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산유통업체인 돈마루 이범호 대표는 “동물복지 인증 축산농가들이 늘어나도록 판로 개척 등 정부 차원의 다양한 지원책이 나왔으면 한다”고 말했다. <사진 : C영상미디어 한준호>
축산유통업체인 돈마루 이범호 대표는 “동물복지 인증 축산농가들이 늘어나도록 판로 개척 등 정부 차원의 다양한 지원책이 나왔으면 한다”고 말했다. <사진 : C영상미디어 한준호>

경기도 하남에 본사를 둔 돈마루는 연간 매출이 1000억원에 이르는 돼지고기 전문 중견 축산유통업체다. ‘돈마루’ 브랜드 돼지고기는 롯데마트 전점, 신세계백화점, AK백화점, 갤러리아백화점, 유기농 전문매장인 올가 등에서 판매되고 있다. 이 중 절반 정도인 ‘무항생제’ 인증 제품은 특히 소비자들에게 인기가 높다. 그런데 돈마루에서 판매하고 있는 제품 중 일반 제품보다 20~30% 더 비싼데도 나오는 즉시 전량 판매가 되는 돼지고기가 있다. ‘동물복지’ 국가인증을 받은 제품이다. 이 제품은 신세계백화점, AK백화점, 갤러리아백화점 등에서 살 수 있다.

‘무항생제’ 인증이 항생제가 포함되지 않은 사료 위주로 먹여 키운 육가공 제품에 주는 정부 차원의 등급이라면, ‘동물복지’ 인증은 한발 더 나아가 동물에게 불필요한 고통을 주지 않고 쾌적한 환경에서 동물 본래의 습성대로 키운 가축에게 주는 정부 인증이다.

돈마루 이범호 대표이사는 동물복지 인증을 받은 성지농장 대표이기도 하다. 돈마루는 성지농장을 비롯해 수도권의 10개 양돈 농가들이 주주로 참여하고 있는 회사다. 하남의 돈마루 본사에서 이범호 대표를 만나, 동물복지 인증을 받게 된 계기 등을 물었다.


동물복지에 대한 관심은 언제부터 가지게 됐나요.
“축산업을 시작하는 사람이라면 모두가 꿈꾸는 그림이 있을 것입니다. 푸른 들판에 소·돼지를 풀어놓고 키우는 것이죠.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돼지우리는 아무리 깨끗하게 관리를 하더라도 외관상 지저분하게 보일 수밖에 없고, 구제역(소·돼지·양 등 발굽이 두개로 갈라진 동물에서 발생하는 제1종 바이러스성 가축 전염병)이 몇년에 한번씩 발생, 그동안 키운 돼지를 모두 살처분하는 일이 허다했습니다.
그러다 1991년도에 네덜란드에 동물복지 모델 농장이 처음 생겼다고 해서 가봤는데 정말 돼지들이 자유롭게 사육되고 있는 것을 보고 ‘저렇게 기르는 방법도 가능하구나’ 하고 언젠가는 시도해봐야겠다고 생각했었습니다.”

동물복지 준비는 어떻게 했습니까.
“동물복지 인증을 받으려면 기존 시설을 복지 기준에 맞도록 전부 개조해야 하는데 돼지가 돈사에 있을 때는 공사 자체가 어렵습니다. 그러다 2010년에 구제역이 발생해, 기르던 5000여마리의 돼지를 모두 살처분하다 보니 돈사가 1년 동안 텅 비어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참에 동물복지형 농장으로 시설을 바꾸자고 결심해, 2011년에 농장 전체를 대대적 으로 공사했습니다.”

동물복지 농장을 운영하면서 애로사항은 어떤 것이 있었나요.
“우선 초기 시설투자 비용이 6억원 정도 들었습니다. 돈도 많이 들었지만 동물복지를 처음 시작했을 때 ‘직원들의 복지를 우선으로 해줘야지, 무슨 동물 복지냐’라는 불만이 직원들 사이에서 적지 않았습니다. 농장직원들의 자발적 노력 없이는 동물복지 농장 추진이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기숙사 환경 개선과 업무 환경 개선 등 직원들의 편의시설에 더욱 더 신경을 쓰게 되면서 직원들의 복지도 높이고 동물복지 인증도 받게 되었습니다.”

유럽형 동물복지가 국토가 좁고 영세 축산농가가 많은 한국의 현실에 맞다고 봅니까.
“논란도 많고 해결해야 할 것도 많지만 궁극적으로 한국 축산업이 가야 할 방향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직은 시기상조지만 무항생제, 친환경, 동물복지 등 안전하고 자연친화적인 축산물을 원하는 소비자가 증가하고 또 동물과 인간이 공생한다는 차원에서도 축산인들이 선제적으로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국내에서 동물복지가 활성화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사육 밀도를 10~20% 정도 낮춰야 하니까 전체 사육 두수가 적어져 생산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생산 원가는 올라가지만 제값 받고 팔 판매처 확보는 쉽지 않습니다. 정부도 별다른 지원책 없이 단순히 까다로운 심사와 인증마크만 부여하기 때문에 활성화가 안 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성지농장은 동물복지를 하기 전부터 저항생제, 무항생제로 단계별 준비를 했는데, 돼지들에게 면역력을 높이기 위해 어떤 조치를 취했나요.
“사육 두수를 줄여 환경개선을 통해 돼지가 편안하도록 노력했습니다. 또 돼지 면역력을 강화하는 벌침을 활용하는 한편, 마늘성분 유산균 등을 첨가제로 사용했습니다.”

동물복지 인증 제품은 일반농장 돼지보다 값이 비싼데, 맛도 좋은가요.
“아무래도 스트레스 없이 건강하게 키운 돼지가 맛도 좋겠지만, 그보다는 우리가 키우는 동물들도 자연의 섭리에 따라 자라날 권리가 있다는 생각에서 동물복지 사육을 하고 있습니다.”

돈마루의 내년 중점추진사항은 어떤 것이 있나요.
“친환경 동물 복지농장을 확대하고 친환경 원료를 활용한 햄, 소시지, 육포, 돈가스, 이유식 등의 다양한 가공품 판매를 확대할 것입니다. 또 현재 운영 중인 돼지고기 전문식당인 ‘시인과 농부’를 30여개로 확대할 계획입니다.”

농장을 운영한 지 32년이 됐는데 후배 축산인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나요.
“사실 축산업은 미래 생명 첨단산업입니다. 양돈 등 축산을 그동안 ‘3D산업’이라며 기피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세계적인 투자 전문가 짐 로저스가 얘기했듯이 농업이 가장 비전 있는 미래산업이 될 것이고 현재도 미국, 덴마크, 네덜란드, 독일 등 경제 선진국들은 양돈 선진국들입니다. 막연하게 ‘냄새 나고 힘들다’는 잘못된 정보에 속지 말고 미래 생명 산업인 축산업에 많이 도전했으면 좋겠습니다.”


▒ 이범호
서울대 축산과, 건국대 농축개발대학원, 대한제당 사료영업부장, 도드람 대표 등 역임, 현재 돈마루·나람사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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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복지 축산농장 인증제 돼지·소·닭 등을 좁은 우리에 가둬 기르지 않고 일정한 공간의 쾌적한 환경에서 동물 본래의 습성대로 키우는 등 높은 수준의 동물복지 기준에 따라 동물을 사육하는 농장에 대해 국가가 인증하는 제도. 현재 양돈농가의 경우 10여개 농장이 동물복지 인증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