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만DWT(재화중량톤·선박에 실을 수 있는 화물의 무게)급 선박 한 척이 하루에 사용하는 연료 양은 약 20t으로, 한달 연료비가 18만달러(약 2억600만원)쯤 든다. 가스와 벙커C유 혼합물인 선박 연료는 측정이 어렵다. 선박 100척을 운영하는 회사의 계측기 오차율이 5%만 돼도 한달에 10억원, 1년이면 120억원의 손해가 난다. 현대중공업·삼성중공업 등 국내외 조선사들은 선박연료의 정확한 측정을 위해 엔드레스하우저가 만든 계측기를 사용하고 있다.

‘스위스’ 하면 흔히 시계를 떠올리지만 산업계에서 스위스는 첨단 정밀산업의 선두주자로 통한다. 엔드레스하우저는 스위스에 본사를 둔 계측 및 자동화 전문 세계 1위 기업이다. 조선업계는 물론 글로벌 화학기업인 듀폰과 바스프(BASF), 제약사인 노바티스와 바이엘, 정유사인 쉘석유, 식품회사인 네슬레, 카길 등이 엔드레스하우저의 계측기를 사용한다.

엔드레스하우저의 역사는 1953년 독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29살 스위스 시계공이었던 조지 하우저 엔드레스는 독일과 스위스 접경지인 뢰라흐의 아파트에서 사업을 시작했다. 엔드레스는 ‘전자식 측정 장치’에 사업 기회가 있다고 봤다. 2년 후 1955년 엔드레스는 스위스에 계측기 부문 첫 특허를 출원했다. 1965년 독일 최초의 유량계를 출시했다. 자본금 2000독일마르크(2009년 기준 120만원 상당)로 시작한 이 회사는 60년 만에 연매출 2조5000억원, 직원수 1만3000명이 넘는 글로벌 대기업으로 성장했다.

최근 방한한 엔드레스하우저의 마티아스 알텐도르프 회장을 서울 구로구 신도림동 쉐라톤서울디큐브시티호텔에서 인터뷰했다. 올해 근속 28년 차로 2014년 CEO(최고경영자)가 된 알텐도르프 회장은 엔드레스하우저 창사 후 첫 전문경영인 출신 CEO다. 그 전까지는 엔드레스 가문 출신이 CEO를 맡아 경영해왔다. 희끗한 턱수염에 190㎝가 넘는 장신의 알텐도르프 회장은 인터뷰에 기내용 캐리어와 황토색 서류 봉투를 직접 챙겨왔다.


요즘 전 세계적으로 4차 산업혁명에 대한 논의가 한창인데, 어떻게 대응하고 있나.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은 연결성과 투명성이라고 생각한다. 엔드레스하우저는 싱가포르·인도네시아 팜오일 업체의 자동화 사업을 최근 진행했다. 60개 공장에 1000개가 넘는 팜오일 탱크가 있다. 매일 얼마나 생산하고 판매되는지 한눈에 확인하고 데이터는 클라우드에 저장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솔직히 말해 한국이 4차 산업 분야는 훨씬 앞서 있는 것 같다.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하면서 4차 산업혁명을 경험했다. 입국심사 때 자동 입출국 심사대에 내 여권을 스캔하자 영어가 아닌 독일어로 인사말을 건넸다. 어느 나라에서도 이런 서비스를 경험해 본 적은 없었다.” 

국제 유가가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유가 상승에 따른 사업 영향은 없나.
“국제 유가와 구리값 등 국제 원자재 가격이 오르면서 제조업 경기는 나아지는 분위기다. 산유국의 주머니 사정이 개선되면 신규 사업 발주도 늘어난다. 국제 유가보다 걱정하는 것은 전 세계에 불고 있는 보호무역주의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중국 등에서 생산된 제품이 미국에 수입될 때 관세가 오를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우선주의가 아직은 말뿐이지만, 언제쯤 직접적인 움직임으로 나타날지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보호무역주의와 관련, 스위스프랑의 가치가 급등했는데 어떻게 대응하고 있나.
“5년 전과 비교해서 유로화 대비 스위스프랑의 가치가 큰 폭으로 올랐다. 하지만 2년 전(2015년) 최고점에 비해서는 안정되는 모양새다. 환율 리스크는 어느 기업이나 동일하다. 두 가지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 먼저 수익성을 높이는 것이다. 통화 가치가 오르면 역내 사업은 고스란히 비용 부담으로 돌아온다. 비용을 낮추려면 결국 기술력을 높여야 하고 수익성을 개선해야 한다. 우선 자동화를 통한 비용 절감 노력이 있다. 그 다음으로는 생산 기지를 스위스 밖으로 내보내는 것도 방법이다. 시장 불안에 따른 스위스프랑 강세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엔드레스하우저는 1996년부터 이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역외 글로벌 오피스를 공격적으로 확대하는 방식으로 자연적 환헤지를 하고 있다.”

