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안 브레머 유라시아그룹 회장은 “트럼프 당선 만으로 가까워질 만큼 한국과 중국·일본 세 나라의 상호 신뢰도가 높다고 생각하진 않는다”고 말했다.
이안 브레머 유라시아그룹 회장은 “트럼프 당선 만으로 가까워질 만큼 한국과 중국·일본 세 나라의 상호 신뢰도가 높다고 생각하진 않는다”고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12월 2일(현지 시각) 차이잉원(蔡英文) 대만 총통의 당선 축하 전화를 받고 10분간 통화했다. 미국과 대만이 정상 간 통화를 가진 것은 1979년 국교 단절 이후 처음이다.

미국은 중국과 수교 이후에도 대만에 전투기와 미사일 등을 판매해왔지만, 수교 당시 약속인 ‘하나의 중국’ 원칙을 존중하는 뜻에서 대만 총통을 비롯한 고위층과는 교류하지 않았다.

중국 관영 매체들은 트럼프의 행동을 일제히 비난하고 나섰다. 인민일보는 “미·중 관계에 균열이 가게 하는 건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드는 데 도움이 안 된다”고 경고했고, 환구시보도 “트럼프가 좀처럼 ‘입을 다물지 못하는 능력’이 있으며 ‘도발과 거짓말’을 자행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반면 미국 정치권에서는 트럼프 내각 국무장관 후보 중 한 명인 데이나 로러배커 하원 외교위 소위원장 등 대중 강경파들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사실 이때까지 중국에서는 트럼프 당선의 최대 수혜국은 중국이 될 것이라는 기대가 컸다. 정치 고립주의와 보호무역주의를 앞세운 트럼프가 집권하면서 생길 미국의 경제·외교적 빈자리를 중국이 일정 부분 채울 수 있을 것으로 보는 전문가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같은 기대는 트럼프와 차이잉원의 전화 한 통으로 벌써 사그라들고 있다.

세계 최대 정치 리스크 컨설팅 회사인 유라시아그룹의 이안 브레머 회장은 이와 관련해 ‘이코노미조선’과 이메일 인터뷰에서 “중국이 트럼프 정권의 가장 큰 경제·외교적 도전이 될 것으로 예상했지만 이렇게 빨리 현실이 될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브레머 회장은 정치 리스크를 경제적인 관점에서 체계화한 인물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세계 질서를 주도하는 국가가 사라졌다는 의미에서 ‘G제로’ 이론을 제시해 큰 반향을 일으켰다. 2001년에는 신흥국을 대상으로 정치 리스크를 점수로 매겨 지수화한 정치 리스크 인덱스(GPRI·Global Political Index)를 개발하기도 했다. 1998년 세계 정치 리스크 분석·조사 회사 유라시아그룹을 설립해 현재 뉴욕 본사 외에 워싱턴·러시아·도쿄 등에 지사를 두고 있다.


오랜 금기를 깨고 이뤄진 트럼프와 차이잉원 총통의 통화로 미국과 중국 간의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습니다. 트럼프 정권하에서 미·중 관계를 어떻게 전망하시나요.
“최근 몇 년간 양안(兩岸·중국과 대만) 갈등이 고조될 때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대만을 달래며 위기를 피할 수 있도록 완충 역할을 했습니다. 그런데 트럼프가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은 들지 않아요. 트럼프가 외교적 파장을 짐작하고 의도적으로 대만 총통과 통화했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취임도 하기 전에 중국과 관계에서 어려운 처지에 놓이게 됐습니다. 통화까지 해 놓고 취임 후에 대만과의 공식적인 대화를 거부한다면 그가 내세운 강한 이미지와는 맞지 않아 지지자들이 실망할 겁니다. 그렇다고 취임 초반부터 중국과 관계에서 대만 문제로 갈등을 빚는 것도 부담스럽겠죠. 미·중 관계의 전반적인 기조를 예상하긴 아직 이르지만, 냉전까지는 아니더라도 트럼프 정권 초기 미·중 관계가 상당히 경색될 가능성은 커졌습니다.”

일각에서는 헤리티지재단 등 보수 싱크탱크가 오래전부터 이번 통화를 준비해왔다는 분석이 나온다. 워싱턴포스트는 “트럼프가 지난 7월 공화당 대선 후보로 지명되기 전부터 차이잉원 총통과의 통화를 준비했다”고 전했다.

