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기문 대표는 “소량으로 만드는 수제맥주는 홉의 종류와 함량을 조절해 다양한 향과 맛을 낼 수 있다”고 말했다. <사진 : C영상미디어 이경호>
강기문 대표는 “소량으로 만드는 수제맥주는 홉의 종류와 함량을 조절해 다양한 향과 맛을 낼 수 있다”고 말했다. <사진 : C영상미디어 이경호>

프랑스 사람들이 많이 거주하는 것으로 유명한 서울 서초구 서래마을 초입에서 수제맥주 전문점 크래프트브로스를 운영하는 강기문(40) 대표의 첫 직장은 광고회사였다. 세계 3대 광고제의 하나인 뉴욕광고제에서 기저귀 광고로 상(파이널리스트상)을 받기도 한 그의 두 번째 직장은 디자이너 슈즈 제조업체였다. 지금의 아내(당시 여자친구)와 2005년 공동창업한 제화업체 플라비아퍼플은 한때 주요 백화점에 7개의 매장이 있었을 뿐 아니라 ‘패션의 본고장’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구두박람회에 단독 참가할 정도로 ‘잘나갔으나’ 3년 만에 사업을 접었다. 강 대표는 “판매가 느는 만큼 재고 부담이 커져 감당하기가 어려워 2008년에 사업체를 매각했다”고 말했다.


‘강남맥주’ 등 수제맥주 개발

두 번째 창업도 패션사업이었다. 그가 대표를 맡은 패션유통업체 오펠리컴퍼니는 라이선스 티셔츠 전문점 ‘콜렉티’를 서울 시내 여러 곳에 오픈했다. 리얼버라이어티 TV 프로그램인 1박2일 출연자들이 이 브랜드의 모자나 티셔츠를 착용하고 방송에 나와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강 대표는 “대부, 탑건, 이탈리안 잡, 마블 등 젊은층에 인기를 모은 영화를 테마로 한 티셔츠 사업이었는데, 큰돈은 벌지 못했지만 소비자 반응이 그런대로 좋았다”고 말했다.

두 번째 창업한 패션업체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자 강 대표는 패션사업과 무관한 ‘외도’를 하기 시작했다. 여가를 이용해 처음에는 막걸리 아카데미에서 막걸리 만드는 법을 배우다가 수제맥주 제조에 도전했다. 그는 “막걸리보다는 맥주 제조가 훨씬 체계적인 것 같았고, 나하고도 궁합이 잘 맞는 술이었다”고 말했다.

수제맥주에 푹 빠진 강 대표는 2013년부터는 아예 패션사업을 접고 수제맥주 사업에 뛰어들었다. 그로서는 디자이너 슈즈, 라이선스 티셔츠 사업에 이어 세 번째 창업이었다. “2013~2014년 당시에 홍대나 경리단길, 이태원 등지에는 수제맥주 전문점들이 막 들어서고 있었지만, 서래마을에는 한군데도 없었어요. 제가 서초 토박이여서 서래마을에 수제맥주 전문점 ‘크래프트브로스’를 2014년 6월에 열었어요. 와인바나 이자카야밖에 없던 서래마을에 처음 수제맥주점이 들어서니 대박이 났죠.”

크래프트브로스는 최근 다시 한 번 업그레이드됐다. 40여개의 수제맥주를 전용 캔에 밀봉해 테이크아웃으로 판매하는 ‘캔 메이커’ 사업을 시작한 것이다. 강 대표는 “수제맥주를 이제 집에서 캔으로 간편히 즐길 수 있는 시대가 왔다”고 말했다. 크래프트브로스는 작년 말부터 350㎖ 용량의 수제맥주를 평균가격 5000원에 캔에 담아주는 서비스를 하고 있다. 크래프트브로스는 현재 서래마을 본점, 김포점, 대치점(수제맥주를 캔에 담아 배달해주는 서비스 위주 영업)이 있으며 이달 말 세종점을 오픈한다.


캔에 담은 수제맥주는 어떻게 마셔야 하나.
“당연히 냉장보관한 뒤 차갑게 마셔야 한다. 다만, 캔째로 마시지 말고 컵에 따라 마시는 게 좋다. 맥주 특유의 아로마 향을 제대로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컵에 옮겨 담다보면 자연스레 공기와 접촉하게 되는데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맥주 향이 우러나게 된다. 와인잔을 좌우로 흔들어 와인이 공기와 접촉하도록 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캔에 담은 수제맥주는 오래 보관하지 말고 가급적 빠른 시일 내에 마셔야 한다. 완벽하게 밀봉됐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제맥주 캔을 수십개씩 사 가는 고객에게는 한꺼번에 많이 사 가지 마시라고 권한다.”