중국의 성장 둔화에 대한 전망은.
“중국은 지금도 연 5~6%의 성장을 하고 있다. 과거에 비해 성장 속도가 둔화됐다고는 하지만 다른 나라에 비해 현저히 높은 성장률을 보이고 있다. 성장은 상대적인 것이다. 13억의 인구를 가진 국가 경제가 6% 성장을 하는 곳은 전 세계에 중국 말고는 없다. 지금 중국이 겪는 것은 성장통이다. 독일이 그랬고, 한국도 그랬다. 전쟁 이후 산업화를 거치면서 석유화학산업 이후에 사회기반시설투자가 이어진다. 중국은 이제 생산 수출 중심에서 지식기반 산업을 기반으로 한 단계 경제적 도약을 하게 될 것이다. 중국에서는 환경 오염에 대한 사회적 고민이 크다. 수질 개선, 석탄에서 친환경 에너지로의 전환이 이뤄질 것이다.”

아시아 시장 전망이 궁금하다.
“2050년이 되면 아시아 시장 규모가 글로벌 GDP의 68%를 차지할 것이다. 아시아는 유럽 등 서구에 비해 젊다. (일본이나 한국을 제외한 아시아 지역은) 고령화 속도 역시 더디다. 엔드레스하우저는 지난해 베트남·미얀마·라오스·필리핀에 투자했다. 몇 년 전부터 인도네시아에는 지역지원센터를 운영중이다.”

엔드레스하우저는 유럽에서 존경받는 기업으로 꼽힌다. 비결은 무엇인가.
“내가 대접받고 싶은 만큼 상대를 대접하라. 내가 갖고 있는 신념이다. 전 직원을 대상으로 강의나 회의를 할 때 ‘신사숙녀 여러분’이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그들을 신사와 숙녀로 대해야 한다. 직원에 대한 관리자급의 부당 행위는 무관용 원칙으로 단호히 처벌한다. 고객에게도 마찬가지다. 마르크스의 ‘자본론’에 이런 말이 나온다. ‘환경이 행위를 결정하고, 행위가 환경을 결정한다.’ 직원과 회사는 연결돼 있다고 본다. 구성원을 바꾸고 싶다면 회사 환경을 바꿔야 한다. 직원에게 바뀌지 않는다고 억압해선 안 된다. 두려움은 사람을 위축시키고, 창의력을 억누른다. 나는 직원 간 동료애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직원들이 회사를 위해 싸울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뜻이다. 회사를 위해서 싸우게 하려면 일자리가 없어질 수 있다는 두려움을 줘서는 안된다. 이를 정의한다면 윗사람이 모범을 보이는 리더십, 섬김의 리더십이라고 말하고 싶다.”

올해 15개 신상품을 출시할 계획이라고 했다. 기술력을 요하는 신상품을 많이 낼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인가.
“신상품 출시의 바탕은 크게 두 가지다. 먼저 상품 플랫폼을 잘 구성한 힘이다. 플랫폼을 구성하고, 이를 결합해 시너지를 낸다. 두 번째는 연구·개발(R&D) 투자다. 고기능성 장비는 신제품을 내고 싶다고 해서 뚝딱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다. 지난 10년의 결과물이라고 봐야 한다. 올해 출시될 제품은 이미 10년 전에 기획해 연구·개발 단계를 거친 것이다.”


▒ 마티아스 알텐도르프(Matthias Altendorf)
스위스 바젤대 물리학·경제학 석사 미국 스탠퍼드대 MB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