명이 활동하는 페이스북 기반의 K팝 팬 페이지 ‘인터내셔널 K팝 커피숍(International K-pop Coffee Shop)의 공동운영자 중 한 명이다.

정국, 관중석 위를 날아다니며 열창

‘디오니소스’로 시작해 ‘낫 투데이(Not Today)’와 ‘인터루드: 윙스(Interlude: Wings)’로 이어지는 첫 무대는 최고의 무대에 걸맞은 최고의 선곡과 구성이었다. BTS의 웸블리 공연에 함께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대단한 행운인지 새삼 깨닫게 됐다.

두 번째 무대는 제이홉과 정국의 몫이었다. 제이홉은 솔로곡 ‘저스트 댄스(Just Dance)’와 함께 카리스마 넘치는 댄스를 선보였다. 공연 중 무대 양 끝을 오가며 아미들과 호흡을 같이했고, 공연장 가득 ‘제이홉’을 연호하는 함성이 울려퍼졌다.

이어 등장한 정국은 발라드곡 ‘유포리아(Euphoria)’로 제이홉과 상반된 매력을 분출했다. 안전장치와 와이어를 이용해 관중석 위를 날아다니면서 여유로운 미소와 특유의 매혹적인 미성으로 아미들의 환호를 이끌어냈다. 공중에 매달려서도 밝은 표정으로 손을 흔들며 매끄럽게 고음을 소화하는 모습은 감동 그 자체였다.

‘독특함’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이어 등장한 지민의 무대도 뒤질 것이 없었다. 솔로곡 ‘세렌디피티(Serendipity)’의 전주와 함께 버블 볼 속에서 등장한 지민은 뮤지컬의 한 장면을 방불케 하는 수준 높은 퍼포먼스로 무대를 장악했다. 특수효과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돌발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지만, 지민은 침착하게 공연을 마무리했다.

다국적 아미들이 간주 부분에서 미리 입을 맞추기라도 한 듯 ‘박지민 사랑해’를 연호하는 장면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지민의 감동으로 가득 찬 표정이 전광판에 클로즈업됐고, 아미들은 더 뜨겁게 열광했다.

이어 등장한 리더 RM이 흩어져 있던 멤버들을 무대로 소환했고, 한자리에 모인 BTS 멤버들이 펑크 팝 스타일의 ‘작은 것들을 위한 시(Boy With Luv)’를 부르면서 분위기는 절정으로 치달았다.

후반부에 등장한 슈가는 솔로곡 ‘시소(Seesaw)’를 통해 노래와 랩, 댄스를 함께 선보여 다재다능함을 뽐냈고, 진은 피아노를 연주하며 부른 ‘에피파니(Epiphany)’로 솔로 무대의 마지막을 장식했다.

2시간 40분이라는 공연 시간이 조금도 길게 느껴지지 않을 만큼 즐거운 밤이었다. 이틀 연속 같은 공연을 관람했지만, 둘째 날에도 감동이 덜하지 않았다. 한국에 있는 친구에게 부탁해 특별 주문한 아미밤(BTS 전용 야광봉)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건 아쉬운 대목이다. 하지만 그 친구가 아미밤을 구하기 위해 얼마나 애를 썼는지 잘 알기에 고마울 따름이다.

노르웨이에 돌아가면 내년에 있을지 모를 BTS의 유럽 공연을 관람하기 위해 저축을 시작해야 할 것 같다. 멋진 시간을 만들어준 BTS 멤버들에게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