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 클랜시(Jim Clancy) CNN 기자, CNN 보도 프로그램 ‘더 브리프’ ‘더 월드 투데이’ 앵커
짐 클랜시(Jim Clancy)
CNN 기자, CNN 보도 프로그램 ‘더 브리프’ ‘더 월드 투데이’ 앵커

“나가서 사람들을 만나라(Go out and meet the people).”

미국 CNN 간판 앵커 출신의 짐 클랜시(70)에게 변화하는 언론 환경 속에서 기자들이 스스로를 차별화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묻자 이같이 말했다. 클랜시는 5월 14일 조선일보 주최로 열린 아시안리더십콘퍼런스(ALC) 참석차 방한했다. 넉넉한 체격의 이 베테랑 저널리스트는 얼핏 이웃집 아저씨처럼 친근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저널리즘의 본질에 대해 논할 때는 눈썹을 치켜세우며 눈을 반짝였다.

클랜시는 독일 베를린 장벽 붕괴, 르완다 집단 학살, 이라크 전쟁 등 세계의 굵직한 사건 현장을 종횡무진 누빈, 경력이 40년에 달하는 분쟁 전문 기자다. 미국 덴버·콜로라도·캘리포니아 지역 라디오·TV 방송에서 기자로 일하다 1981년 CNN에 합류했다. 그는 2015년에 프랑스의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 테러 사건 당시 이스라엘과 시오니스트들이 테러에 책임이 있다는 내용의 트윗을 올렸다가 문제가 되면서 34년간 일했던 CNN을 나왔다. 지금은 자신이 창립한 미디어 컨설팅 회사인 ‘클랜시넷(Clancynet)’의 대표로 있다.

클랜시는 “사람을 실제로 만나지 않고서는, 그 사람이 진실을 말하는지 거짓을 말하는지 절대 알 수 없다”고 수차례 강조했다.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가 발달해 많은 사람이 정보를 생산하고 공유하는 시대. ‘언론은 사양 산업’이라는 위기론도 이제 구문이 됐다. 이런 위기 상황에 신문·방송 등 기성 언론사의 기자가 해야 하는 역할은 ‘사실 확인’이라고 클랜시는 목소리를 높였다. 흘러다니는 정보의 이면에 있는 진짜 이야기를 발굴해야만, 즉 저널리즘의 본질에 충실해야만 기자도, 언론사도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 기자는 무엇을 해야 살아남을 수 있을까.
“밖으로 나가서 사람을 만나는 것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어떤 사람이 트위터에 올린 글이 화제가 됐다고 가정해보자. 이 글을 곧이 곧대로 믿을 수 있나. 온라인상에 올라온 그 글로는 그 사람이 거짓말을 하는지,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지 전혀 알 수 없다. 취재원을 직접 만나 눈을 바라보며 대화를 나누면, 기자가 파악할 수 있는 정보는 무궁무진하게 많아진다. 그 사람의 옷 입는 스타일이나, 구두에 광을 얼마나 냈는지, 어떤 자동차를 모는지 등의 정보는 컴퓨터 앞에 앉아만 있어서는 알아낼 수 없는 것들이다. 요즘 많은 매체들이 24시간 체제인 경우인데다, 기자들이 하루에 기사를 3~4개씩 쓰기도 하는 등 나가서 사람을 직접 만날 시간이 모자라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도 몇몇 기자들한테는 ‘당신들은 정말 게으르다’는 말을 꼭 하고 싶다. 나가서 사람을 만나기는커녕, 전화 취재조차 안 하려고 하는 기자들을 봤다. 조금 알아낸 것으로 과장하거나, 이야기를 지어내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기자들은 언론 산업을 좀먹는 존재들이다.”