트럼프는 자신의 사업과 관련해 대만에 호감을 느끼고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중국에 대해서는 저작권 관련 이슈 등이 얽혀 반감이 커졌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트럼프는 오랫동안 사업적으로 대만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왔습니다. 2011년 오바마 대통령이 수십억달러 상당의 무기를 대만에 판매하는 건을 두고 미적거리자 비난하고 나선 것도 비즈니스 이해관계와 무관하지 않았습니다. 그 영향인지 몰라도 트럼프의 인수위에는 친(親)대만 성향 인사가 다수 포진해 있습니다. 대표적인 인물이 딕 체니 전 미국 부통령의 외교·안보정책 담당 보좌관을 지낸 외교 참모 스티븐 예이츠입니다.”

현재 아이오와주 공화당 의장인 예이츠는 1987년부터 1989년까지 대만 가오슝에서 선교사로 활동했으며 중국어에 능통한 아시아 전문가다. 2008년 루돌프 줄리아니, 2012년 뉴트 깅리치 대선 캠프의 안보 자문을 맡았고, 지난해 10월 대만에 유리한 대만 관계법 수정안 통과를 주도하기도 했다. 12월 6일에는 닷새간의 일정으로 대만을 방문하기도 했다. 사적인 방문이라고 밝혔지만, 일정에는 대만 정보기관 소속의 연구소가 개최하는 비공개 정책 세미나 참석과 대만 외교부 방문이 포함돼 있었다.

트럼프는 얼마 전 ‘취임 100일 계획’을 발표하며 일본과 다른 10개국이 서명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의 폐기를 천명했습니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를 포함한 미국의 보호무역 조치로 한국과 중국·일본 세 나라의 경제적인 결속이 강화될 것으로 전망합니다.
“장기적으로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트럼프 당선만으로 가까워질 만큼 이들 세 나라의 상호 신뢰도가 높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무엇보다 일본의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세 나라의 결속 강화에 가장 미온적일 것으로 보입니다.”

트럼프는 11월 21일 페이스북을 통해 취임 첫 100일 동안 시행할 정책을 설명하는 연설 영상을 공개했다. 그는 연설에서 “미국의 앞날에 재앙이 될 TPP에서 즉시 탈퇴할 것”이라며 “미국에 더 많은 일자리와 사업체들이 들어오도록 각국과의 공정한 무역 협정을 맺기 위해 협상하겠다”고 밝혔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왼쪽)가 지난 11월 17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맨해튼 소재 트럼프타워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과 만나 인사하고 있다. <사진 : 페이스북 캡처>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왼쪽)가 지난 11월 17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맨해튼 소재 트럼프타워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과 만나 인사하고 있다. <사진 : 페이스북 캡처>
아베 총리는 트럼프의 TPP 폐지 공약에도 트럼프 당선 직후 뉴욕으로 날아가 서둘러 회담을 하는 등 양국 관계를 우호적으로 끌고 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두 사람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다고 봐야 할까요.
아베 총리는 트럼프의 TPP 폐지 공약에도 트럼프 당선 직후 뉴욕으로 날아가 서둘러 회담을 하는 등 양국 관계를 우호적으로 끌고 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두 사람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다고 봐야 할까요.

“트럼프는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정치 경험이 전혀 없이 대통령에 당선됐습니다. 따라서 자신의 능력을 빠른 시일 안에 보여줄 필요가 있었는데 아베 총리가 트럼프를 도와준 셈입니다. 아베와의 만남으로 트럼프가 좀 더 ‘대통령답게’ 비치게 됐으니까요. 아베 총리 입장에서는 트럼프 당선과 무관하게 자위대의 위상 강화를 위해 군비 지출을 늘리고 싶어 했는데 이해관계가 잘 맞은 것이죠. 아베 총리는 경제적으로나 외교적으로 러시아와 관계 개선을 원하고 있는데 트럼프 당선으로 이 부분에 대한 기대도 커졌습니다. 힐러리가 이겼다면 꿈도 꿀 수 없었겠지만요.”

아베 총리는 트럼프의 선거 승리 하루 만에 트럼프와 전화 통화 중 만남을 즉석 제안했고 트럼프가 받아들이면서 11월 17일 외국 정상으로는 처음으로 뉴욕 맨해튼의 트럼프타워를 방문해 회담했다. 아베 총리가 오는 12월 26~27일 일본 총리로는 처음으로 하와이 진주만을 방문하기로 한 것도 미·일 동맹의 강화를 대내외에 과시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한편 일본은 2012년 12월 아베 2차 정권 수립 이후 5년 연속 역대 최고 수준의 방위비를 책정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일본 정부가 12월 26일 각의(국무회의)에서 5조1000억엔(약 52조5000억원)에 달하는 사상 최대 규모의 방위비를 포함한 2017년도 예산안을 승인할 예정이라고 최근 보도했다.

