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영호 대표는 “앞으로 느린마을 양조장 프랜차이즈 사업을 통해 술 제조를 가맹점주에게 넘겨줄 것”이라며 “본사로부터 양조 기술을 전수받은 가맹점주들이 막걸리를 직접 빚어 판매하게 된다”고 말했다. <사진 : C영상미디어 이신영>
배영호 대표는 “앞으로 느린마을 양조장 프랜차이즈 사업을 통해 술 제조를 가맹점주에게 넘겨줄 것”이라며 “본사로부터 양조 기술을 전수받은 가맹점주들이 막걸리를 직접 빚어 판매하게 된다”고 말했다. <사진 : C영상미디어 이신영>

배상면주가의 배영호 대표는 2013년 타계한 고 배상면 전 국순당 회장의 둘째 아들이다. 배상면 회장은 일생을 누룩 연구와 전통술 개발에 전념, 전통술 복원에 큰 자취를 남겼다. 배영호 대표는 친형인 국순당 배중호 대표와 함께 국순당을 창업, 우리 술 시장에 활기를 불어넣은 ‘백세주 신화’의 주역이다. 배영호 대표는 1996년 형으로부터 독립, 부친의 이름을 딴 배상면주가를 설립, 지금껏 대표로 일하면서 다양한 우리 술 개발과 전통술 문화 알리기에 힘쓰고 있다.

배영호 대표는 전통술 업계에서 ‘벤처기업인’으로 통한다. 전통술을 과거(전통)에 머물게 하지 않고 현대의 것으로 승화하기 위해 끊임없이 실험을 계속해오고 있기 때문이다. 술로 아이스크림을 만들고, 쌀을 원료로 한 맥주(라이스라거)도 재작년 말에 내놓았다. 2010년대 초 막걸리 붐에 편승해 상당수 업체들이 수입산 쌀과 감미료로 막걸리를 만들 때도 배영호 대표는 우리 쌀만으로 만든 막걸리 개발에 몰두했다. 제철 농산물을 원료로 한 세시주를 지속적으로 내놓고 있는 곳도 배상면주가뿐이다.

그러나 그가 거의 20년째 공을 들이고 있는 ‘전통술의 현대화’는 아직 미완이다. 설립 직후인 1997년에 나온 산사춘 매출을 뛰어넘을 제품을 아직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작년 배상면주가의 전체 매출 역시 145억원에 불과했다. 그나마 산사춘이 작년에 전체 매출의 절반이 넘는 80억원을 기록, 효자노릇을 하고 있다. 전체 매출은 10년 넘게 답보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도 배 대표는 기죽은 기색이 없어 보였다. “인디언 한 부족의 족장은 기우제만 지내면 신기하게도 비가 왔다고 합니다. 알고 봤더니 비가 올 때까지 반년이든 일년이든 기우제를 계속 지낸 결과였다고 합니다. 저도 거의 20년째 기우제(전통술의 현대화 작업)를 지내고 있는 셈인데, 정말 이제는 곧 비(대박)가 올 것 같습니다.” 배영호 대표는 15년 지기인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서울 양재동 배상면주가 본사 1층은 최근 조선비즈가 주최한 ‘대한민국 주류대상’에서 최고상인 ‘베스트 오브 베스트’상을 수상한 ‘느린마을’ 막걸리를 직접 빚어 파는 전통주점 카페(느린마을 양조장&푸드)로 쓰이고 있었다. 오래 전부터 배 대표가 꿈꿔온 ‘도심 양조장’을 실현한 곳이다.


‘느린마을’ 막걸리의 대한민국 주류대상 베스트 오브 베스트상 수상을 축하한다. 비결은 무엇인가.
“느린마을 막걸리는 농림부 주최 품평회를 포함해 4년 연속 대상을 수상했는데, 비결은 별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블라인드 테이스팅(브랜드를 숨긴 상태에서 심사위원들이 술의 맛과 향기 등을 평가) 결과인 만큼 맛이 좋고 (타 제품과도) 다르기 때문이라고 본다. 일반 막걸리들이 대부분 아스파탐 같은 인공감미료를 쓰기 때문에 맛에 차이가 없다. 음식에 조미료 쓰듯이 술 맛도 다 똑같아진다. 우리는 그것(아스파탐)을 안 쓰니까 개성이 나오는 거다. 일반 막걸리보다 쌀도 2배 반 더 쓴다. 그래서 가격이 약간 비싸다. 소비자들의 가격 저항은 다소 있지만 술의 다양성을 추구한다는 측면에서 원료는 타협의 여지가 없다. 한 마디로 기본에 충실한 점을 높이 산 것이라고 본다.”