언론은 최근 몇 년간 ‘가짜 뉴스’라는 말로 조롱당하기도 했다.
“(인상을 찌푸리며) 가짜 뉴스라는 말은 성립할 수 없는 단어다. 뉴스는 진실을 담는 그릇이다. 가짜 뉴스라는 단어가 쓰이는 경우는 크게 두 가지다. 일단, 보도 내용을 불편해하는 사람들이 쓰는 말이다. 정부 측이든, 기업 측이든, 본인들에 대한 이야기를 고발하는 내용을 보도하면 가짜 뉴스라며 폄훼한다. 두 번째로 가짜 뉴스라고 불리는 것 중에는 특정한 집단이 의도를 가지고 거짓을 담아 퍼트리는 이야기도 있다. 이건 허위 정보를 담은 ‘선동(propaganda)’이다. 가령, 미국 정부가 중남미의 가난한 나라에서 사람의 장기를 사온다는 내용이 전형적인 선동이다. 이런 선동을 뉴스처럼 꾸며내는 수법은 아주 뻔하다. 베네수엘라에서 이 내용을 흘리고, 이 내용을 베네수엘라의 작은 언론사가 다루면, 이것을 번역해서 미국에 가져와 퍼뜨리는 식이다. 지난 미국 대통령 선거 때 러시아가 도널드 트럼프 당시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 벌였던 공작과 아주 유사하다.”

기성 언론사는 이런 가짜 뉴스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그 이야기가 사실인지 아닌지 확인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 매체에서 그 선동을 왜 검증해봐야만 했는지 등의 배경 설명도 곁들여야 한다. 사실 확인은 누군가는 꼭 해야 하는 일이며 기성 언론사의 존재 이유다.”

언론의 신뢰도를 끌어올릴 방법은.
“기자가 기사를 쓸 때 더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는 수밖에. 가장 좋은 방법은 누군가의 말을 인용할 때 그의 실명을 기사에 담는 것이다. 기자가 취재원의 이름을 가려줘야 하는 경우는 그 사람이 기사에 노출됐을 때 직업을 잃을 위험이 있다든지 할 때뿐이다. 습관적으로 익명의 취재원을 인용하는 것은 아주 나쁜 보도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최근 정치 기사들을 보면 대부분 ‘익명의 취재원에 따르면’이라는 표현이 밥먹듯이 들어가 있다. 익명의 취재원을 계속 인용하는 것은 그 사람이 과장된 말을 하도록 판을 깔아주는 것과 다름없다. 어떤 이야기를 해도 책임질 일 없이 익명성 뒤에 숨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진짜 기자라면, 이런 취재원에게 ‘더 이상 당신의 의견을 익명으로 인용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해야 한다.”

신입 기자들은 산업과 스스로의 미래를 걱정하는데.
“신입 기자들뿐이겠나. 나이 든 기자들도 마찬가지다. 그 누구도 인터넷 시대에 뉴스로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을 모른다. 그래서 매체들은 앱을 개발한다든지, 독자들에게 뉴스 레터를 보낸다든지 하는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처럼 돈이 많이 들어가는 사업은 워싱턴포스트를 소유한 제프 베이조스 같은 세계 최고의 부자나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럼 작은 언론사는 소멸할까.
“그럴 것이다. 좋은 기사를 쓰는 데 필요한 비용을 댈 돈이 없으니 망할 수밖에 없다. 뉴욕타임스는 살아남을 것이다. 좋은 기사를 쓴다는 것을 인정받았으니까. 다른 언론사들은 뉴욕타임스에 나온 기사를 다시 긁어다 쓰는 수준이다. 사실 언론사가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이 별로 없다. 기사 전용 검색 엔진을 만들거나, 언론사들끼리 연합해 ‘5개 매체를 구독하는 데 매달 1만원’ 이런 식으로 협력하는 방법도 있겠다.”

언론사 간 신경전이 있을 텐데, 협력이 될까.
“물에 빠져 죽기 직전인 사람들끼리 ‘저 인간은 내가 예전에 앙숙이었으니 도움을 요청하지 말아야지’라고 생각하는 건 어리석다. 살아남으려면 어쩔 수 없이 손을 잡아야 한다.”

분쟁 지역을 많이 취재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은.
“1994년 르완다 인종 학살 취재가 가장 충격적이었다. 군인들이 죽인 것도 아니고, 알고 지내던 이웃들끼리 서로를 죽였다. 100일 동안 80만 명이 죽었다. 길거리 어디에나 시체가 즐비했다. 어린 아이들은 어른들을 무서워했다. 어른들끼리 서로 죽이는 것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그런 종류의 폭력은 처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