트럼프는 미국에 본사를 둔 글로벌 기업들이 정작 미국 경제에 큰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이 때문에 미국 정부의 기업 정책에도 변화가 불가피해 보입니다.
“국제화에 관한 트럼프의 부정적인 인식 이면에는 미국의 글로벌 기업들이 미국에 대한 충성도가 높지 않다는 문제의식이 바탕을 이루고 있습니다. 트럼프는 당근과 채찍을 병행하며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이들의 행동 변화를 유도해 나갈 것으로 보입니다.
트럼프가 12월 1일 미국의 에어컨 제조사 캐리어에 제조시설의 해외 이전 계획 철회 대가로 향후 10년간 700만달러(약 81억2300만원)에 달하는 세금감면 혜택을 제공하겠다고 발표한 것이 대표적인 ‘당근’ 정책입니다. 관련 고용 규모가 800명에 불과하다는 건 별개의 문제입니다. 반면 이 같은 정부 지침에 협력하지 않는 기업에 대해서는 대통령이 나서 ‘비애국적 기업’으로 낙인 찍겠죠. 아마 트럼프의 인기에는 도움이 될 겁니다. 미국 경제가 중국 정도의 국가 계획 경제는 아니라도 정부의 입김이 강한 한국식 모델과 비슷해질 가능성은 있습니다. 산업적 과두시스템(oligarchy)으로 변화하면 경제 효율성을 떨어뜨릴 것이라는 점이 문제입니다.”

트럼프는 12월 4일 해외로 이전하는 미국 기업의 생산품에 “35%의 관세를 물릴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이날 트위터를 통해 “미국을 떠나려는 기업들, 직원을 해고하고 다른 나라에 새로운 공장을 지어 미국에 그들의 물건을 다시 팔려고 생각하는 기업들이 보복과 그 대가가 없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라며 “매우 값비싼 실수를 하기 전에 조심하라”고 썼다.

한국은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결정으로 중국과 갈등을 빚고 있습니다. 트럼프 정부에서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국가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한국은 미국과 중국 양쪽 모두와 정부 차원에서 가능한 한 모든 채널을 동원해 적극적으로 소통해야 합니다. 두 나라 모두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북한과 긴장 관계를 푸는 데 있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트럼프가 북한 문제를 섬세하게 다룰 것이라는 기대는 버리는 것이 좋습니다. 한국 정부는 외교 채널 다변화가 중요하다는 것을 잘 이해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동안 여러 나라와 자유무역협정을 맺은 것이 그 증거죠. 이런 노력을 지속하는 것은 큰 의미가 있습니다.”

트럼프는 화석에너지 사용에 긍정적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임기 중 에너지 관련 정책 방향은 어떻게 보십니까.
“트럼프는 공언한 대로 극단주의 무장세력 이슬람국가(IS)를 궤멸시키길 원합니다. 하지만 그 밖의 중동 문제에 깊숙이 개입하기를 원하는 것 같지는 않아요. 미국의 셰일 에너지 개발도 외교 정책보다는 국제 유가 등 시장 상황에 따라 좌우될 가능성이 큽니다. 미국의 셰일 에너지 생산이 줄어든 것은 정치적인 이유가 아닌 국제 유가 하락 때문이거든요. 물론 미국의 셰일 에너지 생산은 사우디아라비아와의 관계에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우디는 트럼프 당선보다 내부적인 문제가 훨씬 크기 때문에 큰 영향은 없을 것 같습니다. 트럼프는 오바마 대통령보다는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좋은 관계를 유지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란과의 관계는 여전히 미지수지만 러시아와 중국·프랑스·독일·영국 등 다른 관련국이 협상 폐지를 원하지 않기 때문에 트럼프도 협상을 되돌리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트럼프는 과거 이란을 ‘영원히 변하지 않을 적’으로 규정하면서, 대통령에 당선될 경우 ‘일방적 거래’에 불과한 이란 핵 협상을 완전히 파괴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석유 수출이 국내총생산(GDP)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사우디는 저유가 여파로 지난해 980억달러(약 113조6800억원)의 무역수지 적자를 기록했다. 정부부채 또한 2018년까지 GDP의 35%에 달할 전망이다. 이에 따라 사우디는 원유 의존도를 줄이고 정보기술(IT), 관광 등을 육성해 경제 구조를 바꾼다는 ‘비전 2030’ 프로젝트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 이안 브레머 (Ian Bremmer)
미국 스탠퍼드대 정치학 박사, 후버연구소 선임연구원,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 세계경제포럼(WEF) 선정 ‘젊은 글로벌 리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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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미국·일본·호주·싱가포르 등 아시아·태평양 지역 12개국이 참여한 자유무역협정(FTA)이다. 지난 10월 협상이 타결됐다. TPP 참여국 간 교역 규모는 세계 교역의 25%가량을 차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