가맹사업을 시작한 ‘느린마을 양조장&푸드’의 특징은.
“우선 술과 음식의 페어링(pairing·적절한 조화, 궁합)에 각별한 신경을 쓰고 있다. 세계 각국의 모든 음식들은 자기 나라의 술을 조리에 활용하고 있다. 음식 부재료로 와인은 엄청나게 쓰이고, 맥주도 쓰이고, 일본 청주, 중국의 황주 등 기본적으로 레시피에 술을 안 쓰는 음식이 없다고 보면 된다. 우리나라도 옛날엔 그랬다. 막걸리나 약주를 음식에 사용했다. 그런데 일제 강점기에 가정에서 술을 못 빚게 하면서 술을 음식에 활용하는 문화가 사라졌다. 이걸 다시 살려봐야겠다는 생각에서 술을 쓴 음식을 많이 개발했다. 옛날부터 따로 용어가 있는 게 아니었으니까 우리는 그것을 ‘양조장 푸드’‘술 음식’ 이렇게 표현을 하고 있다. 조리에 술을 많이 활용하고 있다.”

배상면주가가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프랜차이즈 사업을 하기로 한 전통주점 ‘느린마을 양조장 & 푸드’ 내부. <사진 : 배상면주가>
배상면주가가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프랜차이즈 사업을 하기로 한 전통주점 ‘느린마을 양조장 & 푸드’ 내부. <사진 : 배상면주가>

2011년에 문을 연 양재점(본사 1층)을 비롯해 6개 ‘느린마을 양조장&푸드’에서는 막걸리를 직접 빚을 뿐 아니라 막걸리를 조리에 사용한 음식들이 적지 않다. ‘양조장 막고기 한접시’는 일종의 막걸리 훈증법 요리인데, 막걸리를 끓여 높은 온도에서 막걸리 증기(김)로 고기를 쪄내는 방식이다. 이렇게 하면 고기의 육질이 부드러워지고 쫄깃해져 잡냄새가 없는 것이 특징이다. ‘양조장 치킨 그릴 스테이크’는 닭을 80분 동안 막걸리에 숙성시켜 육질을 부드럽게 하고 매콤한 불맛 소스를 더한 것이 특징. 상큼한 깻잎과 날치알을 함께 싸먹는 재미가 있다는 설명이다. 5년여 동안 직영점에서 다양한 시도를 거듭한 끝에 탄생한 ‘느린마을 양조장&푸드’는 올해부터 프랜차이즈 가맹사업을 시작했다. 올해 서울에서만 100개의 가맹점을 여는 것이 배 대표의 목표다. 막걸리를 발효, 숙성시키는 발효조도 100ℓ 소형 탱크까지 개발, 도심 소형 매장에서도 막걸리를 빚는 데 문제가 없도록 했다. 배 대표는 “느린마을에 오면 매장에서 직접 빚어 숙성시킨 신선한 막걸리와 막걸리가 들어간 다양한 음식들을 즐길 수 있다”고 말했다.

도심 양조장 사업을 확대하기로 한 계기는.
“20~30년 전에 미국 솔트레이크 시티를 간 적이 있다. 거기서 99㎡(30평)쯤 되는 작은 맥줏집에서 수제맥주를 파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수많은 수제맥주 펍이 있는 유럽과 달리, 미국 맥주시장은 대부분 대량생산 맥주 위주로 알고 있었는데 아니었다. 그래서 생각했다. ‘우리 전통술도 이런 시대가 올 것이다. 도심 곳곳의 소규모 양조장에서 술을 빚어 직접 판매하면 우리 술이 과거의 영광을 되찾을 수도 있겠다’고. 1996년 경기도 포천에 공장을 만들어 술을 만들 때부터 ‘나중에 법이 개정돼 수제 막걸리 판매가 허용되면 도심 양조장 프랜차이즈 사업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그동안 차곡차곡 준비를 해왔다. 술을 본사에서 독점적으로 만드는 시대는 끝났다.”