크래프트브로스 서초점 벽면에는 화사한 포스터 액자가 즐비하다. 이 중 마녀가 공주에게 유자를 건네는 사진이 눈에 띄었다. 호가든 맥주를 벤치마킹해 오렌지 껍질 대신 유자 껍질을 넣은 ‘스노우화이트(백설공주)에일’ 맥주다. 밀맥주를 기본으로 하면서도 쌉싸래한 맛의 홉 향이 강하지 않아 여성들이 즐겨 찾는 수제맥주다. 크래프트브로스에는 이처럼 ‘스토리텔링’ 옷을 입은 수제맥주가 많다. 지역명을 내세운 ‘강남맥주’도 이름만큼이나 맛도 중독성이 있다. 화려한 과일 향과 진한 맛이 특징이다. 특히 전용 캔 디자인이 서울지하철 2호선 강남역을 연상시킨다. 이곳 맥주 중 가장 비싼 ‘브랫(Brat)’은 악동이란 뜻이다. 홉이 다른 맥주보다 월등히 많이 들어갔으며, 알코올 도수도 10.1도로 일반 맥주의 두배 수준이다.


수제맥주가 대량생산 맥주에 비해 좋은 점은.
“수제맥주는 소량 생산 맥주다. 그래서 소비자 기호에 맞춰 맥주 원료 양을 조절할 수 있다. 가령, 우리 매장의 대표 맥주인 ‘스노우화이트에일’의 경우 유자 껍질과 바닐라 콩이 들어가는데, 여름에는 상큼한 맛을 더하기 위해 유자 껍질 함량을 평소보다 늘리고, 겨울에는 반대로 바닐라 콩을 넣어 부드럽게 만든다. 같은 맥주라도 계절에 따라 맛에 변화를 줄 수 있는 게 수제맥주의 장점이다. 특히, 맥주의 쌉싸래한 맛을 결정짓는 홉의 종류, 용량에 따라 맥주 맛이 천차만별이다.

사업 확장 계획은.
“우리 업장에서 파는 맥주들은 개발은 우리가 하지만 생산은 전문업체에 아웃소싱하고 있다. OEM(주문자위탁생산) 맥주인 셈이다. 그런데 우리가 같은 레시피를 주더라도 업체에서 만들어 오는 제품 품질이 매번 똑같지 않아 고객들로부터 ‘맛이 달라졌다’는 불평의 말을 가끔 듣는다. 그래서 맥주 양조시설을 갖춰 일부 맥주는 직접 생산해볼 계획이다.”


▒ 강기문
1977년생, 성균관대 철학 전공, 오길비앤매더 광고기획 근무(2002~2003년), 플라비아퍼플 설립(2005년), 오펠리컴퍼니 설립(2008년), 크래프트브로스 사업 시작(2014년)


Plus Point

‘커피 캔 제조기’ 벤치마킹

수제 생맥주를 캔에 담아 테이크아웃으로 판매하는 캔 메이커 서비스. <사진 : C영상미디어 이경호>
수제 생맥주를 캔에 담아 테이크아웃으로 판매하는 캔 메이커 서비스. <사진 : C영상미디어 이경호>

강기문 대표가 작년 12월부터 캔 메이커(Can Maker) 사업을 시작한 데는 세가지 요건이 맞아떨어진 덕분이라고 한다. 캔 메이커는 생맥주를 캔에 담아 밀봉해주는 서비스를 말하며, 원래 영어로는 캔 시밍(can seaming·캔 밀봉)이라고 한다.

캔 메이커 사업의 출발은 법적 근거다. 작년 9월 기획재정부 고시로 맥주 배달이 허용됐기 때문이다. 그전까지는 생맥주는 만든 곳에서만 팔고 배달은 허용하지 않았다.

두 번째로는 수제맥주 품질이 크게 높아진 게 계기가 됐다. 2~3년 전만 해도 국내 수제맥주보다는 수입맥주 맛이 더 나았다는 게 강 대표의 생각이다. 그런데 수제맥주 제조에 뛰어드는 사람들이 늘다 보니 작년부터 국산 수제맥주 맛이 확 달라졌다는 것이다. 그러던 차에 강 대표가 자주 가는 커피전문점에서 캔 시머 기계를 사용하고 있다는 걸 알게 돼 이것을 수제 생맥주에도 활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