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회사 직원에게 물병을 던져 갑질 논란을 빚고 있는 조현민 대한항공 전무. / MBC

조현민 대한항공 여객마케팅 전무의 ‘갑질 논란’ 여파가 계속 퍼지고 있다. 단발적인 사건이 아니라 오너 일가의 갑질이 회사 내에서 만연한 일이었다는 폭로가 이어지면서 파장이 더 커지고 있다. 조 전무는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차녀로 2014년 항공기 회항과 승무원 폭행으로 물의를 빚은 조현아 칼호텔네트워크 사장의 동생이다.

처음 논란이 벌어진 것은 지난 12일이다. 조 전무가 광고대행사 직원에게 회의 중 물을 뿌렸다는 의혹이 직장인 익명 게시판 ‘블라인드’ 앱에 올라왔다. 지난 3월 중순 대한항공의 광고를 제작하는 H사와 회의에서 담당 팀장이 자신의 질문에 제대로 답변하지 못하자 조 전무가 화를 내며 물이 든 컵을 회의실 바닥에 던졌다는 것이다. 대한항공 측은 “물이 든 컵을 회의실 바닥에 던지면서 물이 튀었는데, 직원 얼굴을 향해 뿌렸다는 식으로 와전됐다”고 해명했다.

14일엔 조 전무의 음성으로 추정되는 녹음 파일이 공개됐다. 4분 20초 분량의 녹음 파일엔 조 전무로 추정되는 인물이 간부 직원에게 소리를 지르고 폭언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조 전무의 갑질 논란은 그의 어머니인 이명희 일우재단 이사장의 폭언, 욕설 파문으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대기업뿐만 아니라 중견기업 오너 3, 4세의 안하무인식 갑질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러한 갑질은 어디서 싹트는 것일까. 갑질은 권력관계에서 강자인 갑이 힘 없는 을에게 부당행위를 하는 것을 말한다. 이런 갑질은 마땅히 누릴 것을 누리고 있다는 특권의식에서 나온다. ‘나는 특별하다’는 특권의식이 사회적 통념을 기반으로 한 도덕성에서 벗어나 혼자만의 도덕체계를 만든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뇌·신경 심리학자인 이안 로버트슨(Ian Robertson) 아일랜드 트리니티칼리지 교수는 저서 ‘승자의 뇌’에서 권력을 쥐면 사람의 뇌가 바뀐다고 주장했다. 그는 “성공을 경험하면 혈중에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과 남성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 분비가 활성화돼 화학적 도취 상태가 된다”며 “이는 술이나 마약 등에서 얻는 쾌감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이런 사람들은 목표 달성이나 자기 만족에만 집중해 공감능력이 떨어지고 충동적이고 독선적으로 변한다는 것이다.

뇌가 문제라면 어쩔 수 없는 일일까. 이러한 갑질을 예방하고 폭주를 막기 위한 견제장치가 있다. 기업의 경우에는 이사회와 감사가 그것이다.

애플의 창업자인 고(故) 스티브 잡스는 제품 개발이나 마케팅에서 천재성으로 유명했지만 신경질적이고 독선적인 성격으로도 악명을 떨쳤다. 남의 의견을 경청하지 않고 고집을 내세우던 잡스는 결국 이사회의 결정에 의해 최고경영자(CEO) 자리에서 쫓겨났다.

잡스와 25년 동안 함께했던 픽사의 창업자 에드 캣멀은 “애플에서 쫓겨난 뒤에 넥스트와 픽사를 거치면서 잡스의 성격은 완전히 변했다”며 “지금의 성공적인 애플을 만든 건 커리어 초창기의 가혹한 잡스가 아니라 그 이후의 공감능력이 뛰어나고 배려심이 많은 잡스”라고 말했다. 애플에서는 능력이 뛰어나지만 독선적인 리더를 쫓아낼 수 있었던 견제 장치가 제대로 가동되고 있었던 것이다.


한국 기업에는 오너 갑질 견제장치 부족

하지만 우리나라 기업에는 기업 내에서 오너를 견제할 수 있는 장치가 부족하다. 오너 3, 4세의 갑질이 계속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특히 능력과 상관없이 경영진에 오른 오너 일가의 ‘사람에 대한 인식 변화’ 없이는 언제든지 반복될 수밖에 없다. 잘못한 뒤에도 경영일선으로 복귀할 수 있는 ‘족벌 경영 시스템’ 역시 문제다. 이에 따라 총수 일가의 지배구조를 견제할 수 있는 이사회 제도, 소수 주주의 목소리를 담을 수 있는 견제 시스템 등이 함께 가동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장세진 카이스트 경영대 교수는 이번 사건에 대해 “경영자로서 지녀야 할 자질인 능력이나 인성이 결여된 사람이 경영진에 있어 일어난 문제”라며 “주주는 주주행동주의로 행동에 나서고, 소비자들은 불매운동을 하며 기업을 압박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이라고 말했다.