술 제조를 독점하지 않겠다는 의미는?
“요즘 다들 4차 산업혁명을 얘기하는데, 주류산업도 4차 산업혁명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식품산업과 4차 산업을 연관지어 얘기하면 ‘제조업 민주화’가 앞으로 도래할 것이다. 지금까지 주류를 포함한 식품산업은 아무나 할 수 없었다. 기술도 있어야 하고 규모의 경제를 갖추지 못하면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었다. 그러나 이제 시대가 바뀌었다. 커피회사의 대량생산 커피만 먹던 소비자들이 드립커피를 만들어 마시는 시대가 온 것이다. 배상면주가 역시 과거에는 술을 만들어 유통시켰지만, 우리가 프랜차이즈 사업을 한다는 것은 제조를 넘겨준다는 의미다. 본사는 기술과 원료를 제공하고 가맹점에서 술을 만든다. 주류산업이 지식산업으로 전환되는 굉장히 중요한 변화를 맞이한 것이다.”

양조장 플랫폼을 만든다는 의미인가.
“그렇다. 우리가 만든 양조장 플랫폼에 와서 누구나 술을 만들 수 있게 우리가 지식을 파는 거다. 평택에서 자동차를 수만대 만드는 세상에서 앞으로 20~30%는 소형공장에서 자동차를 주문생산하는 세상이 오는 것이다. 우리가 양조장을 100개 만들면 양조 탱크만 1000개(한 양조장에 평균 10개의 탱크를 운영한다) 들어서는 셈이다. 사물인터넷을 활용, 이들 양조 탱크들끼리 정보를 교환하고 품질을 업데이트하는 시대가 곧 온다. 제조업 민주화, 제조업의 지식산업화는 본사의 제조 기능을 관심 있는 대중들에게 나눠주는 것을 말한다. 요즘 다소 힘을 잃은 주류 도매상과도 협업해 도매상들이 제조와 도매를 겸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추진 중에 있다. 제조와 유통을 같이 하는 최초의 사례가 될 것이다. 여기서 만드는 막걸리는 ‘느린 마을’ 막걸리와는 다른 브랜드로 할 것이고 가격도 다소 낮게 책정할 것이다.”

매번 새로운 시도를 하지만, 산사춘을 빼고는 성공이라고 할 만한 ‘작품’이 없다. 해결책은.
“계속 속았으니 이번에도 한번 더 속아달라.(웃음) 희석식 소주가 영원히 살아남을까? 막걸리가 영원할 수 있겠는가? 시대가 변하고 있다. 막걸리도 고급화해야 한다. 물보다 값싼 막걸리 갖고는 대중화도 어렵다. 막걸리 고급화가 안 되니 대중화도 안 된다는 것이다. 느린마을 양조장 사업의 핵심은 고급화다. 수제맥주가 일반맥주보다 비싸지만  찾는 사람들이 많듯이, 오랜 문화상품인 우리 막걸리 역시 제대로 만들어 적정 가격에 판매하겠다는 것이다. 전통술이라는 이유로 세금혜택을 받는 막걸리를 수입쌀로 만든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본다.”

배상면주가의 주요 제품들. 사진 왼쪽부터 산사춘, 오매락(증류주), R4(라이스 비어), 느린마을(막걸리). <사진 : 배상면주가>
배상면주가의 주요 제품들. 사진 왼쪽부터 산사춘, 오매락(증류주), R4(라이스 비어), 느린마을(막걸리). <사진 : 배상면주가>

막걸리의 세계화 조건은.
“가장 중요한 게 음식과의 조화, 페어링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양조장의 해외 진출이다. 막걸리를 국내에서 만들어 배로 실어 한달 넘게 걸려 외국에 도착하면 신선함을 제대로 지킬 수 없다. 거기에다 스토리텔링이 있어야 한다. 글로벌 시장에서 외국인이 막걸리를 마셔야 하는 TPO(Time, Place, Occasion)가 있어야 한다. 그게 음식이든, 스토리텔링이든 외국인들이 스스로 우리 술을 찾도록 흡인력이 있어야 한다. 일본 사케가 스시(생선초밥)와 함께 글로벌 시장에 동반진출한 것을 참조해야 한다. 중국 음식 먹을 때 백주(고량주)를 마시듯, 해외에서 우리 음식 먹을 때 자연스럽게 우리 술을 마시도록 술과 음식을 잘 매칭시켜야 한다.”

수입맥주, 저도 소주 열풍이 전통술 업계에 미치는 영향은.
“수입맥주, 수제맥주 등의 시장이 커지는 현상을 ‘다양성’으로 해석한다. 그만큼 소비자들에게는 다양한 술에 대한 욕구가 있다는 것이다. 언제까지 똑같은 희석식 소주, 싱거운 맥주만 마실 것인가? ‘소비자 주권’ 시대다. 남들과 다른 술을 찾는 사람들이 점점 늘고 있다. 과거 소비자는 술 회사에서 만드는 술을 그냥 마셨지만, 이제는 스스로 찾아서 마시고, 심지어 직접 만들어 마시지 않나?”

포천공장의 산사원이 지역 관광명소로 자리잡았다.
“연간 5만명이 찾고 있다. 한옥이 많아 관리에 적지 않은 돈이 드는 게 사실이다. 그동안 수십억원 이상 투자했다. 20년 이상 하니까 이제는 자리를 잡아 관리·수리비는 자체적으로 번 돈으로 충당하고 있다.”

전통술을 어떻게 받아들이나.
“전통술은 케케묵은 옛날 것이 아니라 당대의 술이어야 한다. 그래서 사실 전통술이란 말도 싫어한다. 여기에는 우리 술이 낡고 시대에 뒤떨어진 술이란 의미가 담겨 있는 것 같기 때문이다. 전통술이란 옛날 술이란 뜻이 아니라 그 시대를 대표하는 술이란 뜻이다. 당대의 생물학, 생화학 지식들이 총체적으로 양조기술에 반영돼 술을 만들고 현대인들이 즐겨 마시도록 해야 한다. 아직 시장의 반응이 다소 아쉽지만 쌀 맥주를 만든 것도 전통술의 재해석이란 측면에서 시도한 것이다. 사람들이 맥주를 소주에 버금갈 정도로 좋아하는데, 우리 농산물인 쌀로 만들 방법은 없을까 하는 고민에서 비롯된 것이다. 국민들이 가장 많이 마시는 희석식 소주나 맥주는 원료가 모두 수입산이다.”


▒ 배영호
58세,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졸업(1983년), 국순당 전무(1993년), 배상면주가 설립(1996년)


Plus Point

술 익는 항아리 600개와 한옥이 어우러진 산사원

경기도 포천의 산사원 전경. <사진 : 배상면주가>
경기도 포천의 산사원 전경. <사진 : 배상면주가>

경기도 포천시(화현면 화현리 512번지)에 위치한 산사원은 전통술 박물관이다. 배상면주가 포천공장과 함께 설립됐다. 배상면주가의 대표 술인 산사춘의 원료 ‘산사나무의 정원’이라는 뜻으로 전통술에 대한 교육, 체험, 관광, 양조의 기능 등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진 전통술 문화 체험공간이다. 지난해 농림부로부터 ‘찾아가는 양조장’ 지정도 받았다.

산사원은 지난 1996년에 개관한 이후 2002년에 새롭게 재단장해 오픈했다. 산사원은 연평균 5만명 이상이 방문하고 있고, 이 중 10%는 외국인 방문객으로, 국내 대표적인 ‘체험형 산업 관광지’로 손꼽힌다.

산사원 내에 있는 산사정원은 약 1만3223㎡(4000평) 규모로 600여개의 전통술을 숙성 중인 대형 항아리가 일렬로 늘어선 ‘세월랑’이 압권이다. 이뿐 아니다. 포석정과 같이 흐르는 물에 잔을 띄워 술을 마실 수 있는 ‘유상곡수’, 산사원을 한눈에 내려다보며 각종 모임과 연회를 펼칠 수 있는 ‘우곡루’, 풍류 공연을 펼칠 수 있는 ‘취선각’, 근대 양조장의 모습을 구현해 놓은 ‘부안당’등으로 이뤄져 있다. 특히 200년 된 산사나무 아래 600여개의 항아리에서 술이 익어가는 모습과 전통한옥에서 인근 운악산의 경치를 감상하는 것이 이곳 산사정원의 묘미다.

또한 산사원 박물관에서는 입장료 2000원을 내면 다양한 전통술을 자유롭게 시음해 볼 수 있으며, 술과 관련된 옛 문헌과 자료·도구 등 다양한 전시를 관람할 수 있다. 최근 봄을 느낄 수 있는 다양한 음식과 술을 준비해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다. 봄 냉이를 이용한 ‘냉이정과’와 ‘쑥떡’, 상큼한 봄 칵테일인 ‘춘삼월댕기’가 마련돼 있다.

또한 박물관에서는 올바른 음주 예절부터 술을 직접 만들어서 가져갈 수 있는 체험 프로그램인 ‘가양주 교실’을 예약제로 운영 중이다. 배영호 대표는 “산사원은 가양주 프로그램을 통해 우리 술의 문화와 역사, 세시풍속과 우리 술의 다양한 스토리를 전달하는 데 힘쓰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