이안 로버트슨 교수도 이 점을 지적한다. 로버트슨 교수는 “오너의 자식이라고 해도 특권이 주어지지 않아야 한다”며 “일반적인 직원과 완전히 동등하게 대하는 회사 문화와 엄격한 관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이 기사 작성에는 박지영 인턴기자(연세대 국제학과 4년)가 참여했습니다.


Plus Point

Interview 이안 로버트슨 아일랜드 트리니티칼리지 교수
“‘권력+능력 부족’이 갑질로 이어져”

이안 로버트슨 교수. / 조선일보 DB

“권력을 가진 동시에, 자신이 맡은 역할을 충분히 해내지 못할 것이라고 느낀다면 그 사람은 타인을 괴롭힐 가능성이 높다.”

뇌·신경 심리학자인 이안 로버트슨(Ian Robert-son) 아일랜드 트리니티칼리지 교수는 대한항공 사태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로버트슨 교수는 ‘네이처’ 등 과학 저널에 논문 250편을 썼으며, 2013년에 출간된 ‘승자의 뇌(The Winner Effect)’를 비롯해 10여 권의 책을 낸 세계적 석학이다. 이번 대한항공 사태에 대해 로버트슨 교수를 이메일로 인터뷰했다.


한국의 대기업들엔 가족승계 구조가 일반화돼 있다. 최근 오너들의 자녀가 부적절한 언행을 해 논란이 되고 있는데.
“이 문제에는 세 가지 요인이 연관돼 있다. 첫 번째는 부와 권력이다. 부와 권력은 사람들의 공감능력을 약하게 만들고, 다른 사람들을 객체화한다. 자기 인식, 억제력이 약해지고 충동적이게 되며, 리스크를 덜 고려하게 된다. 또 위선적으로 생각하며 스스로 다른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규칙이 자신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두 번째로 외부인이 아니라 창업자의 가족에게 기업을 승계하면 수익성이 떨어진다. 덴마크에서는 회사의 승계가 창업자로부터 그의 가족으로 이루어지는 시기에 수익성이 최소 4% 떨어졌다. 세 번째 요인은 특권을 가진 오너 자식들의 행동을 설명한다. 권력과 자신이 맡은 일에 대한 능력 부족이 결합되면 부하직원을 채찍질만 하게 만드는 독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오너들의 자식은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한 회사의 창업자로서 성공하는 것은 다양한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나타난 결과다. 근면함, 끈기, 재능, 네트워킹 능력 등이다. 운도 중요하다. 성공적인 부모 아래에서 태어난 자식이 부모만큼 성공할 가능성은 상당히 낮다. 그들은 스스로 인생의 길을 찾아야 하며 성공한 부모의 그늘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해야 한다. 다른 분야에서 사업을 시작하거나 아니면 사업을 아예 하지 않는 방식으로 말이다. 자신의 성공이 부모에게서 나왔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은 성숙한 인간이 되는 게 힘들다.”

재벌 2, 3세의 언행을 분석한다면.
“권력과 돈은 뇌의 ‘보상 시스템’에서 마약처럼 작용한다. 만약 많은 돈과 권력에 취하게 된다면 마약처럼 행동을 왜곡시킬 수 있다. 이런 현상은 남녀 모두에게 나타나는데 뇌의 ‘보상 네트워크’에서 도파민 활동을 증가시키는 테스토스테론을 높이기 때문이다.”

로버트슨 교수는 뇌의 ‘보상 네트워크’란 뇌에서 좋은 느낌이 들게 하는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권력을 잡게 되면 이 부분이 작동하는데, 테스토스테론이란 남성호르몬을 분출시키고, 그것이 도파민이라는 신경전달물질 분출을 촉진해 보상 네트워크를 움직인다. 이런 작용이 사람을 더 과감하고 긍정적이게 만들지만 독단적이고 파괴적으로 만들기도 한다.

기업 오너 일가의 부적절한 언행을 막기 위해 필요한 것은.
“오너 자식이라고 해도 특권이 주어지지 않아야 한다. 일반적인 직원과 동등하게 대하는 회사의 문화와 엄격한 관리가 필요하다. 특히 그들은 일반 직원과 동일한 규율을 적용받아야 하며 승진에 지나친 우선권이 주어져도 안 된다. 부모인 창업자들은 사업과 부모로서의 감정을 혼재시켜서는 안 된다.”